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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3월 27일 주일 썬쓰리 피드백♥
말 씀 : 장 미 영 목 사 님
[ 로 마 서 5 장 ]
로마서는 사면장이자 행복장입니다. 로마서 5장을 출발하기 이전에 구원을 향한 드라이브를 떠나보도록 하겠습니다. 구불구불 굽은 산길을 운전하다 보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운전자가 이 길을 잘 통과할 수 있게, 주의하라고 알려주는 표지판들이 나타납니다. “이곳은 경사지고 굽은 도로입니다. 과속하지 말고 속도를 줄여주세요. 끝까지 안전운행을 하세요. 졸음이 오면 잠시 쉬었다 가세요. 가족을 생각하셔야죠.” 이런 글들이 쓰여 있습니다.
로마서는 사면장이라고 말씀드렸는데, 다른 표현으로는 구원을 향한 드라이브 코스를 알려주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 이제 구원을 향해 드라이브 코스, 로마서라는 길을 떠나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으로 향한 로마서 길목에 우리들이 반드시 명심해야 할 표지판들을 설치해놓으셨습니다. 오늘 이 시간 그냥 지나치지 말고 주의 깊게 표지판을 살펴본다면 궤도를 이탈할 일은 없을 것입니다.
첫 번째, [로마서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구원을 향한 드라이브 코스 첫 번째 표지판은 “모든 사람이 죄인이다.”입니다.
두 번째, [로마서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두 번째 표지판은 “죄의 삯은 사망이다.”입니다. 그래서 죄의 값을 치러야만 했습니다.
세 번째, [로마서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세 번째 표지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셨다.”입니다.
네 번째, [로마서 10:8-10]
“ 8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뇨 말씀이 네게 가까와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구원을 향한 드라이브 마지막 코스, 네 번째 표지판은 “누구든지 예수님 믿고 회개하면 용서받고 성령 받고, 입으로 주님이 나의 주인이라고 시인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믿고 주로 시인하기까지는, 나는 죄를 많이 지은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날 위해 죽은 예수님이 그 죄를 사해주실 것을 믿고 용서를 구하고 회개하면 용서를 받고 내 입으로 주님이 나의 주인이라고, 나의 삶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흙 한줌으로 나를 만드신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라는 것을 입으로 시인만하면 구원을 받습니다. 이 자리에 참석하신 여러분들, 구원시켜주신 하나님께 낚시질 당하신거 축하드립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부모님이나 친구들에게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때 선물을 받으면 고맙다고 인사를 합니다. 값을 치르고 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고마워합니다. 누군가 생일 축하한다고 선물을 주는데, 얼마냐고 하면서, 선물 값, 포장지 값, 택시비, 이렇게 다 값을 치른다면 이것은 선물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구원이라는 선물을 받았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 시켜 주신 것에 대해서, 우리들은 값을 치를 만한 어떠한 일도 할 수 없습니다. 그냥 구원을 시켜주신 것이니 우리는 감사해야할 뿐입니다. [로마서 4:6-8]에 보면 다윗은 가장 행복한 사람은 돈 명예 권력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죄를 잔득 지어놓고 하나님 앞에 가서 벌벌 떨고 회개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그 죄와 허물을 덮어주면서 무슨 일 있었냐고 하면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않는 그런 사람이 너무너무 행복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 구원이 얼마짜리냐고, 얼마 드리면 되냐고 하면서 봉사를 하루 종일 한들, 내 장기를 몽땅 내다 판들 그 값을 어떻게 치룰 수나 있겠습니까. 그 값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매달려 피 흘려 돌아가신 값입니다. 그 값은 생명으로만 치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이 죽어서도 값을 치를 수 없는 것이, 우리는 죄인으로서 죽는 것이지만, 그분은 의인으로서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의인으로서 죽은 그 분의 생명 값을 치르기 위해서, 죄인 몇 명이 죽어야 그 값을 치를 수 있겠습니까. 구원은 그 값을 매길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많은 봉사를 한다한들, 평생 노예로 살아도, 우리 몸의 장기를 다 내다 팔아도 그 구원의 값을 치를 수 없기 때문에 감사하라는 겁니다. 이렇게 받을 수 없는 자에게 거저 주신 것 그것이 바로 선물이고 은혜입니다. 우리는 구원이라는 소중한 선물을 받은 자들입니다. 구원시켜주신 것 자체만으로도 어찌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이 은혜를 갚을 도리가 없으니, 예수님의 은혜로 열심히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들은 예수님께 이 은혜를 다 갚을 수 없습니다. 이제는 일평생, 감사한 거 알고, 똑바로 착하게 잘 살아가도록 노력하는 주의 종 되기 원합니다.
80년 전 미국에 “히티 그린”거부가 있었습니다. 그는 스크루지 영감보다 더 심한 구두쇠입니다. 남들이 알부자라고 하긴 하지만, 얼마나 부자인지도 모를 정도였습니다. 얼마나 구두쇠냐면 자기 아들이 다리가 썩어가는 병에 걸려서 빨리 병원에 가서 치료해야 하는데도, 그 돈이 아까워서 다리가 다 썩어서야 병원에 갑니다. 그리고 수술비가 아까워 인건비만 좀 주고 아들의 다리를 절단해 버립니다. 돈이 아까워서 통장에 돈을 쓰지 못합니다. 얼마 후 히티 그린이 죽었는데 죽은 사인이 영양실조였다고 합니다. 기가 막힙니다. 아들이 아버지가 죽은 후에 재산을 처분하다가 통장을 보고 깜작 놀랍니다. 통장에 80년 전에 일억달라가 들어있었습니다. 80년이 지난 지금의 환율만 적용해도 1000억이 넘는 돈입니다. 이 큰돈을 통장에 넣어놓고도, 아들다리 썩어 들어가는 것을 보고 돈이 아까워서 최소한의 비용으로 아들의 다리를 절단한 그 아버지를 보고 아들이 어떠하겠습니까. 히티그린은 그 돈이 너무 아까워서 쓸 수 없다고 언젠가 쓸 거라고 하다가 그렇게 영양실조로 죽었다고 합니다.
