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청색 점퍼 김회직
“VERI TAS LUX MEA-진리는 나의 빛”
지식을 탐구하는 펜, 겨레의 길을 밝히는 횃불, 학문을 상징하는 책, 명예와 영광을 상징하는 월계관이 선명하게 찍혀있는 정장로고점퍼가 옷걸이에 걸려있다. 우리 집 맏손자가 딱 한 학기만 입고 다녔던 하얀색 소매의 암청색 점퍼다. 바라볼 때마다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을 지울 수가 없다.
작년 이맘때쯤, 정시합격자 발표 날이었나 보다. 수능성적이 상위권에 속해있다고는 해도 경쟁률이 높은 컴퓨터공학부였으므로 마음 졸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긴가민가 다급하고 긴장된 마음인데 “합격”이라는 두 글자를 온라인으로 확인하는 순간 식구들이 환호성을 질러가며 축하해주지 않았던가?
드높은 꿈을 안고 입학했다. 그리고 두어 달이 지났다. 이상과 현실은 엄연히 다르다며 진로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학생들이 늘어간다고 했다. 어떻게 할까? 어찌하는 것이 미래의 불확실성을 덜어주고 보장하는 길이 될 것인가? 몇몇 고등학교 적 친구들까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더라는 것이다.
결국 한 학기를 끝내고 휴학을 했다. 수능시험일까지 100여일 남짓, 유난히도 무더웠던 여름이었다. 목표를 이루겠다는 열망 하나로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는 것 같았다. 수능일이 가까워올수록 초조해하는 빛이 역력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가족들마저도 안타까운 나날이었다.
수능점수가 발표되었다. 예상했던 대로 고득점자가 많았다. 지난해에 비해 비교적 쉽게 출제되었기 때문이란다. 우리 손자 역시 작년보다 성적이 몇 점 더 높게 나왔지만 수도권 의과대학 경쟁이 워낙 치열해서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할아버지, 성대의대 합격했어요!”
그 소리를 들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가슴이 벅차오르도록 황홀했다. 빅5라고 하는 성균관대의예과를 수학논술시험으로 합격한 것이다.
“축하한다. 우리 손자 정말 장하다. 가족들이 이렇게 기쁘고 마음이 가벼울진대 너는 오죽하겠느냐? 그동안 공부하느라 고생 많았다. 많이 지쳤을 테니 이제는 마음 놓고 좀 쉬도록 해라.”
논술고사 10명 모집에 전국적으로 2,414명이 응시해 경쟁률이 240:1을 넘었다고 했다. 말 그대로 피 말리는 경쟁이었다. 수능성적을 반영해 선발했다는 성적우수 장영실장학금에다 기숙사까지 배정받게 된 손자의 얼굴이 더욱더 밝아보였다. 이제 모두 끝났다. 그렇게 마음 졸이던 초조함도, 애간장을 태우던 안타까움도 가족들과 함께하는 또 한 번의 즐거운 추억으로 남게 된 것이다.
옷걸이에 그냥 그대로 걸려있는 암청색 점퍼, 언젠가는 치워져야 할 일이지만 아직은 그럴 수가 없다. 어떻게 얻은 점퍼인데 쉽게 내칠 수 있다는 말인가? 걸어두고 오며가며 손자를 생각할 것이다. 어려운 판단 속에서도 그나마 마음 편히 진로수정을 결정할 수 있었던 것은 암청색 점퍼가 뒤를 든든히 받쳐주었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결코 삼수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가족들 앞에서 다짐까지 했다. 결과가 실패로 끝날 경우 복학할 수 있도록 휴학원서를 제출해놓았던 것이다.
방패막이를 훌륭하게 해준 암청색 점퍼가 그래서 더 고맙고 소중했다. 옷장을 열 때마다 선명하게 찍힌 정장로고를 살펴본다. 이제는 휴학원서가 자퇴원서로 바뀌었으니 암청색 점퍼와는 인연이 멀어졌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내 생각은 그렇지가 않다. 멀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튼튼한 연결고리가 되어 후손에게 이어갈 것이라고 굳게 믿고 싶다.
헛된 욕심이라며 웃어넘길지 모르나 손자가 입었던 점퍼를 다음세대인 증손자에게 물려줄 수 있게끔 내가라도 잘 보관해야겠다. 아무리 100세 시대라지만 나이가 이미 팔십을 넘었으니 가당찮은 일인 줄 안다. 그러나 만에 하나라도 그때까지 살아있어서 내손으로 직접 넘겨줄 수 있게 된다면 그보다 더한 즐거움이 어디 있겠는가? 설령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해도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내가 못하면 뜻을 이어받은 아들내외가 그 꿈을 꼭 대신해줄 테니 말이다.
오늘 새벽에도 암청색 점퍼를 몇 번씩이나 쓰다듬었다. 간절한 뜻을 밝혀주기라도 할 것처럼 동편하늘이 부옇게 밝아오고 있었다.
첫댓글 손주의 결단이 대단합니다. 훌륭한 의사로 거듭나길 응원합니다.
선생님, 뵘고 싶은데 이번 정기총회 때도 어려우시겠지요?
회장님, 수고 많으십니다.
미안합니다. 매번 참석을 못해 정말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마음만큼은 늘 수필예술에 머물러있습니다.
회의에서 결정되는 대로 따르겠습니다.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