월요일 오후 5시에 서울의 종근당 건물 15층 부페 식당에서 문정욱, 유충선, 김지문 전도사 세 사람이 그 동안 브라질에서 선교사역자로서 수년간 일하시고 나오신 안승렬 선교사님을 만나 그분의 선교사역에 대하여 인터뷰를 한 내용이다.
여기서 우리 세사람은 안 선교사님께 다음 몇 가지 질문을 하였다;
질문 1: 당신의 목회 철학은 무엇이었는가?
질문 2: 왜 그 지역을 택하셨는가?
질문 3: 선교사님의 서역 초기의 개척과 목회의 방법은 무엇이었는가?
질문 4: 앞으로의 목회 방향은 무엇입니까?
다음은 위의 질문에 대한 안 선교사님의 답변을 정리 요약한 것이다.
1. 나의 목회 철학.
먼저 선교의 제일 큰 목적은 교회를 개척하는 것이다. Peter Wagner는 "the single most effective evangelistic methodology under heaven is plantin new church."라고 말했다.
한 영혼, 한 영혼을 구원해 나감으로 또 그들이 모여서 신앙 공동체를 이루어 나감으로 토착 교회가 생겨나는 것이고 동시에 교단적인 차원에서도 교회는 성장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다. 교회를 개척함으로서 하나님의 왕국을 확장해나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왕국은 넓은 의미로 하나님이 통치권이 행사되는 모든 곳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온 우주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나 좁은 의미로 볼 때 하나님을 왕으로 모신 자들의 모임이라고도 정의할 수 있다. 후자의 입장에서 볼 때,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하나님의 주권적인 통치권을 자신의 삶에 인정할 때 하나님의 왕국은 확장되어 가는 것이다.
동시에 본래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인간들이 죄악으로 인해 그 형상을 잃어버렸는데 개원 구원 및 교회 개척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키게 하는 작업이다. 그것은 창조의 작업이다. 물론 이 창조 사역은 삼위 일체 하나님의 독단적인 영역에 속하는 것이지만 인간은 선교를 통하여서 그 사역에 동참할 수 있는 것이다. 사도 바울 선생님은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4 - 17)라고 말하였다. 인간이 복음 전파의 매개체로서 하나님의 입이 되고 발이 되고 손이 되어서 인간이 알아듣기 쉬운 그리고 이해할 만한 언어로 의사 소통할 때 복음의 씨앗은 심겨진다. 그 씨앗이 자라갈 때 회심한 자는 인생에 변화를 받고 하나님의 형상이 만들어져 가는 것이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자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교회 개척은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인류의 첫 번째 명령 즉 문화명령에 대한 복종이기도 하다. 단지 나만 믿고 구원받아 천국에 간다는 이기주의적인 신앙은 버리고 이 세상에서 죄악 가운데서 방황하고 영원한 멸망으로 달음질해 가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함으로 비록 영적으로 죽어 있는 그들이 살아나고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나는 것은 이 명령에 대한 신실한 복종이다. 그러므로 복음 전파는 아담에게 주어진 문화명령의 영적인 해석이기도 하다.
이 아담의 명령의 우리 주님의 제자들에게는 지상명령으로 나타난다. 주님께서 이 세상을 떠나시면서 우리들에게 하신 명령은 제자를 삼는 일이요, 온 땅에 다니면서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요, 주님의 산 증거가 되는 것이요, 주님이 이 땅으로 보내심을 받으셨으니 주님도 우리를 이 땅으로 보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교는 우리가 해도 좋고 안해도 그만인 선택과목이 아니라 있는 우리가 꼭 해야만 하는 필수 과제이다.
교회 개척은 선교의 진수이다. 그것은 바로 선교 그 자체이다. 전 세기와 현 세기초반에는 잊혀졌던 진리였지만 1960년대에 Donald McGavran등에 의해서 일어났던 교회 성장학파들에 의해 재발견된 것이기도 하다. 나는 비록 그들의 신학을 전부 다 받아들이지는 않지만 교회 개척의 중요성에는 동감하는 바이다.
