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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식의
'클래식은 영화를 타고'
< 미드나잇 인 파리 - Midnight in Paris >
" 당신이 꿈꾸는 가장 아름다운 시대는
언제인가요? "
시드니 베쳇의 곡 'Si tu vois ma mere' 의
낭만적인 재즈 섹스폰 선율과 함께,
노을을 따라 파리 곳곳의 고즈넉한 풍광을
비추며 그 막을 열어가는 <미드나잇 인 파리>...
우디 앨런은 이 판티지적 영화를 통해 사람은
언제나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고 과거에
빠진다는 간명한 진리를 설파합니다.
'도달할 수 없기에 아름다운 과거'...
매혹적인 도시 파리이기에 가능한
이야기겠죠.
그 상상력이란 현재가 아닌, 1920년대의
설정에서 더 많이 발휘되고 있습니다만,
시간을 자유자재로 거슬러 오르내리며,
현실과 환상 사이를 넘나드는 영화 속
우디 앨런식 인물들은,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무방비적으로 흔들어대지요.
https://youtu.be/JABOZpoBYQE
- 오프닝 크레딧
할리우드 오락물 대본을 쓰는 길 펜더
(오웬 윌슨 분)는 약혼녀 이네즈(레이첼
맥아담스 분),
그리고 예비 장인 부부와 함께 파리로
여행을 옵니다.
길은 소설가로 전향을 해 인정받는게
꿈이지만, 이네즈는 부정적이죠.
또한 예술의 영감이 절로 떠오르는
파리에서 살고 싶어하는 길과 달리,
이네즈는 파리는 그저 관광지일 뿐이라며,
말리부에서 살기를 원합니다.
공화당 성향의 예비 장인과도 잘 맞지 않아
보이는 길...
그는 파리 관광에 나서며 한껏 부푼 마음에
말합니다.
“ 헤밍웨이가 그랬어요. ‘파리는 당신의
남은 일생 동안 당신이 어딜 가든 함께
머무는 마음 속의 축제’ 라고요.”
장모 웬디는 그 말을 심드렁히 받습니다.
“무슨 축제, 하루 종일 교통 체증뿐인데...”
지베르니, 모네의 정원 앞에서 길은 한껏
들떠 “상상해 봐, 우리가 여기 산다고”
얘기하지만...
이네즈는 쿨하게 대꾸할 뿐이죠.
“자긴 환상에 빠졌어.”
그렇게...스콧 피츠제럴드의 작품 속 '인지적
불협화' 처럼 뭔가 자꾸 어긋나기만 하는
길과 이네즈.
그들은 우연찮게 이네즈의 친구 애인인
폴(마이클 신 분)을 만나 파리를 함께
다니게 됩니다.
길은 왠지 사이비 지식인 같은 폴이 사뭇
마음에 들지 않지요.
길이 "1920년대의 비 오는 파리에 살고
싶다" 라고 말하자,
폴은 “그건 일종의 현실 도피야. 또 황금시대
콤플렉스 이지” 라고 무시하며, 아예 한술
더 떠 일장 연설을 합니다.
"과거에 대한 향수는 고통스런 '현재의 부정'
이야.
다른 시대가 현재보다 나을 거라는 착각은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채 로맨틱한 상상이나
하는 사람들의 허점이지."
한데...이네즈는 퉁명스럽게 군다고 오히려
길을 타박하지요.
이네즈가 폴 커플과 춤을 추러 간다고 하자,
지친 길은 그냥 호텔로 들어가겠다며 빠집니다.
혼자가 된 길은 파리의 골목을 헤메다,
이름 모를 성당(생 에티엔 뒤 몽)의 계단에
풀썩 주저앉죠.
그런데...잠시 후,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리자 길 앞에 왠 푸조 한 대가 멈춰섭니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길에게 같이
가자고 소리치죠.
