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석의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 노트

[멧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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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석,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소나무) 노트

• 3장

“… 성인이 하는 정치는 그 마음은 텅 비우게 하고 그 배를 채워 주며 그 의지는 유약하게 해 주고 그 뼈대를 강하게 한다. 항상 백성들로 하여금 무지 무욕하게 하고 저 지혜롭다고 하는 자들로 하여금 감히 무엇을 하려고 하지 못하게 한다.”

☞ “인간은 다이아몬드와 같은 외부 대상들과 관계하면서 반드시 주관과 객관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그물을 통과해야 하는데, 이 그물이 바로 문화 체계나 이데올로기 혹은 이론 체계이다. 더 넓게 말하면, 우리의 편견, 이미 학습된 내용들, 관습 그리고 욕망 등이 포함되겠다.”(최진석, 54)

󰃫 “가장 최근의 격변[1968년 5월 혁명]을 통해, 지식인들은 대중이 지식을 위해 더 이상 자신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대중은 어떠한 환상도 없이 완벽하게 알고 있습니다. 대중은 지식인보다 더 잘 알고 있고, 스스로를 확실하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지식과 담론들을 방해하고, 금지하고, 무효로 만드는 권력의 체계 역시 존재합니다. 이러한 권력은 검열이라는 명확한 권위 속에서 드러날 뿐 아니라, 전체 사회연결망 속에 깊숙이 교묘하게 침투해 있습니다. 지식인들 자신은 이러한 권력 체계의 대리인입니다. 그들이 ‘의식’이나 ‘담론’을 책임지고 있다는 생각은, 이러한 권력 체계의 한 부분을 이루지요. 지식인의 역할은 더 이상 스스로를 ‘어느 정도 앞에 또는 옆에’ 위치시키고 그 곳에서 침묵하는 진실을 밝히는 데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오늘날 지식인의 역할은 그 자신을 ‘지식’, ‘진리’, ‘의식’, ‘담론’의 영역에서 권력의 대상이자 도구로 변환시키려는 권력의 여러 형태들과 맞서 싸우는 것입니다.”(푸코의 말, ｢지식인과 권력 : 푸코와 들뢰즈의 대화｣, 1972. 3. 4)

• 4장

“도는 텅 비어 있다. 그러나 그 작용은 끝이 없다. 깊기도 하구나! 마치 만물의 근원 같다. 신비롭기도 하구나! 마치 진짜로 있는 것 같다. 나는 그것이 누구의 자식인지 모르겠다. 하느님[上帝]보다도 먼저 있었던 듯하다.”

☞ “여기서 우리는 노자가 가지는 철학사적인 큰 의미를 포착해야 한다. 즉 노자는 자신이 살고 있던 당시의 천명관을 과감히 벗어나고 있다. 당시까지 가장 높고 위대했던 상제보다 더 근본적인 것으로서 이제는 전혀 의지가 개입되지 않은 자연의 존재형식인 ‘도’가 제시되고 있다는 것이다.”(최진석, 62)

󰃫 태사공은 말하였다. “노자(老子)가 귀히 여긴 도(道)라는 것은 허무(虛無)한 것이며 자연에 순응하여 무위(無爲) 속에서도 각종 변화에 적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저서의 언사는 미묘하고 이해하기가 어렵다. 장자(莊子)는 노자의 도덕(道德)을 확대하여 자유분방하게 의론하였는데 그 요지는 자연(自然)으로 귀결된다. 신자(申子)는 부지런히 형명(刑名)에 힘썼으며, 한자(韓子)는 법률에 의거하여 모든 세상사를 결단하고 시비를 분명히 하였으나 너무나 가혹하여 은덕이 결핍되어 있다. 이들의 학설은 모두 도덕(道德)에 근원을 두고 있기는 하였지만 그중 노자가 가장 심원하다.”(사마천의 󰡔사기(史記)󰡕에서, ｢노자한비열전(老子韓非列傳)｣)

• 7장

“천지 자연은 장구하다[天地長久]. 천지 자연이 장구할 수 있는 까닭은 그 자신을 살리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장생할 수 있다. 성인은 이러한 자연의 이치를 본받아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다.”