목회 철학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선교지 에서 그리고 선교 현장에서 일하면서 나 자신이 부수적인 선교 “사업”에 휩쓸리다 보니 제일 중심 되는 복음 전파를 잊어버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교회 개척은 물론 복음 전파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나의 목회 철학은 선교 철학이요 그것은 교회 개척이다. 나는 바울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That is: I would like to be planter of churches. 교회를 개척하고 어느 정도 교회가 안정이 되면 후계자에게 물려주고 다른 곳으로 떠나 개척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순례자의 모습이기도 하다. 즉 씨를 뿌리는 역만 하고 물을 주거나 가꾸어 주는 것은 남에게 맡겨 주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함으로 너무 무책임한 선교를 하지 않느냐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사실 자신이 피땀을 흘려가며 세워놓은 교회를 그렇게 미련 없이 떠나는 것은 쉽지 않다. 인간의 욕심은 그 교희 군주로 계속 있는 것이겠지만 그런 유혹을 이기고 떠나야 하는 것이 나의 소명이라고 생각된다. 혹자는 특별히 교단의 책임자나 선교부의 간부들은 이러한 나의 교회 개척관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이었다. 나는 처음에는 아무런 선교 단체에 속해있었던 것이 아니라 part time missionary로 그리고 free lancer로 일하였기 때문에 교단의 확장에 대해서는 큰 염려를 하지 않았었다. 내 생각에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세워지면 되었지 그리고 한국 교회의 교세가 브라질 땅에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브라질 장로교회의 교세가 성장해나가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내가 첫 번째로 개척한 교회는 3년안에 브라질 장로교회의 노회에 속해 버렸고 넘겨주는 과도기에 나 자신도 그 교단의 행정권 밑에 있었다. 나중에 한국교회들의 제정적인 도움을 받아오기 시작하면서 한국 교회의 교세 확장에 대한 요구를 받게 되었고 나도 그러한 요구가 정당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물론 미래에 가서는,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25년 내지 30년 후에는, 이 교회들이 다 브라질교단에 속해야 되는 것이지만 적어도 초기에는 그렇게 빨리 원주민들에 넘어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나의 선교 철학에 변화를 가져왔다. 그러나 이렇다고 해서 나의 선교 방식이 바뀐 것은 아니다. 나는 여전히 교회를 개척하고 또 딴 곳으로 옮겨가는 것이 내가 주님으로부터 받은 소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동반 선교 혹은 협력 선교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니까 내가 전도 목회를 한다면 그 교회에서 남아서 양떼들을 매일 매일이 삶속에서 목양할 목사님과 같이 선교 활동을 한다는 것이다. 협력적인 차원에서 나는 내가 특별히 주님으로부터 받은 의료 기술을 더 전문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말씀 사역을 담당할 선교사도 필요하다. 그리고 유치원 사역을 또 전담할 선교사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선교지 에서 동역자를 구한다는 것은 우리 한국 선교사들 사이에는 하늘의 별 따기라는 사실을 안다. 우리 한국 선교사들은 선교지 에서는 강아지와 고양이처럼 매일 싸우는 것만 많이 보아왔기 때문에 나도 상당히 협력사역이 어려울 것이라는 것은 안다. 그러나 나의 앞으로의 선교 방법에서는 꼭 동반선교를 해야겠다고 다짐하는 바이다. 이것은 주님의 지상명령을 이루어 나가는 데 필요 불가결한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예를 사도 바울을 통하여 볼 수 있다. 물론 그가 항상 같이 하모니를 이루며 선교를 했다는 말이 아니다. 그도 한번은 바나바와 크게 다투었다. 그래서 서로 분리하였다. 협력선교의 어려운 면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서 그는 다른 선교사들과 team 사역을 잘 감당해 나갔다. 그리하여 효율적인 선교를 한 것을 볼 수 있다.
