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에서 풍기는 비릿한 냄새… 산토끼·멧돼지 못 파먹게 하려는 생존전략
노루오줌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됐어요. 아스팔트 도로와 빌딩이 즐비한 도시에 있다가 나무가 우거진 숲속에 들어가면 훨씬 시원함을 느낄 수 있어요. 요즘 숲속에는 기다란 분홍색 솜사탕 같은 '노루오줌'<사진> 꽃이 한창이에요. 아름다운 꽃이 이런 이름을 갖게 된 사연을 뭘까요?
노루오줌은 습한 산기슭이나 산속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에요. 노루가 목을 축이는 물가에서 많이 볼 수 있어서 이런 이름을 갖게 됐다는 설과, 뿌리에서 노루의 오줌 같은 지린내가 풍기기 때문이라는 설이 전해집니다. 실제로는 뿌리에서 오줌 같은 역겨운 냄새까지는 아니고 비릿한 풀향이 나는 정도랍니다. 노루오줌이 뿌리에서 이런 냄새를 풍기는 이유는 흙을 파헤쳐 뿌리를 뜯어 먹는 천적인 산토끼나 멧돼지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추정돼요. 이름과 달리 꽃은 향이 은은하고 좋아요. 서양에선 '가짜 염소 수염'(False goat's beard)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적당히 볼륨이 있으면서 수염을 거꾸로 세워놓은 것 같은 모습에서 연유한 것 같아요.
노루오줌은 우리나라 전역에서 볼 수 있어요. 여러 토양에 적응하는 능력이 뛰어나고 추위도 잘 견뎌요. 꽃이 오랫동안 피고, 물만 잘 주면 어디서든 잘 살아서 초보자도 쉽게 키울 수 있어요. 빨강, 진분홍, 자주, 흰색 등 꽃색도 다양해 여름철에 화려하면서도 신비로운 정원을 연출할 수 있습니다. 최근엔 부드러우면서 우아한 촛불 모양 꽃이 웨딩드레스와 잘 어울려 신부 부케로도 각광받고 있어요.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손자인 해리 왕손 결혼식에서 왕손 부인 메건 마클의 부케에도 흰색 노루오줌이 사용되기도 했어요.
식물 이름에는 노루뿐 아니라 호랑이, 말, 기린, 돼지, 여우, 노루, 꿩, 닭, 쥐, 개미, 사마귀, 개구리, 까마귀, 매, 까치, 박쥐, 뱀 등 다양한 동물들이 등장한답니다. 주로 식물 생김새나 특징이 동물과 닮았거나 연관이 있기 때문에 동물 이름을 이용해 식물 이름을 지었어요. 예를 들어 '매발톱'은 꽃 뒷모양이 움켜진 매의 발톱처럼 생겼고, '금꿩의다리'는 줄기가 꿩의 다리를 닮아 연약한 데다 수술이 황금색을 띠기 때문이에요. 또 '벌개미취'는 벌판에서 자라며 꽃대에 많은 개미가 붙어 있는 것처럼 털이 많아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