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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그대로 보고, 익숙한 세계에서 나만의 아름다움을 발견한다”는 말의 정확한 의미
= 사진적 관찰, 관념, 구체성 및 미적 발견에 관한 비판적 연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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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 글은
“있는 그대로 관찰한다”,
“관념을 넘어 구체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익숙한 세계를 새롭게 본다”,
“나만의 아름다움을 발견한다”는 사진적 명제의 이론적 타당성을 검토한다.
이 문구들은 사진가의 태도를 설명하는 데 유용하지만,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면 몇 가지 오류가 발생한다.
첫째, 인간은 몸·기억·주의·문화적 지식에서 완전히 벗어나 세계를 볼 수 없다.
둘째, 사진은 현실과 물리적으로 연결되지만 현실 전체를 중립적으로 복사하지 않는다.
셋째, 세밀한 관찰이 반드시 새로운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니다.
넷째, 개인의 시선 역시 사회적·문화적 조건으로부터 독립하지 않는다.
따라서
‘있는 그대로 보기’는 무관점의 객관성이 아니라 판단을 잠정적으로 유보하는 관찰 태도로,
‘관념을 넘어서기’는 생각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따라 생각을 수정하는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
또한 ‘새로운 아름다움’은 대상 안에 미리 완성되어 있던 본질이 아니라 현실의 구체적 특성, 사진가의 선택, 사진의 형식, 관객의 경험과 사회적 맥락이 만나면서 형성되는 미적 가치로 규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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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어: 사진적 관찰, 관념, 구체성, 낯설게 하기, 미적 판단, 사진의 현실성, 동시대 사진
[1] 서론
사진교육과 작가노트에서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라”, “고정관념을 버리고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라”, “일상에서 나만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라”는 표현이 자주 사용된다. 이러한 문구는 사진가에게 세밀한 관찰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순수한 관찰’, ‘사진의 객관성’, ‘아름다움의 발견’, ‘개인적 시선’에 관한 여러 가정이 들어 있다.
이 문구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사진가는 자신의 관점이 개입되지 않은 채 현실을 볼 수 있고, 카메라는 그 현실을 중립적으로 기록하며, 대상 속에 숨어 있는 아름다움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지각의 현상학, 사진매체론, 기호학, 사회학과 동시대 예술론은 이러한 전제를 그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본고는 각 문구를 개별적으로 분석한 뒤, 실제 사진작업에 적용할 수 있는 보다 정확한 명제로 재구성하고자 한다. 연구방법은 관련 이론과 선행 문헌을 비교·검토하는 문헌연구 방식이다.
[2] “있는 그대로 관찰한다”는 명제
1. 순수한 무관점의 관찰은 가능한가
(1) 후설(Edmund Husserl)은 현상학적 환원과 판단중지의 방법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판단중지는 모든 지식과 경험을 완전히 제거하여 순수한 현실에 도달하는 방법이 아니다. 그것은 평소 당연하다고 믿었던 판단을 잠정적으로 유보하고, 대상이 의식에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는지를 다시 검토하는 태도이다.
따라서 사진에서 “있는 그대로 본다”는 말도 사진가가 아무런 관점 없이 현실을 본다는 뜻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자신이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한 의미를 잠시 보류하고, 대상이 실제로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다시 살피는 방법으로 이해해야 한다.
(Edmund Husserl, 「Edmund Husserl」,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https://plato.stanford.edu/entries/husserl/)
(2)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는 지각을 외부 세계가 의식에 그대로 찍히는 과정으로 보지 않았다. 인간은 몸을 가지고 특정한 장소에 서 있으며, 그 위치에서 움직이고 행동하면서 세계를 경험한다. 무엇이 크게 보이고 작게 보이는지, 무엇이 가려지고 드러나는지는 관찰자의 몸과 위치에 따라 달라진다.
사진가 역시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 중립적인 눈이 아니다. 사진가가 서 있는 높이, 대상과의 거리, 몸을 움직일 수 있는 범위와 현장에서 느끼는 감정이 관찰에 개입한다. 따라서 “있는 그대로 본다”는 말이 ‘몸과 위치를 초월한 객관적 관찰’을 뜻한다면 이론적으로 성립하기 어렵다.