흥겨운 집시 재즈 'Bistro Fada' 의 선율과
함께 차에 올라탄 길은,
도착한 파티장에서 사람들의 의상, 음악,
또한 그곳에 있는 모든 것들로부터도 아련한
복고풍의 분위기를 느낍니다.
https://youtu.be/mWNhn7xB2w8
- 스테판 렘벨
https://youtu.be/PlytLzWeWh4
피아노를 연주하며 'Let's do it(Let's fall in
love)를 노래하는 인물은 바로 유명 뮤지컬
< Kiss Me Kate > 작곡가 콜 포터였죠.
https://youtu.be/o-LvzEk7Nrg
- 코날 폭스 연주
'그가 왜 여기서 연주할까 의문을 품는
길 앞에 한 부부가 나타납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스콧 피츠제럴드
(톰 히들스턴 분)와 젤다 피츠제럴드
(엘리스 필 분) 라고 소개하며,
오늘은 장 콕토의 생일이라고 말하죠.
세상에!
길은 그토록 소원하던 1920년대 파리로
온 것입니다.
한데, 젤다는 이곳이 너무 따분하다며
다른 곳으로 옮기자고 하지요.
여기에 길이 얼떨결에 합류하며 바를
나올 때 'You've got that thing' 이
풀어집니다.
https://youtu.be/O3n7NPAeFhw
피츠제럴드 부부와 함께 들어간 클럽에서
길은,
브로드웨이의 '블랙 펄', 조세핀 베이커가
화려하게 부르는 'La Conga Blicoti' 를
마주하게 되죠.
https://youtu.be/iN8uraixh70
피츠제럴드 부부는 소설을 쓴다는 길에게,
소설가 헤밍웨이(코리 스톨 분)를
소개합니다.
꿈에서도 만나기를 열망하던 헤밍웨이를
만나 흥분한 길은,
그에게 '당신의 소설을 전부 사랑한다' 며
부탁합니다.
“어렵지만 내 소설을 읽어 줄 수 있나요?
400쪽 짜리인데...”
마초적 작가답게 헤밍웨이는 화답합니다.
“ 아니요, 나는 다른 사람의 글을 읽지 않아.
못 쓴 것은 화가 나서, 잘 쓴 것은 부러워서
더 싫겠지. 대신 거트루드 스타인에게 당신
글을 보여 주겠어.
영 아닌 소재란 없소. 내용만 진실되다면,
문장이 간결하고 꾸밈없다면, 그리고 역경
속에서도 용기와 품위를 잃지 않는다면...
작가라면 자신이 최고라고 당당히 말하시오!
물론, 내가 있는 한은 안 되겠지만...
억울하면 한 판 붙든가!”
길은 그토록 흠모했던 헤밍웨이에게 "미국
문학은 마크 트웨인의 < 허클베리 핀의 모험 >
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라 말하죠.
(이 말은 사실 헤밍웨이의 어록)
헤밍웨이는 그런 길에게 얘기합니다.
"다른 작가의 글은 필요없소.
작가들이란 경쟁심이 강하니까...
죽음이 두려우면 좋은 글을 쓸 수 없죠.
두렵소?”
“네, 두려워요. 아마 가장 큰 두려움일 거예요.”
“정말 멋진 여자와 사랑해 봤소?”
“사실 약혼녀가 엄청 섹시하긴 해요.”
“그녀와 사랑을 나눌 땐 아름답고 순수한
열정을 느끼고, 그 순간만큼은 죽음도 두렵지
않나요?”
“아뇨, 그렇지는 않아요."
"진정한 사랑은 죽음마저 잊게
만든다오.
두렵다는 건 사랑하지 않거나 제대로
사랑하지 않아서지요..."
1920년에서 현재로 돌아온 길은 이네즈와
함께 전날밤 파리 골목길을 거닐다 들었던
콜 포터의 'You do something to me' 를
다시 듣게 되죠.
자신도 모르게 노래가 흘러나오는 레코드 가게로
다가간 길은 한 여인(레아 세이두 분)과 마주하게
됩니다.
"콜 포터를 좋아하세요?" 묻는 그녀에게
"당연하죠!" 라며 자신이 콜 포터의 친구(?) 라고
답하는 길...
https://youtu.be/cEW4YS2RepY9
다음 날에도 자정이 되자 길은 1920년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번에는 헤밍웨이가 말한, 뭇 예술가들의
비평가이자 후원자 거트루드 스타인(케시
베이츠 분)의 살롱이지요.
