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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부. 한결같은 것은 아무 것도 없는 달
1) 삶은 뜻대로 되지 않아도 아름답다 2026.03.13.(금)
몇 달 전부터 마음만 먹고 있던 일을 오늘 실행했다. 지난해부터 병석에 계신 노모를 봉양하려고 시골 고향에서 살고있는 친구 S 집을 방문하는 일이다. 며칠 전에 만날 날을 약속했다. 오전 9시 20분. 경남 합천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합천은 진주로 가는 중간 경유지이다. 평일이라 손님은 별로 없었다. 10시 10분. 합천 터미널에 도착하니 친구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읍에서 좀 벗어난 용주면 용지리가 그의 집이다. 오는 차를 예매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말도 들었으나, 대구행 시간표를 확인해 보니 오후에는 한 시간 간격으로 계속 있어서 괜찮지 싶다고 했다. 터미널에서 20분 정도 거리에 고향 집이 있다. 친구 시골집 방문은 세 번째이다.
꿈 많던 아득한 대학 2학년 시절, 1973년 초여름이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과 친구 K와 합천에 있는 S의 시골집에 초대받았다. 어쩌다 여자 동기 C도 함께 가게 되었다. 과 동기 세 명은 털털거리는 완행버스를 타고 합천군 용주면 그의 집에 도착했다. 집 앞으로는 황강이 넓은 백사장을 안고 유유히 흐르고 수려한 악견산이 보이는 아름다운 산골이었다. 지금은 큰 시멘트 다리가 놓였지만, 당시에는 예천의 뿅뿅다리와 같은 수 십m 긴 철판 외나무다리를 건너서 갔다. 내 기억으로는 큰 강을 끼고 있는 시골에는 대부분 그런 다리가 있었다. 지금의 합천댐이 생기기 전이라 은빛 백사장과 맑은 물은 우리가 놀기에 최고의 장소였다. 얕은 물가에 뛰어다니면서 은어도 잡고 멱도 감으면서 시골의 맛을 즐겼다. 해 질 녘 합천의 명소인 상류에 있는 용문정(龍門亭)으로 갔다. 한창 피 끓던 젊은 청춘 시절이 아닌가? 강가의 오솔길을 한참 행군하듯 걸어서 도착한 그곳은 또한 별천지였다. 큰 너럭바위들이 드문드문 있었고 강을 끼고 바라보는 정자는 옛 선비들이 풍류를 읊던 곳으로 유명했다. 우린 큰 바위에 앉아 밤이 이슥하도록 노래도 부르며 정담을 나누었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기억에 없으나 그날의 추억은 또렷하다.
악견산이 훤히 보이는 친구 시골집 거실에 앉았다. 구순 모친은 주간보호센터에 가고 계시지 않았다. 부부 교사였던 그는 부산의 T고등학교에서 정년퇴직했다. 퇴직 후에도 매일 전화로 고향에 계시는 어머님의 안부를 묻고, 주말에 한 번씩 다녀가곤 하면서 별일 없이 지냈다. 그러다가 코로나가 삶을 흔들었다. 코로나 백신을 맞은 어머니의 심장에 이상이 왔다고 한다. 당시 백신의 부작용에 말이 많았으나, 그렇다고 맞지 않을 수도 없고 해서 맞았더니 그만 탈이 난 것이다. 시간이 지나니 심장 기능만 아니라 인지능력도 함께 떨어졌다. 어쩔 수 없이 작년 봄부터 혼자 고향에서 어머님을 모시게 되었다. 다행 올해부터 낮에는 주간보호센터에 모시지만, 나머지 시간도 참 고행이다. 자유로운 친구의 시간은 낮에 대여섯 시간뿐이다. 시골에서 끼니마다 먹거리 준비도 어렵지만, 종일 대화 상대가 없는 것이 더 힘들다고 씁쓸해 한다. 기다리고 최선을 다하며 순리대로 살지만, 본인이 할 수 있는 범위와 답이 보이지 않아 안타깝다고 답답해한다. 듣고 있는 내내 내 마음이 짠하다. 동병상련을 앓고 있는 나보다 더 상태가 좋지 않다. 나는 그래도 어머님이 도심서 혼자 살고 있지 않은가? 요양보호사가 매일 돕지만 감사할 뿐이다. 정신력과 삶의 자세가 새삼 존경스럽고 자식으로 송구하고 부끄럽기만 하다.
황매산이 보이는 합천댐 둘레 데크길을 함께 걸었다. 짙푸른 하늘과 뭉게구름이 둥둥, 에메랄드빛 물빛을 보고 있으니 답답한 마음이 뻥 뚫린다. 길가 십 리가 넘는 가로수 늙은 벚나무가 하얀 꽃을 피우면 눈이 부셔 걷기도 힘이 들 듯하다. 상상만으로도 황홀하고 아찔한 길이다. 호수가 눈앞에 펼쳐진 이국적인 풍경의 카페 Lowful 이층에 앉았다. 통유리 창에 펼친 정경이 신선 세계이다. 댐 기슭 키가 큰 외래종의 누런 갈대가 바람에 일렁이며 속삭이듯 말을 건넨다. "우리 삶은 고행이 아니라 아름다움이라네. 받아들이고 즐겨야하네. 관점과 해석이 있을뿐이지 않은가? 그냥 그냥 지금처럼 비우며 살아가시게." 흰 구름과 코발트 빛 하늘의 하모니도 소리 없는 자연의 연주이다. 꿈 속에서 꿈을 점치는 풍경이다. 말없이 창밖을 보며 차를 홀짝거린다. 카페라테 한 잔에 녹아있는 세월이 아늑하고 평화롭다. 이 순간만은 누구도 부럽지 않고, 걱정도 없고, 욕심도 없고 무념무상의 시간과 풍경에 풍덩 빠진다. 지금 여기가 내 삶의 절정이 아닐까?
15시 20분. 터미널에 도착했다. 아뿔싸! 대구행 승차표가 하나도 없다. 한 시간 간격으로 차가 있어서 방심했더니 다 매진이다. 겨우 마지막 시간 19시 50분 승차표를 구했다. 지금부터 혼자 4시간 반 동안 뭘 하지? 처음엔 살짝 당황했으나 오늘 ‘세라비를 경험하는구나.’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해외여행에서 비행기가 연착해서 10시간 이상 기다린 적도 많지 않았던가. 나름대로 계획을 잘 세워 살아간다고 자부했으나 순간 틀어졌다. 원래 세상일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이 정상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하니 별 일이 아니다. 이제 남는 시간 무엇을 할까? 카페에 갈까? 그냥 돌아다닐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합천시네마’가 10분 거리에 있는 것도 알았다. 다리가 좀 아팠지만, 천천히 걸으면서 합천의 삶을 둘러보았다. ‘합천왕후시장’도 가까이에 있어 좋았다. 한 친절한 학생의 도움으로 ‘합천시네마’를 쉽게 찾았다. 17시 10분 상영 시작하는 영화가 ‘매드댄스오피스’(스텝을 밟으니, 인생이 풀린다.)이다. 염혜란 주연의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은 인생 리듬 되찾기 프로젝트’ 영화다. 오늘 내 상태와 비슷해 나름 재미있게 봤다. 더 중요한 사실은 시간대가 저녁 식사 시간과 겹쳐서인지 70석 좌석에 나 혼자 황제처럼 관람한 것이다. 꼬인 일정이 도리어 행복이다. 세라비! 내 평생 이런 행운이 또 있을까? 끝나고 나올 때 보니 다음 시간 프로는 ‘왕과 사는 남자’라 기다리는 사람이 퍽 많았다.
19시 50분. 10여 분 늦게 도착한 차 안은 합천에서 세 사람만 탔지만, 빈자리가 보이지 않는다. 진주에서 출발해 오는 차이기에 합천에서는 예매하지 않으면 좌석을 구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하! 그래서 앞 차들도 다 매진이 되었구나.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살아간다.’ 앞으로는 매사에 더 꼼꼼히 준비하라는 가르침이다. 무사히 집 현관에 도착하니 21시 40분이다. 오늘 옛 벗을 만나 서로 힐링이 된 보람 있는 하루를 기적처럼 보냈다. 감사하며 새로운 내일을 꿈꾼다.
2) 오늘도 작은 기적 속에 산다 2026.03.28.(토)
한참 동안 글을 쓰지 않았다. 사람의 마음이 간사하기 때문일까? 어느 날 불현듯 다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맑은 생각보다 흐린 마음이 강하게 지배했기 때문이다. 삶이 한없이 어렵기도 하고, 때로는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감사의 마음이 부족한 탓이다. 오늘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초등학생이 몰아서 일기 쓰듯이 몇 날을 복기하며 삶을 돌아본다.
21일(토). ‘대구문인협회’에서 문학기행을 갔다. 집결지인 문화예술회관까지는 거리가 멀어서 새벽부터 준비하느라 힘들었다. 올해 여행지는 보성 벌교 지방 조정래의 ‘태백산맥 문학관’과 ‘순천만국가정원’ 탐방이다. 작년에 계획하였는데 경북 산불로 취소하고 올해로 미루었다. 멋진 날, 좋은 곳에, 아름다운 분들과 하루 나들이는 늘 설렌다. 내가 탄 2호차는 수필가들이 주축이었다. 매번 갈 때마다 느끼지만 버스에서 5분 말하기를 통해 만난 탁월한 분들의 입담도 즐겁다. 긍정적인 면을 본받고 싶은 분들이 많아서 기대된다. 개인적으로 문인협회기행은 기분 좋은 추억이 많다. 재작년은 ‘왕사남’의 배경인 영월 청령포에 갔었다. 그때도 4행시 즉석 백일장에서 장원을 하지 않았던가? 상금으로 일천만원(일천원+만원)의 작은 행운을 누리기도 한 추억이 아스라하다.
