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17. 5. 7.
고향 후배한테서 전화 왔다.
내 안부를 물으면서 언제 시골로 내려오느냐고.
나는 대답했다.
'요즘 꽃가루 알레르기 현상으로 이십여 일째 눈물 콧물이 나고, 얼굴 붓고, 목에 감기 증세가 있다, 그래도 곧 시골 내려가야 한다.
시골 텃밭농사 시기를 벌써 놓쳤는데도 요즘 시골 내려가기가 망설여진다. 나도 알레르기 증상에 고생하지만 아내 역시 고생을 한다.
내가 지금 서울에서 오래 머물렀으니 꽃가루 알레르기보다는 미세먼지 알레르기일 게다. 대기오염일 게다.
그는 나한테 말했다.
'당분간 시골로 내려오지 마세요. 형님네 텃밭에는 온통 꽃들이 많이 피어 있습니다. 지금 꽃가루, 송화가루가 많이 날립니다. 제발이지 한 달 뒤에나 시골 내려오세요.'
내 시골마을은 그럴 게다. 어디 내 시골뿐이랴? 송화가루가 날리기에 산자락에 밑의 시골마을은 온통 뿌이연하다.
울창한 숲, 활엽수와 침엽수 나뭇잎에서 날리는 솜털, 송화가루 등이 온 세상을 덮는다.
또 키 작은 식물도 그럴 게다. 새잎 나고, 많이도 피었고, 졌고, 또 피울 게다.
꽃 피는 계절이 마냥 좋을까? 예쁜 꽃이 피면 마냥 예쁘고, 달짝지근한 냄새를 좋아할까?
중부 서해안 갯바람이 야산 산능선을 넘어오는 산밑 마을에 있는 내 시골집은 온통 나무와 풀들의 세상일 게다. 잡초들도 한몫하고.
그런데 말이다. 나는 꽃가루 알레르기가 겁나는 사람이다.
후배는 말했다.
한 달 뒤에나 시골로 내려오라고. 내 텃밭 속의 매실이 익거든 그때서야 내려오라고.
매실?
매실이라는 말이 귀에 오래 남는다.
퇴직한 뒤에 포클레인으로 흙을 갈아엎고는 밭 세 자리에 매실나무 묘목 180여 그루, 단감나무 180여 그루, 석류, 모과 등의 묘목 400여 그루를 심었다.
어디 이것뿐이라? 장터에서, 외지에서도 꽃나무도 제법 많이 사다가 심었다. 묘목이 어렸기에 밀식했다. 크는 대로 옮겨 심겠다고. 그런데 마음대로 되었을까? 아흔 살을 훌쩍 넘긴 늙은 어머니가 아프기 시작했다. 나는 서울과 지방의 종합병원으로 전전긍긍해야 했으며, 엄니 멀리 여행 보낸 뒤에도 나는 바쁜 체를 해야 다. 자연스럽게도 시골 텃밭농사를 포기했다. 그 결과로 잡목 잡초들이 과일나무 묘목과 키 작은 식물들을 밀어냈다. 자연도태설이 맞다는 것을 증명하듯이...
많이도 죽었다.
그래도 살아남은 묘목은 성목이 되어 하늘을 덮고 있었다. 나날이 더 커서...
일전 5월 5일, 어린이 날에 고향에 다녀온 누나는 '으름꽃'이 많이 피었다고 핸드폰으로 사진 찍어서 나한테 전송했다. 으름꽃이 피는 때이던가? 서울에서만 머무는 나는 꽃 피는 시기, 순기가 생각 안 난다.
일전 5월 4일.
송파구 잠실3동사무소에 들러서 제19대 대통령 선거 사전투표를 했다. 동사무소 마당에 있는 작은 화단에서 몇 종류의 화초들을 보았다. 잠깐 울적해졌다. 내 마음은 시골에 가 있는데... 힘께 내려갈 아내는 왜 그리 핑계가 많은지. 늙은 남편, 혼자로는 절대로 내려보내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아내...
오늘은 5월 7일.
꽃가루 날리고, 송화가루가 날리고, 키 큰 플라타너스 등의 새잎에서는 솜털이 날리는 계절이다.
나는 또 회상한다. 나는 직장생활 말년에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 자주 들러서 쉬었다. 수십 만 평의 넓은 터에는 죽은 자와 산 자가 함께 숨 쉬었다. 무덤도 많고, 우람하게 큰 정원수도 많고, 키 작은 화초들도 많았다.
5월 초순인 지금 그곳에도 꽃가루 날리겠구나. 송화가루도 날리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도 시골로 내려가고 싶다고.
