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울림, 부라보, 바람결, 은하수, 푸른솔, 효선, 소리샘이 모였다.
여자들의 수다가 둘 이상만 모여도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은
오랜 세월 DNA속에 있는 경험의 기억일거다.
자신만의 독특한 음률과 목소리로 말하는 여인들의 수다는 마치
오페라 시작함을 노래하는 내용의 전주곡과 같았다.
어딘가에 있던 어린왕자가 여인들의 이야기 속에 슬며시 끼어든다.
‘별들이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 꽃 한 송이가 있기 때문이야...’ 어린왕자가 말했다.
‘보이지 않는 꽃이 아름답다고?’ 바람결이 말했다.
바이세로제 여인들은 달빛을 받아 빛나고 있는 모래 언덕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어떻게 달빛을 받아 빛이 난다고 할 수 있지?’ 바람결이 말했다.
우리는 모래언덕 위에 앉아 한참을 있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바람결이 말했다.
‘아! 그렇구나. 무엇이 빛난다는 것은 또 다른 빛이 있기 때문이구나!’
바람결은 모래밭이 왜 그처럼 신비롭게 빛나는지 문득 깨달았다.
‘응,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 우물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야..’ 어린왕자가 말했다.
‘맞아. 아름다움이란 보이지 않는 것이 있기 때문이지.’ 바람결이 말했다.
‘바람결이 내 여우하고 같은 생각이어서 기뻐.’ 어린왕자가 말했다.
‘세상은 정말 바뀌고 있어, 나 같은 사람이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을 알 수 있다니.’
바람결이 말했다.
‘지난주에 어떤 환자가 왔는데 정말 진상이었어. 침을 놓기 위해 몸을 조금만 건드려도
악!~ 악!~ 거리며 소리를 지르는 거야. 정말 진상이었어.’ 부라보가 말했다.
그녀는 최신 개량 한의원의 침놓는 원장의 아내면서 현재는 남편을 도우려고 한의원에
나가는 중이다.
그곳을 찾는 환자들이 한 번만 침을 맞아도 금세 아픈 곳이 사라지다보니 소문이 멀리까지 났다.
방금 온 진상의 여인도 전주에서 왔단다.
‘부라보는 이곳에서 무얼 찾고 있죠?’어린왕자가 물었다.
‘시간을 크게 절약할 수 있지. 전문가들이 계산을 했어. 일주일에 53분이 절약된다고.’
부라보가 말했다.
‘그럼 그 53분으로 뭘 하지요?’ 어린왕자가 말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지....’
<나라면,> 어린왕자는 혼자 생각했다. <내가 그 53분을 써야 한다면, 아주 천천히 샘터로 걸어가겠다...>
어느새 부라보는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있었다.
왜냐하면 며칠 전 집 어디선가 볼 수 없는 영혼으로부터 들려진 말이 생각난 것이다.
‘나는 영원한 어린왕자인데, 왜 자꾸 나보고 어른이 되라는 거지?’
‘그렇구나, 네가 곧 나구나! 내가 곧 우리였다는 것을 알겠어.’ 은하수가 말했다.
‘은하수가 내 여우하고 같은 생각이어서 기뻐.’ 어린왕자가 말했다.
‘인형은 어린애들에게 아주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 그걸 빼앗기면 소리 내어 울고...
한 때는 나도 그 어린애를 알고 있었지. 지금은 다 커버렸지만....’ 푸른솔이 말했다.
‘어린애들만 자기들이 뭘 찾는지 알고 있어요. 어린애들은 헝겊인형에 시간을 바치고,
그래서 인형은 아주 중요한 것이 되는 거에요.’ 어린왕자가 말했다.
‘너의 지난 이야기는 정말 아름답구나. 그러나 난 비행기를 아직 고치지 못했어. 마실 물도 없고,
나도 아주 천천히 샘터로 걸어갈 수 있다면 행복하겠다.’푸른솔이 말했다.
‘내 친구 여우는...’어린왕자가 말했다.
‘얘야, 지금은 여우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니야!’ 푸른솔이 말했다.
‘왜?’
‘목이 말라 죽을 지경인데...’
어린 왕자가 잠이 들어 푸른솔은 그를 품에 안고 다시 길을 걸었다.
푸른솔은 감동했다. 부서지기 쉬운 보물을 안고 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지구 위에 그보다 더 부서지기 쉬운 것은 없으리라는 느낌마저 들었다.
푸른솔은 달빛 아래서 어린왕자의 창백한 이마, 그 감긴 눈, 바람에 흩날리는 그 머리칼을 바라보며
혼자 생각했다.
<내가 여기 보고 있는 것은 껍질에 지나지 않아.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그의 반쯤 벌린 입술에 어렴풋이 떠오르는 미소를 보고 푸른솔은 또 생각했다.
<잠든 어린 왕자가 나를 이렇듯 감동하게 만드는 것은, 한 송이 꽃에 바치는 그의 성실한 마음 때문이다.
그의 가슴속에서 등불처럼 밝게 타오르는 한 송이 장미꽃의 영상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푸른솔은 어린왕자가 더욱더 부서지기 쉽다는 걸 알아차렸다.
등불들을 잘 지켜야 한다. 한 줄기 바람에도 꺼질지 모르는...
그리고 푸른솔은 이렇게 걸어가 동이 틀 무렵 우물을 발견했다.
‘심오해!’ 어울림이 말했다.
‘뭐가?’ 어린왕자가 말했다.
‘위험이 얼마나 큰지 짐작하지 못하는 구나. 배고프지도 목마르지도 않고 햇빛만 조금 있으면 그만이니...’