‘태백산맥문학관’은 10년 만에 두 번째 왔다. 우뚝하고 날렵한 현대식 문학관 옆쪽으로 돌아갔다. 소설 ‘태백산맥’의 무대가 된 무당 ‘소화의 집’이 먼저 반긴다. 아담한 집 뒤의 풍성한 대나무 숲이 정감을 준다. ‘작고 예쁜 기와집, 방 셋에 부엌 하나인 집의 구조…….’ 이 집의 신당에서 주인공 정참봉의 손자 정하섭과 무당 월녀의 딸 소화가 애틋하고 간절한 사랑을 시작한 곳이다. 소설은 워낙 오래전에 읽었기에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예전의 건물은 오래전 태풍으로 사라지고, 이 건물은 2008년도에 보성군에서 복원한 것이다. 다시 오른쪽에 ‘현부자네 집’이라고 알려진 큰 기와집을 만난다. 이곳은 풍수를 잘 모르는 사람이 보아도 멋진 곳으로 생각되는 희한하게 생긴 명당으로 소개된다. 대문이나 안채는 한옥풍이나, 들어가 보면 곳곳에 일본풍의 맛이 물씬 풍기는 색다른 양식의 건물이다. 소설 ‘태백산맥’을 펼치면 첫 장면에서 처음 등장하는 집이다. 조직의 밀명을 받은 정하섭이 활동 거점을 마련하기 위해 새끼무당 소화의 집을 찾아가고, 이곳을 은신처로 사용하게 되면서 현부자와 이 집에 대한 자세한 묘사가 나온다. 또 소화와 정하섭의 애틋한 사랑의 보금자리이기도 하다. 천천히 한바퀴 돌아보고 대청마루 모서리에 홀로 앉았다. 문화해설사의 설명은 한쪽 귀로 흘리고, 막 만개한 뽀얀 목련과 흐드러지게 핀 홍매화꽃만 눈에 품는다.
현대식 건물 문학관 입구로 왔다. “문학은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인간에게 기여해야 한다.”라는 조정래 작가의 말이 현판 아래 적혀있다. 좋은 전시물 구경도 멋지지만 다들 대충 훌쩍 보고 기념사진 촬영에 바쁘다. 최근 들어 SNS의 발달로 사진찍기가 대세이다. 나도 아주 좋아한다. 작가 구성 노트나 메모 수첩에서 치열한 작가정신도 본받고 싶지만, 관광이 목적인 나는 별 감흥은 나지 않는다. 그저 힘들고 어렵고 대단하다는 감탄만 할 뿐이다. 독자들이 소설 ‘태백산맥’을 필사한 것을 모아놓은 방에 들어갔다. 수북이 쌓여 있는 필사품이 대단하다는 마음은 들었지만, 너무 우상화하지 않았나 하는 반감이 더 강하게 든다. ‘필사는 정독 중의 정독이다.’라는 글도 대하소설에서는 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순천만국가정원’은 산책코스로 추천할 만하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 속에 아무 생각 없이 유유자적하게 힐링하는 곳이다. 튤립, 히아신스, 수선화 등등의 울긋불긋한 꽃 정원은 나그네의 마음을 한층 환하게 한다. 훌쩍 꿈같이 즐거운 세 시간이 지났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춘향가 중 ‘사랑가’와 심청가에서 ‘심봉사 눈뜨는 장면’ 판소리 한 자락으로 마무리한, 맑고 푸른 하루가 아름다웠다.
27일(금). 사계절 팀에서 금오산 탐방을 했다. 봄이 미리 푹 익어가는지 수은주가 25도를 오르내린다. 승용차는 두고 대경선을 타고 갔다. 경산서 구미까지는 한 시간 거리이다. 평일인데도 ‘대경선’은 북적거린다. 점심은 ‘구미도시공사’ 맞은편 ‘辛사랑방’식당에서 청국장으로 맛나게 먹었다. 관공서 근처에 직장인을 위한 맛집이 존재하는 것을 몸으로 느꼈다. 연식이 있어 올라갈 때는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올 때는 걷기로 했다. 모처럼 올라간 ‘대혜폭포’는 가뭄으로 물줄기가 말라 가늘게 흩뿌린다. 아쉽다. 작년 2월에도 대경선을 타고 집사람과 왔다. 그때는 길에 눈도 많았고, 폭포는 빙벽을 이루어 감탄하던 곳이다. 신라말 도선선사가 득도했다는 ‘도선굴’ 가는 길은 아찔하지만, 기암괴석 사이로 탁 트인 경치는 일품이다. 하산길에 힘이 더 든다. 여행은 즐겁지만 이제 몸이 마음을 따르지 못하니 안타까울 뿐이다.
28일(토). 하늘이 맑다. 전부터 가고 싶었던 둔산동 옻골마을 경주 최씨 종택 ‘백불고택(百弗古宅)’을 찾았다. 이곳은 봄꽃도 좋지만, 가을이 더 멋진 곳으로 생각된다. 사흘 전 퇴직 교사 모임에서 K 박사님과 얘기를 나눈 곳이다. 예전에 L 선생님과 답사와서 장손의 서재를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많은 설명을 들었지만, 기억에 저장되지 않았다. 매호동 집에서 4차 순환도로를 타고 둔산 IC로 빠지니 25분 거리이다. 백목련과 노란 산수유가 먼저 반긴다. 봄의 절정을 알린다. 여기는 한국의 대표적인 길로 알려진 흙돌담 길이 가장 매력적이다. 느린 걸음으로 반 시간이면 넉넉하게 돌아본다. 화원 ‘남평문씨세거지’의 흙돌담 길과 비교하니 약간 다른 맛이 난다.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화원은 정제된 여성미로 깔끔하고, 이곳은 좀 거칠고 투박한 남성미가 엿보여 아름답다. 화원은 다보탑처럼 아기자기한 느낌이고 옻골은 석가탑같이 중후한 분위기이다. 상상의 날개를 더 펼쳐 비교해 보면, 화원은 당진의 도기를 보는 기분이고, 옻골은 문경 장인의 찻사발이라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입구의 400여 년 된 회화나무와 숲이 마을의 역사를 품고 있다. 천천히 돌아다녔다. 시간이 훌쩍 지나 금세 점심시간이다. 어디서 점을 찍을까? 이곳저곳 검색하다가 역시 집밥이 최고라 생각하고 매호동으로 귀가했다. 어영부영 보낸 하루가 고마울 뿐이다.
3) 그럼에도 오늘은 아름답다 2026.03.29.(일)
오전에 범물동 어머님 댁을 방문했다. 지난번에 들렀을 때 가슴이 너무 아프다고 하셨다. X-레이를 찍은 결과 가슴의 작은 뼈가 이상이 생겼단다. 진통제와 주사의 힘으로 약간 좋아지셨다. 살며시 문을 열고 들어가니 침대에서 곤히 주무시고 계셨다. 단잠을 깨울까 봐 방바닥에 조용히 앉았다. 말없이 어머님이 자는 모습을 보면서 한참 동안 기다렸다. 40kg의 아담한 체구에 겨우 숨이 붙어 있는 것처럼 가쁜 호흡을 하고 계셨다. 나도 모르게 눈가가 촉촉이 젖는다. 저 몸으로 당신은 5남매를 키우시느라 평생 호강 한번 하시지 못하고 고생만 하시지 않았던가. 10여 분이 지났다. 놀란 듯 눈을 뜨시며 왜 깨우지 않았느냐고 말씀하신다. 어제는 셋째 동생이 다녀간 모양이다. 재취업을 좋은 곳에 했다는 반가운 얘기를 주고받았다. 준비해 간 호박죽과 좋아하시는 모시떡을 침대 위에 놓아드렸다. 바쁜 데 왜 자주 오느냐는 말씀에 죄송스러운 마음만 든다. 움직일 때마다 힘이 들고 아프다고 하신다. 듣고 있는 내내 마음이 답답하고 우울하다. 의사의 처방대로 하고 지내시라는 말밖에 나로서는 다른 답이 없다.
집에 갈까 하다가 용두골 진달래가 보고 싶었다. 해마다 이맘때면 용두골 오솔길에는 진달래가 산을 점령한다. 올해는 이상기후로 꽃이 좀 늦다는 얘기를 들었다. 며칠 전에 막 피기 시작한 용두골 진달래 사진을 J의 카톡으로 배달받았다. 꽃이 폈다고 먼저 가보고 보내준 벗이 있어 행복하다. 예전에는 보름달이 떴다고 전화로 전해온 글벗도 있지 않았던가? 감성의 결이 비슷한 벗과의 교류는 언제나 내 삶을 풍성하고 따뜻하게 만들었다. 범물동에서 수성 5번을 타고 파동으로 갔다. 숲길에 들어서니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 예전과 다름없이 오솔길 좌우로 붉게 타고 있다. 용두골 솔숲 사이에 펼쳐진 구불구불 산길은 영원한 보물창고이자 그리움과 감성의 곳간이다. 천천히 걸으면서 생각을 가다듬는다. 분홍빛 수줍은 꽃들이 속삭이듯 일렁거린다. 천천히 욕심을 비우고 건강만 잘 지키고 살아가라고 한다. 나도 모르게 봄노래를 흥얼거린다.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네. 진달래 피는 곳에 내 마음도 피어…….” “봄 처녀 제 오시네. 새 풀옷을 입으셨네…….”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 적에…….” 능선 너럭바위에 앉아 이름 모를 산새의 노래와 숲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사방에서 나를 포위한 진달래의 향기에 푹 취한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숲에 잠긴다. 오르는 걸음걸음이 경쾌해진다. 다시 사랑가 한 자락이 입에서 흘러나온다.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사랑,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사랑이로구나 내 사랑이야. 이히 이히히 내 사랑이로다. 아매도 내 사랑아…….”
가창행정복지센터 앞에서 ‘급행 10번’을 한참 기다리는 중이다. 간발의 차이로 먼저 온 차를 놓쳤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갑자기 귀에서 윙 소리가 난다. 이게 웬일이지? 아뿔싸! 이명현상이다. 몇 년 전에 심했다가 요즘은 좋아졌는데 또 재발한 모양이다. 크게 무리한 일도 없는데 왜 이럴까? 상태가 좋지 않으니 별별 생각이 다 난다. 혹시 돌발성 난청이 온 것이 아닐까? AI로 검색하니 증세가 비슷하다. 귀가 먹먹해지고 잘 들리지도 않는 기분이다. 공휴일이라 병원도 쉬지 않는가. 즐겁던 마음이 금세 우울해진다. 천국에서 바로 나락에 떨어진 느낌이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수양이 된다는데 나는 언제쯤 그렇게 될까. 지금처럼 살아가면 죽을 때까지 어렵지 싶다. 이순(耳順)이 넘어도 순간순간 바뀌는 마음은 내가 생각해도 우습다. 언제쯤이면 초연해질 수 있을까? 집에 와서 가만히 누워 안정을 취했다. 조금 잦아진 듯하다. 상태를 보고 내일 아침에도 돌아오지 않으면 병원에 가는 수밖에.
