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주일이 며칠 지났는데도 부활의 의미가 마음 한 구석에서 떠나질 않고 잔잔한 감동으로 여전히 남아 있는 것, 그 자체가 부활의 참된 의미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일 년에 한 번씩 찾아오는 부활절 행사 속에서만 부활이 강조된다면, 그것은 이미 부활의 의미를 상실한 껍데기뿐일 것입니다. 다음 부활절까지 먼지 쌓인 보자기 속에 곱게 포장되어 감금되어 있을 테니까요.
문득 예루살렘에 살 때 종종 찾았던 '가든 툼'(Garden Tomb) 예수님의 정원무덤 생각이 나서 오래된 파일 속을 뒤적이다 몇 장의 사진을 찾았습니다. '가든 툼‘은 예루살렘에서 개신교 계통의 영국교회가 관리하는 성지입니다.
‘고든의 갈보리’라고도 알려져 있는 ‘가든 툼’은 예루살렘의 북쪽 성벽에 있는 세 문 중 하나인 다메섹 문 밖에 위치한 곳으로서 예수께서 묻히시고 부활하신 무덤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19세기 이전까지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곳이기도 했습니다. 19세기에 이르러 그동안 전통적으로 예수의 무덤을 알려져 왔던 성묘교회(Holy Sepulcher)의 역사적 진정성에 대해 회의를 품게 되었던 몇 학자들이 다른 장소에서 예수의 무덤을 찾는 작업이 추진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1883년 당시 영국군 장군이었던 고든(Gordon)은 다메섹 문 근처에서 해골모양의 바위 급사면을 발견하고, 그곳이 골고다 언덕일 것이라는 제안을 하였습니다. ‘골고다’는 아람어로 ‘해골’이라는 뜻입니다. 그 후 그는 골고다 언덕 근처에서 여러 개의 옛 무덤들을 발견하면서 그 중의 하나가 예수의 무덤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요한복음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는 동산이 있었고, 그 동산 안에 사람이 장사한 일이 없는 새 무덤이 있었다고 기록했습니다(요 19:41). 무덤 근처에서 신약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포도주 짜는 틀과 지하 저수조 등이 발견된 것도 이곳이 정원(동산)이었음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본래는 둥근 모양으로 깍은 돌로 입구의 문을 막았었습니다. 그래서 입구 앞 쪽에는 돌을 굴릴 수 있는 홈이 파여져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 돌 문은 없어졌고 그 대신에 나무로 문을 만들어 달아놓았습니다. 나무로 된 지금의 무덤 문에는 영어로 'He is not here for He is risen'라고 쓰여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그곳에 계시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분은 지금 제 마음과 우리들 마음속에 늘 함께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부활주일이 지났는데도 부활의 파동이 좀처럼 가시질 않는 것인가 봅니다.
부활의 주님이 계시지 않는 그 무덤을 바라보는 것 자체가 우리 안에 계신 주님을 확인하는 또 다른 방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마음을 나누고 싶어서 사진과 함께 부활의 짧은 묵상 글을 올려봅니다. <서울신대 권혁승 교수>
빈 무덤에 들어가 다시 사신 예수님을 그리며 그 정원에서 예배드렸던 순간이 떠오릅니다 정교회나 카톨릭교회가 아닌 개신교가 지키는 이 곳은 외식적이고 형식적인 틀에 갇혀있지 않고 늘 평안함과 자유함을 느끼게 해 주었던 곳인 것 같아요 영원한 생명이신 살아계신 주님과 함께 오늘도 아름다운 한 날로 가꾸리라 아멘
첫댓글 직접 찍으신 사진을 보니 더 감동이다시금 부활의 주님을 느끼는 시간을 주시니 권목사님 감사합니다^^*영문학자이자 신학자이시라 항상 플러스 되는 은혜가 있네요
김집사님의 댓글이 더 플러스 같은데요. 시온까페지기로 최선을 다 하시는 모습이 일품입니다.
와목사님 이시당자주 시온카페에서 뵈면 좋겠어요 대원들이 엄청 좋아할것 같은데요^^
빈 무덤에 들어가 다시 사신 예수님을 그리며 그 정원에서 예배드렸던 순간이 떠오릅니다 아멘
정교회나 카톨릭교회가 아닌 개신교가 지키는 이 곳은 외식적이고 형식적인 틀에 갇혀있지 않고
늘 평안함과 자유함을 느끼게 해 주었던 곳인 것 같아요
영원한 생명이신 살아계신 주님과 함께 오늘도 아름다운 한 날로 가꾸리라
보활하신 주님이 멀리 계신게 아니라 우리 맘속에 계시다는 것이 은혜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