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방송 : 경기방송 (FM 99.9MHz) (18:00~ 20:00) ◆ 진행 : 유연채 앵커 ◆ 대담 : 이재정(경기도 교육감)
[유연채] 4부, 금요일에 만난 사람,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님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4부 이제부터는 교육감님의 드라마틱한 인생을 좀 저희들이 들여다 보겠는데, 저희들이 가장 궁금한게 교육계의 총수, 교육감님의 어렸을 때 공부를 잘했을까? 얼마나 잘했을까? 이런 궁금증이 듭니다. 어땠습니까? 어렸을 때? |
[이재정] 그때만 해도 제가 6.25가 나던 해에 학교에 들어갔거든요. 그러니까 뭐...
[유연채] 고향이 어디십니까?
[이재정] 충북 진천입니다. 아주 촌놈이죠.
[유연채] 시골에서 학교를 다녔는데, 정말 그 시대에 가기 어렵다는 경기중학교, 경기고등학교 대한민국의 최고의 명문 중고를 나오셨네요. 대단한 수재였네요.
[이재정] 수재라고 생각하기에는 전혀 생각을 못했고요. 그때 처음으로 4지 선다형 시험을 봤습니다.
1956년도에. 4지선다형 시험을 처음 보니까 연습문제를 한번 풀었는데요 너무 쉽더라고요. 답이 다 나와 있으니까요.
사실은 그런 턱에 들어갔는지 모르겠습니다.
[유연채] 그럼 그 당시, 경기중 경기고 지금 사회 활동 하시는 분들 어떤 동기분들이 계시나요.
[이재정] 많죠. 가까운 친구 중에는 대한변협 회장했던 천기흥도 있고요. 정부에서 부총리를 했던 이헌재. 이헌재는 저하고 중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이었고. 또 경기도 지사였던 임창열도 저하고 동기생입니다.
[유연채] 그런데 고향에서 학원까지 설립을 했습니다. 신명학원. 이 학원에 3년 동안 중학교 진학을 못한 학생들을 위해서 무상 중등 과정을 운영하셨다. 이런 이력들이 있는데. 이게 19살 때인데 학원 설립이 가능합니까?
[이재정] 제가 62년에 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법대를 지망했다가 떨어졌죠.
정말 분하게 떨어졌다고 생각해서 낙향이나 하자 해서 고향에 돌아가서 가보니까 마땅히 할 게 없는 거에요.
그때 제 마음으로는 대학가지 말자. 차라리 대학가지 말고 뜻 있는 일을 한번 찾아보자 그래서 생각한 것이 당시에 그곳에 가니까 중학교를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거에요.
중학교를 수용할 수가 없어서. 그래서 중학교 못간 아이들을 어떻게 할까 하다가 아예 그럼 학원 인가를 하나 내서, 정식으로 관인 학원을 내서 이름을 신명학원을 냈는데.
신명이라는 배경은 진천에 성공회 교회가 있었는데, 그 교회가 옛날 옛날 했던 학교 이름이 신명학교였습니다.
그래서 신명학원을 내서 중학교 못간 학생들을 모집해서 중학교 과정을 똑같이, 아침 9시부터 오후까지 해서 3년 과정을 운영했습니다.
한 푼 돈 안받고,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주학이죠. 그래서 제가 충청북도 경찰청으로부터 표창을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유연채] 이때부터 이른바 이재정표 이른바 무상교육의 씨앗을, 철학을 세우시기 시작한 겁니다.
자, 대학에서는 문학을 전공하셨네요? 이른바 문학, 인문학. 지금 하시는 교육계에 수장의 길을 가는데 큰 발판이 됐습니까?
인문학 하면 요즘 여러 가지 인문학을 놓고 여러 가지 해석을 많이 하는데.
[이재정] 제가 대학을 못가고 몇 년 놀다가 그 후에 고려대학교를 들어가서 그 때 선택한 게 독문학을 선택했는데. 제가 독문학을 선택한데도 이유가 있었어요.
독일이라는 나라 역시 분단된 국가고 또 독일이란 나라가 제국주의 시대에 세계를 흔들었던 나라이기 때문에 그 어떤 내면에 세계를 보려고 한다면 역시 독일문화를 보는게 좋지 않겠느냐 그래서 독일문화를 보기 위한 마음으로 들어갔죠. 그런데 역시 잘 선택했던 것 같아요.
[유연채] 최근에 인문학 열풍도 있지만, 어떤 학교에서는 철학과를 폐지하고 인문학 무용론까지 나왔잖아요. 그건 어떻게 보십니까?
[이재정] 인문학이 한 번 무너지면 그것을 재건하는데 30년 이상 걸립니다. 우리 사회 현상이 어려워진 것도 인문학의 배경이 사라졌기 때문에 인간 사회가 너무나 건조해지고 서로 대결상태로 가고 이런 어려움 속에 빠진 것이 아니냐 화해와 서로 협력과 협동이 사라지고 오직 경쟁과 대결만 있는 그런 상황이 된 게 인문학의 부재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유연채] 교육감님의 인생행보를 보면 참 의외의 길이 많습니다. 대한성공회 사제가 또 되셨네요? 사제의 길을 어떻게 선택하신 겁니까?