일요일은 저녁에 손자들이 오는 날이다. 탁구장에서 조금 일찍 게임을 끝내고 아이들을 한참 기다렸다. 6시가 다 되어서 소식이 왔다. 너무 많이 놀아 피곤해서 오늘은 오기가 힘들다고 한다. 이런? 조금 일찍 연락을 주지. 식사 준비를 다 해 놓은 아내가 섭섭해한다. 첫째 손자 우주는 아쉬움이 많은 듯하다. 전화로 “할머니, 오늘 못 가니까 다음에 하루 더 보충해서 갈게요.” 한다. 귀엽고 깜찍하다. 그래도 요놈들이 더 오고 싶은 마음이 있으니 듣고 있는 나도 마음이 풀린다. 오늘 하루도 잘 보냄에 감사드린다. 작은 기적의 날이다. 지금, 여기 존재하는 것이 최고의 복이 아닌가.
14부. 생의 기쁨을 느끼게 하는 달
1) 마음에도 봄은 오는가 2026.04.03.(금)
나이 탓일까? 성격 탓일까? 오래전부터 앓고 있는 뇌종양의 부작용일까? 요즘은 이따금 마음의 중심이 흔들리는 우울한 날이 불쑥불쑥 찾아온다. ‘캐서린 메이’의 『우리의 인생이 겨울을 지날 때』라는 책 구절을 찾아 읽으며 마음을 다독인다. 이 책의 원제목은 월동(越冬)을 뜻하는 ‘윈터링’이다. “인생이란 숲을 통과하는 꾸불꾸불한 여정이다. 한여름 잎이 울창한 날이 있고, 삭풍이 몰아치고 잎이 떨어져 앙상한 뼈만 드러내는 겨울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돌아온다. 누구나 한 번쯤 겨울을 겪는다. 어떤 이들은 겨울을 겪고 또 겪기를 반복한다. 겨울은 세상으로부터 단절되어 거부당하거나 대열에서 벗어나거나, 발전하는 데 실패하거나, 아웃사이드가 된 듯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 휴한기이다. 우리는 어디쯤에선가 넘어지게 되고 겨울은 그렇게 조용히 삶 속으로 들어온다. 혹독한 겨울은 때로는 우리에게 이롭게 작용한다. 겨울은 실재하며 우리에게 물음을 던지기 때문이다. 겨울을 삶 안으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야한다. 고독과 사색으로 들어가야 하는 순간이 있다. 더 메마르고 더 외로운 시간에 기대어 보는 것이다.” 난 아직은 인생의 겨울이 아니지 않은가?
수요일 하빈 큰집 한글교육반 교실은 서예교육반과 함께 사용한다. 큰 교실을 반으로 나누어 중간에 성인 가슴 높이 정도의 칸막이로 경계가 되어있다. 오전과 오후 강습 시간이 다르기에 강습생끼리 마주칠 일은 없다. 서예는 나도 오랜 시간 심취한 적이 있었기에 이따금 습작품을 엿보기도 한다. 한글반과 달리 서예반은 장기수 몇 명만이 수업 중이다. 성취가 그만큼 어렵고 오랜 세월 수양이 필요하기 때문이리라.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저자이자 진보 학계의 경제학자이고 문학가인 신영복 씨도 20여 년의 옥중 생활에서 서예를 공부해 그만의 독특한 한글 서체를 완성한 서예가이다. 매년 가을이면 전국 수형자들의 서예전도 개최한다. 출품 준비로 연습한 습작품이 몇 점 벽에 걸려있다. 그중 단정한 해서체로 쓴 7언 대련의 글이 늘 눈에 안긴다. 한 획 한 획에 힘과 혼이 들어간 글씨다. ‘水流任急 境常靜 (수류임급 경상정) 花落雖頻 意自閑 (화락수빈 의자한)’ “물이 아무리 빠르게 흘러도 주변의 환경은 변함없이 고요하고, 꽃이 비록 자주 떨어져도 그 덧없음에 마음은 동요 없이 한가롭다.”라는 채근담에 나오는 글이다. 외부의 변화에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평화와 여유를 강조한 내용이다. 그의 심정이 얼마나 답답하고 힘들지는 짐작하기는 어렵다. 그도 이 명제를 골라 쓰면서 오랜 시간 마음의 중심을 세우고 가다듬고 있지 않았을까? 요즘은 부지불식간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이 구절을 암송하는 습관이 들었다. 가르치러 왔지만 도리어 많은 것을 배우고 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이른 아침 베란다 밖 멀리 보이는 유건산에 봄빛이 완연하다. 파릇파릇한 연두빛 향기가 밀려오는 듯 아찔하다. 길가 스타벅스 앞 가로수도 여린 초록의 옷으로 갈아입는 모습이 하루하루가 다르다. 아름답다. 자연의 섭리는 질서 정연하고 환상적이다. 좁은 마음에 빠진 흐린 생각이 부끄럽다. 비교 지옥에 빠져, 감사하는 마음이 부족한 탓이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인 줄 모르고 사는 자신이 부끄럽다. 비판과 부정 편향은 인간이 생존하기 위한 원초적인 사고지만, 세상은 둥글고 순리대로 흐른다. 멀리서 본 옆집 잔디가 더 푸르지는 않을 것이다. ‘구상’ 시인의 시 『꽃자리』 마지막 구절을 살펴본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 너의 앉은 그 자리가 / 바로 꽃자리니라.” 순간순간이 기적이라고 여기며 감사하고 감사하자.
2) 벚꽃 아래, 오십 년의 우정 2026.04.07.(화)
햇살 통통 튀는 맑은 아침, 대학 동기 모임 날이다. 아니, 벌써! 돌아보니 올해가 졸업 50주년이 아닌가? 가슴이 설렌다. 1976년 2월에 졸업했으니 지난 세월이 꿈결 같다. 어저께 날씨를 검색하니 유성의 기온이 2~13도로 나온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랄까? 쌀쌀한 날씨라 얇은 옷은 바람직하지 않다. 11시 10분까지 대전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일주일 전에 예매한 ‘9:53분-10:34분. ktx 020. 1호 11D’에 앉았다. 40분이 잠깐 순간이동 한 듯 지나갔다. 먼저 도착한 친구의 반가운 얼굴에 웃음꽃이 환하다. 점심은 유성온천역 부근 NC백화점 10층 ‘애슐리 퀸즈’에 12시 예약이다. 대전역에서 지하철로 24분 거리, 12정거장 지난다. 그리운 동기 12명이 고풍스러운 도자기가 전시된 벽 쪽의 예약된 자리에 나란히 자리 잡았다. 점심 식대는 19,900원. 음식 맛과 종류는 그런대로 가성비가 괜찮다. 평일 낮이라 크게 붐비지 않고, 너무 썰렁하지도 않아 맛난 음식을 앞에 두고 정담에 취할 수 있는 좋은 장소였다.
‘동학사’가 종점인 107번 버스를 탔다. 개개인이 바코드 찍고 타기가 번거럽다고 창원의 Y 교장이 카드로 12명을 한꺼번에 결재했다. 고맙다. 35분 남짓 걸리는 길이다. 대구는 어제 비와 우박이 내려 꽃이 많이 졌건만, 여기는 한창 절정의 순간이다. 길바닥에 떨어진 꽃잎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입구 가까이 가니 ‘동학사 벚꽃 축제 중’이라 진입로 양쪽이 시끌벅적하다. 차창으로 스쳐본 품바 공연장이 3곳이나 된다. 전국 곳곳에서 원정 온 모양이다. 축제로 버스가 좀 밀리기는 했지만, 장사꾼이 더 많고 관광객은 드문드문 보인다. 경제 사정이 좋지 않은 현실을 반영한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이 앞선다.
계룡산 ‘동학사(東鶴寺)’. 이 절집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비구니 전통 강원을 운영한다. 공주 ‘마곡사’의 말사로 신라 성덕왕 때 ‘회의 화상’이 건립했는데 당시에는 문수보살이 상주하는 도량이라 하여 절 이름을 청량사라고 했다. 오래된 절집이라 조금 다른 자료도 있다. 고려 태조 때 도선 국사가 중창하며 고려왕조의 국운을 기원하고 사찰이 커지면서 동학사로 바뀌었다고 전한다. 절집 올라가는 길 계곡물 소리가 유난히 맑고 청아하다. 어제 비가 온 탓일까? 수량이 제법 많다. 하얗게 부서지며 반짝이는 비늘을 드러낸 물살이 바위와 숨바꼭질하듯 감칠맛 나게 흐른다. 툭툭 갈라진 너럭바위 위를 찰랑거리며 흐르는 물결, 부서지는 물거품은 뽀얀 소금을 뿌린 듯이 톡톡 튀며 봄날을 노래한다. 그들도 길가의 벚꽃에 취해 즐겁게 흐르는 것이리라. 짙푸른 하늘 알싸한 바람, 산책에는 최상의 날씨이다. 도란도란 기념사진을 찍으며 천천히 올라 대웅전 앞에 섰다.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약사불과 아미타불이 모셔져 있다. 문밖에서 눈을 감고 합장해 가볍게 참배했다. 은선폭포까지 가려고 같이 출발했으나, 조금 올라가다가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아 도중에 돌아섰다.