(Maurice Merleau-Ponty, 「Maurice Merleau-Ponty」,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https://plato.stanford.edu/entries/merleau-ponty/)
(3) 인지심리학의 비주의 맹시 연구도 시각이 현실 전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사람은 특정한 과제나 대상에 주의를 집중할 때 눈앞에 분명히 나타난 다른 대상도 발견하지 못할 수 있다. 이는 ‘눈에 들어온 것’과 ‘의식적으로 본 것’이 같지 않다는 뜻이다.
(Kreitz, C. 외, 「Inattentional Blindness and Individual Differences in Cognitive Abilities」:
https://pmc.ncbi.nlm.nih.gov/articles/PMC4530948/)
2. “있는 그대로”의 타당한 의미
그렇다고 모든 관찰이 허구이거나 현실과 무관하다는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된다. 사람은 현실의 제약을 받으며, 자신의 예상과 다른 것을 실제로 발견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관점의 존재 자체가 아니라 자신의 관점을 절대적인 사실로 착각하는 데 있다.
따라서 “있는 그대로 관찰한다”는 말은 존재론적 명제가 아니라 방법론적·윤리적 명제로 수정해야 한다. 즉 현실을 완전하게 소유했다는 주장이 아니라 현실이 자신의 생각과 다르게 나타날 가능성을 열어 두는 태도이다.
‘있는 그대로 관찰한다’는 것은 관점 없이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이미 내린 판단을 잠시 유보하고 실제로 나타나는 세부와 관계가 자신의 예상과 어떻게 다른지 확인하는 것이다.
[3] “관념을 넘어 구체적으로 본다”는 명제
1. 관념은 제거 대상이 아니다
아른하임(Rudolf Arnheim)은 시각적 지각을 현실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조직하고 이해하는 과정으로 보았다. 우리는 형태, 방향, 균형, 중심과 주변을 구분하며 대상을 본다. 그러므로 ‘보기’와 ‘생각하기’를 완전히 분리할 수 없다.
(Rudolf Arnheim, 「The Intelligence of Vision: An Interview with Rudolf Arnheim」, Cabinet Magazine:
https://www.cabinetmagazine.org/issues/2/grundmann_arnheim.php)
사진작업 역시 생각 없이 시작되지 않는다. “아파트는 어떻게 개인의 삶을 규격화하는가”, “출퇴근길에 우리는 무엇을 보지 못하는가”와 같은 관념은 작업을 시작하게 만드는 질문이 될 수 있다.
문제는 처음의 관념을 최종 결론으로 고정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노인은 외롭다”는 관념을 먼저 확정하면 사진가는 혼자 있는 노인만 찾게 된다. 함께 웃거나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모습은 자신의 주제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제외할 수 있다. 이 경우 현실은 탐구 대상이 아니라 이미 만들어진 생각을 증명하는 자료로 축소된다.
관념을 넘어선다는 것은 생각을 없애는 것이 아니다. 관찰한 현실이 처음의 생각을 수정하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관념 → 관찰 → 예상과 다른 사실의 발견 → 관념의 수정 → 재촬영
이 순환이 반복될 때 관념은 현실을 억압하는 결론이 아니라 현실을 더 깊이 탐구하게 만드는 질문으로 작동한다.
2. 구체성의 사진적 의미
‘시간’, ‘기억’, ‘소외’, ‘상실’은 추상적인 개념이다. 이러한 개념은 빛을 반사하는 물리적 대상이 아니므로 카메라가 그것 자체를 직접 기록할 수는 없다. 그러나 사진은 구체적인 사물과 관계를 통해 추상적 개념을 표현하거나 암시할 수 있다.
시간은 햇빛에 바랜 간판, 닳은 계단, 여러 번 덧칠된 문으로 나타날 수 있다. 기억은 오래 사용한 물건, 비어 있는 자리, 과거 사진과 현재 사진의 병치로 표현될 수 있다. 소외는 한 사람의 뒷모습만으로 확정되지 않지만 사람 사이의 거리, 만나지 않는 시선, 막힌 동선과 분리된 공간을 통해 암시될 수 있다.
바르트(Roland Barthes)는 사진에서 눈에 보이는 문자적 내용과 문화적으로 형성되는 함축적 의미를 구별하였다. 사진에 노인이 혼자 앉아 있다는 것은 비교적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지만, 그 사람이 외롭다는 판단은 문화적 코드와 관객의 해석이 더해진 결과이다. 따라서 사진가는 ‘보이는 사실’과 ‘그 사실에 부여한 의미’를 구분해야 한다.