살롱에는 실제 피카소가 그린 스타인의
초상이 걸려 있습니다.
그녀에게 자신의 소설을 보여 준 길은,
그곳에서 피카소, 달리, 만 레이, 루이스
부뉘엘을 만나게 되죠.
그리고! 샤넬의 디자이너였다는 매혹적인 여인
아드리아나(마리옹 코티아르 분)를 보고 첫눈에
반합니다.
'I love penny sue'
- 다니엘 메이
https://youtu.be/IDI5bDdspc0
길은 피카소와 헤밍웨이의 연인이라는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죠.
“난, 늘 과거에 살지 못한게 불만였지요."
"흠, 나도 그래요...
사랑의 뮤즈 아드리아나는 처음 만난 길에게
얘기합니다.
“길, 나는 벨 에포크 시대의 파리가
가장 로망이에요.
생각해 봐요. 아주 훌륭한 책이나 그림,
또 음악이 나와도 그 시대의 위대한 도시에
비할 수 있을까요?”
길은 화답합니다.
"파리는 모든 거리가 각각 하나의
예술품이에요.
이 춥고 무의미한 우주 속에 파리가 존재한다는
거! 근데 저 우주에서도 이 불빛은 보이죠.
파리는 우주에서 가장 열정적인 도시라고요.”
“길, 당신은 정말 시적이에요!” 라며 황홀해하는
아드리아나...
길은 그녀와 클럽에 들러 'The Charleston' 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춥니다.
https://youtu.be/_Q4xpQlXydg
- Enoch Light & Charleston City All Stars
시끌벅적한 클럽에서 빠져나온 길과
아드리아나는 밤거리를 걸으며 사랑의
눈빛에 빠져들고...
때마침 다나 불레의 세레나데 '사랑한다
말해줘요(Parlez moi d'amour)' 가
풀어집니다.
https://youtu.be/ox2iRyXeWUk
하지만 다음 자정 날...길은 아드리아나가
헤밍웨이와 킬리만자로로 사냥 여행을 떠난
것을 알고 크게 낙담하지요.
'Ain't she sweet'
- 프랭크 시나트라
https://youtu.be/uz-tzSKqdts
길은 달리와 만 레이, 부뉘엘에게
'난 2000년대에서 왔다' 며, 고민을
털어놓지만,
이미 뼛속까지 초현실주의 작가였던 그들은
별 반응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길은 “두 여자를 사랑하는 것이
고민이에요” 라고 조언을 구하죠.
이에, 만 레이는 “사진이 보이네”,
부뉘엘은 “영화가 보여”,
달리는 “코뿔소가 보이는데” 라고 각각
쌩뚱맞게 답할 뿐입니다.
길은 “난 엄청난 문제가 보이는데요” 라고
되뇝니다만...
그들 예술가에게는 길이 어느 시대 인물이건,
무엇을 하고 싶든 별 상관이 없는 게지요.
'Ballad du Paris'
- 프랑수아 파리시
https://youtu.be/BhiheDcF8SM
그럼에도, 길은 부뉘엘에게 그의 대표작이 될 ‘
절멸의 천사’ 아이디어를 전합니다.
" 어느 만찬장의 손님들이 식사를 마치고
나가려고 하는데 나갈 수가 없는 거에요.
억지로 갇혀 있게 되자, 문명의 껍데기는
사라지고 남는 건 짐승입니다..."
그러나, 정작 부뉘엘 본인은 '그게 말이 되냐'며
전혀 이해하질 못하죠.
길은 미국 현대문학사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주나 반스와 격렬하게 춤을 춥니다.
다음 날, 자정이 돼 차에 올라탄 길에게 차 안의
남자는 자신을 토머스 스턴스 엘리엇이라
소개하죠.
길은 놀랍니다.
“당신이 T.S. 엘리엇? 오, 당신의 ‘프루프록
연가’ 는 줄줄 외웠어요!"
자신의 살롱에 다시 들른 길에게 스타인은
충고해줍니다.
“길, 예술가의 책임은 절망에 굴복하지 않고
존재의 공허함을 채워 줄 해답을 주는 거예요.
당신 글은 표현이 힘 있고 명확해요.
패배주의자처럼 굴지 말아요!”
