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시골에서 농사 일에 전념하다 보니 “고양시 홈피"를 찾을 겨를도 별로 없습니다. 피곤하지만 건강도 좋아졌고 마음은 평안합니다. 오랜만에 두서없이 몇 자 긁적입니다. 한 때 제2자유로 노선에 관한 토론장에서 알게 된 논객제위의 강건하심을 기원합니다. 예리한 필치를 보이셨던 논객제위 여러분들의 근황이 궁굼하기도 합니다. 의견은 달리했어도 高陽을 사랑하는 마음은 하나였다고 봅니다.
< 내가 지금 사는 곳…. >
난 요즘 이렇게 지냅니다. 지금까지 거의 1년 넘도록 하늘이 더욱 가깝게 느껴지고 신선한 공기를 접할 수 있는 작은 마을에서 농사에 전념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이 곳은 예부터 물빛이 하도 곱기에 불려진 수색(水色)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고양시 향동이란 마을입니다.
마을 입구 “은평지구 종합차고지” 에 접어 들면 서오릉에 이르는 차로 양편으로 푸른 숲에 둘러 쌓인 분지를 맞게 됩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 쌓여 봄이면 길 건너 난지도에서 봄바람에 묻어 오는 난향(蘭香)과 함께 마을이 온통 꽃 향기로 가득했기에 향동(香洞)이라 불리게 된 마을입니다.
인근에 가구단지가 조성되어 예전의 그 구수한 시골 맛은 많이 사라졌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앞산과 뒷산에서 들려 오는 자연의 조화에 취할 수 있어 좋습니다. 지난 여름엔 뻐꾸기 소리와 접동새 울음소리를 들으며 무더위를 잊었습니다. 별빛이 유난히 빛나고 시원한 바람이 이는 늦은 저녁에 들려 오는 접동새 울음은 왜 그리 구슬프고 처량하게 느껴지는지요? 어린 시절의 추억에 젖곤 했습니다.
< 농사에 전념하며….>
이 곳 산 아래 농가에 살면서 농사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농가 뒤편에 닭장을 짓고 토종 닭, 오골계, 거위, 칠면조도 키우고 있습니다. 올 농사는 대체로 풍년입니다. 올 장마가 길어 노지에 심은 농민들의 고추는 탄저병으로 흉작이었으나, 비닐 하우스에 심은 내 고추 농사는 그런대로 풍성했습니다. 다년생 열대 식물이라 하지만 웃자란 고추 나무가 2m 이상의 비닐 하우스 상부에 닿으니 사다리를 놓고 따야 했습니다.
콩, 고구마도 잘 자라고 배추, 무, 알타리 등 김장도 예쁘게 잘 자라고 있습니다. 가뭄이 지속되는 요즘이지만 지하수 펌프 시설에 분수 호스를 깔았기에 밸브만 틀면 자동으로 물을 줄 수가 있습니다. 이른 아침이면 김장 밭에 나가 무, 배추 잎을 갉아 먹는 벌레도 잡습니다. 메뚜기, 방아개비도 잡습니다. 농약 살포를 하지 않으려는 마음 때문입니다. 오늘 아침엔 무 잎이 말라 가기에 살펴 보니 두더지가 지난 흔적이 있기에 내일 새벽엔 두더지 사냥을 하려 합니다.
< 닭, 거위, 칠면조를 키우며…..>
잠시 쉴 때엔 닭, 거위 모이를 주거나 닭장 청소를 합니다. 지난 늦봄에 사다 키운 병아리가 지난주부터 알을 낳기 시작했습니다. 병아리 사육은 이른 봄에 해야 장마철의 질병을 넘길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늦봄에야 키웠으니 장마에 덮친 병으로 토종 닭 4마리, 오골계 3마리. 칠면조 3마리를 잃었습니다. 미물일망정 정을 주고 키웠던 거라 인근 뚝방에 묻고 영혼(?)을 위로했습니다.
< 쌍알은 불륜의 증거..... ? >
숫탉 3마리 중 왕초 숫탉의 지배가 철저합니다. 다른 두놈은 먹는 것은커녕 속 시원하게 제대로 울지 조차 못합니다. 인간 세계에서 처럼 2인지 또는 3인자는 서럽기만 합니다. 왕초의 눈을 피해 끼(?) 많은 암탉과 정분을 통하는 게 고작입니다. 쌍알은 그들의 불륜의 증거인가 봅니다. 그 세계에서의 불륜은 바람직한 현상입니다. 오늘도 쌍알 2개 집어 왔습니다.