(Roland Barthes, 「Rhetoric of the Image」:
https://williamwolff.org/wp-content/uploads/2014/08/Barthes-Rhetoric-of-the-image-ex.pdf)
그러므로 구체적으로 본다는 것은 추상적 개념을 포기한다는 뜻이 아니다. 개념을 곧바로 화면에 투사하지 않고, 그 개념을 생각하게 하는 표면·흔적·거리·행동·반복·차이를 관찰하는 것이다.
[4] 사진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담는가
1. 사진의 현실적 연결
사진은 촬영 당시 대상에서 반사되거나 나온 빛이 광학장치와 감광재료 또는 이미지 센서에 작용하여 형성된다. 이러한 점에서 사진은 현실과 물리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바르트는 이를 “그것이 존재했음”이라는 사진의 특수한 시간성으로 설명하였다. 사진은 적어도 어떤 대상이나 빛의 상태가 카메라 앞에 존재했다는 강한 현실감을 제공한다.
그러나 이 존재 증명만으로 사진의 의미까지 결정되지는 않는다. 어떤 사람이 실제로 혼자 있었다는 사실과 그 사람이 외로웠다는 해석은 서로 다르다.
(Roland Barthes, 『Camera Lucida』 서지 및 개념 정보:
https://en.wikipedia.org/wiki/Camera_Lucida_(book))
2. 사진의 선택과 변환
자코우스키(John Szarkowski)는 사진의 특성을 ‘대상 자체’, ‘세부’, ‘프레임’, ‘시간’, ‘시점’으로 구분하였다. 사진가는 현실 전체를 옮기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세부를 선택하고, 프레임으로 안과 밖을 나누며, 시간의 한 부분을 잘라 내고, 특정한 위치에서 대상을 바라본다.
(John Szarkowski, 「The Photographer’s Eye」, The Museum of Modern Art:
https://www.moma.org/docs/press_archives/3413/releases/MOMA_1964_Reopening_0039_1964-05-27.pdf)
따라서 사진은 현실과 무관한 허구도 아니고 현실 그 자체도 아니다. 사진은 현실의 물리적 흔적이면서 동시에 촬영자의 선택과 매체의 변환을 거친 이미지이다. 사진의 객관성과 주관성을 둘 중 하나로만 규정하는 것은 잘못이다.
객관성을 높이기 위한 동일한 거리, 같은 렌즈, 일정한 조명, 반복 촬영과 유형학적 배열도 가능하다. 그러나 이러한 절차는 사진가의 선택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선택의 기준을 일관되게 공개하고 통제하는 방법이다. 사진의 객관성은 완전한 중립성이 아니라 검토 가능한 촬영 절차와 자료 제시의 투명성에 가깝다.
[5] “익숙한 세계를 새롭게 본다”는 명제
1. 자동화된 지각과 낯설게 하기
시클롭스키(Viktor Shklovsky)는 익숙한 대상에 대한 지각이 반복되면 점차 자동화된다고 보았다. 우리는 대상을 충분히 경험하기보다 그것의 이름과 용도만 빠르게 확인하고 지나간다. 예술의 ‘낯설게 하기’는 이러한 자동화된 지각을 방해하고 대상을 다시 오래 경험하게 만드는 형식적 장치이다.
(Viktor Shklovsky, 「Art as Technique」, California Institute of Technology 자료:
https://www.paradise.caltech.edu/ist4/lectures/Viktor_Sklovski_Art_as_Technique.pdf)
사진에서 낯설게 하기는 단순히 카메라를 기울이거나 극단적인 앵글을 사용하는 것과 같지 않다. 기울어진 화면이나 강한 흔들림도 반복되면 하나의 상투적인 형식이 된다. 중요한 것은 형식적 기교가 관객의 지각을 실제로 늦추고, 대상의 새로운 관계를 보게 하는가이다.
2. 동시대 사진에서의 일상성
1975년의 《뉴 토포그래픽스》는 장엄하고 초월적인 자연풍경 대신 산업시설, 교외주택, 주차장과 인간이 변형한 일상적 풍경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 변화는 평범한 대상을 예쁘게 만드는 데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무엇을 풍경으로 보고 무엇을 촬영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는가를 다시 질문하게 하였다.