현재로 돌아와 파리의 벼룩시장을 뒤지다
아드리아나의 자서전을 발견한 길은,
자신이 그녀에게 귀걸이를 선물한 후 함께
밤을 보냈다는 것을 알게되지요.
미술관 가이드(카를라 부루니 분)의 번역을
통해 아드리아나와의 사랑을 확인하게 된
겁니다.
"난 방금 만난 미국 작가 길 팬더에게 사랑에
빠졌다....말로만 듣던 마법이 내게 일어난
것이다."
길은 물어보죠.
"그게 가능해요?
동시에 두 사람을 사랑하는게?"
그러자 가이드는 "동시에 각각 다른 방식으로
사랑한 거죠." 라고 나름 해석해줍니다.
길은 이네즈의 진주 귀걸이를 훔쳐 선물하려고
하다 그만 들키고 말죠.
그는 '특별한 저녁에 줄 선물' 이라고 변명한 뒤,
급기야 다른 귀걸이를 구입해 과거로 되돌아
가죠.
이네즈는 매일 외출하는 길이 바람을 피우는
것이 아닐까 의심하지만,
길의 ‘자정의 화려한 외출’ 은
계속됩니다.
급기야, 장인이 고용한 사설 탐정은
길이 탄 푸조를 뒤쫓다가 시간 여행에 휘말려,
결국, 베르사유 궁전에 왕이 살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참수형(?)의 위기에 처하죠...
'Le parc de plaisir'
- 프랑수아 파리시
https://youtu.be/tPgbAgXtTaA
헤밍웨이와 헤어졌다는 아드리아나와
달콤한 키스를 나누는 길...
“아드리아나, 인생은 너무 알 수가 없어요.
삶은 소란스럽고 복잡합니다.
사소한 건 맞지만,
중요한 건 잘 맞지 않아요.
처음 여기 왔을 땐 머물거나 진지하게 작가가
될 생각을 하지도 않았죠. 할리우드 고용
작가가 꿈였을 뿐...
그런데, 지금은 그런 건 다 잊고 싶네요."
두 사람은 그들 앞에 갑작스레 멈춰 선
고풍스런 마차를 타고,
1890년대 황금 시절의 노스텔지어를
소환하는 곡 'Je suis seul ce soir' 와
더불어 '맥심' 이란 카페에 도착합니다.
https://youtu.be/IF3_2P7F46c
- Swing 41
이곳은 바로 아드리아나가 그토록 가고 싶어
하던 ‘벨 에포크’ 시대의 공간였지요.
오펜바흐의 오페레타 < 지옥의 오르페우스
- Orpheus in the underworld > 중,
지옥의 에로틱한 갤럽 춤 '캉캉(Can - Can)'이
뇌쇄적으로 울려 퍼지는 물랑 루즈(빨간 풍차)
카페에서,
두 사람은 화가 피카소가 존경해마지 않았던
틀루즈 로트랙, 그리고 폴 고갱, 에드가 드가와
즐겁게 대화를 나누게됩니다.
https://youtu.be/MKJRjIZlItw
- 체코 내셔널 심포니 오케스트라
그런데...고갱이 “이 시대는 공허하고 상상력이
없어. 르네상스 시대가 더 낫죠” 라고 말하자,
아드리아나는 “아녜요. 지금이 황금시대죠” 라고
응답하죠.
그런 아드리아나는 길에게 부탁합니다.
“길, 우리 돌아가지 말아요. 지금이 벨 에포크의
시작인 거에요. 파리 역사상 가장 아름답고
위대한 시절 말에요.”
“아드리아나, 그럼 1920년대는요?
피츠제럴드, 헤밍웨이는요? 난 그때가 좋은
걸요.”
“길, 그건 현재잖아요. 지루해요...”
“지루해요? 난 현재에 속한 게 아니죠,
2010년에서 왔으니까.
우리가 1890년대에 온 것처럼,
난 1920년대에 잠깐 들렀던 거예요.
나도 당신처럼 현재를 벗어나 황금시대로
가고 싶어했죠.”
“설마 1920년대를 황금시대로 여기긴
않겠죠? 난 1920년대에 살지만 황금시대는
벨 에포크인 걸요.”
