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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명의 전국 산꾼들과 함께한 가야산 말아먹기 5탄
백운동-만물상-서장대-가령-가산(△690.2m)-솔재(59번 도로)-x579m-북두산(△687.9m)-모로현(32번 군도)-문수봉(x679m)-羅常峙(또는 내성치)-미숭산(x757m)-합천 수련장
도상거리 : 약 18km
소재지 : 경북 성주군 수륜면 고령군 덕곡면, 경남 합천군 가야면, 아로면
도엽명 : 1/5만 가야 합천 2장
국립공원 가야산은 山보다는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을 보유하고있는 법보종찰(法寶宗刹)인 海印寺가 더 유명하지 않을까?
더불어 가을철 홍류동계곡의 단풍과 어우러진 그런 것들과 연계해보면 산행보다는 관광지 쪽으로 많은 생각을 하겠지만 산꾼 들에게는 다양한 재미있는 코스를 제공해주는 곳이다
그런 것들로 인해서 그동안 전국의 좋은 산님들과 가야산 말아먹기 라는 주제로 산행한 것이 벌써 다섯 번에 이를 정도로 기존의 메인 등산로 외 생각한다면 다양하게 즐길 코스가 산재해있다
이번 산행의 출발지가 되는 백운동지구는 1980년 대 이 후 개발되고 찾는 이들이 많아진 코스이다 그동안 몇 번의 말아먹기 중에 두 번을 백운동에서 출발했을 정도로 한가한 곳이다
주차장의 계단을 올라서서 북서쪽 송림으로 올라서면 만물상 오르는 들머리가 된다
고도를 높이며 오르는 만물상 능선은 여느 암릉과 마찬가지로 아기자기함에 힘든 줄을 모르고 진행하게 된다
서장대를 지나서 남쪽으로 꺽어가는 능선에는 만물상 능선보다 족적이 더 뚜렷한 것으로 보아서 정상 쪽에서 이 능선을 많이 이용하는 듯하다
가산을 지나서 솔재까지 큰 무리 없이 진행된다고 본다
솔재에서 식수대가 있으니 식수를 구할 수 있겠으나 겨울철은 무리지 않을까싶다
북두산 직전의 헬기장 일대까지는 임도를 따르게 되니 힘 듬이 없고 북두산 정상은 자칫하면 그냥 지나치기 쉬우니 주의할 것,
산행후기에도 언급하듯이 북두산에서 모로현으로 내려설 때 도계를 따르지 않도록 주의할 일이다
민가가 있는 모로현에서 식수를 구할 수 있고 차량이 다니는 도로니 탈출도 용이하다
모로현에서 문수봉까지 상당히 인내를 요구하는 급한 오름이 장시간 이어진다
내성치는 임도이며 미숭산 정상까지는 무리 없이 30분이면 올라선다
미숭산 정상부터는 일반적인 등산로이며 수련장까지 20분이면 내려선다
1/5만 지도 크게 보기
◁산행 후기▷2007년 4월 8일 (일) 날씨 대체적으로 흐림
같이한 사람들
서울, 수도권 36명 대전 3명 대구 안동 12명 울산 영남알프스 19명 부산산사 3명 밀양 6명 경주 권종훈님 홀산 5명 총 84명 홀산 無心이님 잠깐 참가
2002년 백운동-가야산-남산 깃대봉-작은가야산-의상봉-장군봉 대종주
2003년 산제치-비계산-작은가야산-단지봉-남산제일봉-청량사
2004년 백운동-가야산-형제봉-독용산-신흥뒷산
2005년 대덕면-월매산-수도산-황점 코스에 이어서 마지막 5탄으로 가야산 말아먹기 산행을 기획 한다
본래도 그랬지만 사실 나이도 먹어가면서 나서는 것이 싫어서 2년전 월매산 산행 이 후 합동산행을 염두에 두지조차 않았다 중간 중간 울산의 권 총무께서 한번 안 하느냐는 의견들이 있었지만 생각조차 없었기에 그냥 매년 해왔던 것이 작년을 넘겼을 정도니
말이다
이런 저런 이야기들로 마지막으로 가야산을 말아먹자(?)는 이야기와 지난 가을 수도지맥을 종주하면서 만대산 에서 바라본 미숭산 의 모습이 참! 마음에 든 그림이라고 생각하면서 항상 가야산 말아먹기의 중요 소스를 제공해주는 높은산 님과 다시 한 번 의견조율을 한다
그러나 날짜 까지는 잡아놓았지만 겉으로 드러난 나와 달리 난 「나대는」것을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다만 무언가 해야겠다고 생각하면 적극성을 보이지만 말이다
날짜를 잡아놓고 한 달여 전에 인근 카페에 공지를 하면서도 여기저기 소문을 내지 못하는 것은 바로 그런 내 스타일 때문인데 그런 것들로 인해서 일부 오해가 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뭐든지 이야기 하지 않고 설명을 하지 않으면 오해가 생길 수 있는 것을,
제일 먼저 떠 오른 걱정은 날씨다 그날의 날씨야 사람이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2년 전 월매산-수도산 산행 때 뼈를 아리는 봄비로 하산 후의 흥취가 반감된 경험이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더구나 80~100명 분의 음식과 여러 가지 준비에다가 서울 수도권에서 출발하려면 상당한 액수의 버스대여료 같은 것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저 그동안 산 다니면서 쓰레기 버리지 않고 훼손하지 않으며 다닌 공치사를 산신령님께 알아주시기를 바랄뿐이다 (^_^)
두 번째 걱정은 이 기간이 경방기간이라서 많은 인원이 움직이는데 문제의 소지가 생길 수 있다 는 것에 상당한 스트레스다
그저 산은 평소같이 홀로 다니면 내 최고인데 ... 쯧!!!