위에서 복음전파에 중요성을 이야기했지만 그래도 의료 선교사로서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의무를 소홀히 할 수는 없다. 선교사나 목사뿐만이 아니라 모든 기독교인은 이중적인 책임을 가지고 있다. 즉 복음 전도와 사회 참여이다. 사회 봉사활동 그 자체가 복음 전파나 선교를 대치할 수는 없다. The good is the worst enemy of the best. 그러므로 최상의 목표는 복음 전파이고 교회 개척이다. 그러나 부수적인 것이라고 기독교의 사회참여를 소홀히 할 수는 없다. 그리하여 나는 어느 곳에 가든지 이 사회적인 책임과 봉사를 힘 쓸 것이다. 내가 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의료 선교이고 교육 선교이다. 병든 자에게 치유를, 무지한 자들에게 지식을, 헐벗은 자들에게는 옷을, 배고픈 자들에게 빵을, 옥에 갇히고 이 사회에서 소외된 비인간적인 삶을 사는 자들에게 위로와 인간적인 관심과 사랑을 가져다 줄 것이다. 왜냐하면 복음전도의 자연적인 결과는 인간이 변화를 받아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선한 일을 위하여 구원을 받은 것이고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기 때문이다. 또 사회봉사는 전도의 교량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다. 예수만 가지고 가는 자들에게 반발을 가지고 있는 미전도 종족이 있다 할지라도 사랑과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봉사하러 온 선교사들에게 반발하는 예는 드물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기회를 마련해 주는 것이다. 접촉점을 마련해주는 것이다. 공감대를 형성할 기회가 되는 것이다. 그들에게 친근하게 가깝게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는 것이다. 그리하여 어느 정도 그들과 사회적으로 친숙해진 다음 자연스럽게 복음을 전파 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복음 전파를 위해 미끼로 사회 활동을 한다고 비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한가지 목적 수행만을 위한 한가지 수단으로만 사회봉사를 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사랑의 봉사활동은 자연적인 것이어야 한다. 사랑이 결여된 봉사는 독이 섞여있는 국을 배고픈 사람에게 주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인간 사회에서 소외된 자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겸손하게 섬기는 마음으로 사회활동을 해야지만 진실로 복음전파에 큰 도움을 가져올 것이다. 이러한 자세로 사회활동에 참여할 때 복음전파의 자연스러운 동반자가 될 것이다. 그 둘이 분리해야 분리할 수 없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선교의 접근은 내가 교회 안에서 구원받을 자들을 기다리고만 있게 하지는 않는다. 즉 찾아가는 선교를 해야 되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다. 그는 죄인들을 찾아오셨다. 죄인들은 그에게 나아갈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찾아오셔서 죄인들과 같이 되셨고 그들과 같이 먹고, 자고, 웃고, 울고, 우리와 같이 고통도 받으시며 그러시다가 고통의 십자가를 지고 가셨다. 나도 찾아가는 선교를 해야 할 것이다. 그들의 문화에 적응하면서, 기독교 문화를 상황화시키는데, 결코 기독교 근본진리들에 있어서는 한치의 양보도 없이 동일화하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 문화로 변화시키며 선교를 해나가는 것이다.
2. 교회 개척 장소를 선택한 이유?
나는 주로 빈민들을 위한 선교를 하였다. 그리하여 교회도 빈민촌이 있는 장소를 택하였다. 그러한 이유를 아래와 같이 정리해 본다.
첫째로,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소명이 그러한 것 같다. 나는 빈민촌에서 비참하게 비인간적으로 하등 동물과 같이 사는 사람들을 보았을 때 동정과 연민의 정이 일어났고 또 그들을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충동적으로 일어났다.
둘째로, 그들은 역시 복음에 대한 수용성이 크리라고 믿었다. 나중에 경험을 통하여 알게되었지만 가난하다고 복음에 대한 수용성이 크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처음에는 그렇게 믿어 왔었다.
셋쩨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교의 도구는 한정되어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한정되어 있다는 것은 아니다. 그는 무한하시며 그의 능력은 인간이 잴 수 없을 정도로 크다. 그러나 인간은 한정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주어진 Talent나 재력이나 시간이나 물질을 제일 잘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적절한 장소에서 적절한 방법으로 적절한 시간에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내 생각에는 이 사회에서 정신적, 심적으로 뿐만이 아니라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심지어는 종교적으로도 소외되어 있는 자들을 찾아가는 것이 급선무가 아닌가 한다. 더군다나 의료 선교사로서 사회 봉사적인 차원에서 일할 선교사로서 제일 이러한 도움들이 필요한 곳이 빈민촌이 아니었나 싶었다.