히티 그린의 문제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은 가진 것을 누리지 못하고 어리석게 지냅니다. 바로 하나님이 은혜를 주셨는데, 그 은혜를 누리지 못하고 죽는다는 겁니다. 죄를 사해주시는 능력의 하나님인데도 불구하고 은혜의 보좌 앞에 나가는 것이 귀찮아서, 험한 십자가 붙드는 것 부끄러워서, 그것만 하면 죄 용서받고 씻은 듯이 날아갈듯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데도, 그 십자가의 은혜주신 것을 마다하고, 그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계속해서 불행하다고만 하면서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이들이 불신자가 아닌 대부분 크리스천이라는 사실이 우리를 더욱더 안타깝게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 죽으면 가게 될 좋은 나라, 하나님 나라의 나의 집, 좋은 것으로 예비 되어 있는데, 눈앞의 불행을 바라보며, 앞뒤에 막힌 산과 눈앞에 바다를 보며 답답해하는 우리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별과 같이 무수한 자녀를 주겠다고 했던 하나님의 그 약속으로,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 졌는데도 말입니다. 어리석게 그 행복을 마다하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측량 할 수 없는 큰 은혜의 값으로 우리를 구원시켜주심을 기억하며, 제로의 감사, 살아있음에 감사, 회개의 기회 주심에 감사하기 원합니다. 이렇게 감사 하다보면 우리 몸속에 흐르는 불행하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그 더러운 피들이 소멸 될 줄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회개기회 주심에 살아있음에 감사합니다.
1. 은혜의 지배를 받은 사람은 죄책감에 사로잡히지 않고 하나님과 친해질수 있습니다.
[로마서 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인정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의롭다는 것은 관계가 좋다고 할 때나, 형제끼리 싸우면 의가 상했다고 할 때, 형제들과 절교하면 의절했다는 표현을 쓰는 것처럼, 이“의”는 “디카이오스네” 관계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과 우리가 죄 때문에 완전 멀어졌는데, 예수님이 어떻게 하면 가까워 질 수 있을까, 죄의 삯은 사망인데, 죽어야만 그 값을 치를 수 있기에 예수님이 죽어주신 것입니다.
물론 우리들이 예수님 제치고 하나님과 둘이 만나면 되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죄 때문에 하나님과 가까워질 수가 없습니다. 우리들의 죄 때문에, 하나님과 화목케 해주시기 위해서 예수님이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우리가 화목하게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은혜 안에 있을 때 우리는 어떤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까. 어떤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까. 해답은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친구가 왜 좋습니까. 동역자가 왜 좋습니까. 교우가 왜 좋습니까. 같은 기수의 수사님 영사님이 왜 편합니까. 이웃에 사는 분들이 왜 편하고 좋습니까. 관계가 좋고 익숙하니까 편안하니까 좋을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그런 분들이 여러분들을 뒷바라지 하거나, 삶속에서 큰 이익을 주지도 않는데, 왜 편하고 좋습니까. 그것은 만나면 마음이 편하고 대화가 통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뒷바라지 하거나 큰 도움 주는 사람들, 먹여주시고 재워주신 육신의 부모님이나 사업상의 거래처 그런 사람보다 친구나 가까운 이웃이 더 좋은 이유는, 돈 명예 권력이 주지 못하는 마음이 통하고 내 고민마저도 털어놓을 수 있는 그런 부분 때문에 화평하다 편하다 좋다 이야기 합니다. 대화가 통하고, 마음이 통하고, 내 마음을 알아주고, 내가 좀 부족해도 내 편을 들어줄 것 같기 때문에,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뒷바라지나 큰 이익을 죽지 못해도 그냥 친구가 좋다는 것, 바로 이것이 화평입니다.