☞ “노자의 철학이 천도에서 인도를 연역해 내는 것, 즉 자연의 운행 원리를 모델로 하여 인간 문명을 건설하자는 주장이 담겨 있는 체계임을 말하고 있다.”(최진석, 76)

• 10장

“혼과 백을 싣고서 하나로 안아 분리되지 않게 할 수 있는가? 기를 집중시켜 몸을 부드럽게 할 수 하기를 어린애처럼 할 수 있는가? 우주를 비추는 마음의 거울을 닦기를 아무 흠도 남아 있지 않게 할 수 있는가? 백성을 사랑하고 나라를 다스림에 무위자연의 방식으로 할 수 있는가? 감관을 통해 외부와 관계를 맺음에 암컷의 태도를 유지할 수 있는가? 사방 세계를 밝게 이해함에 있어 무지의 태도로 할 수 있는가?”

☞ “몸을 움직임에 뜻을 개입시켜 관여하는 것이 魂이고, 가만히 있음으로써 형체를 이루는 것이 魄이다. 혼은 정신이고 백은 육체이다. … 도교나 무예의 수련 경지에서 최고의 경지는 몸이 어린애처럼 부드러워지는 것이며 피부도 어린애와 같은 피부를 회복하는 것이다.”(최진석, 91)

☞ “天門開闔, 能爲雌乎?”에서 ‘천문’은 이목구비의 감각기관 … 인간이 외부와 관계를 가질 때 가장 근저에서 기능하는 감각기관 … 하상공은 이곳의 천문을 비공(鼻孔), 즉 콧구멍으로 해석한다. … 󰡔도덕경󰡕 자체를 도교적 수양이나 기공 등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호흡’을 중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자󰡕 ｢천운｣에 “마음에 그렇게 하려는 뜻이 없으면 천문은 열리지 않는다(其心以爲不然者, 天門弗開矣)”는 구절이 있는데, 마음에 뜻이 없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무엇을 먹어도 그 맛이 무엇인지를 모른다는 뜻이다. 이렇게 보면 천문은 감각 기관이 분명하다.”(최진석, 93)

• 12장

“다섯 가지로 구분된 색깔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하고, 다섯 가지 구분된 소리는 사람의 귀를 먹게 하며, 다섯 가지 구분된 맛은 사람의 입맛을 잃게 한다. 말을 달리며 즐기는 사냥이 사람의 마음을 미치게 하고, 얻기 어려운 재화가 사람의 행동을 어지럽힌다. 이러하기 때문에 성인은 배를 위할망정 눈을 위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한다.”

󰃫 “사리불이여, 이 모든 법의 공한 모양은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으며,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으며,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느니라. 그러므로 공 가운데는 물질도 없고 느낌과 생각과 지어감과 의식도 없으며, 눈과 귀와 코와 혀와 몸과 뜻도 없으며, 빛과 소리와 냄새와 맛과 닿음과 법도 없으며, 눈의 경계도 없고 의식의 경계까지도 없으며, 무명도 없고 또한 무명이 다함까지도 없으며, 괴로움과 괴로움의 원인과 괴로움의 없어짐과 괴로움을 없애는 길도 없으며, 지혜도 없고 얻음도 없느니라(舍利子 是諸法空相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 是故 空中無色 無受想行識 無眼耳鼻舌身意 無色聲香味觸法 無眼界 乃至 無意識界 無無明 亦無無明盡 乃至 無老死 亦無老死盡 無苦集滅道 無智 亦無得).”(󰡔반야심경(般若心經)󰡕)

• 13장

“… 큰 환난을 귀하게 여기기를 내 몸과 같이 하라. … 큰 환난을 귀하게 여기기를 내 몸과 같이 하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나에게 큰 환난이 있는 까닭은 나에게 몸이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몸이 없다면 나에게 어떤 환난이 있겠는가?”

