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백나무 울타리
이남철
측백나무 울타리
이리저리 오르내리며
꿈결 속에 들리는 굴뚝새의 상량한 울음이
먼 듯 가까운 듯 나지막한 소리로
온 밤을 열병에 지새운 소년을 부른다
칠흑 같은 긴 밤이 지나고
어둠을 부수고 타오르는 동녘 하늘에
소년은 새벽 서광의 오선을 타는 빛이 되어
둥지를 박차고 올라 창공을 높이높이 난다.
항시 지병에 시달리는 소년의 와가
울창하고 긴 측백나무 울타리
농촌 지붕개량 담장 개량에
어느 날 갑자기 기계톱에 모두 절목 되고
그루터기 만 남은 휑 한 빈 울타리
소년은
새벽하늘을 넘나들며 노래하는 새와 함께
영원한 빛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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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련
이 남철
간밤에 내린 봄비에
목련은 울음 목을 세워 슬피 운다
시린 겨울 꽃 몽우리를 안고 달려온
이른 봄의 길목에서
화려하게 단장한 꽃잎은
천리 먼 길 바다 건너 남도에 간님을 그리며
순백의 옷으로 갈아입은 기다림의 자태
외로움에 저미어 쓸쓸히 홀로이
봄길 속에 왔다가
시샘하는 시린 꽃 샘 바람에
목련은 눈물지며
한잎 두잎 꽃비를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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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물 캐는 누이
이 남철
윤삼월 토담길
초가삼간 어린 동생들
항아리 쌀독은 긁어도 긁어도 보이지 않고
양지쪽 따스이 새봄 맞는 누이는
논두렁 밭두렁 바구니 옆에 끼고
새록새록 돋아나는
부드러운 쑥 잎을 캔다
해 질 녘 사립문에 기다리는
환한 미소의 어머니
초가삼간 솥단지에 김이 서리고
어린 동생 쑥떡에
온 식구 가득한 미소가
가시지 않는 냉기가 따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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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치국수
이 남 철
이름 없는 신랑 신부의 잔치국수를 먹는다
북적이는 시장통 낯선 하례객들이 찾아와
잊혀진 국수의 내력을 아는지 모르는지.....
먼 *대례청 기러기 한 쌍이 날아와
신부의 치마폭에 안기고
*초례상 하늘과 땅에 맹세 삼절을 하며
천생배필 인연으로
*하님이 표주박에 합환주를 권하니 경사로다
호젓이 잦아오는 어스름 땅거미에
하현달 밤이슬이 빛나고
백열전구 나부끼는 국수 먹는 날은
길일이다
*대례청(大禮廳) : 혼례를 올리는 곳으로 요즘의 결혼식장이나
마찬가지이다. 대례청 또는 전안청이라고도 한다. 대개 신부집
의 안마당이나 대청마루에 마련한다.
*초례상(醮禮床) :초례상 위에는 청색,홍색 양초를 꽂은 촛대 한
쌍, 소나무 가지와 대나무 가지를 꽂은 꽃병 한 쌍, 백미 두 그릇,
청색/홍색 보자기에 싼 닭 한 자웅을 남북으로 갈라 놓는다.
*하님 : 계집종을 존중하여 부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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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 로 필]
충남 아산출생
2009년 계간「한국문학정신」 詩 등단
(사)한국문인협회 시분과회원
(사)한국문인협회 부천지부회원
화백문학회 부천회장
송아리문학회 수석부회장
가온문학 회원
(수 상)
2019년 경기도문학상 수상(시부문)
2011년 부천예술 공로상 수상
시 집 : 2번 출구의 빗줄기.
동인지 : 비올라 첼로, 떨림, 시인들, 글송아리, 까세육필시집 (서문당)
공모전 : 2018년 서울시 지하철공사 공모전 당선 (시부문)
주 소 : (우)14747
경기도 부천시 심곡로 105번길19 (2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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