그렇게 날짜는 다가오고 다행히 비 온다는 예보도 없고 초반의 집계로는 100명 정도 참가하지 않겠는가하는 .... 오히려 많은 인원에 대한 걱정이 생긴다
하지만 정작 애쓰고 고생하는 사람은 항상 음식 준비로 고생하는 울산의 권 총무님이시다
어찌되었건 그날은 다가왔고, 토요일 밤 약속장소인 서초구청 앞으로 속속들이 반가운 산님들이 도착한다
자주 보던 님들도 있지만 몇 년 만에 이런 산행 때나 보던 반가운 얼굴들,
막판에 많은 인원이 취소하고 또 다른 얼굴들이 합류하고 그렇게 36명의 서울 수도권 산님들을 태운 커다란 버스는 남녘을 향해서 달려가고, 대전의 판암에서 벽산 솔개 곰발톱 세 사람을 더 태운 후 대진고속도로-88도로를 거쳐서 백운동으로 도착하니 04시30분이다
버스가 주차장에 도착하자말자 한쪽 편으로 보이는 텐트 쪽으로 가보니 부산산사의 조은산 제이제이 객꾼, 그리고 호남정맥을 마치고 달려오신 백곰님 부부, 토요일 야영 장비를 갖추고 내려온 대명님과 해리,세리 부부님들이 반겨준다
특히 부산팀이 준비해 와서 일찌감치 끓여놓은 담치(홍합)국물은 새벽의 가야산 백운동의 한기를 가시게 해줬으니 그 고마움을 알량한 세치 혀로 고맙다는 표현 밖에 못한다
정성이 없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렇게 산꾼들의 情은 어둠의 새벽부터 서로의 마음에 교감을 이룬다
속속들이 도착하는 대구팀 12명을 실은 버스, 황영주님과 같이하는 밀양팀, 가야 인근까지 버스를 타고 왔다가 택시로 홀로 달려와 주신 경주의 권종훈님, 조금 늦게 출발한다는 울산의 영남알프스 19명과 하산지점에서 조우하기로 하고
05시40분 이미 랜턴이 필요 없을 정도로 밝아온 백운동 주차장을 출발한다
◁백운동 주차장 전 날 도착한 부산의 제이제이님의 사진을 도용(?)▷
이번 코스는 백운동을 출발해서 서장대에서 남동쪽으로 심원골 을 끼고 흘러내린 만물상 능선을 올라서 서장대에서 다시 남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경남북 도계를 따라 이어지는 장쾌한 암릉을 따르다가 가령으로 내려서고 가산 경유, 포장도로인 솔재를 지나서 북두산-모로현-문수봉-내성치를 거쳐서 마지막으로 미숭산으로 이어지는 암릉과 육산을 연결하는 적당힌 장거리 능선 코스다
북서쪽 송림을 오르는 경쾌한 발놀림들이 이어진다
서울이고 부산이고 대구고 모든 산님들이 제각기 각자의 스타일대로 경쾌한 발걸음들을 놀리고 가볍게 5분 여 오르면 발아래 백운동지구의 관광호텔이 내려다보이고 동쪽 골자기 쪽으로 새롭게 지은 사찰건물은 법수사지를 복원하는 걸까!!!