☞ “貴身若大患은 ‘자신의 몸을 신중하고도 조심스럽게 다르기를 마치 큰 환난이 닥쳤을 때처럼 한다’는 뜻으로 풀어진다. … 노자의 몸은 … 단순히 자신 안에 갇힌 몸이 아니라 인위적 개념 체계를 넘어선 자연의 전체 원리가 내재된 보편적 몸이다.”(최진석, 114)

• 14장

“보려 해도 보이지 않는 것을 일컬어 微라 하고,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는 것을 일컬어 希라 하며, 만져 보지만 만져지지 않는 것을 일컬어 夷라 한다. 이 세 가지는 끝까지 따져 볼 수 없다. 왜냐하면 원래부터 섞여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 ‘하나’라는 것은 그 위는 밝지가 않고, 그 아래는 어둡지가 않다. 새끼줄처럼 두 가닥으로 꼬여 있어 개념화할 수 없으며, 아무 것도 없는 곳으로 돌아간다. 이것을 ‘형상 없는 형상(無狀之狀)’이라 하며, ‘아무 것도 없는 모습(無物之象)’이라 한다. 이를 일러 恍惚이라 한다. 앞에서 맞이해 보지만 그 머리가 보이지 않고, 뒤에서 따라가 보지만 그 뒷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옛날의 도를 가지고 지금의 현실을 다스린다. 옛날의 시작을 알 수 있는 것을 道紀라고 한다.”

☞ “노자는 도를 설명하면서 형(形)과 상(狀)은 부정적으로 다루지만, 상(象)은 긍정적으로 다룬다. 노자의 도는 ‘무형무상(無形無象)’이 아니라 ‘무형유상(無形有象)’으로 봐야 할 것이다. 도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은 아니지만, 이 세계의 존재형식과 운동원칙을 개괄하는 상징기호라는 의미에서 노자는 상(象)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홀(惚)은 감춰져 있거나 흐릿하여 분간하기 어려운 상태를 형용하고, 황(恍)은 드러나 있지만 아주 모호한 상태를 가리킨다.”(최진석, 129)

• 18장

“대도가 망가져서 인의를 제창하게 되고……”

☞ “노자에게서 인의는 여전히 도가 파괴되고 난 다음에 나오는 차선적 선으로서 부정적으로 간주된다. 인의에 대해서 노자가 그렇게밖에 대우하지 않은 까닭은 인의가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하더라도 노자가 건축한 문명체계 안에서는 부정적인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고 간주되었기 때문이다.”(최진석, 172)

• 21장

“큰 덕의 모습이란 오직 도를 따르는 것이다. 도라는 것은 정말로 황하고도 홀하다. 홀하고 황하구나! 그 안에 형상이 있다. 황하고 홀하구나! 그 안에 사물이 있다. 요하고 명하구나! 그 안에 실정이 있다. 그 실정은 매우 참되어서, 그 안에 미더움이 있다. 예부터 지금까지 그 이름이 떠나지 않으니, 그것을 통해 시작을 보는구나. 나는 무엇으로써 모든 것이 시작되는 상태를 알겠는가? 이것에 의해서이다.”

☞ “도라는 그것은 오로지 慌하고 惚하다. 여기서 황이나 홀은 모두 흐릿하여 알 수 없는 모양이다. 그런데 노자는 황 하나만 쓰던지 아니면 홀 하나만 써도 미묘하여 알 수 없는 모습을 형용할 수 있을 터인데, 홀과 황을 동시에 사용하고 있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노자가 아주 치밀하고도 조직적인 글쓰기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황이나 홀은 모두 미묘하고 흐릿하여 분간하기 어려운 상태를 묘사하는 말들이지만, 황은 너무 밝아서 흐릿해진 상태이고, 홀은 어둠 속에서 흐릿해진 상태이다. 노자가 보기에 도는 배타적 본질을 가지고 실재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는 ‘없는 것’이고, 그것이 세계의 존재형식이나 운행원칙으로 모든 것의 존재와 운동에 관여하는 기능을 한다는 의미에서는 ‘있는 것’이다. ‘없다’는 차원에서 보면 ‘홀’하고, ‘있다’는 차원에서 보면 ‘황’하는 것이다. … 이 부분의 주석으로는 성현영의 설명이 가장 정확하다. 즉 그는 노자가 恍惚 또는 惚恍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이유를 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 其中은 어떤 특정 공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홀황하거나 황홀한 도의 운행과정 속에 그것이 상(象)으로 드러나고, 또 그런 운행과정 속에서 구체적인 사물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구체적인 사물들의 존재 및 변화는 모두 도가 운행하는 방식 및 존재하는 형식의 지배를 받는다. 도가 어떤 본체나 근원 또는 실체로서 있다는 뜻이 아님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최진석, 193～194)