첫 번째 교회는 그 도시(Piracicaba)에서 제일 큰 빈민촌을 택하였다. 그곳에는 적어도 약 900가구가 살고 있었다. 빈민촌은 무허가 건물들이다. 남의 땅에 침범하여 정부의 허가 없이 건물 건축 허가 없이 주로 판자들을 이용하여 지은 집들이다. 물론 정부의 허가가 없기 때문에 빈민촌 안에는 문화 시설이 되어있지 않다. 즉 하수구 시설이나 식수가 공급되지 않고 전기도 정시적으로 들어와 있지 않다. 물론 그 빈민촌에 사는 사람들은 제일 가까운 곳에 지나가는 전봇대에서 불법으로 전기를 끌어쓰고 식수는 우물물로 대치한다. 하수도는 노천이라 건강상 그리고 위생상 문제가 있다. 한 식구당 가족수는 보통 7 - 8명이었다. 그리고 아동의 숫자는 많았다. 한 가정안에 양쪽 부모가 있는 집은 드물고 보통 어머니가 가장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니까 모계사회가 주요 형태였다. Viv Griv에 의하면 비민촌을 두 가지로 구분하는데 희망적 빈민촌과 절망적 빈민촌으로 나누었다. 전자는 주로 시골에서 오는 사람들로 촌에서 희망을 가지고 도시로 온다는 것이다. 새로운 삶의 계획을 가지고 큰 도시에서 좋은 직업을 가지고 잘 살아보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오는 사람들이다. 보통 이 도시에는 그들의 친척이 있거나 아니면 적어도 아는 사람들이 있어서 처음 정착할 때 도움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도착해보면 친지들의 형편은 좋지 않아 도움을 받을 형편도 못되어 또 그들 자신들도 빈민촌에서 살고 있다. 그리하여 이주하여 오는 사람들은 빈민촌에 살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빈민촌들은 주로 도시의 외곽지대에 위치한다. 왜냐하면 도시중앙 부분에는 도시계획안에 들어 있어서 침입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반면에 절망의 빈민촌은 주로 도시 중심지에 위치한다. 도시가 커지면서 그리고 부유해지면서 생활형편이 좋은 자들은 도시 중심에서 물러나가는 urban exodus의 현상의 결과로 생겨난 빈민 지역이다. 보통 집들은 크다. 왜냐하면 부자들이 살았던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집들을 계속 돌보지 못했기 때문에 집의 상황이 점점 더 악화되어 가는 곳이다. 그곳에 사는 자들은 도시에서 산지가 오래 되었는데 경제불황으로 인해 아니면 사업의 실패로 인해 아니면 노름이나 약물 중독으로 인해 모든 재산을 잃어버렸든 자들이다. 그들은 절망 가운데 사는 자들이다. 그러나 양쪽 빈민촌에 사는 자들은 점점 더 희망을 잃어버린다. 헤어나지 못하는 점점 더 절망적인 삶에서 그들은 사회생활에 자신을 잃어버리고 맞서서 살지 못하기 때문에 현실 회피의 한 방편으로 마약이나 술에 자신을 떠맡기는 것이다. 이렇게 가장이 인생에 소극적으로 나가면서 술에 취해 있을 때 가정은 그로 인해 많은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대 도시의 각박한 인심과 무관심가운데, 그리고 복잡해지는 도시 생활에 대한 적절한 적응 부족한 가운데, 일자리도 구하지 못하여 경제적으로 곤란을 당하는 가운데, 그들의 가정은 깨어져 나가는 것이다. 이러한 악 조건들 중에서 여자들은 “이혼”을 하게 되고 무능한 남편들은 쫓겨간다. 그리고 술주정뱅이로 구걸하는 거지의 생활을 한다. 그들은 집도 없는 자들이다. 그렇다고 남편을 쫓아낸 부인은 무슨 경제적인 대책이 서 있느냐? 그런것도 아니다. 그녀들은 새로운 남자가 와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것을 바라나 어느 남자가 아이들이 많이 딸린 한 가정을 책임지려고 하는가? 그리하여 육체적인 성욕을 채우기 위한 성관계를 통해 아기들은 더 많이 태어나고 그렇다고 확고한 가정을 이루는 것도 아니다. 이러한 여인들도 나중에는 힘든 세상의 고통을 잊어버리려고 술이나 마약 같은 화학 물질에 자신의 몸을 맡기거나 아니면 매춘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다. 