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꿔라. 꿈은 전복되지 않는다.
[시민포커스=조한일 기자]
다시 부르는 노래
선안영
분홍들이 쏟아진다 전복된 트럭에서
인식표 단 암호들 아기돼지 굴러온다
길몽의 꼬리 뭉치가 술 술 술 풀어진다
똥을 갈기고, 킁킁대고, 중앙선을 뛰어넘고,
길들여지지 않겠다 가로수를 치받고
한바탕 천진무구가 눈길 위에 눈부셔라
횡재수가 떼 지어 몰려드는 길 위에서
일몰의 뒤편에선 일출이라 부르듯
오지게 뒤집힐 한판 또 전복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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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판에선 샅바를 누가 매주는 것보다 스스로 생의 허리춤에 단단히 동여매 붙들고 견디며 살 일이다. 그래야 그 판을 한판 뒤집을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 매 준 샅바는 그의 습성과 기질이 배어 있어 그의 지배를 감수할 수 있어야 우세승이라도 어쩌다가 할 수 있다. 하지만 스스로 샅바를 매야 무게중심이 나에게 있게 된다.
‘전복된 트럭에서’ 뜻밖에도 남의 판에서 길러지던 분홍의 아기 돼지들은 꼬리를 흔들며 암호들이 순식간에 풀리는 돼지꿈 같은 일을 준비도 없이 맞았다. 하지만 느닷없는 자유는 권력을 지닌 자에 의해 변질되고 남용되곤 한다.
‘똥을 갈기고, 킁킁대고, 중앙선을 뛰어넘고,’라는 시인의 시야에 펼쳐진 아기 돼지들의 소심한 난동은 간단한 비번에 풀려버린 그들의 보안에 취약한 ‘암호’을 지닌 축산업의 일이 아닌 대부분 민초의 일이다. 길들이려고 하는 자와 ‘들여지지 않겠다’는 자의 샅바싸움에 ‘가로수‘는 의연히 선 채로 목도하고 증언한다. ‘천진무구’하면서 ‘눈부신’ 길들여지지 않으려는 자들의 얼어붙은 눈길이라는 동토(凍土)에서 몸부림을 치를 떨며 그들이 하나둘 스러질 때 마른 잎사귀도 하나둘 떨어진다.
돼지꿈 꾸면 로또 사서 인생 한판 뒤집을 참이었는데 그 ‘횡재수가 떼 지어 몰려드는 길 위’에선 드디어 해독에 취약해 지배당하는 인식표쯤 떼어내서 아스팔트에 내팽개치고 눈뜨고도 꿈을 꾸는 노래를 다시 부르고 싶은 사람이 나 혼자일까?
시인은 삶의 ‘뒤편’을 해독하는 남다른 눈으로 작품을 갈무리한다. ‘일몰의 뒤편에서 일출이라 부르듯’이라는 표현은 스스로 매는 샅바 사용설명서의 부제(副題)다. ‘오지게 뒤집힐 한판’은 길몽을 꾸지 않아도 늘 흥얼대는 시인이 부르는 노래의 첫 소절이리라. 또 ‘전복을 꿈꾼다’는 그 노래의 후렴구이며 끝까지 개사하지 않을 그녀의 인식표에 쓰인 전문이다.
꿈을 꿔라. 꿈은 전복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