• 25장

“어떤 것이 혼돈스러운 모습으로 이루어져 있으면서, 천지보다 앞서 살고 있다. 아무 소리도 없고 아무 모양도 없어라. 홀로 서 있으며 달라지지 않는다.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이 운행하면서도 어그러지지 않으니, 이 세상의 어미가 될 수 있다. 나는 그것의 이름을 모른다. 억지로 글자를 붙여 도(道)라 하고, 억지로 거기에 이름을 붙여 크다[大]고 할 뿐이다. 큰 것은 가게 되고 가면 멀어지고 멀어지면 되돌아온다. 그러므로 도는 크고, 하늘은 크고, 땅은 크고, 왕도 또한 크다. 이 세상에 네 가지 큰 것이 있는데, 왕이 그 가운데 한자리를 차지한다. 사람은 땅을 본받고[法] 땅은 하늘을 본받으며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스스로 그러함을 본받는다.”

• 41장

“… 정말 큰 사각형에는 모서리가 없고, 정말 큰 그릇은 완성되지 않으며[大器免成] 정말 큰 음은 소리가 없고 정말 큰 형상은 모습이 드러나지 않는다.”

☞ “대기면성(大器免成)이란 구절은 왕필본과 백서본, 죽간본의 기록이 모두 다르다. … 죽간본의 만(曼, 길게 끌다)를 어떤 사람은 만(慢, 게으르다)으로 어떤 사람은 만(晩, 저물다⋅늦다)으로 고증하고, 또 왕필본을 비롯한 통행본이 대부분 만(晩)자를 채택하였다. 백서 을본이 면(免, 면하다)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도 대개는 만(晩)으로 고증하여 읽는다. 그러나 북경대학 교수인 누우열은 면(免)자를 노자 원래의 기록으로 받아들이는데, 나는 매우 타당한 견해라고 생각한다. 사각형[方]에는 모서리가 있는데[有隅] 정말 큰 사각형[大方]에는 모서리가 없고[無隅], 음에는 소리가 있는데[有聲] 정말 큰 음[大音]은 소리가 없으며[無聲], 상(象)에는 형체가 있는데[有形] 정말 큰 상[大象]은 형체가 없다[無形]. 대방, 대음 그리고 대상이 모두 부정사(無와 希)와 연결되어 있는데, 큰 그릇[大器]만 늦느냐 빠르냐 하는 시간관념과 연결될 근거가 적다. 큰 그릇 또한 부정사와 연결되어야 전체적인 조화를 흐트러뜨리지 않게 된다고 보면, 백서 을본의 면(免)을 원래 글자로 보아야 할 것이다. 진정으로 큰 그릇은 늦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모양으로 결정되는 완성의 단계가 없다는 뜻이다.”(최진석, 332～333)

• 45장

“아주 잘 이루어진 것은 결함이 있는 듯하지만 그 작용은 어그러지지 않고[大成若缺 其用不弊], 아주 크게 채워진 것은 빈 듯하지만 그 작용은 끝나지 않는다[大盈若沖 其用不窮]. 아주 똑바른 것은 굽은 듯하고[大直若屈] 아주 훌륭한 기교는 서툰 듯하며[大巧若拙] 아주 훌륭한 논변은 어눌한 듯하다[大辯若訥]. 움직임은 한기를 이기고[躁勝寒] 고요함은 열기를 이기니[靜勝熱] 맑고 고요함이 천하의 올바른 것이다[淸靜爲天下正].”