이러한 가정에서의 가정교육은 어떠한가? 어린아이들이 가정에서 배우는 것은 싸움이요, 성 문란이요, 범죄요, 부도덕이요, 약물 중독이다. 그들에게도 희망이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가정 형편이 그런데 무슨 학교 갈 마음이 나겠는가? 하루종일 길에서 지내다 보니 길에서 배우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그들은 임신시 태아에 있을 때부터 영양실조에 걸려있기 때문에 머리가 좋지 않아 공부에 자연히 관심을 안 가지는 것도 사실이다. 산모들이 임신시 술이나 담배 심지어 마약까지 사용했으니 선천적 불구자도 많이 태어난다. 정말 악에 악이 더하는 것이요, 빈익빈이다. 이런 빈민촌에는 범죄인들도 많이 숨는 장소이다. 그런 곳에는 경찰도 침투하길 두려워하는 우범지역이기 때문에 범죄 조직체들이 은신하는 곳이고 마약 밀수업이 성행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런 곳에 정말 하나님의 희망의 복음이 정말 필요한 것이다. 위로의 말뿐만이 아니라 빵도 필요하고 옷도 필요하고 직업알선도 필요하고 새 생활로의 개선운동이나 개몽운동이 필요하다. 기독교의 고귀한 생활 윤리가 필요하다. 나는 그런 곳을 택하여 집도 알선하고 선교사업을 펼쳤다.
Sao Paulo에 돌아와서도 그러한 빈민촌을 찾아 선교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런 식으로 할 것이다.
3. 어떠한 방법으로 개척했으며 어떻게 교회를 목회하고 있었는가?
빈민촌에 사는 사람들은 굉장히 의심이 많은 사람들이다. 외부에서 오는 사람을 견재하고 배타적이며 좋은 것만 이용해 버리려는 경향이 있다. 그리하여 그들에게 접근해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어는 정도의 치밀한 전략이 있어야 한다. 섣불리 단순히 복음을 들고 왔다는 식이나 아니면 그들에게 산타 할아버지 식의 접근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들에게 의존심을 심겨줄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제일 첫 번째 세운 교회에서는 우리가 그들과 어느 정도 친근감을 가지기 위해서는 약 6개월의 시간이 필요하였다. 우선 우리는 좋은 이웃이 되길 노력했었다. 우리가 기독교인임을 밝혔으며 우리 부부가 의사였음을 알렸다. 그리고 조만간에 무료 진료소나 교회가 세워 질 것을 예고하였다. 그 근처에 자동차를 소유한 사람을 드물었기 때문에 간혹 앰뷸런스 가 된다거나 화물차가 되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면 선용하였다. 그 빈민촌 안에 있는 정치적인 모임에도 초청을 받고 그 자치회의 간부가 되어 주십사하는 부탁도 받았다. 그러나 이러한 참여는 원하지 않았기에 나는 거절하였다. 그곳에서 조금 특별한 시도는 내가 천주교회와 친해졌다는 것이다. 브라질에는 천주교회가 사회에서 가지는 중요성은 너무나 크다. 천주교회는 빈민촌 안에도 주민들의 자치회의 허락을 받아 땅도 받고 성당을 지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러한 빈민촌 설립 초창기에 어느곳을 침범할 것인가, 정착하는 데 필요한 물 수 지원문제, 그리고 자치회를 조직하여 정부와 교섭을 통하여 합법화시키는 모든 과정에 있어서 천주교회의 열할이 크다. 천주교회 내에 좌익 파들이 주로 이러한 일을 선동하고 추진해나간다. 그들은 해방신학의 기수들이다. 그러한 빈민촌에서 일을 하려면 천주교회와 친해진다는 것은 전략상으로도 중요하다. 나와 나의 집사람은 천주교회에서 일주일에 한번씩 의료봉사를 하였다. 그리하여 신부와도 친한 사이였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온 Vitor선교사였으며 Carmelita단에서 파송되어었다. 그런 식으로 주민들과 친분을 가진 다음에 교회 개척의 작업을 시작하였다.