어울림이 말했다.
‘나도 목이 말라...우물을 찾으러 가요...’어린왕자가 말했다.
어울림은 내키지 않는 몸짓을 했다. 이 거대한 사막에서 무턱대고 물을 찾는다니 터무니없는 짓이다.
그러나 우리는 걷기 시작했다.
‘너도 목이 마르니?’ 어울림이 말했다.
‘물은 마음에도 좋아...’어린왕자가 말했다.
어울림은 그의 대답을 알아듣지 못했지만 입을 다물었다....
그에게 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어울림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지쳐 있었다. 그
가 주저앉았다.
어울림도 그 곁에 주저앉았다.
잠시 말이 없더니 그가 입을 열었다.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린왕자가 말했다. ‘어딘가 우물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야..’
‘그래’
어렸을 때 어울림은 고가에서 살았다.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그 집에 보물이 묻혀있다고 했다.
물론 아무도 그 보물을 발견하지 못했고 어쩌면 찾으려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보물이 우리 집 구석구석을 황홀하게 만들었다.
어울림의 집은 그 깊숙한 곳에 비밀을 감추고 있었다.
‘그렇구나, 집이나 별이나 사막이나 그걸 아름답게 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구나!’
어울림은 지치고 처진 걸음에 힘을 주어 다시 걸었다.
왜냐하면 이제야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어떻게 하면 이면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을지
마음에 품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다시 힘을 낼 수 있는 것은 나의 가슴속에서 등불처럼 밝게 타오르는 한 송이 꽃의 영상이 있기 때문이지..’
‘안녕하세요.’어린왕자가 말했다.
‘안녕.’효선이 말했다.
‘효선은 어기서 무얼 하세요?’ 어린 왕자가 물었다.
‘나도 그걸 모르겠어. 하지만 어린애를 만나는 방법이 무엇인지 찾고 있어!’ 효선이 말했다.
<어린애들만 자기들이 뭘 찾는지 알고 있어.>어린왕자는 혼자 생각했다.
어린왕자는 이 책의 첫 장에 써 놨던 글을 건네 줬다.
글 첫머리에 모자가 그려 있었다.
‘내 그림이 무섭지 않나요?’어린왕자가 물었다.
‘아니, 모자가 왜 무서워?’효선이 말했다.
나는 어린왕자의 물음에 별 성의없이 대답을 하고 글을 읽어 내려갔다.
‘어른들은 나에게 속이 보이는 보아뱀이나 안 보이는 보아뱀의 그림 따위는 집어치우고,
차라리 지리나 역사, 산수, 문법에 재미를 붙여보라고 충고하지.
나는 내 그림 제1호와 제2화의 실패로 그만 기가 죽었던 것이야.
어른들은 자기들 혼자서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그때마다 자꾸자꾸 설명을 해주자니 어린애에겐 힘겨운 일이었지.
나는 좀 똑똑해 보이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항상 품고 다니던 내 그림 제1호를 꺼내 그를 시험해 보곤 했어.
그가 정말 이해력이 있는 사람인가 알고 싶었던 것이지.
그러나 늘 이런 대답이었어.
<모자로구먼.>
그러면 나는 보아뱀 이야기도 원시림 이야기도 별 이야기도 꺼내지 않았어.
나는 그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트럼프 이야기, 골프 이야기, 정치 이야기, 넥타이 이야기를 했지.
그러면 그 어른은 그만큼 분별 있는 사람을 하나 알게 되었다고 아주 흐뭇해하는 것이었어.....’
이 글을 읽어가면서 내 어린 시절의 이야기였음을 알 수 있었다.
‘저...양 한 마리만 그려 줘!’ 어린왕자가 말했다.
‘뭐?’ 효선이 말했다.
‘양 한 마리만 그려줘....’
효선은 어린왕자가 '얼마나 외로웠을까'
이런 생각하며 그림을 그렸다.
‘이건 상자야. 네가 갖고 싶어 하는 양은 그 안에 들어 있어.’ 효선이 말했다.
어린왕자는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내가 원한 건 바로 이거야! 이 양을 먹이려면 풀이 많이 있어야 할까?’
‘그게 걱정이야?’
‘내가 사는 데는 아주 작아서...’
‘아마도 충분할거야. 내가 그려 준 건 아주 조그만 양이거든.’
어린 왕자는 고개를 숙이고 그림을 들여다보았다.
‘그렇게 작지도 않은데...이것 봐!. 잠이 들었어.’
효선은 이렇게 해서 어린애를 찾는 방법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바이세로제 여인들은 환한 웃음으로 어린왕자와 인사했다.
‘안녕!. 담 주에 또 만나.’
‘안녕.’ 어린왕자는 바이세로제 여인들을 향해 빙그레 웃고 있었다.
그리고 바이세로제 여인들은 언젠가 목마름이 해소되는 우물물을 찾으리라..
아니, 찾을 수 없다해도 보이지 않는 우물이 있어 사막이 아름답다는 깨달음의 마음으로 함께 걸어가리라...
첫댓글 불어 원문에 보니까 les plis du salble sous la lune. 입니다.
직역을 하면 '달 아래 주름진 모래밭' 입니다.
sous라는 것은 전치사로 ...아래, 혹은 ...의 영향에, 라고 문장에서 쓰죠.
불어에서는 la lune 자체에 달빛이 포함되어 있답니다.
오히려 '모래 밭'을 '모래 언덕'이라고 표현 한 번역가의 문장이 우리나라의 정서에 맞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