하지만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 말씀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써 인간들은 하나님을 피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화평의 관계가 깨지게 됩니다. 이제 더 이상 하나님과 대화를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어디 갔느냐고 묻습니다. 하지만 벗은 것이 부끄러워 숨게 됩니다. 하나님과 서먹서먹한 관계가 되어버립니다.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인간은 하나님을 피하게 되고, 화평의 관계가 깨어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죄의 결과입니다. 관계라는 것이 의인데, 그 의가 깨어져서 의가 상하고 의절하게 된 것입니다. 인간이 죄를 짓다 보니, 죄가 없으신 하나님과 죄 많은 인간이 함께 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사회적으로도 높은 지휘의 사람들과 함께 있게 되면 편하지도 않으며 가시방석 같아서 단 5분도 같이 있지 못합니다. 사각지대가 없이 모두 다 보고 계신 하나님 앞에, 우리 인간들이 죄를 짓고 아무렇지도 않게 나타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양심을 만들어 주셨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죄를 지은 자가 하나님을 피하게 됩니다. 죄의 결과로 하나님과의 의가 상하게 되었고 의절하고 화평이 깨어져서, 하나님과 우리는 대화도 안통하고 마음도 안 통하는 사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여러분 친구들과 관계가 깨어진 경험이 있습니까. 날마다 붙어 다니는 친구가 갑자기 관계가 깨어진 적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실수로 비밀이야기를 누설했다거나, 그 친구가 그것 때문에 화가 나서 오해하게 되는 그런 적이 있을 것입니다. 어찌되었건 아주 친했던 사람과 싸워서 서먹해지거나 의가 상해본 경험이 다 있습니다. 날마다 붙어 다니는 친구와 사이가 안 좋아졌을 때, 그 때의 기분은 무슨 일을 해도 좋지가 않습니다.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그렇게 깨어진 것입니다. 너무 잘 지내고 있었는데, 선악과만 안 먹는 한도 내에서 무엇이든지 하고 싶은 것 다하고 살 수 있었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결국 하나님이 하지 말라는 그것, 선악과를 따먹고야 맙니다. 하나님은 아담아 찾으십니다. 이것을 어쩌면 좋겠습니까. 뭘 해도 신나지 않습니다. 예전처럼 행복 해하고 싶은데 행복하지 않고, 뭘 해도 신나지 않고, 좋은 것을 가져도 잠시 잠깐뿐이고, 기쁨이 있지만 그 기쁨은 오래 가지는 않습니다. 에덴동산에서처럼, 아담과 하와가 죄짓기 이전처럼 흉내 내고 행복하게 살아보려고 하지만 좋은 일이 있어도 그 때뿐이고, 돌아서면 뭣 때문에 웃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오늘 본문은 이런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다시 화평하고 화목하고 친해졌다고 이야기 해주고 있습니다. 완전 이상합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예전처럼 하나님과 말이 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가능하게 되었겠습니까. 믿음으로 인해 은혜의 자비를 받게 된 것입니다. 그 믿음은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을 하나님이 보내셨다는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부활시키시는 분,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분, 그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내가 믿는다고 하면, 그것이 의롭다고 인정받는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준다고 했을 때, 하나님이 주신다면 믿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기다렸다가 자식을 얻게 됩니다. 이것이 믿음이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관계가 좋다는 것을 보여주는 겁니다.
죄를 지어서 하나님과 서먹해지고 뭘 해도 기쁘지 않았던, 이런 우리에게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우리를 악수시켜 주셨습니다. 그래서 죄인이었던 우리들이 은혜의 지배를 받게 된 것입니다. 더 이상 죄나 세상 법, 율법에 얽매이지 않고, 그저 은혜 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5:1]을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은혜의 지배를 받는 사람은 죄책감에 사로잡히지 않고 하나님과 친해질 수 있다는 겁니다. 그 은혜가 무엇입니까. 값없이 받은 선물입니다. 받은 선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죄 사함 받고 구원 얻은 것, 우리 같은 죄인이 하나님의 자식이 된 것, 이런 것을 그냥 공짜로 값없이 주셨습니다. 이런 은혜의 지배 아래 놓인 사람이 뭐 죄를 조금 지었다고, 하나님과 완전히 다시 두절되겠습니까. 이미 죄의 원인과 근원을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해결해 주셨습니다. 죽으신 것은 예수님이니 중간에 사과만 드리면 좋은 상태로 계속 유지가 될 수 됩니다.
예를 들어서 운전을 하다가 자기차를 누군가 약간 기스를 내었다고 칩시다. 사실 우리들은 이 일에 크게 화를 내지 않아도 되지만, 일부러 화를 끌어 올립니다. 이것이 기회라며 덤탱이를 씌워서 몇 푼 얻어내려고 하며, 하나님이 용돈 주시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화를 끌어올려서 내렸는데, 우리 같은 교회 교인이 내립니다. 갑자기 돌변합니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이 정도는 괜찮다고 합니다. 이것입니다. 남이면 엄청 뜯어낼 수도 있지만, 우리 교인 가족이면 괜찮다고 하면서 오히려 상대가 안 다쳤냐고 물어보는 겁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남에 차에 기스나게 했으니 넌 감방, 넌 죽었어, 너 이리와 작두에 누워, 이런 거 아닙니다. 이미 예수님이 죄 값을 치르셨기 때문에, 아무리 죄를 많이 지어도 죽을 만큼만 죄를 짓지 않겠습니까. 죽을 죄 이상은 아니라는 겁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기에, 이미 예수님께서 그 죄 값을 지어주셨습니다. 회개하고 용서를 빌면 용서를 받게 되고, 또 죄를 짓고 회개하면 또 용서해주십니다. 이런 기독교인들의 모습을 보고 세상 사람들은 개독교라는 소리를 하지만, 저(장미영 목사님)는 그럴 때마다 너희들은 그런 아버지 있냐는 질문을 합니다. 씩 웃으면서 우리 아버지 이런 분이십니다. 엄청나게 죄를 많이 저어도 죄를 용서해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다시 친해지게 된 이유가 바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대신 죽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악수시켜 주시고, 화평케 하시고, 화목하게 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하나님사이에 화목 시켜 주시려고 화목제물이 되셨습니다. 화목하게 하는 그 일을 우리 예수님께서 죽으심으로, 악수를 시켜 주셨습니다. 그러니 은혜의 지배를 받는 사람은 더 이상 죄책감에 사로잡히지 않고, 하나님과 친해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멘!
2. 은혜의 지배를 받은 사람은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은혜의 영광, 큰 기쁨을 얻을 수 있습니다.
[로마서 5: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그분을 통해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러한 값없이 받은 선물, 이 은혜를 믿음으로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너에게 줄줄 믿느냐고 물었을 때, 믿는다고만 하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쉬운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들은 왜 지금까지 못 받았습니까. 그것은 정말이냐고 가능하냐고 못 믿겠다고 하는, 절대로 믿지 못하는 고놈의 의심이 우리와 하나님과의 사이에 거리감을 주게 만들었습니다. 값없이 용서해주시고, 구원까지 시켜주시는 그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 모두 믿습니다. 아멘!