(William Jenkins 기획, 「New Topographics: Photographs of a Man-Altered Landscape」, San Francisco Museum of Modern Art:
https://www.sfmoma.org/exhibition/new-topographics/)
코튼(Charlotte Cotton)도 동시대 사진이 평범한 사물과 일상의 행동뿐 아니라 연출, 수행, 기록, 아카이브 등 다양한 방식을 사용한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평범한 대상을 찍었다는 이유만으로 사진이 동시대적인 것은 아니다. 그 대상을 선택한 이유, 사용한 방법, 이미지의 배열과 작업이 제기하는 질문까지 함께 검토해야 한다.
(Charlotte Cotton, 『The Photograph as Contemporary Art』, Google Books:
https://books.google.com/books/about/The_Photograph_as_Contemporary_Art.html?id=HsNLAQAAIAAJ)
[6] “새로운 아름다움이 사진에 담긴다”는 명제
1. 관찰은 아름다움을 보장하지 않는다
“자세히 관찰하면 새로운 아름다움이 나타난다”는 문장은 논리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세밀한 관찰의 결과로 발견되는 것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지루함, 모순, 불안, 폭력과 부조리일 수도 있다. 동시대 예술에서는 이러한 불편한 경험 역시 중요한 미적·비평적 가치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자세히 보는 행위는 아름다움의 충분조건이 아니다. 그것은 기존의 판단 때문에 보이지 않았던 특징과 관계를 발견할 가능성을 높이는 조건이다.
2. 아름다움과 예쁨의 구별
칸트(Immanuel Kant)는 미적 판단을 단순한 객관적 사실판단과 구분하였다. 아름답다는 판단은 주체의 느낌에서 출발하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도 동의할 수 있다는 보편적 소통 가능성을 요구한다. 따라서 아름다움은 대상 안에서 측정되는 물리적 속성도 아니고, 아무런 근거가 필요 없는 개인적 기분도 아니다.
(Nick Zangwill, 「Aesthetic Judgment」,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https://plato.stanford.edu/entries/aesthetic-judgment/)
사진에서 아름다움은 화려한 색, 완벽한 비례와 장엄한 풍경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낡은 표면에 축적된 시간, 질서와 혼란의 충돌, 서로 맞지 않는 색과 형태, 설명할 수 없지만 시선을 머물게 하는 낯섦도 미적 경험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아름다움은 대상 속에 완성되어 있다가 카메라에 그대로 옮겨지는 본질이 아니다. 현실의 특징, 사진가의 선택, 프레임과 시간의 구성, 전시 방식, 관객의 경험이 서로 작용하는 가운데 형성되는 판단이다.
3. 사진은 아름다움의 기준을 확장한다
손택(Susan Sontag)은 사진이 새로운 시각적 코드를 가르치며, 무엇이 볼 가치가 있는가에 관한 우리의 생각을 바꾸고 확장한다고 주장하였다. 사진은 이미 아름답다고 인정된 것을 재현할 뿐 아니라, 이전에는 하찮거나 추하다고 여긴 대상에도 시각적 가치를 부여한다.
(Susan Sontag, 「Photography」, The New York Review of Books:
https://www.nybooks.com/articles/1973/10/18/photography/)
그러나 사진이 모든 것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은 동시에 위험을 가진다. 가난, 질병, 재난과 타인의 고통이 세련된 구도와 빛을 통해 감상하기 좋은 이미지로 바뀌면 현실의 원인과 대상의 존엄성이 가려질 수 있다. 후기의 손택은 고통의 사진이 하나의 고정된 반응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연민, 분노, 복수심, 무관심 등 서로 다른 반응을 낳을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미적 형식 자체를 비윤리적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형식이 현실을 어떻게 바꾸어 보이게 하는지는 반드시 검토해야 한다.
(Susan Sontag, 『On Photography』:
https://books.google.com/books/about/On_Photography.html?id=SZx8ZBrkHygC)
(Susan Sontag, 『Regarding the Pain of Others』:
https://books.google.com/books/about/Regarding_the_Pain_of_Others.html?id=MsvSlvZVWk0C)
[7] “나만의 아름다움을 발견한다”는 명제
1. 개인의 시선은 사회적으로 형성된다
부르디외(Pierre Bourdieu)는 사진을 개인의 자유로운 취향만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무엇을 촬영하고 어떤 사진을 좋은 사진이라고 판단하는가는 가족, 계층, 교육, 사진문화와 사회적 관습의 영향을 받는다.