동학사! 여러 번 왔고 추억이 많이 깃든 절이다. 1980년 초, 같은 서실에 다니던 S와 답사한 기억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녀와는 다른 곳에 여행도 많이 다녔고 좋아했지만, 인연의 끈은 이어지지 않았다. 30대 풋풋한 시절 ‘보이스카우트’ 지도교사를 맡을 때이다. 여름방학 때는 동해안을 3박4일로 야영 다녔고, 겨울에는 계룡산과 속리산을 2박3일로 돌아다녔다. 첫날은 동학사 근처 민박집에서 자고, 다음날은 ‘동학사-남매탑-금잔디고개-갑사-속리산’으로 연결된 여정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속리산에서 민박 후, 다음날 ‘법주사-세심정-문장대-법주사’를 거쳐 저녁 버스로 귀가하는 여행의 즐거움을 많이 누렸다. 내 기억으로는 계룡산 코스는 4번쯤 다녀왔기에 지금도 그 길이 눈에 선하다. 늘 눈이 많이 와서 넘어지고 미끄러지며 산행하던 그 시절이 아련하지만 또렷하다. 그때 그들도 지금은 지천명의 중반을 넘는 나이가 아닌가? 민박집에서 석유 버너를 피워 밥을 해 먹던 추억, 밤마실 나와 산책하며 군밤을 사 먹었던 기억, 조금 사서 맛만 보았는데 서로 맛있다고 K군이 “선생님 더 사 주세요.”라는 말에 못 들은 척 사 주지 못했던 일이 후회되고 아쉽다. 지금 다시 만나면 듬뿍 사 줄 수 있는데……. 동글동글한 얼굴에 유난히 쾌활하던 K의 모습이 떠올라 미안한 마음만 든다. 오늘은 어느 하늘 아래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저녁은 숙소 부근의 ‘띠울石갈비집’에서 돼지갈비로 만찬을 누렸다. 대형 음식점이라 손님도 많다. 근데 개인적으로는 크게 추천하고 싶지 않은 집이다. 재료 탓일까? 고기가 좀 타기도 했다. 나오면서 보니 주방 옆에 참숯불도 있건만, 우리가 먹은 것은 비싸지 않은 돼지고기라 참숯불에 굽지 않고 다른 연료로 굽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참숯불은 소갈비를 주문하면 사용하는 것이 아닐까? 상상하니 씁쓸하다. 숙소인 ‘베가시티 레지던스 호텔’ 402호와 404호에 짐을 풀었다. 유성온천역에서 5분 정도 걸리는 곳이다. 27평형 아파트 구조로 된 깔끔한 무인 호텔이다. 일찍 예약했기에 숙박비도 합쳐서 336,000원으로 저렴하다. 친구들이 준비한 과일과 음료를 거실 탁자에 놓고 정담에 빠진다. 내가 늘 준비하던 하모니카를 가져가지 않았기에 친구들이 조금 섭섭한 모양이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때울까? 예전에 심취한 판소리 한 자락을 선보였다. ‘심청가’에서 ‘심봉사 눈 뜨는 장면’ 창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404호 여자 친구 방 화장실 문이 안에서 잠겨 걱정한 C에게 같이 가서 문을 열어 주고, 비상시 밖에서 문 여는 방법을 전수했다. 그 사건 때문에 코이카 일원으로 외국 거주 중이던 K의 일화가 또 나왔다. 태국에서 일어난 일이다. 한밤중 잠시 베란다에 나갔다가 안에서 문이 잠겼다. 속옷 차림으로 밤새 모기에 헌혈하며 베란다에서 고생했던 이야기는 웃으며 들었지만, 많은 것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내일 일정 때문에 부산의 L, 서울의 S와 나는, 저녁 8시 40분에 호텔을 빠져나왔다. 다음 날까지 함께 있어 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많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한 시간 여유를 두고 나왔다. 시간이 촉박했다. 다음에는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움직여야겠다. ‘21:49분-22:31분. Ktx 산천 221. 7호 8D.’ 동대구역을 향해 열차는 어둠을 뚫고 천천히 대전역을 출발했다. 멋진 곳에서 정든 친구들과의 만남은 언제나 내 삶을 풍성하게 해 준다. 잘 보낸 하루가 멋지고 고맙다.
3) 모란이 불러낸 고운 인연. 2026.04.13.(화)
며칠 전 모란이 살짝 눈을 뜬 사진이 카톡에 떴다. C 님이 올렸다. “벌써 모란이 피었네요.” “올해 처음 핀 모란입니다.” 주고받은 덕담 뒤에 초대장이 날아왔다. “네, 혹시 4월 13일 점심 식사 같이하실래요? J 님과 함께 정원에서 삼겹살 파티 합시다.” 보름 전이다. C 님의 정원에 동백나무를 심은 소식이 전해왔다. 꽃을 좋아하는 그녀의 마당 모서리에 오빠들과 함께 16년생 홑 동백을 이식하고 있었다. 잠시 대화 끝에 “모란이 필 때 한번 놀러 오세요.” “예. 기억해 놓을게요. 집에 모란이 피면 카톡에 올리세요.” “그때 현충로역으로 달려갈게요.” 그날의 약속이 오늘 이루어졌다.
매호동에서 그녀의 집까지 도착시간을 계산하니 한 시간 정도 걸린다. 반월당역에서 1호선으로 갈아타 현충로역에 내렸다. 약도를 보고 내비에 검색하니 골목이지만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이국적인 예쁜 철 대문, 우측 빨간 우체통 위에 ‘봉보나나’라는 문패가 싱그럽고 정감이 간다. 자기 이름이 아니다. 무슨 의미일까? 궁금해하는 내게 엄마와 본인 그리고 두 딸의 이름 중간자를 빼내 지었다고 설명한다. 우와! 글쟁이답게 참신하고 멋있는 문패가 아닌가? 평소에 효심이 지극한 그녀의 생활을 많이 알고 있었다. 갑자기 달성군 하빈면의 ‘육신사’ 옆 ‘삼가헌’ 방문한 기억이 난다. ‘삼가헌’은 박팽년의 11대손이 지은 집이다. 그 집 대문 문패가 ‘도덕과 평화’라 되어있었다. 무슨 뜻이지? 한참 궁금했었다. 살고 있는 부부의 이름이라는 말에 신선한 충격을 받은 느낌과 비슷하다.
그녀와 글쓰기 인연으로 맺은 세월이 15년이 훌쩍 넘었다. 예천 시골 출신으로 참신하고 맛깔스러운 그녀의 글처럼 정원도 주인을 닮아 아담한 꽃나무가 줄을 잇는다. 며칠 사이에 활짝 펴 흐드러진 붉은 모란이 먼저 눈에 안긴다. 깔끔한 성격으로 마당에 잔디는 심지 않고 예쁜 벽돌로 아기자기하게 단장하였다. 남쪽 담을 따라 모란, 치자나무, 사철나무, 붉고 흰 영산홍 두 그루, 산초나무, 제피나무, 그리고 보름 전에 이식한 동백이 듬직한 주인처럼 자리 잡았다. 마당 한쪽에 차려진 긴 식탁, 간이 의자들, 예닐곱 명이 모여서 파티할 수 있는 넉넉한 자리다. 식탁 위에는 무공해 나물로 요리한 몇 가지 반찬과 삼겹살과 목살이 손님을 기다리며 차려 있었다. 오늘의 백미는 좋은 분들이 왔을 때만 준비한다는 완두콩이 올려진 노란 치자밥과 사골탕이다. 정성스러운 주인장의 마음을 읽는 듯 눈이 부시다. 내가 전생에 무슨 좋은 일을 해서 이런 대접을 받을까? 이런 정성스러운 접대 받을 자격이 있을까? 가슴 깊은 곳에서 뭔지 모를 울컥한 것이 올라온다. 앞으로 더 열심히 세상을 탐구하고 겸손하게 살라는 신호라고 생각하자. 하여튼 고맙다. 예전에 함께 강의하던 문우인 P 님도 보고 싶어 연락했지만, 치과에 진료하러 가기에 참석이 어렵다는 답이 왔다.
맛깔난 식사 후, 내가 준비해 간 하모니카 연주 시간이다. 크게 잘 불지는 못해도 10여 년 공부하고 좋아했기에 모임이 있을 때는 지인과 늘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 오늘같이 정원에서 멋진 음식을 먹고 은은한 커피 향을 음미하면서 펼친 연주는, 부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서로 힐링이 되는 아름다운 순간이다. 나는 보통 트레몰로 하모니카 6개를 준비한다. C, Am, G, A, F#m, G# 이다. 곡에 따라 음정의 높낮이가 달라 분위기에 맞게 연주하려면 각각 다른 것이 필요하다. 제일 좋아하는 ‘바람’이라는 곡으로 문을 연다. 이 곡은 2002년쯤 방영된 ‘외출’이라는 SBS 아침드라마의 OST로 즐겨 연주되는 곡이다. 색소폰이나 첼로 등으로도 많이 연주되지만, 하모니카는 주로 다이아토닉으로 연주한다. 나는 다이아토닉 하모니카는 배우지 못했기에 트레몰로로 연주한다. 전문가들의 눈에는 미흡하지만, 좋은 분들과 더불어 즐기는 시간은 꿈결 같다. 이 또한 소소한 행복이 아닌가?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숨어우는 바람소리’ ‘비 내리는 고모령’ 등등. 그리고 김인배 님의 곡, 트럼펫 연주로 많이 하는 ‘석양’도 좋다. ‘석양’은 인생 노년의 잔잔하고 은은한 분위기가 숨어있는 연주곡이다. 잃고 지내던 순수한 소년의 감성이 살아나는 아름다운 곡이다.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인연이란 무엇인가 곰곰 생각했다. ‘생산적 인연’이 있는가 하면 ‘파국적 인연’도 있다. 세상 모든 일에 ‘일체유심조’를 생각한다. 남은 삶에는 언제나 멋지고 즐거운 생산적 인연으로 이어지길 소망한다. 글을 쓰면서도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 남이 듣고 싶은 이야기의 조화가 중요하다. 호불호가 많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전자에 더 큰 비중을 주고 싶다. 자기만의 글이 좋다. 뻔한 이야기보다 다른 삶의 엿보기가 감동은 적더라고 재미는 있지 않을까? 한번 맺은 고운 인연을 나는 잘 이어간다. 모란이 피었다고 초대해 준 C 님께 고마움을 전한다. 모든 일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겠다. 낮에 바빠 못 간 ‘청춘탁구클럽’은 저녁에 갔다. 파트너가 없어, 양손을 쓰는 관장님의 왼손으로 두 경기를 했다. 두 게임 다 졌지만, 대등한 경기를 해서 즐거웠다. 오늘도 멋진 기적의 삶에 고마움을 보낸다.
4) 갈등 속에서도 피어나는 작은 행복 2026.04.17.(금)
갈등 없는 삶이 있을까? 어저께부터 ‘청춘탁구클럽’에서 소모임 문제로 말이 많다. 마음 맞는 몇몇 또래 회원들이 모임을 만들었다. 토요일 오후에 경기 공지가 떴다. 주로 오전반 고수들이 주축으로 조직되었다. 끼리끼리 즐겁게 경기하면서 실력 향상도 하고, 주말에는 시내 리그전에 참석하자는 취지다. 문제는 오후반 회원 몇몇이 동참하는 데서 일어났다. 소외된 다른 회원들이 섭섭한 모양이다. 구장의 궂은일을 자기 일처럼 봉사한 묵은 회원은 마음이 크게 상한 듯하다. Y 님이 관장님과 마주 앉았다. 한쪽의 감정이 격해지니 큰 소리가 나온다. 이성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가 없다. 옆에서 중재하려고 해도 힘이 든다. 내 생각으로는 큰 문제가 아니라고 보는데, 쉽게 갈등이 봉합되지 않는 것 같다. 관점과 해석의 차이가 아닐까? 팩트는 명확하다. 어떤 관점으로 보는가? 해결의 답이다. 갈등(葛藤)이란 한자어를 살펴본다. 칡을 의미하는 갈(葛)과 등나무를 말하는 등(藤)으로 되어있다. 각각 강한 줄기를 가지고 있어, 서로 얽히고 엉켜 싸우는 것처럼 보인다. 해결하는 법은 서로의 뜻을 잘 알고 중재자가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며, 상호 양보를 끌어내 수용하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해결이 될 것이다.