• 46장

 “세상에 도가 실현되어 있으면 전쟁에 쓰이던 말로 농사를 짓고, 세상에 도가 실현되어 있지 않으면 말들이 전선에서 새끼를 낳는다. …”

󰃫 “듣자하니, 옛날에 흉노나 백월족을 정벌하지 않을 때는 부역이 적어서 백성들이 부유하여, 모두가 잘입고 배불리 먹으며, 창고에는 새 곡식이 가득하고, 베나 비단이 넉넉했으며, 소나 말이 무리를 이루었다. 농부들은 말로 농사도 짓고 물건도 날랐으며, 평민들이라도 말을 타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때에는 전쟁터를 내달리던 말들이라도 똥거름이나 만들어 내고 있었을 따름이다. 그 후에, 전쟁이 자주 일어나자 전쟁에 나갈 말이 부족해지고 급기야는 어미 소나 암말도 전쟁터로 나아가게 되어 새끼 소, 새끼 말이 전장에서 태어났다.” (환관(桓寬)의 󰡔염철론(鹽鐵論)⋅미통(未通)󰡕)

• 49장

“성인은 항상 자신의 마음을 갖지 않고, 백성들의 마음을 마음으로 삼는다. 착한 사람에게 착하게 대하고, 착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착하게 대한다. 그러면 세상의 덕이 선해진다. 미더운 사람에게 믿음으로 대하고, 미덥지 않은 사람에게도 믿음으로 대한다. 그러면 세상의 덕이 신뢰로 가득 찬다. 성인은 세상에 있으면서 자신의 의지를 거두어들이고, 세상을 위하여 자신의 마음을 흐릿하게 한다. 그러면 백성들은 그들의 눈과 귀를 그쪽으로 돌리니, 성인은 모두 그들을 어린애 상태로 회복시켜 준다.”

☞ 혼(渾)은 ‘섞이다’, ‘혼탁하다’는 의미이다. 자신의 분명한 의지나 입장을 갖지 않은 채 흐릿하니 세상에 섞여 있는 모습을 나타낸다. … 성인의 이런 태도는 자신의 의지나 입장을 견지하지 않은 채(不言, 不仁, 無親, 無爲 등) 자연의 운행을 담당하는 도의 모습을 모방한 것이라는 사실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백성들의 눈과 귀는 모두 성인에게 돌아와 순수 자연성을 회복하게 된다는 뜻이다.(최진석, 377)

• 52장

“… 아주 작은 것을 볼 줄 아는 것을 ‘명’이라 하고[見小曰明] 부드러움을 잘 지키는 것을 ‘강’이라 한다[守柔曰强]. 그 지혜의 빛을 사용하되[用其光] ‘명’으로 귀결되면[復歸其明] 자신에게 어떠한 재앙도 남지 않는데[無遺身殃], 이것이 바로 ‘습상’이라는 것이다[是爲襲常].”

☞ 여기서 ‘작은 것을 본다(見小)’ 함은 단순히 미세한 어떤 것을 보는 능력이 아니라 이 세계가 어떻게 존재하는가 하는 것이나 그 존재 의미나 사물들 사이의 관계 등 구체적으로 보이는 것의 배후나 그 근저의 존재형식처럼 쉽게 보이지 않는 것을 알아채는 능력을 말한다. 성현영은 소(小)의 의미를 “지극히 묘한 이치(至妙之理)”라고 하였다. 여기서 동사를 사용할 때 시(視)가 아니라 견(見)을 사용한 점에 주의하자. 시(視)는 의지가 개입되어 주관으로부터 출발하는 행위이지만, 견(見)은 의지와 상관없이 외부로부터 보이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어떤 대상을 목적으로 설정하고 내달리는 그런 인식 행위가 아니다. 모든 감관의 개별적 제한성을 극복하고 자연계 전체와의 관계 속에서 이해하거나 그 의미를 포착하는 방식이다. … 외부를 아는 것보다는 자신의 내면을 아는 것, 자연의 전체적인 이치를 아는 것 그리고 자신의 관점에 제한되지 않는 앎 등을 명(明)이라는 용어로 나타내고 있다. … 광(光)은 어떤 개별 대상을 배타적으로 비추거나 자신을 드러내는 빛이다. 이것은 구분하고 드러내며 눈을 부시게 하는 빛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드러내야 할 것이 아니라 감춰야 할 것이다. 그래서 습상(襲常)은 날카롭게 빛나는 빛[光]을 감추는 모습이 된다. 날카롭게 빛나는 빛을 사용하되, 그것을 명(明)의 품 안으로 돌려 놓으면 그것은 이미 경지에 이른 완숙한 모습이 될 것이므로 어떤 재앙이나 허물도 닥치지 않게 될 터이다. (최진석, 393～395)