(Pierre Bourdieu, 『Photography: A Middle-Brow Art』, Stanford University Press:
https://www.sup.org/books/sociology/photography)
따라서 ‘나만의 시선’을 사회와 문화에서 완전히 독립된 순수한 내면의 표현으로 이해하는 것은 오류이다. 사진가가 자연스럽다고 믿는 구도와 아름다움의 기준도 사진교육, 광고, 미술사와 이미 보았던 사진들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그렇다고 개인적 차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얼굴보다 손의 움직임을 보고, 완성된 건물보다 수리한 자국을 보며, 장엄한 풍경보다 구석의 작은 물건에 반복해서 관심을 둔다. 이러한 선택이 여러 작업에서 지속되고 비평적으로 발전할 때 고유한 사진적 태도가 형성된다.
2. 발견과 구성의 동시성
“나만의 아름다움을 발견한다”는 말은 아름다움이 대상 속에 완성된 상태로 숨어 있다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사진가는 대상을 발견하는 동시에 촬영 위치, 시간, 프레임, 인화, 편집과 배열을 통해 그것을 구성한다.
따라서 사진적 아름다움은 순수한 발견도 아니고 전적인 창조도 아니다. 사진가가 현실에서 어떤 가능성을 발견하고, 그것을 사진적 형식으로 조직하며, 관객이 자신의 경험과 문화적 지식을 통해 다시 해석하는 과정이다.
[8] 실제 사진작업에의 적용
아파트 분리수거장을 촬영한다고 가정하자. 처음부터 “현대사회의 소비와 폐기”라는 결론을 정하면 작업은 그 주제를 상징하는 장면을 수집하는 데 머물 수 있다.
반대로 다음과 같은 구체적 사실을 반복해서 관찰할 수 있다.
① 물건이 들어오고 사라지는 시간
② 주민마다 다른 분류 방식
③ 관리인이 다시 정돈한 흔적
④ 버려진 물건에 남아 있는 개인의 취향
⑤ 깨끗함과 오염을 나누는 경계
⑥ 공동체의 규칙과 개인 행동의 충돌
⑦ 비와 햇빛에 따라 변하는 포장재의 표면
이러한 관찰을 거치면 처음의 ‘소비와 폐기’라는 주제가 ‘개인의 생활 흔적이 공동체의 규칙 속에서 익명의 폐기물로 전환되는 과정’으로 수정될 수 있다.
이것이 관념을 넘어 구체적으로 본다는 실제 의미이다. 생각을 버린 것이 아니라, 현실의 관찰을 통해 생각을 더 정확하고 복합적인 질문으로 바꾼 것이다. 여기에서 발생하는 아름다움도 단순한 색과 구도의 아름다움이 아니다. 개인과 공동체, 사용과 폐기, 질서와 혼란이 한 공간에서 충돌하는 관계의 밀도가 미적 경험을 만드는 것이다.
[9] 결론
본 연구의 검토 결과,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관념을 넘어 구체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익숙한 세계에서 나만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는 문장은 사진가의 태도를 설명하는 은유로서는 유효하지만, 객관적인 사진이론의 명제로는 수정이 필요하다.
첫째, 인간은 몸·주의·기억·문화적 지식에서 완전히 벗어나 현실을 볼 수 없다. 따라서 ‘있는 그대로 보기’는 무관점의 관찰이 아니라 기존 판단을 잠시 유보하는 태도이다.
둘째, 관념은 제거해야 할 장애물이 아니라 현실을 탐구하게 만드는 출발점이다. 중요한 것은 관념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관찰한 사실에 따라 그것을 수정하는 것이다.
셋째, 사진은 현실과 물리적으로 연결되지만 현실 전체와 동일하지 않다. 사진은 세부, 프레임, 시간과 시점의 선택을 통해 현실을 변환한다.
넷째, 세밀한 관찰이 반드시 아름다움을 낳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기존의 미적 기준에서 제외되었던 대상과 관계를 발견할 가능성을 높인다.
다섯째, ‘나만의 아름다움’은 사회와 문화로부터 독립된 순수한 개인 취향이 아니다. 반복된 관심과 선택을 역사적·사회적 맥락 안에서 비평적으로 발전시킨 결과이다.