5월 중순의 푸름은 환상적이다. 모든 나무 잎새는 푸름에 가득 차 있다. 봄꽃들이 많이도 피었고, 많게도 졌고, 또 늦봄의 꽃, 초여름의 꽃들도 끊임없이 뒤를 이어서 새로운 꽃망울을 올릴 게다.
내 텃밭에서 3월부터 11월까지 적게는 10여 종, 많게는 20여 종이 들꽃, 나무꽃이 피고 지곤 했다.
송화가루 날아오는 시골집. 낡은 함석지붕 위에는 온통 송화가루 투성이겠지.
함석지붕에서 흘러내리는 빗물을 담아두는 큰 물통에서, 가득 담긴 빗물 위에도 누르스름한 송화가루가 둥둥 떠서 덮었을 것 같다. 온통 송화가루의 세상이라는 듯이.
고향에 내려가는 길목에 있는 태안반도도 들러볼까?
둘째 딸 사둔댁이 있는 태안반도에는 염전이 있다.
송화가루가 묻는 5월의 소금이 가장 맛있다고 하는데...
이 글 쓰다가 잠깐 쉬면서 거실 남쪽 유리창 너머를 바라보았다.
송파구 잠실동 아파트 틈새로 서초구 대모산이 조금 보인다. 멀리는 관악구 관악산 정상도 보인다.
모두 뿌이연하다. 설마하니 송화가루가 뒤덮어서 그럴까? 아닐 게다. 대기오염인 미세먼지가 뒤덮었기에 더욱 그럴 게다.
서해안 갯바다가와 가까운 내 시골집은 오죽이나 더 하랴. 갯바람에 실려온 외국(중국, 티베트 등)의 황사바람, 미세먼지, 시골집 뒤의 송화가루, 나뭇숲에서 날리는 솜털가루도 무척이나 많겠다.
꽃가루 알레르기에 약한 나.
그래도 시골집에 내려가고 싶다.
콜록대면서, 콧물 흘리면서, 눈이 퉁퉁 부었는데도 텃밭 농사를 짓고 싶다.
게으른 농사꾼이라고 탓을 해도...
지구온난화 현상으로 식물은 제철을 잊었는지 일찍 순을 내고 일찍 꽃을 피운다.
생체리듬이 변질되어 꽃 피우고 열매 맺는 시기도 예전과는 사뭇 다르다.
시골에서 살던 내 경험으로는 5월 16일쯤이면 나뭇잎이 반짝이며 아름다웠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는 5월 중순이 아닌 초순으로 앞당겨졌을 것 같다.
내 어린 시절과 비교해서 한 열흘쯤 빨라졌을 것 같다.
5월 초순인 지금에는 내 시골집 뒤산 옆산에서 나무의 솜털가루와 송화가루가 많이도 날리겠다.
일전 5월 5일, 어린이날에 고향집에 갔던 누나는 대문 빗장 지른 울안에는 들어서지 못하고 마당 끝에 붙여 있는 텃밭 윗밭 아랫밭을 둘러보았을 게다.
주인이 없는 텅 빈 집, 풀밭인데도 텃밭에는 먹을거리가 가득 찼다고 말했다.
으름꽃과 키 작은 화초 사진을 찍어서 나한테 전송했어도 그 사진에는 감꽃은 없었다.
감꽃은 아직 피지 않았다는 뜻이겠지.
2017. 5. 7. 일요일. 최윤환
내 입말에는 '송화가루'이다.
맞춤법에 따르면 송화 +가루는 '송홧가루'란다.
입에 밴 나한테는 국어연구원의 규정이 꼭 맞는 것은 아니다.
억지로 어떤 틀을 맞추는 것 같다. 나한테는 '송화가루'이다.
우리말과 글을 더 치밀하게 다듬어야 한다.
우리말과 글을 살려 써야 한다는 게 시골사람인 내 생각이다.
첫댓글 꽃가루 알레르기에 고생이 많으신데
고운 글을 주시네요
매일 즐겁게 머물러 봅니다
어? 벌써 댓글 달았어요?
지금 다다닥하고 자판기를 두들기고 있는데...
글은 발로 써야 하는데도 오늘은 책상 앞에서 자판기 두들깁니다.
그냥 머리속에서 쓴다는 뜻이지요. 생각해서 쓰는 글은 현장감, 생동감이 없거나 적어서 글맛이 줄어들지요.
오늘은 5월 7일. 내 고향 시골장날이네요. 매 2일 7일장이 열리는 오일장. 내일은 대천장날인데...
마음은 재래시장 시골장에 가 있네요.
봄꽃 모종을 팔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