사도행전 27-28장에 로마를 향한 바울의 4차 전도여행이 나옵니다. 배가 파선되고 산산조각이 날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에서, 바울은 우리를 구원시켜 주시겠다고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는 말을 전합니다. 분명히 그 앞에는 구원의 여망이 흐려졌으며, 앞도 뒤도 안보여, 해달별도 안보여, 배는 부서져 가는, 진짜 로마까지 갈만한 소망이 완전 끊어져 가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 도와주십니까. 완전히 소망이 끊어질 때 도와주십니다. 75세에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준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75세 때 자식을 낳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자식을 주면 크게 고마워하기 보다는, 그럴 수도 있다고 할 만한 때라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들의 생각에 절대로 자식을 낳을 수 없고, 소망이 다 끊어져서, 이제는 끝이라고, 마치 나사로의 무덤에서 시체가 완전 썩어서 냄새가 날 때가지 기다리셨던 것처럼 지켜보고 계셨던 것입니다. 나사로같은 경우도 죽자마자 살리면, 죽은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의심하며 잠시 잠깐 기절했던 것 아니냐고 했을 겁니다. 이런 의심의 소지가 없을 때까지, 예수님은 나사로가 죽어서 냄새가 풀풀- 날 때까지 기다리십니다. 생명의 소망이 다 날아가고, 가망성이 없다는 것을 사람들이 다 알고 있었을 때, “나사로야 나오너라.” 하니 걸어 나왔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75세 때 자식을 주면 우연이라고 그럴 수 도 있다고 생각할까봐서, 25년 동안 하나님은 자식을 낳을 수 있을 소망이 완전히 끊어질 때까지 기다리셨던 것입니다. 완전히 100살 파파할아버지가 되었을 때, 사라는 완전 90살 파파할머니가 되었을 때, 자식을 얻을 수 있을 거라는 소망이 완전히 끊어졌을 때, 짜잔-하고 이삭을 주십니다.
광풍을 만나도 배가 대충 조금 기스가 나고, 다시 순풍을 만나 로마까지 갔다면 하나님 구해주셨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람들 마음속에는 악한 것이 있어서, 섭리라는 것을 무시하고, 그것을 우연이라고 치부하려는 선교적이지 못한 그런 마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배에 탄 276명에게 바울의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이라는 것을 보이기까지 배를 완전히 다 부수시고, 눈앞의 해달별도 안보이게 완전 시꺼멓게 만드십니다. 바울은 사람들에게 염려하지 말라고, 하나님이 살려주신다고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나는 그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을 합니다.
[사도행전 27:25] “25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그리고 배에 탄 모든 사람들에게 마지막으로 음식 먹고, 남은 모든 음식이고 뭐고 다 배 밖으로 던져서 배를 가볍게 합니다. 결국 배는 파선되고 배의 널조각 하나씩 들고 눈앞에 보이는 섬에서 만나자고 합니다.
그런데 나라에서 구테타나 전쟁이 일어나면, 모든 죄수들을 먼저 사살하는 것이 국가적인 법입니다. 광풍을 만나 배가 파선하게 될 이런 어려움을 만나도, 그곳에 있는 죄수를 다 사살하는 것이 군인의 의무입니다. 그래서 배에 탄 죄수들을 다 죽여야 된다고 군인들이 벌떡 일어나려고 합니다. 하지만 바울을 데려가던 백부장 율리오는 하나님에 대해 알고 있는 이 로마 시만권자인 바울을 반드시 황제 앞에 서게 해야 한다는 명령을 가지고 왔기 때문에 바울을 꼭 살려야 했습니다. 죄수를 다 죽이고 바울만 살리는 법이 없기에 일단 다 살리자고 합니다. 그런데 수영을 못하는 사람들은 파손된 배의 널조각을 들고 멜리데 섬까지 올라갑니다. 그리고 3달 동안 멜리데 섬에 있으면서 추장의 아버지 병도 고쳐주고, 사람들이 계속 와서 그 섬에서 나올 때까지 병자도 많이 고쳐주고, 하나님 살아계심을 많이 보여주다가 모두다 무사히 로마에까지 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이런 것입니다. 잠간 동안은 하나님 계시다면 왜 이런 어려움을 우리에게 주시나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큰 그림을 보면, 구원의 여망이 완전히 끊어진 상태에서 구원 시켜주시면, 아무리 악한 인간도 하나님이 하셨다고 인정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냥 보통 때 건져주면 하나님이 하셨다고 하기는커녕 감사도 모르게 됩니다. 건물이 무너지고 지진이 나서 어디에 매몰되고, 이랬던 사람들 중에 20일-30일 동안 땅속에서 매몰되어서 구원의 산 소망이 완전히 끊어진 상태에서 구출을 받은 사람뿐만 아니라 주변사람들까지도 그 기적의 때를 잊지 못하고 하나님 진짜 살아계신다는 이야기 절로 나오게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여망이 다 끊어진 다음에, 구원해 주심으로써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보이십니다. 아브라함에게도 소망이 끊어진 상태에서 자식을 주셨습니다. 나사로는 시체 냄새가 풀풀- 났을 때 살려주셨습니다. 배에서 죽을 뻔했던 276명, 또한 군인들의 손에 다 죽었어야 하는 죄수들이 하나님 손에 의해 살았는데, 그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았겠습니까.
