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한국인...세계 각지 돌며 2만여종 이상 와인 시음 평가
서클링은 현재 한국인 아내 마리와 함께 세계 각지를 돌며 매년 2만 종 이상의 와인을 시음하며 평가하고 있다. 그는 최근 한국에도 왔는데, 그간 보고 마시고 경험한 와인 중 일부를 한국에 소개하기 위해서다. 그는 한국을 여러차례 방문할 정도로 한국에 대한 애정이 깊다. 그의 SNS에는 한식과 와인을 같이 즐기는 사진이 자주 등장한다. 그의 한식 사랑은 홍콩에 있는 그의 레스토랑 ‘제임스 서클링 와인 센트럴’에서도 느낄 수 있다. 2018년 문을 연 이 레스토랑에서는 한식과 와인을 함께 즐길 수 있다.
그는 오는 29일 열리는 ‘Great Wine of the World 2019·SEOUL(GWW 2019·SEOUL)’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했다. 고가의 와인을 시음할 수 있는 이번 이벤트는 참가비가 100달러인데도 티켓이 700장 이상이 팔렸다.
평소 와인에 관심이 많아 그의 SNS를 즐겨보던 중, 제임스 서클링이 방한한다는 소식을 보았다. 메일을 통해 인터뷰를 요청했고 다소 촉박한 일정 속에서도 어렵사리 시간을 내 JW 메리어트 강남 호텔에서 그와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에는 마리도 함께했다.
기자가 꿈, 법조 기자 되려고 로스쿨 갔다가 아버지 조언 따라 와인 평론가의 길로
- 로스쿨을 포기하고 와인 평론가가 되기로 한 계기가 궁금하다.
“사실 나의 꿈은 기자였다. 대학에서 정치학과 언론학을 전공했고, 위스콘신에서 지역 신문사 기자로도 일했다. 그 후 고향인 LA로 돌아와 일자리를 찾았다. 취직이 쉽지 않았다. 로스쿨을 나오면 취직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지원했는데 합격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나에게 조언하셨다. 변호사는 많지만 와인 비평가는 세계에 몇 명 되지 않는다며, 나는 이미 그 중 한 명으로 일하는데 왜 변호사가 되기 위해 저 밑에서부터 시작하냐고 와인 평론가로서의 길을 응원해주셨다.’"
그는 1981년부터 30년간 와인 전문지 ‘와인 스펙테이터’에서 글을 쓰며 와인 업계 최고 권위의 잡지로 키웠다. 현재는 와인 전문 홈페이지(https://www.jamessuckling.com)를 운영하고 있다. 홈페이지에서는 그의 와인 리뷰와 테이스팅 노트는 물론이고 직접 촬영한 와이너리와 와인 메이커의 인터뷰 영상도 만나볼 수 있다.
제임스 서클링이 운영하는 사이트. http://jamessuckli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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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인 평론가가 된 데에는 아버지의 영향이 컸던 모양이다.
“그렇다. 아버지는 내가 와인 평론가로 활동하는 것을 적극 지지하셨다. 본인은 돈을 주고 마시지만 나는 좋아하는 와인을 마시며 돈을 버니 일석이조의 일이라며 나를 응원해주셨다."
- 좋아하는 일을 통해 성공까지 거뒀다. 그런 당신에게도 스트레스가 있나?
“물론이다(웃음). 나는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기자였을 때는 기사 데드라인이 가까워졌을 때 스트레스를 받았다. 지금은 홈페이지(https://www.jamessuckling.com)를 운영하고 있는데, 직원들이 데드라인을 지키지 않거나 지시 사항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을 때 대표로서 받는 스트레스가 있다.
직업 자체가 주는 스트레스도 있다. 와인을 좋아하지만, 평가는 늘 신중해야 한다. 직업으로 다가오는 것은 무엇이라도 스트레스가 있다. 내가 변호사가 되었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일하기 싫어도 해야 하지 않나(웃음). 테이스팅이 어려운 날도 있지만 늘 집중하는 편이다. 나는 프로 운동선수와 같다. 프로 운동선수도 자신을 꾸준히 단련하는 것처럼 나 역시 이 일에 대한 의무감이 있다. 내가 선택한 직업이기 때문이다."