• 55장

“덕을 두텁게 함장하고 있는 사람은 갓난애에 비견된다. … 종일 울어도 목이 쉬지 않는 것은 조화가 지극한 상태로 유지되기 때문이다. 조화가 바로 불변하는 원리이고 불변하는 원리를 아는 것이 명철함이다. 생을 이롭게 하려고 덧붙이는 것을 괴이하다 하고 마음이 기를 부리는 것을 굳세다고 한다. 사물은 기세등등하면 바로 늙어 가는데 그것은 도를 따르는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도를 따르지 않으면 일찍 끝나 버린다.”

󰃫 “나는 그대들에게 정신의 세 가지 변화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어떻게 하여 정신이 낙타가 되고, 낙타는 사자가 되며, 사자는 마침내 아이가 되는가를. 내면에 외경심이 깃들여 있는 강력한 정신, 인내심 많은 정신은 무거운 짐을 잔뜩 지고 있다. 그 정신의 강인함은 무거운 짐을, 가장 무거운 짐을 요구하는 것이다. ‘무엇이 무겁단 말인가?’ 인내심 많은 정신은 이렇게 물으며 낙타처럼 무릎을 꿇고 짐을 가득 싣고자 한다. … 인내심 많은 정신은 이 모든 무겁기 그지없는 짐을 짊어지고 그의 사막으로 달려간다. 가득 짐을 실은 채 사막을 달리는 낙타처럼.

하지만 고독하기 그지없는 사막에서 두 번째 변화가 일어난다. 여기에서 정신은 사자가 된다. 정신은 자유를 쟁취하려 하고 사막의 주인이 되고자 한다. 정신은 여기에서 그의 마지막 주인을 찾는다. 정신은 마지막 주인, 최후의 신에게 대적하려 하며, 승리를 위해 정신은 이 거대한 용과 일전을 벌이려 한다. 정신이 더 이상 주인으로 신으로 여기지 않으려는 거대한 용은 무엇인가? 너는 해야 한다, 이것이 그 거대한 용의 이름이다. 그러나 사자의 정신은 이에 대항하여 ‘나는 원한다’라고 말한다. … 새로운 가치의 창조. 이것은 사자도 아직 이루지 못하는 일이다. 그러나 새로운 창조를 위한 자유의 획득, 이것은 사자의 힘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자유를 쟁취하고 의무 앞에서도 신성하게 아니요, 라고 말할 수 있기 위해서는, 형제들이여, 사자가 되어야 한다. 새로운 가치를 위한 권리를 쟁취하는 것, 이것은 인내심 많고 외경심을 가진 정신에게 주어질 수 있는 가장 놀라운 소득이다. 참으로 그 정신에게 있어 그것은 강탈이며 강탈하는 짐승에게 주어진 일이다. 정신도 한때 너는 해야 한다를 가장 신성한 것으로서 사랑했다. 하지만 이제 정신은 가장 신성한 것에서도 미혹(迷惑)과 자의(恣意)를 찾아내야 한다. 그의 사랑으로부터 자유를 강탈해 내려면 말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강탈을 위해 사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말하라, 형제들이여. 사자도 하지 못한 일을 어떻게 아이가 할 수 있단 말인가? 강탈하는 사자가 이제는 왜 아이가 되어야만 하는가? 아이는 순진무구함이며 망각이고, 새로운 출발, 놀이, 스스로 도는 수레바퀴, 최초의 움직임이며, 성스러운 긍정이 아닌가. 그렇다. 창조라는 유희를 위해서는, 형제들이여, 성스러운 긍정이 필요하다. 이제 정신은 자신의 의지를 원하고 세계를 상실한 자는 이제 자신의 세계를 되찾는다. 나는 그대들에게 세 단계 변화에 대해 말했다, 어떻게 하여 정신이 낙타가 되었고, 낙타는 사자가 되었으며, 사자는 아이가 되었는가를.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56장