“ 이제야 알겠어요. 사소한 거지만 내 꿈속의
불안이 뭐였는지 알겠다고요.
페니실린이 떨어진 거예요.
치과에 갔는데 마취제도 항생제도
없고...
아드리아나, 저 사람들을 봐요. 저들은
‘황금시대는 르네상스’라고 말하잖아요.
이들은 황금시대를 떠나온 타이탄과
미켈란젤로와 함께 그림을 그리고 싶어해요.
또 그때 사람들은 쿠빌라이 칸 시기를
동경할 거요. 이건 진짜가 아니죠!
만약 당신이 여기에 머물면 이 시대는 당신의
현재가 되고, 얼마 뒤엔 또 다른 시대를 꿈꾸게
되겠죠.
상상 속의 황금시대를...
현재란 그런 거예요. 늘 불만스럽죠.
삶이 원래 그러니까요.
나는 진정한 글을 쓰기 위해 나 자신의 환상을
없애겠어요. 과거가 더 좋았다는 환상을."
"이게 바로 작가들의 문제예요...
난 남아서 파리의 전성기를 즐길래요.
길, 안녕!”
아드리아나와 헤어진 길에게 스타인은
전해주죠.
길의 소설을 읽어본 헤밍웨이가 "작중 화자의
약혼녀가 현학적인 남자와 바람을 피우는 걸
모르냐" 는 평을 남겼다고 말입니다.
현재로 돌아온 길은 헤밍웨이에게 들었다며
이네즈를 추궁하자...
그녀는 죽은 사람들 이야기나 지껄이는 길에게
진절머리가 나 폴과 섹스를 했었다고 털어놓죠.
그렇게...이네즈와의 약혼은 깨지고 맙니다.
길은 혼자서만 파리에 남기로 하며,
알렉상드르 3세 다리를 걷죠.
이제 길은 자정이 되어도 더 이상 과거로 가는
차를 타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연인지 운명인지...길은 벼룩시장에서
음반을 팔던 아가씨와 재회하게 되죠.
그녀는 레코드 가게에 콜 포터의 다른 레코드가
새로 들어왔다는 걸 듣고 길이 생각났다고
말합니다.
길은 왜 자신이 생각났냐고 묻다가 이내 그런
식으로 떠올려지는 것도 좋다고 화답하죠.
길은 자신이 파리로 이사오기로 했다는 걸
그녀에게 알려주다 비가 내리자, 비를 피하자고
합니다만...
'가브리엘' 이라는 이름의 그녀는 미소지으며
같은 취향임을 살포시 드러내줍니다.
“괜찮아요. 파리는 비올 때 제일 예쁜 걸요.”
(Actually, Paris is the most beautiful
in the rain)
비를 맞으며 파리의 밤거리를 가브리엘과
함께 걸어가는 길...
오프닝 크레딧에 흘렀던 시드니 베쳇의
'Si tu vois ma mere' 와 함께,
새로운 두 연인의 멀어져가는 뒷모습을
보여주며,
영화 < 미드나잇 인 파리 > 는 그 막을
내립니다.
이토록, 낭만적인 선율로 깔아놓은 복선이
미려하게 다가와 ‘파리를 사랑하세요’ 라고
노래하는,
우디 앨런의 파리를 향한 찬가
< 미드나잇 인 파리 >...
영화는 창작의 욕망이 그 불멸성에 있다는
사실을 새삼 환기시켜 주는데,
벨 에포크시대에 남는 '아드리아나' 와 현재로
돌아오는 '길' 의 대비가 그걸 더욱 선명하게
만들고 있지요.
영화는 '자동차'(푸조)라는 장치를 통해
1920년대로의 시간으로 점프합니다만,
벨 에포크 시대로 더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 여행은 자동차 대신 '마차' 로
이어집니다.
우디 앨런은 시간여행(Time Passage)의
구도를 전혀 저항감 없이 올곧게 설정하며,
머릿 속에서 상상하는 것을 오히려 손쉽게
풀어놓는 식으로 관객들의 허를 찌르고
있지요.
복잡하거나 거창하게 생각해야 할 것을 아주
손쉽고 단순하게 접근하는 방식이야말로
우디 특유의 내공일 것입니다.