[이재정] 대학졸업하면서 그때 꿈으로는 제가 대학원을 가서 계속해서 독문학을 해서 교수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그때만 해도 성공회 사제 숫자가 적어서 고민을 많이 했는데 지금 돌아가신 당시 고려대학교 교수로 계시던 김진만 교수께서 간곡히 저에게 사제가 되는 건 어떻겠느냐. 대학원 가는 것도 좋겠지만 신학원도 대학원과 비슷하니까 그냥 가라 해서 사실 그때만 돼서 등 떠밀려서 저는 사실 믿음도 좋지 않았는데 등 떠밀리다 시피 해서 성공회 사제가 됐고, 그 후에 이런 저런 활동을 많이 하게 됐죠.
[유연채] 결국엔 총장까지 하셨잖아요?
[이재정] 그래서 대학 성공회 대학교도 만들고, 성공회대학교 총장도 역임하게 된 것도 역시 사제의 길을 간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
[유연채] 그게 70년대죠? 사제의 길로 들어선 것이...
[이재정] 72년입니다. 유신체제가 막 들어섰던 그 해입니다.
[유연채] 70년대 사제의 길 정말 정치적 격랑과 함께 할 수 밖에 없던 시기 아닙니까?
[이재정] 그렇죠.
[유연채] 그럼 거기서 민주화 투쟁도 그 때 함께 길을 가신 건가요?
[이재정] 그렇죠 70년대 초에 반 유신 운동에 참여하게 되는데 이 때 활동은 제가 한국 기독교 교회 협의회라고 하는 교회 연합단체를 통해서 활동을 하기 시작했고요. 어려움도 많이 겪었습니다.
[유연채] 사제의 길을 걸으시고, 대학 총장도 역임하시고. 정치의 길도 뛰어드셨습니다.
1999년. 김대중 대통령의 요청으로 정치에 뛰어들었다고 하시는데. 그럼 새천년 민주당의 창당 당시에 들어가신 겁니까?
[이재정] 그렇죠. 제가 김대중 대통령을 알게 된 것은 역시 유신 시대 때 운동을 하면서 알게 됐고요. 그래서 하루는 대통령께서 저를 불러서 새로운 정당을 하나 만들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저한테 총무위원장을 맡아서 창당작업을 해달라. 저는 사실 정당도 모르고 정치도 안 해본 사람인데, 의회의 부탁을 받아서 참 고민을 많이 했어요.
왜냐면 학교를 떠나야 하니까. 고민을 많이 하다가 이것도 역사의 부름이고 당시 제 생각에는 좋은 정당이 돼야 좋은 정치가 있을 수 있지 않겠나 이런 생각을 가지고 새천년 민주당 창당 작업의 총무 위원장을 맡게 됐죠.
그런데 그 당 이름이요, 처음에는 구상했던 것은 참여 민주당이었습니다.
[유연채] 참여 민주당. 앞에 그 참여가 또 씨앗을 뿌렸을 까요? 김대중 정부에 이어서 노무현 정부, 참여 정부라고 했죠. 그 참여 정부에서서 통일부 장관을 또 하셨네요.
[이재정] 네 그니까 참여민주당 생각해서 참여정부로...
[유연채] 아 그러면 대를 이어서 대통령을 모신건데... 통일부 장관을 하시면서 남북 정상회담에 또 산파 역할을 하신거죠.
[이재정] 저에게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보람이 있었다면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서 한반도의 화해와 평화 그리고 통일의 어떤 하나의 기반, 특히 10.4정상 선언은 분명히 그런 길을 닦아놓은거죠.
[유연채] 그 인생의 역정 많은 가장 가까이에서 인생의 동반자 노릇을 하신 분은 역시 사모님이시겠네요? 사모님은 어떻게 만나게 되셨습니까?
[이재정] 아주 어렸을 때 부모님하고 집안이 가까워져가지고... 실제로는 성공회 교회 안에서 만났는데요. 가장 구체적인 건 학생회 지도 교사를 할 때 제 아내가 학생이었습니다.
[유연채] 네, 하여튼 제가 오늘 세탁얘기도 하고 했습니다만 저도 제 아내를 잘 모시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교육감님께서 앞으로 내조 많이 해주십쇼. 내좁니까? 외좁니까?
[이재정] 뭐 다 합니다. (웃음)
[유연채] 오늘 말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출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이었습니다.
배수아 기자 @
기사입력 2015.01.09 21:52:53 기사수정 2015.01.09 23:15:58
첫댓글 국무총리나 대통령이 되셨으면 국민이 각자의 자리에서 신명나게 일하는사회를 만들지 않았을까!?
그러면 국민 행복지수가 높아가고 신명나게 일하니 경제는 좋아지고~~~
새로운 변화 시대의 부름에 앞장서 가시는 모습 존경스럽습니다
큰 뜻을 헤아릴 수 없지만 또다른 시대의 더 큰 일을 앞장서 만들어 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