멜리데섬 추장 아버지의 이질이 낫는 모습을 보며, 하나님을 처음 들었지만, 그들의 마음속에 믿음이 밀려들어가게 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은 인류 역사상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이렇게 증명해 보이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큰 그림은 아무도 모르기에 기다려 봐야합니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고, 하나님은 반드시 선하신 그림을 완성해 가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음이 있기만 하다면 절망적인 상황은 희망의 전주곡 일 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할 소망가운데 기뻐해야 합니다. 죄인인 우리를 죽이지 않으시고 건져주셨고,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 죽으심으로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부활하셨고, 그 부활은 우리 영혼이 건짐 받을 것이라고 하는 그림자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사망 권세를 이길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죽은 자를 부활시킬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되시고 아들 되신 그 예수님을 사흘째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시키십니다. 죽은 자를 부활시키는 하나님을 내가 믿고, 없는 자 가운데 있게 하시는 그 하나님을 내가 믿는다는 이런 고백 때문에 아브라함은 의롭다 인정을 받게 됩니다. 그것이 진짜라는 것을 보이기 위해 예수님을 살리셨습니다. 죽으면 그만이지, 죽으면 그 다음 세상이 또 있는지 누가 아느냐는 그런 의심의 거품을 걷어낸 것이 바로 부활입니다. 구원의 여망 이미 죽어서 사망 권세 이길 사람 아무도 없는데, 그 가운데 예수님이 살아나심으로, 죽은 육체는 땅으로 들어가지만, 그 영혼은 죽은 자 가운데서 우리를 건지셔서 천국으로 보내주십니다. 예수님이 죽어주셔서, 우리 죄가 해결 받았고,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우리도 구원받을 것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아멘! 이런 하나님만 믿으면 그것이 믿음이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의로운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간단하고 쉬운 초등학문 같은 것을 못 믿어서 의롭지 않다고 믿음 없다는 말을 듣는 것입니다.
머리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하신 일에 대해서 그것이 말이 되느냐고 이치에 맞느냐고 계산이 않나온다고 답이 않나온다고들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공부안하고 무식한 자 쓰시는 이유입니다. 공부안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그거 다 하면 그렇다고 인정하고 믿었습니다. 아모스 기드온도 다 농부였습니다. 일자 무식쟁이 데려다가 사사로 하나님의 선지자로 쓰셨습니다. 똑똑한 머리가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머릿속으로 계산해서 하나님은 세모라고 네모라고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네모도 세모도 아닙니다. 이 세상 그 무엇으로도 하나님을 담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하나님 되시게 하라는 마틴 루터의 이야기처럼, 우리들의 생각 가운데 하나님의 능력을 가두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들이 자꾸 하나님을 계산할수록 하나님을 자꾸 무능하게 만듭니다. 기도한다고 되겠냐는 이런 이야기 때문에 하나님을 일하실 수 없게 만듭니다. 하나님은 기도로만 움직이시고, 우리들은 기도한 만큼만 커질 수 있고 발전할 수 있습니다.
은혜의 지배를 받으면 행복해집니다. 은혜의 지배를 받을 때 어떤 행복을 받을 수 있을까. 해답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은혜의 영광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그리스도인이 되어서 세상에 살면 좋을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은혜를 많이 받아서, 세상 좋은 것이 좋은 것이냐고 은혜만큼 좋은 게 어디 있냐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믿고 나면 세상에서의 진짜 좋은 것을 아무것도 못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좋은 게 없다는 것이 은혜를 많이 받고 천국 것을 알아가니, 이 세상에 좋은 것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크리스천이 되면 하지 말라는 것이 너무 많아서, 지금까지 하지 말라는 것만 해왔기 때문에, 예수님 믿고 좋은 것을 아무것도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좋아하는 편에 서 있으면, 자신이 좋아했던 것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싫어하신다고 버리라는 이야기 하실 때, 아멘 아멘 하면서 웃음을 띠게 됩니다.
매번 숙제한번 안 해가던 친구가 어느 날 하루 숙제를 해갑니다. 자신이 숙제를 해갔으니 그날 숙제 검사를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숙제 검사를 그날 안하면, 선생님에게 숙제 검사 안하냐고 자신 만만하게 묻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숙제 검사를 하고 숙제 안한 사람을 때리면 너무 좋아합니다. 처음으로 숙제하고 나니, 때린다 하더라도 좋고 숙제 안 한 사람 나쁜 사람이라고 해도 은혜가 되고 마음이 평안합니다. 뭐든지 하라는 대로만 하면 평안하게 됩니다. 권면을 하든 혼내든 숙제로부터 다 자유하게 됩니다. 노느라 숙제안하고 하루 종일 시달리고, 혼나고 꾸중 들으며 괴로워하는 마음으로 살 바에는 차라리 숙제를 하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숙제를 해오면 숙제 안 해온 아이들이 안타깝긴 하지만, 숙제검사도 자신 있고, 숙제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마가 기분이 좋아집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미션주고 무슨 일을 하라고 했을 때, 작은 일에 충실하고 순종하라고 하십니다. 무엇을 시키든지 그대로 하라는 마리아의 이야기를 듣고, 항아리에 물을 갖다 부어라 할 때, 그대로 순종하고, 또 사람들에게 떠다 주라고 할 때, 떠다주니 포도주가 된 것을 보고 깜짝 놀라게 됩니다. 예수님과 그 물을 떠준 하인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 옆의 어떤 종이 포도주가 떨어졌는데 항아리에 물을 떠다놓으라니 말이 되느냐고 하면서, 당장 돈 들고 나와서 포도주를 사는 것이 낫다고 합니다. 저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나사렛 동네에서 온 목수라고 하는데 무슨 짓 하는 거냐고 하다가, 이런 기적을 봤다면 어떻겠습니까. 게다가 시간이 지나서 하인들이 모여, 그 때 그 포도주 사건 진짜 신기하지 않느냐는 이런 이야기 나올 때마다, 의심해서 나는 안한다고 했던 종이 이 이야기 하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있다면, 너무나 부끄러워 얼굴을 들지 못할 것입니다. 나머지 하인은 예수님이 하라는 대로 했더니 포도주 된 거 봤다며, 그 때 생각해보면 심장이 벌렁거렸다고, 아무도 눈치 못 채고 맛있다고 했다고 하면서, 이후에 연회가 있을 때마다 포도주만 봐도 그 때 그 가나의 혼인잔치 생각이 난다고 할 것입니다. 나 같으면 그 딴 짓 안한다고, 물 떠다놨다가 그대로 물이면 창피당할 텐데, 밖에 나가야 돈 주고 포도주 사오자고 했던 그 사람은 이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얼굴 못 들고 밖에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시키시는 일은 큰일이 아닙니다.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는 그 정도 입니다. 작은 일에 순종하는 사람을 통해, 그 습관을 통해 하나님은 기적을 일으키십니다. 너의 믿음이 크다고,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하십니다. 그 믿음은 일분 안에 들어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시면 된다는 작은 믿음이 차곡차곡 쌓여서 큰 믿음이 됩니다. 주님 지나가실 때 옷자락만 만져도 내가 고침 받는다는 그런 믿음이 하루아침에 뿅- 하고 1분 1초 만에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삶속에서 늘 하나님이 하시면 하실 수 있다는 믿음, 의심하지 않는 습관, 하나님이 하시면 나 같은 쓸모없는 가지도 극상품 포도 열매 맺게 하실 수 있다는 믿음, 그것이 의롭다 인정받을 수 있는 믿음입니다.