이처럼 우디 앨런이 '현재가 중요하다' 고
설득(?)하고 있는 < 미드나잇 인 파리 > 속엔,
최고의 황금시대는 이미 지나가버렸다는...
지금은 도달할 수 없는 과거의 한 순간이라는
쓸쓸한 탄식이 기저에 깔려있는 게지요.
1. 영화 < 미드나잇 인 파리 > 예고편
https://youtu.be/GiCAcjIfW3Q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로서 고아한 품위를
잃지 않는 도시 파리...
그 파리를 가장 미학적으로 풍요롭게
그려 낸 영화가 있습니다.
바로 우디 앨런의 < 미드나잇 인 파리 > 이죠.
뉴욕을 사랑하는 감독, 가장 뉴욕적인 영화를
만드는 것으로 유명한 우디 앨런...
그런 그가 뉴욕을 떠나 유럽 대륙으로
날아갔던 것입니다.
화면 속엔,
지베르니, 센강, 개선문, 루브르 박물관,
베르사유 궁전, 로댕 박물관, 오랑주리 미술관,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생투앙 벼룩시장,
에펠탑, 방돔 광장, 생 에티엔 뒤 몽 성당,
퐁네프 다리, 노트르담 성당, 알렉상드르 3세
다리 등,
대표적인 명소부터 작은 골목까지, 애정이
듬뿍 담겨진 파리의 모습이 찬연하게 담겨져
있습니다.
우디 앨런이 파리에 바치는 헌사에 다름아니죠.
물론, 그의 파리에 대한 관심과 파리가
포용하고 있는 예술혼에 대한 오마주,
그 사실만으로도 이 영화는 맛깔스럽지만,
이 영화의 진정한 보석은 따로 있습니다.
그것은 화면 속 등장인물들 이죠.
19세기, 20세기 문화와 예술에 한 획을 그은
당대의 작가, 화가와 음악가, 또한 비평가들이
그야말로 ‘무더기’로 등장합니다.
오래된 푸조 자동차, 젊고 매력적인 여자들의
플래퍼 스타일,
화려하면서도 모던한 아르데코풍 옷을 입은
남녀들이 밤새 와인에 취하는 파티와
어우러지며,
소설가 헤밍웨이와 피츠제럴드로부터,
화가 앙리 마티스, 살바트로 달리,
조르주 브라크,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폴 고갱, 에드가 드가, 앙리 드 툴르즈 로트랙,
그리고 파블로 피카소에 이르기까지...
또한 투우사 후안 벨몬티, 음악가
콜 포터와 사진작가 만 레이,
영화감독 루이스 부뉘엘,
작가 T.S.엘리어트, 제임스 조이스,
주나 반스, 장 콕토, 아치볼드 머클리쉬,
마크 트웨인,
댄서 조세핀 베이커,
패션 디자이너 가브리엘 샤넬,
그외 셀러브리티로 거트루드 스타인,
레오 스타인, 린다 리 토마스, 앨리스토
클라스 등
그야말로 기라성 같은, 당대의 거장
예술가들을 말입니다.
더구나 더 놀라운 것은 이 인물들이
우디 앨런의 지적 유희를 위한 도구로만
쓰이지는 않는다는 점이죠.
그는 각 인물들의 캐릭터와 어록, 성향 등을
파악해 언중유골의 위트와 유머로 가득한
말의 성찬을 차려냅니다.
우디 앨런에 의해 족집게처럼 묘사된 그들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영화는 흥미롭기
그지없지요.
영화의 배경인 파리는 극 중 헤밍웨이의
말처럼 ‘마음 속에 항상 남아 있는 축제’ 같은
곳입니다.
그 축제의 주인공은 예술가들이고 그들에게
파리는 창작의 해방구인 것이죠.
스크린 위에 파리의 모든 걸 샅샅이 담아낸
우디 앨런은 ‘현재에 충실해야 한다’ 는 화두를
말그대로 '충실히' 건넵니다.