아침부터 봄비가 보슬보슬 내린다. 구장 갈등을 생각하니 머리가 아프다. 이런 날은 어디로 갈까? 미술관 산책이 좋다. 간송미술관을 검색했다. 며칠 전부터 <추사의 그림 수업>이란 주제로 ‘대구간송미술관 기획전’이 열리고 있다. 한참 뒤 미술관 주차장에 얌전히 주차했다. 평일 오전 이른 시간이라 조용하다. 젊은 연인끼리, 친구끼리, 가족과 함께 온 열댓 명의 관람객만 보인다. <추사의 그림 수업>이란 주제가, 대표작인 세한도 그림을 배경으로 반긴다. 올 때마다 느끼지만 너무 많은 것을 보려고 하면, 좋지 않다. 여러 번 자주 와야 한다. 특별기획전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최소한 예닐곱 번은 와야 하지 싶다. 오늘은 추사 글씨 몇 점과 매화를 주제로 한 작품만 감상하기로 했다. 4전시실 입구의 첫 작품이 <계산무진>(溪山無盡 -계산은 끝이 없구나.-)이란 서예이다. 이 작품은 추사체의 완성을 보여주는 글씨로 알려진다. 전서, 예서, 해서, 행서, 초서의 점획을 독창적으로 변형하고 재결합하였다. 물이 흐르는 골짜기와 우뚝 솟은 산의 형상을 반영해 회화미도 살리고, 의미와 형태에 맞춰 글자를 배치해 균형미를 극대화한 글씨로 설명한다. 다음 서예 작품도 멋지고 재미있다. <삼십만매수하실>(三十萬梅樹下室 –삼십만 그루 매화나무 아래 집.-)이란 작품이다. 추사 예서의 꽃으로 19C 매화서옥도 제작의 유행을 예고하는 작품으로 알려진다. 수직과 수평의 안정적 구도 안에 획의 굵기와 삐침 등의 변화를 주어 유려한 미감을 더했다. 처음 제목을 한글로 읽었을 때, 작품을 ‘삼십만 원에 살 것인가?’ 라는 바보 같은 엉뚱한 생각도 한 작품이다.
다른 작품은 다음에 와서 감상하기로 하고 매화 작품 방으로 들어갔다. 먼저 이한철의 <매화서옥도> 병풍을 만난다. 송나라 시인 임포의 고사를 바탕으로 그렸다. 간결하고 단아한 필치로 우봉 조희룡의 거침없는 매화와는 맛이 다르다. 화사한 채색의 가옥과 선비의 모습이 묵법 위주의 배경과 대비를 이룬다. 당시 중인 계층의 심미적 취향이 반영된 작품으로 소개된다. 임포는 중국 서호의 고산에 20여 년 은거한 시인이고 서예가이다. 이곳에서 결혼하지 않고, 시를 짓고 매화와 학을 기르고 살았기에 ‘매처학자(梅妻鶴子)’ -매화를 아내로 학을 자녀로 여기며 산 시인-으로 알려진다. 조희룡의 깔끔한 한 쌍의 백매도 아름답다. 추사의 가르침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중년 이후의 작품으로 느낌이 산뜻하다. 드디어 우봉 조희룡의 <매화서옥도>를 만난다. 기량이 절정에 이른 50대 후반의 역작이다. 화면 가득 채운 거칠고 호방한 바위산 아래의 서재에 앉아 있는 선비를 그렸다. 흰 호분으로 눈송이처럼 피워 흩날리는 매화는 화면 가득 살아 움직이는 함박눈이다. 생동감이 넘치고 눈이 황홀하다. 우봉의 작품 중 최고로 꼽히는 명작이다. 그는 “만 그루의 매화가 빽빽하게 얽히고 비치어, 향기로운 눈의 바다에 들어간 듯하다.”라고 얘기했다. 또 다른 매화 작품이 걸음을 잡는다. 고람 전기의 <매화서옥>이다. 추사의 문하로 20대 중반의 나이에 최고의 경지에 이른 천재 화가이다. 19C 중반에 제작된 설산에 만개한 백매가 어우러진 대작이다. 하늘을 어둡게 하여 흰 꽃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했고, 짧고 강한 필치로 매화의 생태를 살린 작품이다. 고람 전기의 최고 작품인 <매화초옥도>와 분위기는 비슷하지만, 살짝 다르다. 두 작품 모두 매화가 눈처럼 펄펄 내리는 날 친구를 찾아가는 장면을 순간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매화초옥도>는 지난번 전시에서 감상했다.
오후에 손자 돌보는 날이다. 15:50분. ‘하늘 유치원’에서 둘째 손자 **를, 16:00 시에 ‘꿈나라 태권도장’에서 첫째 손자 **를 데리고 나온다. 16:30분. 도착한 집에서 전쟁이 시작된다. 바둑 알까기 게임 10분, 포켓몬 카드놀이 10분, 실내 야구 10분, 숫자 바르게 쓰기 10분을 마치고 자유시간을 즐기고 나면 저녁 식사 시간이다. 유치원에서도, 학교에서도 점심은 잘 먹지 않는 느낌이다. 살짝 물어보니 매워서 안 먹었다고 한다. 아이고, 요놈들! 비슷한 친구도 많다고 한다. 점심을 굶었으면 저녁이라도 쉽게 먹으면 좋으련만, 요놈들의 입이 짧은 탓인지 어렵다. 밥 먹이기가 매일 전쟁이다. 그때마다 집사람은 내 탓을 한다. 내가 어릴 때 그렇게 밥을 먹지 않았다고 어머님께 들었기 때문이다. 긴 시간 따라다니면서 억지로 조금씩 먹였다고 한다. 좋은 버릇은 닮지 않고 나쁜 점만 잘 닮는가? 19:00 시. 겨우 저녁을 다 먹이고 한숨 돌린다. 이제 좋아하는 TV 만화영화 ‘카봇’을 세 편 보여준다. 제일 얌전하고 조용한 시간이다. 집사람과 나는 파김치가 되어 한숨 돌린다. 19:50분. 퇴근한 아들 내외에게 인수인계한다. 문 앞에서 작별 인사를 받고 들어와 눕는다.
이렇게 좌충우돌하며 사는 게 바람직 한 일일까? “이게 아닌데?”를 곱씹어보지만, 다음 날도 되풀이될 것이다. 정답이 없는 삶이다. 어렵다. 욕심이 발목을 잡고 놓지 않기 때문이다. 시시콜콜한 소시민 일상의 복기 과정이 부끄럽기도 하고 한편 자랑스럽다. 잡문이지만 나의 생생한 삶의 기록이 아닌가? 도덕으로 포장한 글이 아니라 맨얼굴 생생한 일상의 순간이니까 개인적으론 더 좋다. 탈 없이 보낸 하루에 감사한다. 행복하다. 고맙게 내일을 살아가자. 내가 즐겁고 멋진 하루라 생각하면 이 또한 기적의 삶이 아닐까?
5) 찬란한 봄날은 그렇게 흐른다 2026.04.25.(토)
‘수필문예대’ 문학기행 날이다. 엊저녁부터 살짝 설렘으로 잠을 뒤척였다. 웬일일까? 모든 것이 시큰둥해진 시절이건만, 아직 이런 감정이 살아있다니……. 움츠렸던 마음의 물결이 잔잔히 출렁인다. 얼마 전 순천, 벌교 지방의 ‘대구문인협회’ 문학기행에서도 느끼지 못한 묘한 기분이다. 기다림과 호기심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통영 문학기행이 얼마 만인가? 20여 년 전 ‘수문대’ 입문하던 가을에도 통영 문학기행을 왔기에 더 감회가 새롭다. 내일 통영 날씨를 검색하니 8도~22도이다. 무슨 옷을 입으면 좋을까? 아침저녁은 쌀쌀하고 낮에는 덥다. 상의는 화사한 원색 파란 패딩으로 골랐다. 옷이 밝으면 마음도 맑고 쾌활해진다. 무엇보다 기념사진이 상큼해 아름답게 삶을 인도한다. 나이가 들수록 어린아이가 된다는 옛 어른이 말이 가슴에 닿는다. 유치한 것과는 다르다. 원숙해지고 수양이 된다는 말은 내게는 맞지 않는 것 같다. 물론 사고의 깊이가 깊어지고 판단에 신중함이 들기도 하지만, 이젠 비운 마음에 단순하고 경쾌하게 사는 것이 좋지 않을까?
통영! 조선시대 ‘삼도수군 통제영’이란 관청의 이름에서 두 글자를 따온 도시이다. 한때 충무공의 도시로 충무로 불렸으나 지금은 다시 통영시로 이름을 찾았다. 세 시간 남짓 고속도로를 달리니 길가에는 벌써 이팝나무꽃이 지천이다. 휴게소에서 직전 학장인 S 님의 설명은 세월의 흐름이 신비롭다. 예전에는 이팝나무꽃 축제를 오월에 했으나 이젠 날짜가 훨씬 앞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요즘은 벚꽃도 일찍 피고, 지고 나면 다른 꽃들이 순서 없이 펑펑 터진다. 지구온난화 부작용인지 지구의 몸살인지 알 수 없지만 “세상은 변한다”라는 한마디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
‘박경리기념관’ 앞에 얌전히 주차한다. 건너편 푸른 바다가 수줍은 듯 신록 사이로 손바닥만큼 보여준다. 아담한 2층 양옥으로 된 기념관이다. ‘박경리문학관’은 원주에 크게 지어져 있다. 통영은 박경리 선생이 학창 시절을 보낸 곳이고 근처에 묘소도 있다. 몇 번 왔기에 대충 돌아보았다. 정원의 작은 연못엔 어린 금붕어 몇 마리, 옆의 아담한 동상이 편안하다. 동상 아래 기반석에 새겨진 마지막 책 이름이 우리 옷깃을 여미게 한다. 유고 시집 제목인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라는 글귀가 의미 있고 묵직하다. 정원의 벤치에 앉았다. 멀리 푸름의 풍경 사이로 펼쳐진 바다가 환하다. 눈 머무는 곳마다 벅찬 그리움이고 아득한 아름다움이다. 예쁜 오석에 세로로 새겨진 <삶>이란 시의 마지막 구절을 읽어본다. “ -전략- 애닯게 우는 새야, 한가롭게 우는 뻐꾸기, 모두 한목숨인 것을, 미친 듯 꿀 찾는 벌아, 간지럽다는 고들빼기꽃, 모두 한목숨인 것을, 달 지고 해 뜨고, 비 오고 바람 불고, 우리 모두 함께 사는 곳, 허허롭지만 따뜻하구나, 슬픔도 기쁨도, 왜 이리 찬란한가?” 슬픔도 기쁨도 찬란하다고 노래했지만, 가슴 깊은 곳에서 흐느끼는 처절함이 역설적이고 치열하지 않았을까?