우리는 먼저 유년 주일 학교를 소집하였다. 어린아이들은 접근이 더 쉬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복음 전파도 일반적으로 단순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시작한 유년주일 학교는 성장을 하였고 한달 후에는 성인 예배도 드리기 시작했다.
성인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면서 무료 진료소(우리의 진료소를 차린 다음에는 천주교회에는 나가지 않았다)나 의류 바자회를 통하여 교회를 알리고 동시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지 행동으로 전할 수 있었다.
이렇게 시작한 교회에서 우리는 주일 에배외에 수요예배(나중에는, 목요예배)를 드리게 되었고 가정 성경공부반을 조직하였다. 일종의 제자 훈련이었다.
나중에는 현지에 있는 한 원주민 장로교회와 연합으로 교회 운영을 하다가 완전히 넘겨주었다. 그리고 우리는 딴 곳으로 갔다. Sao Paulo시로 왔다.
Sao Paulo에서도 빈민촌을 찾았다. 나는 본격적으로 선교를 하기 전에 한국 선교사한분이 시작했던 교회를 맡아서 교회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 곳을 기점으로 앞으로 교회 개척지를 찾으려고 하였다. 그러던중 우리 교회에 나오는 교인 중의 한사람이 사는 곳에 빈민촌이 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그도 나에게 그곳에서 교회를 개척해줄 것을 부탁하였다. 그렇게 하여 Sao Paulo에서 첫 번째 개척 교회를 시작하였다.
한국으로 오기 전까지 개척 교회를 중심으로 세 가지의 중심 사업을 운영하였다.
1) 교회 운영 - 처음에는 나 혼자서 주일 학교 성인반 성경공부, 주일 설교, 수요 예배 인도, 가정 성경공부반 인도 및 교회 제반 사무집행 등을 다 했으나 개척 교회가 세군데로 늘어가고 또한 진료소의 숫자도 늘면서 유치원 사역까지 늘어감에 따라 나 혼자 감당을 하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브라질 목사님을 두 분 초청하여서 같이 동역 하게 되었다. 이 즈음에는 나는 사단법인 단체인 “생명사랑”이란 선교 단체를 조직하고 나 자신이 회장이 되었다.
2) 바로 교회 예배당에서 주간에는 유치원 사역 - 이 사역은 미래에 교육 선교를 위한 발판이 될 수 있다. 우선 급하게 간단한 직업이나 기술을 가르치는 것은 가능하였다. 왜 유치원 사역은 하는가? 나는 위에서 빈민촌 안에서의 어린아이들의 형편을 이야기하였다. 그들이 받는 가정교육(If possible.. because there is not any type of education in house at majority of cases)이나 길에서 배우는 것이 어떠한가에 대해 서술하였다. 과연 그러한 악 순환을 거듭 되풀이 할 것인가? 계속 되는 악 순환(vicious circle at perpetum)으로부터 적어도 어린아이들은 건져내어야 하지 않을까? 유치원 교육은 먼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이다. 예수님께서도 어린아이가 가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천국이 그들이 것이라고 하셨다. 천진난만하고 순진한 그 들이 있어야 할 장소는 따뜻한 부모님의 품에 안겨서 사랑과 애정을 받을 수 있는 행복한 가정이다. 그러나 그 대신 차디찬 방바닥에 하루 종일 집안에 갖혀있다. 왜냐하면 여자 혼자로서 가정을 부양해 나가기 위해서 하루종일 시간 부로 일할 경우 어린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서 그냥 집에 가두어 두는 경우가 많다. 아니면 길에 나와서 마음껏 놀게 놔두는데 길의 인생을 배우는 것이다. 10살도 안된 아이들이 길 모퉁이에서 돈이 없어 비싼 마약은 구하지 못하지만 싸게 구입할 수 있는 공업용 풀의 냄새를 맡고 눈이 다 풀어져서 기진맥진 땅 바닥에 누워있는 모습을 어찌 방관만 하고 있겠는가? 어느 정도 정신 좀 들면 범죄의 기술을 배운다. 그리고 형들이 하는 폭력과 악한 짓들만을 배우는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형이나 누나들이 영웅이다. 술, 담배, 마약, 매춘행위나 성적 문란 행위 등은 쉽게 배울 수 있는 곳이 길이다. 이러한 장소에서 어린아이들을 끌어내어 기독교 신앙교육을 시키고 사랑을 베풀어주고 제 때에 맞추어서 식사를 제공해주고 올바른 생활로 개몽시켜주어야 할 것이다. 