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어릴 때 어른들께 자주 듣던 말이다. 나쁜 버릇이 한 번 몸에 배면 고치기 힘들어 늙어서까지 계속되니, 평소에 좋은 습관을 들이며 살라는 뜻이었다.
영어에도 이와 꼭 닮은 표현이 있다. ‘Old habits die hard.’ 영화 <다이하드>의 주인공 브루스 윌리스가 불사조마냥 절대 죽지 않는 것처럼, 몸에 밴 습관도 여간해선 죽지 않는다는 말이다.
사실 어릴 땐 이 말에 그다지 수긍이 가질 않았다. 살다가 아니다 싶으면 그때 고치면 되는 거지, 설마 그 나쁜 버릇을 여든까지 끌고 갈까 싶었다. 하지만 버릇이란 늘 일상에 스며 있는 법이라, 크게 나쁘다는 인식도 없이 그냥 평생을 함께 흘러가게 되는 모양이다.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다 보면 사람들의 잘못된 버릇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습관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지,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얼마나 지독한 사실인지를 뼈저리게 실감하곤 한다.
병원 중환자실은 병세가 위중한 환자들을 돌보는 곳이다. 간호사들은 늘 긴장된 상태로 눈으로는 모니터를 주시하고, 손으로는 분주하게 환자를 돌본다. 삐- 삐- 울리는 기계음을 제외하곤 기묘한 정적에 휩싸여 있는 중환자실.
순간, 그 정적을 깨며 우렁차게 울려 퍼지는 외마디 쌍욕!
그 소리가 들리면 간호사들은 일제히 손을 멈추고 오히려 반색을 하며 환자에게 달려간다. 바로 의식이 없던 환자가 깨어나는 경이로운 순간이기 때문이다. 이 감동의 순간이 고운 말로 시작되면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많은 분이 쌍욕으로 깨어남을 알린다. 아이러니하게도 간호사들에게는 그 욕설이 세상에서 가장 반가운 소리로 들리지만 말이다.
평소 힘들 때 욕을 하던 버릇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중환자실에서 그렇게 깨어난다. 그분의 무의식에 새겨진 말버릇인 것이다. 그렇게 깨어난 환자가 그 뒤로 아무리 점잖게 굴어도 간호사들은 그저 속으로 웃을 뿐이다. ‘난 당신의 숨겨진 본색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간호사들끼리는 평소에 고운 말을 쓰며 살자는 다짐을 자주 하곤 한다.
"설마 내가 중환자실에 누울 일이 있겠어?"
물론 흔한 일은 아니다. 설령 운 좋게 중환자실을 피해 간다 해도, 우리에겐 '수술실'이라는 또 다른 관문이 기다리고 있다. 평소에 욕하던 사람은 마취에서 깰 때도 영락없이 욕을 한다.
필자 역시 과거에 수술을 앞두고 고민이 참 많았다. 내가 일하는 병원에서 수술을 할지, 아니면 아예 다른 병원으로 갈지 말이다. 마취에서 깰 때 내가 이쁜 짓을 할지 미운 짓을 할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최고의 의료진이 있고. 직원 감면 혜택까지 받을 수 있으니 결국 다니던 병원에서 수술을 받기로 했다.
척추 마취를 했지만 중간에 문제가 생겨 진정제를 맞고 잠이 들었다. 마취에서 깨어나 보니 열댓 명의 의사와 간호사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런데 모두가 깨어난 나를 보며 피식피식 웃더니, “다시 봤어~”라는 애매한 한마디를 남기고 방을 나가는 게 아닌가.
‘헉!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야? 설마 욕을 했나? 앞으로 얼굴을 어떻게 보고 일하지?’
너무 걱정이 된 나머지 수술한 배가 아픈 줄도 모를 지경이었다. 나중에 친한 레지던트를 붙잡고 간절하게 물어보니, 다행히 미운 짓은 아니고 '애기 짓'을 했다고 전해주었다. 평소 워낙 당차게 일하던 캐릭터라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모습이었단다. 수술 내내 무섭다며 목소리까지 아기처럼 바꾸고 별의별 어리광을 다 부렸다는 것이다. 당찬 척 껍데기를 쓰고 살았지만, 사실 그 속에는 겁쟁이 하나가 숨어 살고 있었음을 그렇게 홀라당 털려버렸다.
사실 버릇이라는 게 어디 말버릇뿐이겠는가. 먹고, 자고, 배설하는 이 모든 생리 현상이 제각각인 걸 보면 인간의 삶 자체가 곧 버릇의 집합체다. 그런데 이 모든 버릇이 한꺼번에 여과 없이 털리는 순간이 또 있다.
