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장 속에서 여름옷을 뒤져보게 하는 날씨다. 더워지면 입맛은 저만치 달아난다. 이럴 때 가장 쉽게 생각나는 메뉴가 국수다. 그중에서도 메밀국수는 메밀 자체의 구수한 향 때문에 더울 때 더욱 생각나는 메뉴다. 부산 연제구 거제1동 봉평면옥(051-865-3141)은 올해로 9년째 메밀국수를 삶아내고 있다. 간판에는 막국수가 씌여 있지만 현재는 메밀국수만 하고 있다.
메밀은 모밀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함경도 사투리다. 메밀의 모양이 세모처럼 보이게 모가 나 있다. 그래서 모가 난 밀, 곡식이라는 뜻으로 모밀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메밀은 1년에 두 번 수확한다. 6월 말~7월 초 거둬들이는 것이 여름 메밀, 9월 말~10월 초 수확하는 게 겨울 메밀이다. 여름 메밀은 큰 온도 차가 없이 자라므로 메밀의 향이나 맛이 겨울 메밀에 비해 덜하다. 이에 반해 겨울 메밀은 낮과 밤의 온도 차로 맛이 더 달아지고 향기도 진해진다.
메밀국수를 주문하면 면수가 먼저 나온다. 메밀면을 삶아낸 물이 면수다. 면수에서는 면을 물에 삶은 냄새와 구수한 냄새가 동시에 났다. 맛은 부드러웠다. 그렇지만 숭늉보다는 훨씬 가벼웠다. 면수의 맛이 녹차와 비슷하다는 사람도 있다. 서 대표는 면수의 맛을 콩 삶은 물 같은 구수함이라고 했다. 기자에겐 단 맛이 느껴졌다. 사람마다 어떤 맛을 강하게 느끼는 지가 다르기 때문에 표현이 다양하다는 설명이었다.
서승일 대표의 오른팔은 파스투성이였다. 강원도 봉평에서 나는 메밀을 사와 직접 제면 하기 때문이다. 손수 만든 나무 도마와 홍두깨로 메밀 반죽을 2㎜ 두께로 편 뒤 메밀가루를 뿌려 서로 달라붙지 않게 한다. 그리고 이 반죽을 접어 칼로 썰어낸다. 서 대표는 "기계로 뽑은 면은 반죽이 눌러지면서 면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맛이 덜하다. 칼국수의 맛이 칼로 썰린 모서리에서 나는 것처럼 메밀국수도 똑같다"고 했다.
메뉴판을 보니 메밀의 함량별로 가격이 다르다. 메밀은 1㎏에 2만 원으로 가격이 무척 비싸다. 그래서 메밀 50% 물국수 1만 원, 메밀 80% 물국수 1만4000원으로 가격을 달리했다. 끈기가 전혀 없는 메밀이 많이 들어갈수록 반죽의 어려움도 크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메밀국수를 정말 좋아하는 단골이 계속 찾는다고도 했다.
취재를 갔던 날도 한 단골의 애정이 어린 불평을 들었다. 서 대표는 "방금 나가신 단골이 오늘 국물에 돼지고기 육수 맛이 너무 진하다고 하셔서, 솔직히 말씀드렸다. 요새 가다랑어가 너무 비싸 돼지육수 양이 좀 늘어났다. 가다랑어를 더 넉넉하게 넣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맛은 정직하고 예민하다더니 그 손님에, 그 주인장이었다.
쯔유에 찍어 먹는 간장국수를 주문했다. 삶은 메밀에서 구수한 향기가 났다. 쯔유는 고등어를 6개월간 말린 것과 가다랑어, 돼지고기 육수를 섞어 만든다. 고등어의 진한 맛과 간장 맛이 잘 어우러져 단맛이 났다. 서 대표는 "일본에서는 쯔유 그릇을 들고 면을 아래쪽만 적시고, 위쪽은 맨 국수 채로 후루룩 빨아들인다. 후루룩 소리가 크게 나야 주방장이 만족한다"고 설명했다.
시키는 대로 아래만 담그고 후루룩 마시듯 해보았다. 서 대표는 "일본에서는 메밀면의 맛을 목 넘김(노도고시)으로 표현한다. 그야말로 씹는 것이 아니고 흡입해야 제맛을 느낀다고 한다"고 말했다. 함께 내온 돼지고기 수육 몇 점도 함께 먹었다. 촉촉하게 잘 삶긴 데다 쯔유에 찍어 먹으니 입에 착 붙었다. 낮 12시~오후 6시30분. 매주 토요일 휴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