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즈의 마법사’를 다시 읽고(박연옥)
휘오리 바람에 휩쓸려 마법의 나라로 가게 된 도로시가 다시 켄사스로 돌아가기 위해, 지혜(두뇌)를 갖고 싶어 하는 허수아비, 심장을 원하는 양철 나무꾼, 그리고 용감해 지기를 원하는 사자와 함께 여러 마법사를 찾아 신기한 마법의 나라들을 여행하는 과정을 그린 동화이다. 어렸을 적, 이 책을 읽었을 때는 그냥 재미있는 모험이야기로만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번 독서논술 수업시간에 선생님께서는 새로운 관점에서 이 이야기를 해석하였다. 여행 중에 세 친구들은, 그들이 원하는 것을 이미 처음부터 자신들 속에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었다. 겁쟁이 사자는 이미 용기를 가지고 있었지만, 미처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자신이 ‘겁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허수아비나 양철 나무꾼의 경우도 그런 것이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들이 글을 못 쓴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사자나 허수아비처럼 이미 글을 쓸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못 쓴다고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작가인 라이먼 프랭크 바움은 1856년 미국의 뉴욕에서 태어났다. 잡지 편집자, 신문기자, 배우, 외판원등 여러 직업을 전전했지만, 아내의 격려로 좌절하지 않고 밤마다 자신의 네 아이들을 위해 이야기를 지었다. 이를 지켜본 장모(여성참정권운동가)인 마틸다 게이지의 권유로 자신의 아이들에게 들려주었던 이야기를 책으로, 총 14편의 동화 ‘오즈의 마법사’를 출판할 수 있었다 한다. 이 작가야말로 자신의 잠재력을 발견하지 못하다가, 아내와 장모의 도움으로 그것을 발견하게 되고, 마흔의 나이에 시작하여 작가로 성공함으로써 이 글의 숨은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나는 당황하게 되면, 그 다음 할 말이나, 행동을 잊어버려 머리속이 하얗게 되기 일쑤였다. 학원을 운영하고 있던 나는 학부모 상담시 예상치 못한 질문을 받으면 적절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아 난감한 적이 있었다.
십 년쯤 전의 일이었다. 학원 문 밖에서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어보니 모르는 남자 아이가 바닥에 주저 앉아, 엉엉 울고 있었다. 그런데 그 아이의 이마에서 빨간 피가 얼굴로, 바닥으로 뚝뚝 떨어져 볼 수가 없었다. 주위에 있던 아이들은 “어떡해? 어떡해…?” 하며 바라만 보고 있었다. 처음엔 나도 당황하여 손발이 부들부들 떨리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이렇게 떨고만 있을 게 아니라 어떻게든 무엇을 해야 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마음 속으로 ‘침착하자. 침착하자’를 되뇌이며 떨리는 손과 다리를 진정시키고, 해야 할 일을 생각했다. 급한 대로 주위 아이들과 같이, 그 아이를 부축하여 같은 층에 있는 치과로 데리고 갔다. 마침 치과 의사가 계셔서 지혈을 하고 이마에 반창고를 붙였다. 그러자, 그 아이는 좀 진정이 되었는지 울음을 멈추었다. 그때서야 나는 내 등이며 겨드랑이에 흥건히 젖은 땀과 아직도 떨리고 있는 손발을 느꼈다. 그 일을 계기로 나는 학부모 상담이나 학생들 간의 일어나는 의외의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침착함을 보일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오즈의 마법사를 다시 읽으면서 나의 잠재된 능력에 대해 생각해 본다. 우리들은 무슨 일이든지 해 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단지 아직은 익숙하지 못하거나 경험이 부족해서 지레 겁을 먹고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이 많을 뿐이다. 오즈의 마법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바로 이 부분이다. 누군가가 하고 있는 일은 나도 할 수 있는 일이다. 그것이 용기든, 지혜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든, 이미 다 갖추고 있는 것인데 ‘나는 못해?’라는 선입견이 나의 잠재된 능력을 활용하지 못하게 억누르고 있는 것이다. 내 경험으로 보더라도 막상 해놓고 보면 별게 아닌 일들이 많다. 오즈의 마법사는 우리에게 잠재된 능력은 충분하니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그 능력을 활용해 보라고 일깨워 주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