‘전혁림미술관’은 꽃 잔치 중이다. 불두화가 한창이고 담을 끼고 오르는 담쟁이, 목향장미 넝쿨이 봄을 감싸고 웃는다. 붉은 장미와 흐느끼는 작약까지 신록의 계절이 오월이 아니라, 사월로 당겨진 느낌이다. “그는 색으로 쓰는 문장의 화가이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은 색으로 먼저 태어난다. 강렬한 색채는 하나의 문장이 아니라 감정 그 자체다. 우리는 눈으로 글을 읽고, 마음으로 색을 해석한다.”라고 해석한 작가이다. 흰 벽에 예쁜 타일로 모자이크한 아담한 건물이 귀엽다. 인형의 집처럼 앙증맞고 사랑스럽다. 코발트 색으로 된 계단을 올라 미술관에 들어선다. 흑백 모자이크로 된 바닥을 밟으며 작품을 감상한다. 미술에 전문적인 지식이 없기에 남들 따라 그냥 작품 앞에 잠깐 보고 스쳐 지나간다. 소품들도 좋지만, 개인적으로 큰 작품들이 눈에 들어온다. 한 벽을 가로로 세운 작품과, 세로로 세운 작품이 경이롭다. 옆 동에 있는 책방도 멋지다. ‘통영을 만나는 가장 멋진 방법’으로 소개되는 책들이 전시되고 판매도 한다. 아담한 옆방에는 ‘책 읽는 부엌’이란 제목으로 책이 전시되어 있다. 책방 밖 벽에 통영이 낳은 시인 김춘수 시인의 캐리커처가 그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는 직전 회장 K님과 흡사하다. 아니, 똑 닮았다. 멋지고 재미있다.
‘이순신공원’ 전망대에 올랐다. 탁 트인 통영 앞바다가 한눈에 안긴다. 짙푸른 하늘과 비췻빛 바다의 조화는 물감을 엎은 듯 환상적이다. 잠시지만 원 없이 바다 바라기로 할 수 있어 좋다. 녹음과 어우러진 바다는 무엇인가 말하는 듯하다. 임진왜란 때도 이런 풍경이었을까? 멀리 충무공이 왜적과 싸우던 전장이 눈앞에 펼친다. 전투 장면이 드라마처럼 되살아난다. 북을 둥둥 울리며 쉰 목소리로 지휘하는 환상이 겹친다. 나라를 위해 노심초사했던 충무공의 마음을 우린 얼마나 알고 있을까? 겉 맛만 본 난중일기에도 그의 절절한 심정이 드러난다. 욕심만 가득한 지금 위정자들이 그분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본받으면 좋을 텐데……. K 님과 긴 데크 길를 따라 바닷가로 내려갔다. 바다에 왔으면 물에 손이라도 담그고 가야 하지 않나. 아이들 몇이 물수제비를 뜨고 있었다. 번번이 실패다. 좋은 기회인데 나도 동참해야지. 납작한 돌은 없고 뭉툭한 돌밖에 보이지 않는다. 두어 번 시도했으나 허탕이다. 세 번째 드디어 퐁, 퐁, 퐁, 경쾌한 소리를 내며 세 번 튕겼다. 어린아이처럼 기분이 좋다. 좋은 날을 축복하는지 햇무리가 진다. 둥글게 반짝이는 햇무리를 이순신 동상 배경으로 촬영하니 멋진 기념사진이 된다.
‘청마문학관’에 들어섰다. 여러 번 와본 곳이라 익숙하다. 교과서에 실린 <깃발>과 <행복>이라는 시가 많이 애송되는 시인의 생가가 있는 곳이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중략- 사랑했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라는 문장은 얼마나 많이 회자했던가? 문학관 탐방을 끝내고 잔디밭에 앉아 삼행시 시상과 행운상 추첨이 있었다. 언제나 맛깔나게 진행하시는 Y 선생님의 입담이 부럽고 재미있다. 86세의 나이도 잊은 멋진 화가로 언제나 젊은이처럼 사시기에 본받고 싶은 분이다. 삼행시 백일장은 15년 만에 처음 참가했다. 당시에는 강의를 맡았기에 제외되었다. 오늘은 평회원으로 상금에 눈이 멀어 참가했다. 이 욕심을 언제 버릴 수 있을까? 마음과 몸이 일치되지 않는 현실이 부끄럽다. 활은 시위를 떠났고, 과녁 점수만 살피는 시간이다. *상! 녹슬지 않은 감성은 확인했으나, 사회자로부터 주의를 들었다. 시인이 참여하는 것은 반칙이란다. 이게 삼행시 마지막 참석이라 생각하자. 죄송합니다.
마지막으로 중앙시장을 찾았다. 시끌벅적한 길에 생선 비린내가 코를 찌른다. 이 시간은 관광객들이 넘쳐 포항 죽도시장이나 대구 서문시장보다 더 붐빈다. 짧은 거리에 걸음 옮기기가 어려워도 싫지는 않다. 시장 구경은 언제나 재미있다. 삶이 살아 통통 튀는 곳이다. J 님과 동피랑 언덕으로 올라갔다. 중턱 쉼터에 고양이 한 마리가 세상모르게 널브러져 자고 있다. 그도 관광객 물결에 지쳐 쉬고 있을까? 바닷바람을 솔솔 맞으며 오늘을 복기해 본다. 맑고 화창한 봄날, 바라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문우들과 꿈과 예술의 도시 통영에서의 소풍이 아니던가? 순간순간이 소중하고 아름다웠다. 그렇게 그렇게 내 생의 봄날은 간다.
6) 고요 속에서 건져 올린 기쁨 2026.04.29.(수)
봄 날씨가 춤을 춘다. 어제까지 따뜻하더니 오늘은 쌀쌀하다. 하빈 큰집 강의 날이다. 달성군은 시골이라 공기가 더 맑고 차다. 11시에 강의를 마치고 종합민원실에서 잠시 휴식 중 갑자기 ‘육신사’에 가고 싶었다. 하빈에서 강의하면서 매년 봄, 가을, 두 번쯤 방문한다. 11시 20분쯤 교도소 앞 정류소에서 육신사행 버스가 있다는 것도 검색했다. 버스를 타면 10분 거리로 가깝다. 11시 30분. 육신사 종점에 도착했다. 다음 문양 행 출발 버스 시각은 13시 5분이다. 한 시간 반 정도의 여유가 있다. ‘육신사’와 ‘삼가헌’ 탐방 시간으로 충분하다.
‘육신사’! 세조 때 단종 복위 운동을 하다가 목숨을 바친 사육신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사육신 중 한 명인 박팽년의 손자 박비가 이곳 묘골에 터를 잡고 살았다. 어느 날 박팽년의 현손이 제삿날 꿈에 사육신이 사당 문밖에 서성이는 것을 보고, 나머지 다섯 분의 제사도 함께 지내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묘골마을은 순천 박씨 집성촌으로 마을 입구부터 고풍스러운 한옥이 줄지어 있다. 멋진 솟을대문을 지닌 고가는 지금도 후손이 살고 있는 집이 많다. 몇몇 집 대문은 활짝 열려 있어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돌아볼 수 있다. 기와를 이고 있는 흙돌담 길을 걸으면 옻골마을이나 남평문씨세거지 담길도 떠오른다. 담 아래 미소짓는 낮 달맞이꽃도 반갑고 붉은 꽃잎이 바닥에 흐드러진 작약도 황홀하다. 형형색색 봄꽃이 정원마다 눈부시다. 고즈넉하고 평화롭다. 한 걸음 한 걸음마다 마음이 차분해지고 경건해진다. 평일이라 방문객은 아무도 없다. 집주인도 보이지 않아 고요의 숲에 들어온 듯 적막한 느낌도 든다. 몇 번 와본 곳이기에 천천히 걸음과 눈을 옮긴다. 길 양쪽의 한옥을 둘러보며 100여m 걸어가면 붉은색 기둥과 대문으로 우뚝 선 ‘육신사’ 정문이 나온다.
계단을 올라가면 붉은 홍살문을 지나 오른쪽 언덕에 보물로 지정된 ‘태고정’을 만난다. 박팽년의 손자 박일산이 성종 때 건립한 정자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된 아담한 규모로 조선 전기의 건축양식을 살펴볼 수 있다. ‘태고정(太古亭)’과 ‘일시루(一是樓)’라는 해서로 된 현판이 아름답다. 예스러운 품격이 물씬 풍긴다. 대청 입구에 ‘올라가지 마시오.’라는 팻말이 눈에 거슬린다. 대청 앞에 서서 앞을 내려다보았다. 묵은 골기와를 인 한옥들과 멀리 녹음의 산과 하늘이 한눈에 들어온다. 당시에는 건물이 이렇게 많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람이 너무 없고 조용하니 좋은 점도 있지만, 속인의 답사 재미는 적다.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적절함의 조화가 좋다. 세월의 무상함이랄까 허허한 마음만 든다. 홀로 사색하고 걸으면 좋다고들 하지만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사색은 아무나 할까? 보통 사람에게는 정신적 사치가 아닐까? 사육신의 위패를 모신 ‘숭절당’과 ‘도곡재’ 주위를 그냥 그냥 돌아보았다. 올해 흥행에 성공한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단종을 배경으로 만든 영화이기에 주말에는 이곳도 좀 붐비지 않을까 생각된다.