많은 아이들이 우리 유치원에서는 체중도 늘어나고 건강해지는 모습을 보았다. 밤중에 무서워서 밤잠을 못 이루는 아이나 정서에 문제가 있어 이빨 갈며 자는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보모들의 따뜻한 사랑과 돌봄으로 정서적인 안정성을 찾는 변화들을 보았다. 그리고 매일 그 아이들은 유치원에서 기도로 시작하며 성경 말씀을 배우며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하여 기독교의 삶을 배울 수 있다. 그 아이들에게 전도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그 아이들의 부모들에게 전도할 기회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지역사회에 좋은 본보기로서의 교회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
3) 그리고 가능하면 교회에서 아니면 딴 장소이지만 교회와 가까운 곳에서 의료나 치과 진료소 운영 - 미래에 선교 병원을 설립 할 수 있는 발판이 되겠다. 브라질에는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의료 혜택이 힘들어 진다. 물론 정부에서 운영하는 보건소가 있지만 사람들에게 흡족한 의료 행위를 못한다. 그리고 약 값도 꽤 비싸기 때문에 비록 의사한테 진찰을 받더라도 약값이 없어서 병 치료를 올바로 못할 때가 많다(브라질에서는 의사는 진찰만 하고 처방지를 주면 환자가 약국에 가서 그 처방지에 기록된 대로 약사가 주는 약을 사 먹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약국까지 설비된 무료 진료소를 운영한다는 것은 아주 전략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의료 진료소 3 군데를 순회하면서 일하면 각 진료소에 일주일에 8시간의 진찰 시간이 배당된다. 이 진료서 에서 처음에는 무료로 했지만 나중에는 아주 상징적이지만 일인당 2불에 해당하는 진료비를 받았다. 교회 교인이나 또 진료소에 등록카드를 작성한 사람은 싸게 받았다.
그리고 마약 중독자나 알코올 중독자들을 위한 재활원을 짓기 위해 추진하고 있었다. 브라질에는 마약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었다. 가정을 파괴하고 사회를 파괴하고 여러 사회적인 문제들을 일으킨다. 그리고 중독자는 가정과 사회와 교회와 이웃사람들에게 여러모로 손상을 입히고 난 뒤 죽어가는 것이다. 중독자들의 평균 수명은 정말 적다. 그 들 중의 많은 자들은 아주 젊은 나이에 살해되어 죽는다. 마약 밀수단체에 의해서 비참하게 죽는 경우가 수 없이 많다. 그들 때문에 범죄의 수가 많아지고 또 범죄의 악성도 커진다. 단돈 5불 정도를 빼앗기 위해 아니면 좋은 운동화 한 벌 강도하기 위해 그들은 서슴없이 사람을 죽여버린다. 왜냐하면 제 정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의 중요 문제는 영적 문제이다. 우리는 약물 중독자들이 사회적이고 가정적인 요소로 인해 그러한 지경에 이르렀다고 만 쉽게 결론을 내리지는 않는다. 근본적인 문제는 영적 문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을 치료하는데도 영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재활원에서는 엄격한 Disicpline아래 규칙적인 생활을 한다. 새벽 일찍 일어나서 경건의 시간을 가지고 아침에는 주로 성경공부와 예배가 이루어지고 오후시간에는 노동요법을 시행한다. 그들은 주로 농사를 통하여 심신을 수양하며, 약물의 유혹을 이겨나가는 훈련을 노동을 통하여 해나가는 것이 목적이다. 중독자들이 재활원에서 입원해 있을 때 그들의 가족들도 여러 방면에서 도움을 받는다. 이러한 총체적인 접근을 통하여 중독자들뿐만이 아니라 그들이 인근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치유해 나가는 것이 목적이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을 통하여 선도 및 예방 교육도 계획하고 있다. 원하는 곳이면 약물 중독에 관해 성경적, 의학적, 심리적, 사회적인 여러 방면에서의 접근에 대하여 연설이나 강의를 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여러 사회 공공 단체들과 결속되어 재활원 유지를 위한 후원제단도 구축해야 할 것이다. 애석하게도 이 프로그램은 내가 시작은 했지만 마무리를 못 지었다. 언젠가는 이룰 날이 올 것이다.
