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찰실에 있다 보면, 가끔 엉뚱한 환자분이 올 때가 있다. 보통 차트에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는지 기록돼 있기 마련인데, 그 칸이 텅 비어 있는 때가 바로 그 경우다. 물론 원장에게 직접 얘기하고 싶어 그냥 들어온 경우도 있지만, 가끔은 손을 쑥 내밀면서 “원장님 용하시다길래 한번 찾아왔습니다. 어디 진맥부터 해보시죠”라고 입을 꼭 다물고 있는 환자도 있다. 물론 얼굴을 쳐다보는 망진(望診)이나 손목이나 목 옆의 맥을 잡는 맥진(脈診)으로 병을 알아낼 수는 있지만, 보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더 많은 진단법을 종합적으로 실시하는 것이 당연히 옳기에, 이런 경우는 진료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순조 11년 9월 5일의 <왕조실록> 기록을 보면, 이와 유사한 이야기가 나온다. 홍욱호(洪旭浩)라는 선비 출신의 의원이 왕을 진찰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다른 의관(醫官)과 달리 왕실의 법도를 잘 모르기 때문에 곤란해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실제 홍욱호는 일주일 전인 8월 27일에 순조의 부름을 받고 입궐한 것으로 기록돼 있는 유의(儒醫)였다. 그렇기 때문에 순조는 특별히 천천히 진맥하고 조용히 판단하라고 배려를 해준다. 특히 이시수가 아뢰기를, “의원이 진찰하는 법은 진맥뿐만이 아니고 모습과 얼굴빛을 관찰하는 것이 더욱 긴요한 것이니, 특별히 홍욱호에게 명하여 천안(天顔)을 우러러보도록 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우러러보게 하라”고 허락한다.
이렇게 얼굴을 보는 것은 망진에 해당된다. 즉 얼굴과 모습의 형태도 진단에 있어 매우 중요함을 얘기한 것이다. 요새도 간혹 환자가 오지 않은 상태에서 한약을 처방받겠다고 보호자가 찾아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 망진이 이뤄질 수가 없기 때문에 제대로 처방을 내릴 수가 없다. 물론 최근에는 과학기술이 워낙 발달하여 휴대전화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대체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다른 맥진 등도 필요하기 때문에 역시 환자 본인이 직접 찾아오는 것이 좋다.
홍욱호는 얼굴에 누른빛이 보이는 것을 지적하며, 평소에도 그러했냐고 추가 질문을 던진다. 이에 우의정 김사목이 아뢰기를, “증후(症候)에 대한 모든 것들을 상세히 하교한 연후라야 탕제를 논의하여 정할 수 있습니다”라고 순조에게 말했는데, 이는 문진(問診)에 해당한다. 이에 순조는 “증후는 비록 두통·복통 등 병자와 같은 모양의 여러 가지 증상은 없지만, 대체(大體)를 가지고 말한다면 금년이 작년만 못하고 작년이 재작년만 못하다. 운동거지(運動擧止)가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는 가운데 저절로 이와 같다”고 답한다. 이어서 “조동(跳動)하는 증후는 요사이 어떠합니까?”라는 질문에는 “가끔 있다”고 답한다.
이윽고 홍욱호가 진맥을 마치고 아뢰기를, “좌촌관(左寸關)에 약간의 활체(滑體)가 있으니, 가슴 위에 담후(痰候)가 있는 것 같으며, 조동하는 증상도 그 때문에 그럴 것입니다. 탕제는 물러나서 여러 의관들과 상세하고 확실히 강론한 연후에 의정(議定)하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진찰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맥만 짚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얼굴과 몸의 형태와 모습, 그리고 각종 증상을 세세히 물어보아 확인하는 종합적 행위라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요 근래 초음파나 기타 과학기술을 응용한 진단기기가 계속 발명돼, 한의원 진단에 응용되고 있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