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의 성소와 하늘의 성소
(히 9:1-10)
¶히브리서 8장과 9장에는 ‘첫 장막 즉, 세상에 속한 장막’(9:1-3)과 “성소와 참 장막”(8:2)이 뚜렷이 구별되어 나타난다. 첫 장막 곧 세상에 속한 성소는 성소와 지성소로 나누어진 모세의 성막과 솔로몬의 성전을 가리킨다.
그러나 8:2과 9:8에 나오는 “성소”는 하늘에 있는 참 장막과 영원한 장막으로서 하나님과 예수님께서 계신 하늘 보좌를 가리킨다. 이 두 가지 구분은 헬라어의 사용에서 뚜렷이 드러난다. “세상에 속한 성소”(ἄγιον κοσμίκον, 9:1)나 “상과 진설병이 있으니 이는 성소라”(9:2)는 말에서 ‘성소’를 그냥 Ἅγια로만 기록했다.
그 성막의 성소와 지성소를 구별하기 위해 ‘지성소’(9:3)를 Ἅγια Ἁγιων 이라고만 기록하였다. 그러나 8:2의 “성소”는 τῷν ἁγοων이라고 기록함으로 정관사 τῷν을 붙여서 사용하였다. 뿐만 아니라 9:8의 “성소”라는 단어에도 τὴν τῷν ἁγίων이라고 기록함으로 ‘하기온’(거룩한) 앞에다 정관사를 두 번씩 사용하였다. 그렇게 함으로 9:1-3에 나오는 “세상에 속한 성소”와 구별하였다.
그러므로 9:2의 “성소”와 8:2과 9:8에 나오는 “성소”는 ‘땅에 있는 성막과 성전의 성소’와 ‘하늘에 있는 성소’의 다른 의미로 사용되었다는 점을 잘 이해하지 않으면 혼돈이 온다. 그래야만 9:8의 전체 의미를 잘 이해할 수 있다. 9:8의 의미를 다시 의역해 보자면 이렇다. ‘성령이 이(구약의 제사제도)로써 보이신 것은 첫 장막(모세의 성막이나 솔로몬 성전)이 서 있을 동안에는 하늘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라.’
¶이 구별이 되어야만 구약의 제사 제도에 있었던 성소와 지성소의 의미가 그림자일 뿐이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7, 8장에서는 혈통을 따르는 아론의 후손들의 제사장과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예수 그리스도 대제사장 사이의 차이를 말하고 있다면, 8, 9장에는 땅에 있었던 성소와 하늘에 있는 성소를 구분해서 설명함으로 땅에 있었던 성막이나 성전의 모든 것은 하늘에 있는 참 장막, 참 성소를 위한 그림자였을 뿐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히브리서 기자는 왜 9:1-7절까지 구약의 성막과 제사제도에 대해 길게 설명하고 있는가? 히브리 민족이었던 유대인들이 기독교로 전향해 왔으므로 구약의 모든 제사제도를 알고 있다. 그 제사와 예수 그리스도께서 드린 제사의 의미를 비교 설명하기 위함이다. 그 차이는? “제사장들이 항상 첫 장막(성소)에 들어가 섬기는 예식을 행하고 오직 둘째 장막(지성소)은 대제사장이 홀로 일 년에 한 번 들어가되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 피 없이는 아니하나니”(6, 7)
이 구절과 대조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은 어떤가?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11, 12) 이 차이를 매우 분명하게 설명하기 위하여 구약의 제사제도를 길게 말한 것이다.
¶그 둘 사이의 차이를 말하기 위해 저자는 모세의 성막과 솔로몬의 성전을 통해서 성령이 보이신 것은 그것이 서 있을 동안에는 하늘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고 말한 것이다(9:8). 그 하늘 성소에 모든 성도들이 다 직접 들어가 하나님 앞에 직접 나아갈 수 있도록 예수님께서는 성전의 지성소로 들어가는 휘장을 찢으신 것이다.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마 27:51)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히 9:24)
지상에 있었던 성막과 성전은 현재까지의 비유다(9:9). 그러므로 드리는 예물과 제사는 섬기는 자를 그 양심상 온전하게 할 수 없다. 비유이며 그림자며 예표일 뿐이지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구약의 성전에서 행한 모든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일 뿐이며 개혁할 때까지 맡겨둔 것에 불과한 것이다(9:10).
구약의 제사와 제물이 섬기는 이로 하여금 양심까지 깨끗하게 할 수 없지만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할” 수 있다(9:14). 매우 분명하고 명확한 차이를 이해한다면 이단들이 주장하는 초막절이나 유월절 같은 절기를 지켜야 한다는 말은 결코 할 수 없을 것이다.
김영엽 목사(다움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