우디는 드라마 주인공 길을 통해 1920년대
파리의 찬란한 시기도,
1890년대 파리의 황금시대도, 또 문화가
폭발하고 팽창했던 르네상스 시대조차,
그 누구에게도 완벽한 ‘황금기’는 제공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동경했던 인물과 시대, 문화도 그 당대에는
결코 거부될 수 없는 ‘현재’라는 것이죠.
그렇게...시공간을 넘나드는 로맨틱 시간
여행과 함께,
자신의 상상력을 끝없이 펼치는데
주저함이 없는 < 미드나잇 인 파리 >...
타이틀 자체가 듀크 엘링턴의 앨범 제목이기도
합니다만,
영화 속엔 우디 앨런 특유의 불편한 조소와
독설적 이미지는 별로 없고, 대신 달콤한
낭만과 위트로 가득하지요.
그는 이 영화를 통해 그만의 기발한 상상력과
재치로 파리의 과거를 두 차례 불러냅니다.
첫 번째가, 1920년대 ‘로스트 제너레이션’ 의
집합처인 미국 출신 여류 시인이자 소설가
거트루드 스타인의 살롱이며,
또 다른 한 번은 1890년대 ‘벨 에포크(Belle
Epoque)' 시대, 물랭 루즈와 맥심 카페가
빛을 발하던 파리로 말이죠.
이곳에서 우디 앨런은 당대의 기라성같은
명장들을 절묘하게 자리케하거나 언급합니다.
그러곤, 그들의 입을 빌어 자못 거대하고도
사유적인 질문을 건네죠.
"당신의 리즈 시절은 과연 언제였나요... "
2. < 미드나잇 인 파리 > 에 깃든 클래식
'로스트 제너레이션' 의 작가 헤밍웨이,
피츠제럴드와 술잔을 기울이고,
거트루드 스타인에게 시나리오 첨삭을
받는다면?
모든 예술가들이 꿈꿀 달콤한 상상을
우디 앨런이 스크린을 통해 구현해낸
< 미드나잇 인 파리 >...
영화는 1920년대를 ‘황금시대’ 라 여기며
동경하던 소설가 길 팬더의 시간 여행기
입니다.
매일 밤 12시가 되면 거짓말처럼 나타나는
1920년대 행 푸조 자동차를 타고 역사에
이름을 아로새긴 예술가들과 어울리게 되는...
<미드나잇 인 파리> 는 이른바 '골든 에이지’를
부유하며,
우리 시대의 삶과 예술이란 무엇인지
반추해보는 거장의 현명함이 녹아든 판타지
작품으로 울려오지요.
특히나 재즈 매니아 우디 앨런의 탁월한
음악적 조합이 빛을 발하는 사운드 트랙은
마치 우리가 파리에 와있는 느낌을 줍니다.
극 중 코날 폭스(Conal Fowkes)가 노래하는,
'Let's do it(Let's fall in love)',
'You've got that thing' ,
'You do something to me' 등
화면 속에 수차례 등장하는 콜 포터의 음악
또한 은유적인 울림으로 풀어지죠.
음악과 가사가 분리될 수 없다는 믿음으로
곡을 만들었던 그는,
문학적 감수성과 운율이 충만한 가사로
현대 뮤지컬의 토대를 만들었습니다만...
방황하는 길이 과거와 조우할 때,
그리고 현실의 가브리엘과 만날 때
흐르는 'Let’s do it(Let’s fall in love)',
이 매력적인 사랑의 찬가는 ‘바로 지금
사랑하라’ 는 낭만적인 메시지와 함께 ,
새로운 뭔가를 통해 시대를 바꾸는 작가적
사명을 자극해주고 있지요.
극 중 길과 아드리아나가 함께 했던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파리는 파티가
한창입니다.
화면 속 황금시대의 공간에선 자크 오펜바흐의
클래식 음악 두 곡을 접할 수 있지요.
먼저, 오펜바흐의 유일한 오페라
< 호프만의 이야기 - Les contes
d'Hoffmann > 중 3막 도입부 곡으로,
고급 창녀 줄리에타와 호프만의 뮤즈
니클라우스가 베네치아의 밤, 운하를
배경으로 곤돌라를 타고 부르는,
'호프만의 뱃노래(Barcarolle)' 로 잘 알려진
2중창, '아름다운 밤, 사랑의 밤이여'(Belle
nuit, ô nuit d'amour) 입니다.
