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서원(陶山書院)
2024. 7. 7.
안동 도산서원(陶山書院)
도산서원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대학자인 퇴계 이황(退溪 李滉)을 기리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유림의 발의로 1574년 도산서당 뒤편에 세우기 시작하여 1575년 낙성이 되자 선조(1567~1608 재위)로부터 한석봉이 쓴 도산서원(陶山書院)의 편액을 받아 사액서원(賜額書院)이 되었다. 1576년에는 퇴계의 위패를 봉안하였다. 1792년에는 정조(1776~1800 재위)가 퇴계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향사에 필요한 물품을 친히 내리고 특별 과거인 별시를 도산서원에서 열기도 하였다. 그 후 도산서원은 19세기 후반 서원철폐령에도 영남 유학의 중심 역할을 해 온 중요성을 인정받아 철거되지 않았다 도산서원은 퇴계가 제자들을 가르쳤던 도산서당과 기숙사인 농운정사를 비롯하여 퇴계 사후에 만든 전교당, 상덕사, 전하청이 있다. 그리고 제자들이 머물며 공부하던 박약재와 홍의재, 서원에서 만증 목판을 보관하던 장판각, 서원 관리인의 숙소 등 여러 부속 건물들이 있다. 도산서원은 2019년 7월 “한국서원”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8곳의 서원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광명실(光明室)
광명실은 책을 보관하고 열람하고 곳으로, 이름에 포함된 의미는 “수많은 책들이 밝고 환하게 비추어 준다.”이다. 습기로 책이 망가지는 것을 막기 위해 2층 누각으로 높게 지었다. 현판의 글씨는 퇴계가 직접 썼다.
도산서당(陶山書堂)
도산서당은 퇴계가 만년에 머물면서 제자들을 가르쳤던 곳이다. 1560냔에 완성되었으며 도산서원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원래 부엌, 온동방, 마루로 되어 있었는데, 제자들이 늘어나면서 부엌과 마루를 확장하였으며 확장한 마루 위에는 덧지붕을 달았다. 퇴계가 머묾던 방의 이름은 완락재(玩樂齋)인데 “완상허며 즐긴다”의 의미이다. 제자를 가르쳤던 마루는 암서헌(巖栖軒)으로 “바위에 깃들어 작은 효험을 바란다.”는 뜻을 포함한다. 두 이름 모두 주자(朱子)의 글에서 따운 것으로 학문의 즐거움과 겸손한 마음을 담았다.
시사단은 조선시대 특별 과거시험을 보안ㅆ던 자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과 비각이 있는 곳이다. 시사(試士)는 선비에게 시험을 보인다는 뜻이다. 1792년 정조는 평소 존경하는 퇴계를 추무하기 위해 이곳에서 과거시험을 열고 영남지역의 인재를 선발하도록 하였다. 시험 응시자만 7천여 명에 이르렀고 문과급제 2명 등을 선발하였다. 시험을 기념하기 위해 1796년 이곳에 단을 마련하고 비석을 세웠는데, 비문은 당시 영의정이었던 채제공(蔡濟恭)이 지었다. 안동댐으로 수몰되기 전에는 도산서원과 마주 보이는 강변에 소나무가 우거진 곳에 비각이 세워져 있었다. 1975년 안동댐 건설이후 원래 있던 자리에 10m 높이의 돌로 축대를 쌓아 올린 뒤 옛 건물과 비석을 원형대로 옮겨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