‘삼가헌(三可軒)’을 찾아갔다. 주차장에서 차도로 걸어가면 2km 거리지만, 논 옆으로 난 산길로 넘어가면 600m 거리이다. 몇 해 전 ‘대구문인협회’ 행사 때 걸어간 기억이 있기에 추억을 더듬어 산길로 갔다. 짧은 거리지만, 아무도 없는 컴컴한 산길 중턱에는 계곡물이 콸콸 흐르고 오르막 산길은 예전보다 잘 다듬어졌기에 쉽게 넘어갔다. ‘삼가헌’은 박팽년의 11대손인 박광석이 건립한 주택이다. 작년에 왔을 때는 대문이 잠겨 들어가지 못했다. 다행 오늘은 문이 활짝 열려 있다. 근데 ‘개조심’이란 팻말에 살짝 겁이 난다. 대문 왼쪽 기둥에 양 손바닥만 한 검은 쇠판으로 된 문패가 인상적이다. ‘도덕과 평화’이다. 무슨 의미인지 몰라 예전 ‘대구문인협회’ 행사 때 주인에게 슬쩍 물어보았다. 세상에나! 지금 살고 있는 부부의 이름이란다. 그때 느낀 산뜻하고 신선한 충격이 지금도 전해와 미소를 짓고 살며시 걸음을 옮긴다. 갑자기 개가 요란스럽게 짖는다. 깜짝 놀라 주춤했지만, 다행 목줄로 매여 있어 “안녕” 눈인사하고 지나쳤다. 나그네만 보면 본능적으로 짖는 모양이다. 대청 아래 섬돌에 주인의 흰 고무신이 얌전히 놓여있다. 방해하지 않으려고 마당에서 슬쩍 돌아보고 ‘삼가헌’에서 가장 아름다운 별당인 ‘하엽정’으로 걸음을 옮겼다.
정자 앞에 ‘파란 연잎이 떠 있는 연못’이란 뜻의 ‘하엽정(荷葉亭)’. 샛문 사이로 보이는 배롱나무와 연못이 환상적이다. 지금은 연꽃도 배롱나무꽃도 피지 않아 적적하지만, 오히려 화려하지 않아서 더 몽환적이다. 절정에 이른 수국이 푸른 녹음과 어울려 정자를 감싸고 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연못에는 수련과 형형색색의 낙엽이 세월을 지키고 있는 듯하다. 적막과 아득함만 느껴지는 고풍스러운 정자 툇마루에 앉았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연못을 바라보기만 해도 마냥 좋다. 사색도 필요 없고 멍때리듯 있어도 신선이 부럽지 않을 듯 멋진 곳이다. 연못 위에 길게 걸쳐놓은 통나무 위에 올라갔다. 멀리 보이는 정자와 나무, 물, 하늘이 어울려 한 폭의 동양화 속의 그림이 된다. 여기서는 아무도 없으니 더 운치가 있고 더불어 자연의 일부가 된다.
문양 행 버스 출발시간까지 30분 여유가 있다. 육신사 입구의 한옥 감성 카페 ‘묘운’(竗雲)에 들어갔다. 박팽년 선생의 22세 손 박상혁 씨가 운영하는 곳으로 시간의 오묘함과 공간의 절묘함을 살린 곳이다. 긴 돌담과 풀밭 정원이 고궁 같은 카페이다. 명경지담(明鏡之潭)이란 아담한 연못에는 20여 마리의 붉고 노란 잉어가 세월을 즐긴다. 겉모습만 한옥 구조를 따른 것이 아니라 전통을 보존하며 현대식 가치를 추구하는 곳으로 지었다고 한다. 통유리창과 감각적인 조명이 멋진 갤러리에 온 느낌이다. 가구와 소품은 전통공예 작품으로 전시 중이란다. 오늘 비로소 관광객 10여명을 만났다. ‘육신사’와 ‘삼가헌’에서는 아무도 만나지 못하고 홀로 다녔는데? 좀 아이러니하다. 카페라테 한잔을 앞에 놓고 지친 마음을 내려놓았다. 하트가 그려진 라테아트를 보며 홀짝홀짝 커피 향을 음미한다. 느림과 여유가 공존하는 곳이다. 카페라테와 함께 받은 종이를 읽어본다. ‘정좌처다반향초(靜坐處茶半香初)’ -고요히 앉은 이곳, 차는 반은 줄어도 향은 처음과 같네- 라는 황정견의 『산곡문집』에 있는 글귀이다. 비록 전통차가 아니라도 차향의 품격을 높인다. 친구와 연인들로 보이는 관광객이 대부분이다. 나처럼 혼자 온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13시 5분. 문양 행 버스에 홀로 앉아 출발했다. 14시 50분 매호동 도착. 몸과 마음이 나른하다. 계획하지 않은 멋진 시간이 잘 흘러갔다. 고마움의 정신이 흐릿해지는 나를 일깨우는 좋은 하루였다.
15부. 뽕나무에 오디 따 먹는 달
1) 오월의 푸른 숲에 안긴 천년 고찰, 환성사 2026.05.14.(목) A
달포 전에 지인 S 님에게서 좋은 정보를 얻었다. 한 달에 한 번 있는 ‘고찰 경관 투어’ 경산 시티투어 프로그램이다. 지난달엔 하루 전에 신청했다가, 계획이 끝났다고 거절당했다. 이번 달에는 서둘러 일찍 신청하여 집사람과 함께 참가했다. 둘째 목요일. 환성사, 불굴사, 갓바위 선본사 탐방이다. 선본사 갓바위는 지난 월요일에도 다녀왔지만, 환성사와 불굴사는 간다는 마음만 먹고 있었고 아직 가보지 못한 고찰이다. 햇빛은 쨍쨍, 산들바람은 솔솔, 달콤한 공기가 여행하기 환상적인 날씨다.
환성사(環城寺)! 경산 하양 ‘대구가톨릭대학 효성캠퍼스’를 지나 작은 재를 굽이굽이 넘어가면 극락교 입구에 다다른다. 오월의 숲은 푸름의 잔치이다. 흰 구슬 꾸러미 같은 아카시아 꽃은 많이 졌지만, 눈길 가는 곳마다 코발트 빛 하늘과 파릇파릇한 녹음의 무도회장이다. 마음을 가다듬고 천천히 묵언수행 자세로 아담한 극락교를 지난다. 환성사의 이름은 고리 환(環), 성 성(城)자이다. 언덕에서 사방을 둘러보았다. 녹음의 산이 둥글게 끊어지지 않고 고리에 고리를 두른 것처럼 사방으로 연결되어 있다. 신라 흥덕왕 때 창건했다가 소실되어 조선시대 중건한 고찰이지만 지금은 많이 쇠락한 느낌이 드는 절이다.
첫눈에 들어오는 일주문이 색다르다. 그저 돌기둥 네 개만 덩그러니 있고 지붕만 화려한 단청으로 아름답다. 아니, 이게 일주문이란 말인가? 다른 곳에서 볼 수 있는 사천왕상도 없고 벽화조차 없다. 이런 형태의 일주문은 동래 범어사에만 볼 수 있다. 기둥도 둥근 기둥이 대부분이지만 이곳은 독특하다. 4개의 기둥 중 중간의 2개는 팔각기둥이고 양쪽에는 사각기둥으로 되어있다.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그 의미를 되새긴다. 불교의 교리를 잘 모르는 나는 한참 설명에 빠져들었다. 사각은 교리 중 사성제(四聖諦) 속의 ‘고집멸도(苦集滅道)’에서 온 뜻이란다. 반야심경을 외우면서 들은 말이다. 고통을 파악하고(苦), 고통의 원인을 파악하고(集), 고통의 원인을 없애는 것과(滅), 고통을 멸하는 길에 대한 가르침(道)이라고 설명한다. 팔각은 팔정도(八正道)를 얘기한다. 괴로움에서 벗어나 깨달음에 이르는 여덟 가지 바른길을 말한다. 그저 맑은 날 봄 소풍 나온 내게는 어렵고 힘든 교리이다. 돌기둥으로 된 두 곳의 일주문을 혼자 비교해 본다. 범어사 일주문은 굵고 힘찬 남성적인 느낌이라면 환성사 일주문은 아름답고 소박한 여성적인 기분이 든다고 할까?
조금 더 올라가면 오른쪽에 아담한 연못을 만난다. 입구에 용연(龍淵)이라고 바위에 음각되어 있다. 여기는 재미있는 설화가 전해온다. 신라 흥덕왕 때 왕의 아들 심지왕사가 창건했기에 당시에는 규모가 대단했다. 조선 초기까지 신도가 많았지만, 시주보다 접대하는 공양간 곡식이 모자라 절 운영이 어려운 주지 스님이 애를 먹고 있었다. 어느 날 지나가던 객승이 비방을 전해주었다. 이 용연을 다 메우면 스님의 고민이 해결될 것이라고 했다. 한참 고민하던 주지 스님은 모든 스님을 동원하여 용연을 메우기 시작했다. 그때 마지막 한 삽만 뜨면 다 메워질 무렵, 한 삽을 뜨니 갑자기 붉게 물든 금송아지 한 마리가 슬피 울며 동화사 쪽으로 날아갔다고 한다. 지금 동화사는 신도나 관람객이 여기와는 비교할 수가 없는 절집이 되어있다. 연못을 다 메우자 큰 화재가 일어나서, 대웅전과 수월관만 남고 다 불타버렸다. 누군가는 물의 기를 막아서 액을 당했다고도 설도 전해진다. 원래 사찰이란 인간의 고민을 들어주고 베풀어야 하는 곳인데 그 사실을 회피하려고 했으니, 절이 쇠락하게 된 원인이 아닐까라고 생각된다.