< 거위와 칠면조는... >
집을 지키는 덴 개보다 좋다기에 키운 거위는 이렇습니다. 원앙보다도 부부애가 좋아서 항시 함께 있습니다. 잠시라도 짝이 보이지 않거나 먹을 게 있으면 소리를 내어 짝을 찾습니다. 아침 모이를 주는 주인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면 긴 날개를 저으면서 우리 안을 돌며 춤을 추고 노래를 부릅니다. 밤이고 낮이고 낯선 사람의 발자국 소리엔 괴성을 내며 경계를 하기에 개보다 낫다고 하는 가 봅니다.
그러나 칠면조가 외롭게 지냅니다. 두쌍을 키웠지만 장마에 따른 질병으로 숫놈 하나만 남았습니다. 유난히 동료애가 좋았던 녀석이라 여러 날 식음을 전폐하고 지내더니 이젠 닭들 틈에서 잘 지내고 있지만, 밤이면 닭장 지붕 위로 날아 올라 별들을 바라보며 잠을 청하나 봅니다. 떠나 보낸 동료를 생각하는지 아니면 뒷산 푸른 숲을 그려 보면서 자유를 갈구하고 있는지… 그게 아니라면 전생의 별나라를 생각하는지...저녁 식사 후 커피 한잔을 들고 닭장 앞 벤치에 앉아 하루의 피로를 풀며 닭장 안을 살피는 내게 많은 걸 생각케 합니다.
< 사람이고 짐승이고 숫놈은…>
문제는 오골계 숫놈입니다. 색깔대로 놀아야지 야성의 피가 흐르는 오골계 숫놈이 덩치가 배나 큰 토종 수탉의 눈을 피해, 잘해야 10초간(?)정도의 쾌락이건만, 가끔 토종 암탉과 정분을 나눈다는 겁니다. 그 연놈들이야 서로가 좋아서 그럴지 몰라도 문제는 그 결실(알)이 작다는 겁니다. 역시나 씨는 커야 하나 봅니다. 이번 주말엔 그 놈을 잡아 몸보신이나 해야 하는지…?
“사람이고 짐승이고 숫놈은 다 소용 없어…”. 묶인 끈을 풀고 고추 밭을 망친 개를 판다고 일산 장터로 향하는 이웃 문씨 노인의 얘기가 떠오릅니다. 한 때는 해남 어느 어촌에서 선장 일도 했지만 자식을 바다에서 잃은 뒤엔 고향을 떠나 상경…세상 살다 보니 이 곳에 와서 농사 일(소작)을 하신다는 노인의 그 한 마디에 많은 걸 생각 했습니다.
젊은 시절 처자식과 먹고 살면서 자식 공부 제대로 시키려고 고생도 마다 하고 살아온 우리(남성) 세대이지만 세월의 흐름으로 무대에서 밀려 잊혀져 가고, 경제권도 상실했으니 비싼 사료나 축내고 농사까지 망쳐 시장에 팔려 간 숫놈과 뭐가 다르겠는지…세상이 많이 변했습니다. “늙으면 돈이 건강이야!” 문씨 노인의 그 한 마디가 잊혀지지 않습니다.…
< 때론 기분 전환으로…..>
날씨가 덥거나 중식 후 온 몸이 나른 할 때엔 기분 전환을 합니다. 창고 구석에 마련한 목공소에서 이 것 저것 만듭니다. 목공 기계도 여러 점 비치했습니다. 뚝딱거리며 야외용 식탁, 벤치, 의자 등등을 만듭니다. 아마 내가 대학에 가지 않았더라면 목수가 되었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건설 현장에서 용접 일을 배웠어야 하는데… 시골에서 농사 일을 하다 보면 전기, 설비, 목공 등등 이런 저런 일을 스스로 해야 할 경우도 많습니다. 영농 소득도 별로 없는데 비싼 인건비를 지불하면서까지 기술자를 부를 형편이 못되니 몸으로 때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 이 세상 다하는 날까지…….>
남자란 이 세상 다하는 순간까지 돈벌이가 되든 안되든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이순(耳順)의 세월에 접어 든 이 나이에 돈벌이 기회가 그리 많으랴 만, 건강을 위해서라도 활동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선 농사 일도 좋습니다. 맑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땀을 흘리면 숙면을 취할 수 있어 좋습니다. 전보다 건강해 보인다는 얘기도 종종 듣습니다.
어린 시절엔 태어나 자란 시골, 농촌이 한스러워 “서울이 아니고 왜 시골로 시집 왔어?”라고 지금은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 모친께 항의도 했었지만, 지금에 와선 내 고향 농촌 태생이 하나의 축복이었습니다. 난, 시골에서 남은 세월을 보내려 합니다. 수구초심(首丘初心) 때문만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