많은 친구들이 그리스도인이 되면 세상 살면서 좋은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좋은 친구들 만나면 술 먹어야 하는데, 담배도 한 대 주고받아야 하는데, 친구들 만나면 즐겨야 하는데, 우리들의 친구들은 술친구 담배친구 춤바람 나이트클럽 멤버 이런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난 다음에 술도 담배도 괜히 제한만 많이 받는다고, 이 세상 살면서 정말 재미가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런데 예수 믿지 전에 세상에서 하고 싶은 것, 술 담배 즐길 수 있는 거 실컷 즐겼지만, 그 행복이 평생 갔습니까.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었습니까. 만약에 행복을 가져다 줬다면, 얼마나 오래갔습니까. 그러면서도 예수님 믿고 나면 제약을 많이 받고 재미없다고 합니다. 하지 못하는 것이 너무 많다고 합니다. 필름을 돌려 그 당시 세상 것 실컷 했을 때, 술 담배 도박 춤, 이런 것들이 진짜 즐거웠었는지, 필름을 돌려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아무리 하고 싶은 것을 다 한다한들, 그것으로는 참 기쁨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면 몰래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울 자유가 없습니다. 왜 자유가 없냐면 하나님은 어디에서나 나를 쳐다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남들 눈을 피해 벽을 쌓고 밀폐된 공간 사각지대에서 담배 술 이성과 놀고 춤바람 음란행위를 하더라도 이 모든 모습을 하나님은 위에서 보시고 계시기 때문에 절대로 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나면, 이런 죄를 지을 때 더 죄책감에 시달리고, 하나님이 보고 계시다는 것을 내 양심이 알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면 술이나 담배 보다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을 얻게 됩니다. 이전에 지었던 죄, 하나님 앞에 털어놓고 용서 빌면 용서해주시고, 죄 때문에 어깨가 축 쳐져 있는데 용서해주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엄청나게 산더미 같이 지은 죄를 덮어주시고, 우리 어깨를 탁- 들어주시고, 성령으로 짜부러져 있는 우리에게 성령의 바람을 빵빵하게 넣어주셔서 당당히 살아가게 하십니다.
이제 하나도 무섭지 않습니다. 이전까지는 밖에 나가면, 종이 몇 장이냐고 묻습니다. 종이 2장이라고 합니다. 팍 찌르니 종이가 찢어집니다. 그러면 사람들한테 상처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하고 자격증 따서 또 나갑니다. 종이 몇 장이냐고 합니다. 7장입니다. 그러나 여지없이 찢어집니다. 배운 것만으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주변에 잘나가는 사람들의 빽을 등지고 가야겠다고 합니다. 종이 20장이 되었습니다. 몇 장이냐고 묻습니다. 상대가 손톱으로 팍 찌르니 뚫립니다. 아무리 인간적으로 노력하고, 잠 안자고 자격증, 기술 하다못해 주변에 권력 있는 사람 앞에 비비면서 구두 닦는 것까지 하면서 별짓 다 해봐도 사람들이 찌를 때마다 종이가 다 뚫립니다.
하나님을 제쳐놓고, 우선순위 10위권 밖으로 밀어 내놓고, 내가 한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나가보니까 종이 1000장 넘는 사람이 많음을 알게 됩니다. 내 생각으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더 이상 종이가 많아질 것 같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오버하지 말고 담백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다가 바울 생각이 지나쳐 갑니다. 자격증이든 뭐든 배설물로 여기고 뱉어내고 한 장만 남깁니다. 나는 공로 없지만 주님 함께 하시면 뭐든 할 수 있다고, 천국갈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 장만 남기고, 담백하길 원한다고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하면서 주님만 하실 수 있다고 합니다. 종이 1장밖에 아닙니다. 뚫려도 좋습니다. 오버하지 않고 담백하게 살겠습니다.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고 무능하고 할 수 있는 것 아무것도 없습니다. 나는 처음부터 흙 한줌이었습니다. 내가 아무리 그 하나님을 떠나서 많은 것을 하며 종잇장을 늘려가도, 세상에서 잘 뚫는 송곳 마나면 아무것도 아니고 다 뚫립니다. 그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나는 그냥 무한대가 됩니다. 나는 촛불이지만 태양 옆에서면 나도 무한대가 됩니다. 그러고 있는데 무슨 잡소리가 이리 많으냐고 하면서 어떤 사람이 한 장밖에 안된다고 하면서 손가락으로 찔러서 뚫어버린다고 합니다. 팍- 그런데 상대 손가락이 부러졌습니다. 하나님 저는 한 장 이지만, 내 뒤에 빨간 벽돌 있습니다.