“아는 자는 말하지 않고, 말한 자는 알지 못한다[知者弗言, 言者弗知]. 그 구멍을 막고 그 문을 폐쇄하며[塞其兌, 閉其門] 그 날카로움을 꺾고 그 구분을 해소하며[挫其銳, 解其分] 그 빛을 조화시키고 그 세속에 같아진다[和其光, 同其塵]. 이것을 현동이라고 한다[是謂玄同]. 그러므로 친할 수도 없고[故不可得而親] 소원할 수도 없으며[不可得而疏] 이로울 수도 없고[不可得而利] 해로울 수도 없으며[不可得而害] 귀할 수도 없고[不可得而貴] 천할 수도 없다[不可得而賤]. 그러므로 천하에서 귀하게 된다[故爲天下貴].”

☞ “‘그 구멍을 막고’부터 ‘그 세속에 같아진다’까지는 이 세계가 관계와 변화 속에 있다는 자연의 존재형식을 모델로 하여 자신을 우뚝 세우지 않고 반대편과의 관계 속으로 해소시킨다는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이렇게 하면, 주위의 다른 것들과 조화를 이루고 같아지는 효과를 거두는데, 이런 상태를 노자는 ‘현묘하게 같아진다’, 즉 현동(玄同)이라는 개념으로 부른다.”(최진석, 416)

• 70장

“내 말은 이해하기도 아주 쉽고 행하기도 아주 쉬운데, 세상에서는 이해하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하는구나. 말에는 종지가 있고 실천 방안에는 근거가 있음에도, 그러함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구나. 나를 이해하는 자도 드물고 나를 따르는 자도 보기 힘들다. 그래서 도를 체득한 사람은 갈포를 걸친 채 옥을 품고 있는 것이다[是以聖人被褐而懷玉].”

󰃫 “갈포를 걸쳤다는 것은 그 속세와 함께 한다는 뜻이고, 옥을 품고 있다는 것은 그 참됨을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다는 뜻이다. 성인을 이해하기 어려운 까닭은, 그가 속세에 있지만 보통 사람들과 달라 보이지 않고, 옥을 품고 있지만 전혀 변질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아주 고귀하다.”(왕필, 󰡔노자주(老子注)󰡕)

• 71장

“아는 사람은 잘 모르겠다 하는데 이것이 최상의 덕이다[知不知, 上]. 잘 모르는 사람은 오히려 안다고 하는데 이것은 병이다[不知知, 病]. 성인은 이런 병을 앓지 않는데, 병을 병으로 알기 때문이다[聖人不病, 以其病病]. 이 때문에 병이 되지 않는 것이다[是以不病].”

☞ “아는 사람이 잘 모르겠다고 할 때의 부지(不知)는 단순히 모른 척한다거나 무지한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구분의 기능을 하는 지적 체계 안에다 담지 않는다는 뜻이다. 자신이 아는 내용을 굳건한 체계적 형태로 만들어 이데올로기화하지 않는다는 뜻이 들어 있다. 그런데 진정한 앎에 이르지 못한 사람은 자신이 아는 내용을 체계화하거나 이념화해서 결국 다른 체계와 분명한 선을 그으려 하게 되는데, 노자는 이것을 아주 잘못된 것, 즉 병이라고 한다. 성인은 그와 같은 지적 활동이 아주 잘못된 것임을 알기 때문에 그런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최진석, 498)

• 80장

“나라를 작게 하고 백성의 수를 적게 하라[小國寡民]. 많은 도구가 있더라도 쓸 일이 없게 하고, 백성들로 하여금 죽음을 중히 생각하여 멀리 가지 않도록 한다. 배와 수레가 있더라도 탈 일이 없고 군대가 있더라도 펼칠 일이 없다. 백성들로 하여금 결승 문자를 회복하여 쓰게 한다. 그 음식을 맛있어 하고[甘其食] 그 옷을 곱다고 여기며[美其服] 그 거처를 편안해 하고[安其居] 그 풍속에 기꺼워한다[樂其俗]. 옆 나라끼리 서로 바라다 보이고, 개 짖는 소리나 닭 우는 소리가 서로 들려도, 백성들을 늙어 죽을 때까지 서로 왕래하지 않는다.”