따라서 전체 명제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익숙한 세계를 새롭게 본다는 것은 아무런 관념 없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복사하는 일이 아니다. 자신이 이미 알고 있다고 믿는 판단을 잠시 유보하고, 현실의 표면·흔적·공간적 관계·시간적 변화를 세밀하게 관찰하며, 예상과 다른 사실에 따라 처음의 생각을 수정하는 과정이다. 사진가는 그 현실의 일부를 특정한 위치와 순간에서 선택하고 사진적 형식으로 구성한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습관과 미적 규범 때문에 보이지 않았던 차이와 관계가 새롭게 드러날 수 있다. 이때의 아름다움은 대상 안에 숨어 있던 고정된 본질이 아니라 현실, 사진가의 선택, 이미지의 형식, 관객의 경험과 사회적 맥락이 상호작용하면서 형성되는 미적 가치이다.
References
[1] Arnheim, Rudolf. “The Intelligence of Vision: An Interview with Rudolf Arnheim.” Cabinet Magazine, no. 2, 2001.
https://www.cabinetmagazine.org/issues/2/grundmann_arnheim.php
[2] Barthes, Roland. “Rhetoric of the Image.” In Image–Music–Text, translated by Stephen Heath, pp. 32–51. New York: Hill and Wang, 1977.
https://williamwolff.org/wp-content/uploads/2014/08/Barthes-Rhetoric-of-the-image-ex.pdf
[3] Barthes, Roland. Camera Lucida: Reflections on Photography. Translated by Richard Howard. New York: Hill and Wang, 1981.
https://books.google.com/books/about/Camera_Lucida.html?id=SThsAAAAIAAJ
[4] Bourdieu, Pierre, Luc Boltanski, Robert Castel, Jean-Claude Chamboredon, and Dominique Schnapper. Photography: A Middle-Brow Art. Translated by Shaun Whiteside. Stanford: Stanford University Press, 1990.
https://www.sup.org/books/sociology/photography
[5] Cotton, Charlotte. The Photograph as Contemporary Art. 2nd ed. London: Thames & Hudson, 2009.
https://books.google.com/books/about/The_Photograph_as_Contemporary_Art.html?id=HsNLAQAAIAAJ
[6] Husserl, Edmund. “Edmund Husserl.”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revised 2025.
https://plato.stanford.edu/entries/husserl/
[7] Jenkins, William, ed. New Topographics: Photographs of a Man-Altered Landscape. Exhibition originally organized at George Eastman House, 1975. San Francisco Museum of Modern Art exhibition resource.
https://www.sfmoma.org/exhibition/new-topographics/
[8] Kreitz, Carina, Philipp A. Furley, Daniel J. Memmert, and others. “Inattentional Blindness and Individual Differences in Cognitive Abilities.” PLoS ONE, vol. 10, no. 8, 2015.
https://pmc.ncbi.nlm.nih.gov/articles/PMC4530948/
[9] Merleau-Ponty, Maurice. Phenomenology of Perception. Translated by Donald A. Landes. London and New York: Routledge, 2012. Originally published in French in 1945.
https://www.routledge.com/Phenomenology-of-Perception/Merleau-Ponty/p/book/9780415834339
[10] Merleau-Ponty, Maurice. “Maurice Merleau-Ponty.”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2016, subsequently revi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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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Shklovsky, Viktor. “Art as Technique.” Originally published in 1917. English translation reproduced by the California Institute of Technology.
https://www.paradise.caltech.edu/ist4/lectures/Viktor_Sklovski_Art_as_Technique.pdf
[12] Sontag, Susan. “Photography.” The New York Review of Books, October 18, 1973.
https://www.nybooks.com/articles/1973/10/18/photography/
[13] Sontag, Susan. On Photography. New York: Farrar, Straus and Giroux, 1977.
https://books.google.com/books/about/On_Photography.html?id=SZx8ZBrkHygC
[14] Sontag, Susan. Regarding the Pain of Others. New York: Farrar, Straus and Giroux, 2003.
https://books.google.com/books/about/Regarding_the_Pain_of_Others.html?id=MsvSlvZVWk0C
[15] Szarkowski, John. The Photographer’s Eye. New York: The Museum of Modern Art, 1966.
https://www.moma.org/documents/moma_catalogue_2567_300062558.pdf
[16] Szarkowski, John. “The Photographer’s Eye.” The Museum of Modern Art exhibition press release, 1964.
https://www.moma.org/docs/press_archives/3413/releases/MOMA_1964_Reopening_0039_1964-05-27.pdf
[17] Zangwill, Nick. “Aesthetic Judgment.”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first published 2003, subsequently revised.
https://plato.stanford.edu/entries/aesthetic-judgment/
※ 모든 온라인 자료의 최종 확인일: 2026년 9월 6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