보물로 지정된 대웅전이 참 아름답다. 전통적인 팔작지붕의 형태로, 막돌로 쌓은 석대 위에 주춧돌을 놓고 배흘림기둥으로 되어있다. 옆문이 열려 있다. 스님의 독경 소리가 들리며 신도 두 분이 불공을 드리고 있었다. 대웅전 안의 불단 수미단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수미단이란 부처의 세계로 넘어가기 전에 수미산을 지나는데 수미산에서 볼 수 있는 동식물들을 새겨 놓은 곳이다.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다른 곳에서는 전면이 8칸이나 9칸으로 되어 있는데 여기는 12칸으로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다양한 형태의 꽃과 나무, 물고기, 코끼리, 오리, 사슴 등이 새겨졌다. 두 손 모아 합장하며 경건하게 기도를 올렸다. 법당 안이라 불경스러워 세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아름답다. 사진으로 찍어 귀가해서 자세히 살펴봐야지. 근처 은해사 백흥암의 수미단도 예쁘지만, 여긴 규모가 더 크고 아름다운 곳으로 소개된다. 지금은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마음을 수양하고 참선을 하는 집이란 ‘심검당’도 돌아보고, ‘주형 주조’라는 돌로 만든 물통도 살펴보니, 멋진 유물이다. 타원형인 이 석조는 자연암석으로 만들었다. 바닥에는 물빠짐 골이 설치되어 있는데 이런 구조는 국내 유일하다. 조선시대 사찰에서는 숭유억불 정책으로 조정에 공납하는 것이 늘 필요했다. 절 재정이 넉넉하지 못했기에 당시에는 닥종이를 만들어 바쳤다. 여기서 만든 닥종이 질이 너무 좋아서 영천 임고서원에도 보냈다고 한다. 배 모양으로 만들어진 이 주조는 당시에 닥나무를 제조하는 데 사용되었다고 전해지고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크기가 상당히 크다. 그냥 지나치면 아무것도 아닌 돌 물통이지만 여기에 깃든 사연을 알고 보니 하나하나가 새롭고 사랑스럽다. 예전에 ‘그림사랑회’ 모임에서 듣던 말이 생각난다. 당시 일 년에 한 번쯤 서울 예술의 전당에 전시회 구경을 갔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생각하고, 생각하는 만큼 내 삶의 질이 달라진다던 말이……. 당시 대구 촌놈이 서울 나들이 정도로 생각하던 내 마음에 깊이 새겨진 말이었다.
봄의 환성사는 겹벚꽃으로 유명하다. 4월 중순이면 절 안팎으로 붉게 물든 겹벚꽃의 세상으로 환하다. 용연 건너편과 부도가 있는 숲길은 환상의 불국정토로 변신한다. 춤추는 봄을 붙잡아 두려는 행락객들로 환성사는 눈부신다. 지난달에 왔으면 멋진 꽃 잔치를 즐겼을 텐데 조금 아쉽다. 대웅전 앞을 수놓은 연등에 소원지가 많이 보이지 않아 안타까울 뿐이다. 팔공산을 안고 있는 큰 사찰이 많기에 여긴 아직 신도들이 적은 모양이다. 어디나 재정이 중요하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 않을까? 다른 절집보다 많이 알려지지 않았고, 교통이 좋지 않아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는 점이 참 아쉽다. 이 멋진 절집이 잘 알려져, 많은 참배객이 찾기를 진심으로 소망하며 다음 목적지인 불굴사로 향해 차는 천천히 출발한다.
2) 홍주암 약수 한 모금, 아름다운 인연 한 자락 2026.05.14.(목) B
불굴사 가는 길은 와촌 갓바위 가는 길 입구 신한교차로에서 반대편 산길로 접어든다. 덜컹거리는 언덕길을 힘들게 올라가면 경사가 있는 아담한 주차장에 얌전히 도착한다. 연등으로 수놓은 거친 돌계단을 조금 올라가면, 불굴사(佛窟寺)가 반긴다. ‘원효가 다녀간 그 길 위에 서다’라는 불굴사와 홍주암을 알리는 안내판이 보인다. 규모는 환성사보다 작지만, 처음에는 매우 큰 사찰이었다. 물레방아도 8개, 암자도 12개나 있었다고 전해진다. 조선시대 때 호우로 매몰되었다가 영조 때 송광사 노스님의 꿈에 불상 머리가 나타나 그것을 찾아온 곳이 이곳이다. 찾아서 보니 불굴사 터였다. 신라 시대 원효대사가 창건한 절로 알려진다. 절 위의 용주암에서 원효대사가 득도했고 김유신 장군이 수련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환성사는 대웅전이 먼저 반기고, 불굴사는 적멸보궁이 참배객을 맞이한다. 대표적인 적멸보궁은 양산 통도사에서 볼 수 있다. 보통 대웅전에는 부처님을 모시지만, 적멸보궁에는 부처님이 없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는 곳이다. 약 20개 정도의 사리가 원래 안에 있었지만, 지금은 뒤편의 탑에 모셔 놓았다. 전국에 있는 5대 적멸보궁에는 속하지 않지만, 규모가 크고 멋지다. 적멸보궁 유리창으로 보이는 탑을 찾아갔다. 몇몇 신도들이 탑돌이를 하며 염불을 외우고 있다. 깊은 믿음이 없지만 나도 그들 따라 탑돌이를 했다. 현실은 나이가 들수록 믿음이 필요하고, 신에게 빌 것이 많아진다. 탑돌이는 오른쪽 어깨가 탑을 향해 돈다고 한다. 보궁 앞에는 신라 때 건립된 삼층 석탑이 있다. 불굴사에서 유일하게 보물로 지정된 탑이다. 2개의 기단으로 7m 정도의 예쁜 삼층 석탑이다. 탑 앞의 석등과 배례석을 보면, 볼수록 모르는 내가 봐도 모든 것이 사랑스럽고 멋지다.
왼쪽으로 돌아가면 약사보전을 만난다. 여기 또한 독특하다. 보전 안의 석불이 중앙에 우뚝 서 계신다. 전각 안 큰 화강암 위에 서 있다. 대부분 전각을 짓고 불상을 모시지만, 이곳은 불상이 먼저 있고 나중에 전각을 세웠기 때문이다. 불상 모습의 머리와 손의 모양이 이상하다. 마침, 지나가던 한 스님이 다가온다. 어디서 왔느냐고 물으시더니 불상에 대해 궁금한 보충 설명을 해 주신다. “조선시대 큰 호우가 나서 땅에 모든 것이 파묻혔어요. 그러다가 한 오륙십 년 전 불사를 하던 중, 땅을 파니까 땅속에서 발견되었어요. 머리가 깨어져서 머리는 복원한 것이지요. 그래서 머리가 색다르게 크지요.” 자상한 스님의 설명을 듣고 석조 입불상을 자세히 감상할 수 있었다. 머리가 크고 몸이 비대한 것은 고려시대 불상의 특징이라는 다른 사람의 말도 생각난다. 어느 말이 옳든 그러든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바라보고 믿는 사람의 마음속에 부처가 있지 않을까?
홍주암(紅珠庵) 가는 길은 가파른 108계단으로 연결된 높은 곳이다. 밑에서 바라보니 정말 멋지고 아름답다. 분위기가 구례 사성암과 비슷하다. 여기서 사성암 온 맛을 누릴 수 있다니! 올라가는 내내 즐겁다. 평소 계단 오르기로 체력 단련을 많이 해 놓았기에 힘들지 않고 천천히 경치를 즐기면서 올랐다. 정상의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날아갈 듯 솟아있는 암자가 아닌가? 중턱 바위굴 앞 유리 상자에 모셔진 반가사유상도 색다른 맛을 느끼게 한다. 암자에 들어서니 ‘원효암’이란 현판 뒤로 석불이 모셔져 있다. 여기서부터 부처님에게 예를 갖추는 공간으로 보면 된다. 양쪽에는 금강역사 두 분이 눈을 부릅뜨고 부처님을 호위한다. 분위기가 경주 석굴암과 흡사하다. 그 당시에 원효대사가 첫 수행 한 곳으로 알려진다. 바위 왼쪽 구석에는 맑은 물이 나오는 샘도 있다. 김유신 장군이 삼국통일을 염원하면서 마신 물이란다. 나도 쪽대로 한 잔 마셔보았다. 크게 맛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그러다가 김유신 장군이 마시던 물이라는 의미로 생각하니 새삼 달콤하다. 사람의 마음은 이만큼 간사한 것일까? 어디에 의미를 두느냐에 세상만사 이치가 달려있다. 일체유심조를 늘 가슴에 새기지만 시시때때로 변하는 것이 마음이다. 언제쯤 철이 들까? 생각해 보면 영원히 안 들 수가 있다. 뭐, 철없이 살다가 가는 사람이 나뿐일까? 잠시 잡생각에서 벗어나니 옆에 음각으로 새긴 글이 보인다. ‘아동제일약수(我東第一藥水)’ 동쪽에서 최고로 좋은 약수라는 뜻이다.
다시 갓바위 부처님이 있는 선본사(禪本寺)로 갔다. 선본사 대웅전은 정상 갓바위 부처님 아래에 있다. 여기가 상단이고 중턱의 공양간 부분이 중단, 그리고 아래 극락전 있는 부분이 하단이라고 한다. 선본사는 갓바위 팔공산 전체가 절집이다. 지난 월요일 갓바위 정상에서 부처님을 참배했기에 오늘은 올라가지 않기로 했다. 오전에 환성사와 불굴사를 다녀왔기에 좀 피곤하기도 하다. 하단의 극락전만 참배하기로 했다. 주차장에서 오른쪽으로 잠시 오르니 가파른 계단 위로 일주문이 나온다. 일주문에는 사천왕의 벽화가 장식되어 있다. 그리고 반기는 절이 극락전이다. 여기는 ‘템플스테이’는 하지만 참배객은 잘 오지 않는다. 대부분 정상의 갓바위를 찾기 때문이다. 극락전 마당에서 정상을 바라보았다. 녹음이 울창하여 갓바위가 보이지 않아 섭섭했다. 겨울에 잎이 앙상할 때면 한쪽 면이 조금 보인다고 한다.
입구에 내려와 삼층 석탑을 찾아갔다. 안내판에는 있지만 사람들이 거의 찾지 않는 곳이다. 이정표를 보니 250m 정도의 거리이다. 여기서 갓바위까지도 거리가 950m 밖에 되지 않는다. 결코 가까운 거리는 아니다. 작은 다리와 계곡을 지나 산길로 들어섰다. 응달이고 숲속이라 컴컴하다. 근데 내 앞에 한 여학생이 혼자 가는 것이 아닌가? 아니, 아무도 없는 산길이 무섭지도 않나? 무슨 연유로 혼자 와서 이 삼층 석탑을 찾아가는 것일까? 온갖 생각이 꼬리를 문다. 뒤따르는 나를 의식하지도 않은 채 성큼성큼 잘도 올라간다. 10여 분 힘들여 올라가니 멋진 삼층 석탑을 만난다. 석탑에서 바라본 선본사가 푸름으로 폭 감싼 선경으로 보인다. 혼자 무섭지도 않냐는 어리석은 질문에 쌩긋 웃음으로 답한다. 젊음의 힘일까? 기념사진을 서로 찍어주고 천천히 하산했다. 부처님의 가피로 예쁜 선녀와 동행한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기적 같은 하루가 가뭇없이 지나갔다. 모든 인연의 시간을 감사의 마음으로 마음에 새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