날 위해 죽으신 예수님, 피를 흠벅 적시고, 튼튼한 벽돌이 되시고, 한 장밖에 아닌 내 뒤에 버텨주십니다. 난 아무것도 아니지만, 주님 함께 하시면 아무도 뚫을 수 없습니다. 20장 가지고 하나님 떠나느니, 다 버리고 주님과 붙어 있겠습니다. 일평생 담백하게 살겠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값없이 주시는 은혜이기에, 세상이 주는 담배 술 여자 남자 도박 권력보다 훨씬 좋은 선물입니다. 왜냐면 값없이 주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값을 치르고 즐기지만, 그 기쁨이 계속 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값없이 주신 그 은혜의 선물은 오래가고 우리를 천국까지 인도합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선생님이 아시면 굉장히 혼날 일을 저지르기도 합니다. 케비넷 부수고, 교탁에 흠집 내고, 선생님 사물함 부수고, 이런 짓을 하다가 들키면 어쩌나, 선생님이 아실까봐 안절부절 합니다. 당일 날 안 들키면, 집에 가서도 잠을 못자고, 그 다음날엔 학교가기도 싫어집니다. 거짓으로 열이 난다고 드러눕고, 부보님은 정상이라고 하면서 때려서라도 학교 보내려고 합니다. 그런데 혼날 거라고 마음 단단히 먹고 학교를 갔는데, 선생님이 갑자기 따뜻한 말로 그럴 수도 있다며 용서해 주신다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그 때 그 마음은 너무 좋아서 날아갈 것만 같습니다. 선생님에게 진심으로 고맙다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용서해주셨으니 다음에도 또 잘못을 저질러야지 하겠습니까. 다시는 실수 안해야지, 다음에는 잘해서 좋은 모습만 보여드려야지, 이처럼 은혜를 입으면 무엇으로도 살 수 없는 큰 기쁨을 얻게 됩니다. 그리스도인 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로서는 측량할 수 없는 커다란 은혜를 주십니다. [로마서 5:2] 말씀을 한마디로 한다면, “은혜의 지배를 받는 사람은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이 있습니다.”
어느 교회에 고 3여학생이 이었습니다. 그 학생이 대학시험을 치르게 되었는데 공부를 워낙 못해서, 넣었던 학교가 미달이 된 겁니다. 그런데 아무리 미달이라도 이 학교에서 정한 수준이하이면 학교 이미지 때문에 입학을 거절할 수도 있습니다. 이 아이는 공부도 못하고 행실이 완전 깡패라서, 교회 안에서도 자기를 건들면 장로님이고 권사님 필요 없이 다 달라 듭니다. 여학생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개차반이었던 이 학생에게 대학교에서 입학을 허락한다는 통보가 왔습니다. 기분이 너무 좋아서 학교로 갑니다. 복도를 지나가는데 후배가 커피를 들고 지나가는데 커피를 자기 옷에 쏟았습니다. 그 여학생은 교회에서만 깡패가 아니라 학교에서도 소문난 강패였습니다. 모두가 난리가 났다고, 모든 것이 다 정지되어 그 여학생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완전 시선 집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괜찮다고 하면서 빨면 된다고 커피 쏟아서 어떻게 하냐고 하면서, 커피한잔 뽑아 먹으라고 200원을 줘서 보냅니다. 나중에 선생님이 이 이야기 듣고, 그 친구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느냐고 묻습니다. 그 학생은 성격이 아무리 나쁘다고 늘 나쁘게만 구는 것 아니라고 합니다. 저처럼 대학교 갈 자격도 안 되는데 하나님이 학교에 붙여주셨다고 합니다. 선생님들도 아이들도 교인들도 나 같은 사람 학교 못 간다는 것 다 아는데, 미달이어도 나를 안 받아주는 것 다 아는데, 하나님 은혜로 학교에 오라고하니, 이제는 옛날처럼 개차반 인생 살지 않겠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 은혜가 모든 것들을 가능케 만들었습니다.