- 안네 소피 폰 오터와 스테파니 드'아우스트락
: 마크 민코프스키 지휘 파리 샤테레 극장,
Live in 2001
https://youtu.be/lzKND8T60qU
이어, '맥심' 카페에 이어 길과 아드리아나가
들른 몽마르트 번화가의 카페 '물랑 루즈'
(빨간 풍차) 에서는,
오펜바흐의 오페레타 < 천국과 지옥 >
('지옥의 오르페우스' 라고도 불림) 2막 하계의
대연회장에 나오는 빠른 갤롭 ‘캉캉’
(Can - Can)이 화려하게 펼쳐지죠.
- Gimnazija Kranj 심포니 오케스트라
: 크리스마스 콘서트, 2012
https://youtu.be/sf9CtbLGzgw
- 李 忠 植
첫댓글 1. 영화 < 미드나잇 인 파리 > 예고편
https://youtu.be/GiCAcjIfW3Q
PLAY
'Si Tu Vois Ma Mère'
- < Midnight in Paris >(2011)
https://youtu.be/bmVTnLR02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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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stro Fada'
https://youtu.be/PlytLzWeWh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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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펜바흐 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
아름다운 밤, 오 사랑스런 밤('Belle nuit,
ô nuit d'amour')
- 안네 소피 폰 오터와 스테파니 드'아우스트락
: 마크 민코프스키 지휘 파리 샤테레 극장,
Live in 2001
https://youtu.be/lzKND8T60q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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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펜바흐의 오페레타 <지옥의 오르페우스
- Orpheus in the Underworld >
2막 '캉캉(Can - Can)'
: Gimnazija Kranj 심포니 오케스트라,
크리스마스 콘서트 2012
https://youtu.be/sf9CtbLGzg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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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 말해줘요'(Parlez-moi d'amour)
- < Midnight in Paris > 사운드 트랙
https://youtu.be/ox2iRyXeW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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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날 폭스(Conal Fowkes)의
'Let's do it (Let's fall in love)'
https://youtu.be/o-LvzEk7N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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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 말해주오'(Parlez moi d'amour)
- 루시엔느 부와에(Lucienne Boyer)
https://youtu.be/c3KbZhYCqk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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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핀 베이커의 'La conga blicoti'
https://youtu.be/iN8uraixh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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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미드나잇 인 파리 > 오프닝 신
https://youtu.be/JABOZpoBYQ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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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리아나는 투우사 벨 몬테를 향해 '예술가란
어린아이와 같다' 고 말하죠.
이어 "피카소는 더 훌륭한 화가 이고, 마티스는
더 훌륭한 예술가" 라고 나름 정의합니다.
반면 피카소가 뜨거운 성욕에 불타 객관성을 잃어,
초현실주의 화가 미로보다 못하다고 평가하는
헤밍웨이...
우디 앨런은 가끔 자신의 로맨스 영화에 비현실적인
상상력을 동원해 재치를 뽐냅니다.
파리의 명소를 아낌없이 담아낸 < 미드나잇 인
파리 > 에서는 과거로의 여행을 하는 마차가
활약하지요.
아름다운 여행지 파리에서조차 지루한 하루를
보내고 있는 소설가 길(오웬 윌슨 분) 앞에 마차가
등장하고,
그에게 최고의 시공간인 1920년대의 파리로
데려다 놓습니다.
위대한 예술가들이 도처에 존재하는 이곳에서
그는 피카소의 뮤즈 아드리아나(마리옹 꼬띠아르
분)와 사랑에 빠지죠.
하지만 아드리아나는 낭만의 시대인 벨 에포크를
동경하고...
그 시대를 여행하게 된 두 사람 앞에 등장한
폴 고갱은 르네상스가 최고의 시대라 말합니다.
이처럼 우디 앨런은 < 미드나잇 인 파리 > 를 통해
공간뿐만 아니라 시대까지 자유자재로 오가며,
사람은 늘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고 매력적인
과거에 빠진다는 간명한 진리를 얘기해주죠.
도달할 수 없기에 아름다운 과거, 매혹적인 도시
파리이기에 가능한 서사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