선교 정신을 심어 주기 위해서 일년에 한번 정도는 선교 여행을 떠났다. 브라질 내에서 오지도 많이 있기 때문이다. 다른 의사들과 팀을 이루어 오지에 가서 의로 봉사 및 복음 전파를 해 왔다.
4. 앞으로의 목회 방향은?
이제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으면 다시 브라질로 돌아간다. 그리고 선교지도 바뀌게 된다. 아마존(Manaus시를 중심으로 하여)으로 갈 작정이다. 그러나 그곳에서 할 일도 어느 정도 여태까지 해온 방법으로 할 것이다.
그곳에서는 협력선교의 차원에서 일할 것이다.
1. 한국 선교사들과 협렵선교
1) 그곳에 브라질 원주민들을 위한 신학교에서 강사로 나갈 것이다. 신학교 사업을 전담할 선교사는 이미 파송되어 현재 그곳에서 일하고 있다.
2) 그 선교사(들)과 합류해서 교회 개척도 추진 할 것이다.
3) 사회 복지 사업의 일환으로 유치원이나 탁아소 운영도 계획에 들어 있다. 그리고 기술학교 운영도 생각하고 있다.
2. 브라질 교회와의 협력 선교
1) 내가 주로 맡아 할 부분은 역시 의료 파트이다.
우선적으로 할 일은: 가. 아마존 강을 다니는 의료 선박에서 봉사
나. Manaus시에 있는 빈민촌들을 중심으로 의료진료 소 개설
그러나 미래에 브라질 교회와 협동하여 선교 병원 개설
2) 신학교 - 이 신학교에서는 앞으로 목사들을 낼뿐만이 아니라 현재 목회자들이나 지도자들의 재교육 및 연장교육 실시
3) 교회 개척 - 마나우스시 근교에 있는 빈민촌이나 아마존 내륙 지방에 있는 오지. 교회 개척은 가능한 한 의료 선교와 교육 선교와 같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 개척 교회에서 일할 분들은 신학교에서 교육을 받는 사람들이 주류를 이룰 것이다. 그러나 선교사들의 직접적인 참여도 중요하다.
5 . 선교사 프로필
나는 한국에 1960년에 태어났지만 1975년도에 브라질로 부모님을 따라 이민 갔다. 이민 정착기가 어느 정도 지난 다음 공부를 하기 시작하였다. 1982년에 Sao Paulo주립 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하였다. 대학교 3 학년 때에 하나님으로부터 선교의 소명을 받고 그해 야간 신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다. 그 당시에는 신학교 안에서 종교음악을 전공했다. 비록 졸업은 못했지만 거기에서 음악적인 것뿐만 아니라 신학적으로도 많은 도전을 받았다. 1988년 의과 대학을 졸업하는 해에 결혼을 하고 1989년 평신도 선교사로 선교를 시작하였다. 그 당시 우리 집 사람은 치대 재학 중이었다. 그 당시에는 part time으로 일하였다. 1992년도에 Sao Paulo에 돌아와서 내과 전문의 과정을 하였다. 그러면서 한인 교회의 전도사로 일하면서 1994년부터 Sao Paulo근교에서 빈민촌을 중심으로 선교사업을 진행해 갔다. 물론 처음에는 part time으로 일하였지만 1995년 3월부터는 미주 장로교회 총회 평신도 선교사로 full time으로 일하기 시작하였다.
Full time 선교사로 일하면서 확실히 선교에 전적으로 일할 수 있었기 때문에 더 효과적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2년 동안 개척교회를 3군데에서 하면서 유치원을 두 군데, 의료 진료소 3군데, 치과 진료소 1군데를 하면서 마약 중독자와 알코올 중독자를 위해 재활원을 짓는 중에 한국으로 왔다.
나는 한국에서 신학 공부를 마치고 목사 안수를 받고 한국에서 선교사로 파송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