 ☞ “나라를 작게 유지하는 원시 공동체로 돌아가자는 의미라기보다는 나라를 작게 유지하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익명성이 사라지고 서로 직접적으로 접촉하게 되어 인간에게 원래 있는 자연적 내재성이 훨씬 더 잘 보장될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 여기에는 차이와 다양성을 인정하자는 노자의 주장이 들어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하나의 문명관(특히 서구적 문명관)으로 우열을 가늠하는 데에 익숙해 있다. 그래서 다른 것들끼리의 공존보다는 선/악/, 진/위, 지배/피지배의 구도로 세계는 흘러왔다. 우리가 차이와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의 단일한 가치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강자의 지배와 공격은 악으로 다뤄질 수 없고, 오히려 선의 행사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노자는 ‘네가 먹고 있는 음식을 맛있어 하고, 네가 입고 있는 옷을 아름답다고 여기며, 네가 살고 있는 그곳을 편안하게 생각하며, 네가 누리고 있는 그 풍속에 즐거워하라’고 말한다. … 지족(知足)과 관련이 된다 … 거피취차(去彼取此)의 또 다른 응용이다.”(최진석, 542⋅544)

󰃫 “부유한 사람들이 이 오두막을 본다면 아마 웃을지도 모른다. 내가 소박한 인도사람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나는 간디의 오두막보다 더 큰 가옥이 있어야 할 까닭을 알 수 없었다. 오두막은 나무와 진흙으로 만들어져 있다. 이 오두막을 짓는 작업은 인간의 손으로 이루어졌고, 단 하나의 기계도 사용되지 않았다. 나는 오두막이라고 불렀지만, 실은 훌륭한 집이다. 집과 가옥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가옥은 사람들이 가구들과 소유물들을 보관하는 곳이다. 그것은 사람들 자신보다는 가구의 안전과 편이를 위해 마련된 곳이다.

델리에서 내가 머문 가옥은 많은 편의시설이 있었다. 그 건물은 이러한 편의시설들의 관점에서 건축되었다. 그것은 시멘트와 벽돌로 만들어졌고, 가구와 기타 편의시설들이 잘 어울리는 상자 같은 것이었다. 우리는 우리가 평생 동안 끊임없이 수집하는 가구나 기타 물품들이 우리에게 내면적 힘을 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 그러한 편의물들을 우리가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그 물건들에 대한 우리의 의존도는 더 커진다. 다른 한편, 간디의 오두막에서 내가 발견한 가구는 전혀 다른 차원에 속하는 것이었다. 그 가구에 사람이 의존적으로 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사람들은 건강을 위해서 병원에 의존하고,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서 학교에 의존한다. 그런데 실제로는 병원의 수는 그만큼 사람들의 불건강을 나타내고, 학교의 수는 그만큼 사람들의 무지의 정도를 나타낸다. 그와 마찬가지로, 소유물의 증가는 창조성의 표현을 줄어들게 한다.

역설적인 것은 많이 가진 사람들이 우월한 존재로 간주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불행한 일이다. … 간디의 오두막에 앉아 있는 동안 나는 이러한 뒤틀림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면서 마음이 슬펐다. 간디가 살았던 이 오두막보다 더 큰 장소를 가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마음과 몸과 생활방식에서 가난한 자들이다. 그들은 자연과 거의 아무런 관계를 갖지 않으며, 그들의 동료 인간들과 거의 아무런 친밀성을 갖고 있지 않다. 내가 설계가들에게 어째서 그들은 간디가 우리에게 가르쳐 준 소박한 접근방법을 이해하지 못하는가 하고 물었을 때, 그들은 간디의 방식이 너무 어렵고 사람들이 그걸 따를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한 단순한 원리가 이해되지 않고 있다니 어떻게 된 일일까? 실제에 있어서, 일반 민중은 그러한 단순성의 원리를 완전히 이해하고 있다. 이해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무엇인가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뿐이다. (이반 일리치, ｢간디의 오두막｣)

[멧새]

오늘 남부도서관에서 있었던 책읽기 모임에 배부한 자료입니다. 다음 2월 20일에는, 사마천의 <사기>를 다룰 예정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