요즘은 평균 수명이 길어지면서 치매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치매는 기억을 지우는 잔인한 병이다. 그러나 이 무서운 치매도 단 하나, ‘습관’만큼은 지우지 못한다.
우리가 흔히 인디언이라 부르는 캐나다 원주민(First Nation) 할머니가 내가 일하는 병동에 입원했다. 할머니는 나와 피부색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나를 이웃집 딸로 굳게 믿으셨고, 나만 보면 반갑게 달려와 가족 안부를 물으며 손을 잡으셨다.
그날도 할머니에게 손이 붙잡힌 채, 용무가 급하다는 할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화장실로 끌려갔다. 그런데 볼일을 끝낸 할머니가 화장지를 딱 한 칸만 떼서 뒤를 닦으시는 게 아닌가. 너무 놀란 내가 변기 물을 내리며 할머니에게 그 손으로 아무것도 만지지 말고 손부터 씻으시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할머니가 대변이 둥둥 떠내려가는 변기 물속으로 손을 쑥 넣더니 씻으셨다. 정말 말릴 틈도 없는 찰나에 벌어진 일이었다.
‘헉……! 그럼 지금까지 저런 손으로 내 손을 잡고 다니셨던 거야?’
원주민 보호구역은 수돗물이 콸콸 쏟아지는 유족한 곳이 아니다. 물도 물자도 상당히 부족한 곳에서 평생을 살아온 할머니의 오랜 습관이 치매라는 병 속에서 튀어나온 것이었다. 그날부로 할머니의 간호 계획서에는 ‘식사 전 반드시 손 씻기기’라는 나의 특명이 추가되었다.
깊은 숲 속에서 살았던 탓에 대충 나무 밑에서 볼일을 보던 분들도 계신다. 용무가 급했던 어느 할머니는 병동 로비에 세워놓은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를 보고는 냅다 달려가 그 밑에 볼일을 보셨다는, 웃지 못할 실화도 병원 전설처럼 전해 내려온다.
젊은 시절 자기 단장을 잘하던 치매가 온 할머니는 97세가 되어도 아침마다 정성스레 립스틱을 바른다. 반면 평소 마음에 차별과 미움을 품고 살던 사람은 치매에 걸리면 대놓고 지독한 인종차별주의자가 된다.
항상 웃고 살던 사람은 치매에 걸려도 매사에 싱글벙글 웃고, 감사함이 넘치던 사람은 무엇을 해주든 “스윗하트! 땡큐, 땡큐!”를 연발한다. 간호사이기 이전에 나 역시 감정이 있는 인간인지라, 그런 예쁜 환자에게는 마음이 가고 뭐라도 더 해주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물론 평소에 화를 잘 내던 사람은 툭하면 격한 욕설과 함께 짜증을 부린다. 그런 환자의 방은 들어가기가 무섭게 도망치듯 빠져나오게 된다. 방 안을 가득 채운 기운이 너무 탁해 본능적으로 피하게 되는 것이다.
흔히들 ‘미운 치매’가 있고 ‘예쁜 치매’가 있다고 말한다. 의학적인 분류가 아니라, 평소 그 사람이 가졌던 습관과 성품이 치매라는 거울을 통해 고스란히 투영되기 때문에 생기는 차이다. 누구도 벽에 똥칠하며 늙어가기를 원치 않는다. 하지만 치매라는 질병 앞에서 자기는 절대 예외일 거라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 또한 아무도 없다.
다만, 매 순간 열린 마음으로 좋은 습관을 들이며 살아가려 노력한다면, 훗날 혹여 치매라는 불청객이 찾아오더라도 최소한 주변 사람들에게 따뜻한 기억을 남기는 ‘예쁜 치매’로 갈 수는 있지 않을까.
오늘도 찬 공기 속에 묻어나는 봄기운을 깊이 들이마시며 경쾌하게 출근길에 오른다.
병동 문을 열고 막 들어서는데 원주민 할머니와 눈이 딱 마주쳤다. 애써 시선을 피하며 속으로 주문을 외워본다.
‘님아, 제발 내 손을 잡지 마오……!’
그러나 내 간절한 속마음을 알 리 없는 할머니는 오늘도 집념 가득한 몸짓으로 나를 향해 다가오신다. 나는 별수 없이 슬그머니 뒤로 감췄던 손을 다시 내놓는다.
어쩌겠는가. 오늘도 난 꼼짝없이 저 할머니에게 기꺼이 내 손을 내어드려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