1주일에 하루 빼고 매일 와인 마셔...식단으로 건강 유지
- 본인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이 있는가.
“샴페인을 마신다. 샴페인은 축하하는 자리에서 많이 찾는 술이다. 우리가 행복할 때 먹은 음식은 다시 먹어도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나듯이 샴페인은 나에게 그런 존재이다. 와인과는 다른 풍부한 거품을 즐길 수 있고 좋은 추억을 떠올리게 해서 기분이 좋아진다."
인터뷰 자리에 함께 있던 아내 마리가 한 마디 거들었다. “한국인이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매운 음식이 생각나는 것과 비슷한 것 같아요." 술로 받은 스트레스를 술로 푸는 그에게서 프로 의식이 엿보였다.
- 술을 안 마시는 날이 있나? 건강관리가 정말 중요할 것 같은데.
“매일 마신다(웃음). 농담이다.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쉬는 날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생각해보니 일 년에 한 달 정도 마시지 않는 것 같다. 특히 오늘처럼 장시간 비행을 하는 날에는 와인을 마시지 않는다.
나는 건강한 식단을 추구하려고 노력한다. 물도 하루에 2L씩 꼭 마신다. 밀크씨슬을 항상 먹고 있고 자기 전에 비타민 C도 빠지지 않고 먹는다. 하지만 간식은 거의 먹지 않는다. 평소에 아시안 푸드를 많이 즐긴다. 내가 좋아하는 한식 중 하나는 김치볶음밥이다. 아침으로 현미밥에 김치와 계란찜을 많이 먹는데, 아보카도를 곁들여서 LA 스타일로 변형시킨 ‘K-town style’ 덮밥으로 먹는다(웃음)."
한국인 아내의 영향 덕인지 많은 한국 음식을 접해본 모양이다. 그의 인스타그램에는 보쌈, 김치볶음밥, 제육볶음 등 와인과 함께 페어링한 음식들이 많이 보인다.
와인과 한식을 즐기는 모습을 sns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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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식과 와인을 같이 즐기는 것을 자주 보았다.
“한식은 와인과 정말 잘 어울리는 음식이다. 한국 음식은 외국 사람들이 느끼기에 맵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먹어본 사람들은 안다. 단맛과 짠맛은 물론 신맛까지 모두 복합적이라 술로 궁합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와인은 다르다. 독일의 리즐링이나 뉴질랜드 쇼비뇽 블랑과 어울리는 메뉴들이 많다. 한식은 맛뿐만 아니라 다양한 페어링이 가능하다. 내가 한식을 사랑하는 이유 중 하나다."
"을지로 와인바 가고 싶어"...와인 추천 1번은 '에밀리아나 꼬얌'
마음건강길 독자를 위해 와인을 추천해달라고 부탁했더니 그는 5가지를 언급했다.
1. Emiliana Coyam(에밀리아나 꼬얌) | 바이오다이나믹 농법으로 기른 쉬라와 다른 포도 품종들의 재미있는 블렌드
2. Monte Purple Angel(몬테 퍼플 앤젤) | 카베르네 소비뇽과 까르미네르 품종의 선명하고 맛있는 레드.
3. Jean Foillard Cote du Puy Beaujolais(쟝 포이야드 꼬뜨 두 퓌 보졸레) | 풍부하면서 세련됨. 소믈리에들의 컬트 와인.
4. Pio Cesare Barolo(피오 체사레 바롤로) | 바롤로를 찾는다면 이 와인.
5. Clerc Milon(끌레르 밀롱) | 무통 로쉴드 팀이 만들며 매년 훌륭한 퀄리티.
서클링은 한국의 와인 시장에도 관심이 많다. 요즘 을지로 일대의 쓰러져가는 건물에 와인 바가 생겨난다고 말하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흥미로워 했다. 다음 방문 때는 꼭 을지로에 가고 싶다고 했다.
“포도주가 서양에서 마시기 시작한 술이라고 해서 거부감을 느낄 필요는 전혀 없어요. 신선한 재료와 적절한 양념으로 조리한 음식은 누가 먹어도 맛있는 것처럼 좋은 와인도 누구든 그렇게 느끼거든요."
글·사진 김혜인 기자 | 취재지원 김혜원 통역, ⓒ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