3. 은혜의 지배를 받은 사람은 잘못된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고 천국소망으로 인내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로마서 5: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로마서 5: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로마서 5:5]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은혜의 지배를 받을 때 우리는 어떤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부끄럽지 않은 천국가게 하는 소망을 갖게 해줍니다. 바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의 자리에 갈 수 있는 소망이 있다고 얘기합니다. 그 소망은 바로 천국에 들어가는 소망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죄 많은 자들이 아닙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예수님 때문에 관계자가 되어서, “관계자외 출입금지”라고 써 있는 그 문을 당당히 열고 들어갈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자리에 참예할 수 있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우리들은 더 이상 부끄러운 죄인이 아닙니다. 예수님 이름의 공로에 의지하여 회개하면 용서해주신다고 기회를 주십니다. 그리고 대속재물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 하십니다. 그리하여 우리들의 죄를 완전히 해결시켜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린 더 이상 죄로 인하여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죄에 대해서 자유롭지 못하고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천국에 들어가기에 부끄럽지 않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이 소망으로 우리는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인내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의 지배를 받는 사람들입니다. 바로 은혜의 지배를 받는 사람은 잘못된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고 천국소망으로 인내하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미국에 교회 잘 다니는 한 성도가 있었습니다. 이 아버지는 믿음이 좋은 성도였는데, 아들이 초등하교 들어가면서부터 가출을 밥 먹듯이 합니다. 아들이 13살이 되었을 대, 또 가출을 하게 됩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찾기 위해 직장까지 포기하며, 미국 방방곡곡으로 아들을 찾기 위해 헤매고 다니기를 18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필라델피아 역에서 아들과 비슷한 한 청년을 만납니다. 그 청년은 마약을 해서 눈도 제대로 못 뜨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25센트만 달라고, 너무 오래 동안 굶어서 배고프다고 구걸을 하고 있었습니다. 18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지만 영락없이 자기 아들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마약하고 눈에 초점이 없는, 더러운 거지 옷차림이지만, 아버지는 단번에 아들임을 알아차립니다. 그 아들은 아버지도 못 알아보고, 아버지 옷자락 잡고 25동전하나면 달라고 구걸을 합니다. “톰! 너 톰이지. 네 아빠다.”하지만 아들은 못 알아듣습니다. 계속해서 아저씨 25센트만 주달라고 하면서 며칠을 굶었다고 잠도 못 잤다고 하면서 25센트만 달라고 구걸을 합니다. 아버지는 가슴이 아파옵니다. 눈물이 납니다. 집에 있으면 아들이라고 귀하게 자랄 아들인데, 아버지 떠나면 행복할 줄 알고 친구들과 집을 나갔지만, 이 꼴을 하면서 사람들 지나다니는 역에서 거지꼴로 구걸을 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이 더럽고 추한 이 아들을 와락 껴안습니다. “톰 아빠다. 아빠야. 25센트? 오냐. 내가 주마. 그것뿐만 아니라 내 것 다 주마. 너를 다시 살릴 수만 있다면, 하나님 앞에 네 죄를 가져다가 용서받고 살릴 수 있다면, 오늘 너를 찾았으니 오늘 이 아비는 죽어도 좋다. 25센트? 내가 가진 것 다 주마. 내 생명도 주마. 톰 집에 가자. 여기에 있어봤자, 아무도 너를 쳐다보지 않는다. 이 추운 날씨에 얼어 죽을지 모른다. 어서 빨리 집으로 가자.” 하십니다.
지금도 얼마나 많은 이들이 아버지 하나님을 떠나, 그 품안에서 사는 행복을 모르고 살아갑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방황하고 있는지, 얼마나 많은 이들이 자신이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는지, 얼마나 많은 이들이 하나님을 떠나 세상에서 25센트를 구걸하며 마약에 취해 행복하지도 않으면서 거짓미소를 띄우며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분명히 갈 곳이 있는데, 자꾸만 또 다른 갈 곳을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분명히 갈 곳, 천국이 있는데, 그 헤매는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가 크리스천 이라는 사실입니다. 분명히 갈 곳이 있는데 또 다른 갈 곳을 찾아 여기저기 헤매고 있습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진짜 진리의 길을 버린 채 또 다른 길을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이제는 그 크고 놀라운 하나님 아버지 은혜의 품에 안겨 평생 이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지 않겠습니까.
방황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 내 가족이 있음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은혜의 선물로 천국까지 가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톰과 같이 25센트 구걸하고 마약에 젖어 살아가는 불쌍한 내 가족들이 있습니다. 저희들에게 진리의 말씀을 가득 채워주시고, 죄 때문에 축 처져있는 그 어깨에 성령의 바람으로 빵빵하게 채워주시옵소서. 그리하여서 세상 앞에서 담백하게 살고자 하는 종이 한 장으로써, 절대로 세상에 기죽지 않고, 내 뒤에 계신 빨간 벽돌이신 예수님 때문에 당당하게 살기 원합니다.
죄 때문에 다 무너져 있는, 세상에서 방황하고 있는, 내 가족 친척 친구들 향하여 나아가길 원합니다. 저희들 진리의 말씀가운데 가득 채워주셔서, 방독면 쓰고 전신갑주 입어, 전쟁터로 가스실로 침투할 수 있게 하옵소서. 내가 전신갑주를 입고 있으면, 그곳에서 죽어가는 영혼들을 살릴 수가 있습니다. 먼저 나의 영육이 건강해야겠습니다. 내가 먼저 무장을 해야겠습니다. 괜찮은 척, 되어있는 척, 위장이 아니라 머리부터 발끝까지 무장해야겠습니다. 그리하여 전쟁터 가운데 피멍들어 죽어가는 저들에게 생명을 전할 수 있는 그 사명을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 생명이 몇 년 남아있는지 알 수 없지만, 반드시 우리 가족 건져내는 미션주자, 그 사명 감당하고 주님나라가기 원합니다. 오늘밤 내일 모래 계속해서 구원을 향한 드라이브 그 코스에서, 우리 모두 그 귀하고 행복한 질주가 천국가지 계속 되게 하옵소서. 믿고 감사드리며, 우리를 구속하신 예수님 이름 받들어 감사하며 축복하며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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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화평케하는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하였느니라~~~아멘
아멘!~ 아멘!~감사합니다~~예수님!!!
음식점에 보면 코스요리가 있더라구요,
그런데 여기서도 장미영 목사님께서 " 구원을 향한 드라이브 코스" 란 말씀을 언급하셨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영의 "코스요리" 돈안들고 카드할부 필요없고 배불러서 더못먹을리 없고 이런 좋은곳이 어디 있읍니까!!~~
하나님만세!!~ 예수님만세!!~~ 성령님 만세!!~~
그리고 우리 교회 만세 !!~~ 또 박? , 장?, 장?, 만세 !!~ 만세!~~ 만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