무덤을 지나고 빼곡한 송림을 헤치며 오르면 다시 공터의 무덤이 나타나며 날은 밝아오고,
산죽을 헤치며 오르는데 활짝 핀 진달래가 모처럼 많은 산꾼들이 찾아온 것을 반기는 느낌,
서서히 작은 바위들이 나타나고 주위도 온통 암릉들이 펼쳐지면서 만물상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더 부풀리게 한다
◁백운동 지구와 중기마을 일대에 무언가 태우려고 불을 지른 모습이 보이고, 아래사진 법수사를 복원하는 건가!▷
◁솔치재 북두산 미숭산이 살짝 보이고, 아래사진들은 첫 번째 바위벽 일대▷
06시 첫 번째 바위벽이 나타나면서 먼저 도착한 대구의 산길로, 서울의 부리부리 아우들이 슬링을 내리고 잡아주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단촐한 인원이 아니고 대인원이 움직이니 빠른 진행을 위해서 잡아주고 끌면서 가는 것이다
남쪽을 바라보니 서장대에 올라서서 다시 남쪽의 도계 능선을 따라서 이어지는 솔치 건너 북두산과 미숭산의 정상도 살짝 그 모습을 나타낸다
벽을 올라서면 멋진 바위반석들이 펼쳐지며 오르는 사람들을 기다리며 환호작약들을 한다
잠시 후 우측 아래 절벽지대를 두고서 바위 길을 휘돌아 오르면 암릉을 밟으며 오르면 본격적인 북쪽으로 서장대까지 이어지는 만물상 능선이 전체적으로 시야에 들어오고 좌측으로 심원골 건너 공룡릉이 위압적으로 바라다 보인다
우측으로는 용기사지를 거치는 백운동에서 칠불봉으로 오르는 메인등산로의 능선들이 펼쳐지고,
06시17분 정도 동쪽으로 구름사이로 붉은 해가 떠오르며 아기자기한 만물상의 암릉을 걷는 산꾼들은 계속 감탄과 환호와 오래 동안 궁금했던 이야기꽃으로 거리를 줄여나간다
◁만물상의 암릉들이 본격적으로 보여지기 시작하고, 아래사진은 좌측 공룡릉도 보이고▷
◁칠불봉 상왕봉 일대의 정상부의 암릉들도 만물상 능선 뒤로 보여진다▷
잠시 암릉의 날등을 내려서서 좌측 아래 절벽을 내려다보면서 부드러운 흙을 밟으며 내려서다보면 가야산성의 흔적들이 나타난다
이 산성은 가야산의 동북쪽으로 낮아지면서 형성된 작은 골짜기를 감싸고 있으며 성안에 용기사(龍起寺)가 있어서 일명 용기성(龍起城)이라고도 한단다
경상도지리지 에는 6개의 골짜기를 가진 둘레 2,730보의 포곡식(包谷式) 산성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언제 축조했으며 어떤 구실을 했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다한다
성안의 넓이가 182결 이상이며 많은 물을 얻을 수 있으므로 주변의 백성들이 전쟁을 피하여 농성(籠城)하기에 알맞다는 점과 산의 이름이 우두산(牛頭山)이라고도 하는 점으로 보아서 삼국시대에 축조
되었던 것으로 추측되고, 또한 임진왜란 때에는 승병장 유정(惟政)과 신열(信悅) 등이 수축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 산성은 근처에 있는 독용산성(禿用山城)이 숙종 때 이후 중요한 요새지였기 때문에,
그 뒤로는 입보의 구실을 다하고 퇴락하였다하며 이 산성 주변의 여러 봉우리 곳곳에 작은 규묘의 테뫼식 산성들이 있어서 보조적 구실을 하였던 흔적이 있어서 성곽의 방어기능을 연구하는 데 중요시 되고 있다 ... 고 기록되어있다
부드러운 흙을 밟으며 내려선 안부에서 다시 오름은 이어지고 아기자기한 암릉들과 뜀바위가 나타난다
바깥에서 바라보면 위압적으로 보이는 암릉들이 사이사이로, 때로는 바위를 직접 오르기도, 그렇게 족적을 보이며 앞서 지나간 산꾼들이 지혜가 보이는 그런 길들이다
◁암릉에서 부드러운 흙을 밟으며 내려서면 가야산성의 흔적들이 나타나고▷
◁다시 오르는 능선들에는 잠시 산죽들도 나타나다가 다시 암릉들이 펼쳐진다▷
◁지나온 암릉 뒤로 노동저수지(?)인가!!! 뜀바위도 지나가고▷
거대한 바위벽을 끼고서 진행하기도 하고, 촛대 닮은 바위가 보이는 곳에 오른다(06시50분)
틈새 바위를 오르고, 그렇게 거대한 암봉 위에 올라서니 북쪽 전면으로 정상부의 날카로운 암봉들과 더불어 칠불봉에서 남쪽 서장대 까지 흘러내린 부드러운 능선과 묘한 조화를 이뤄주니 가히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이다
더덕아 이런 좋은 장소에서 무작정 걷기만 해서야 하겠냐 판 벌리자 나 무거운 곰발톱표 막걸리 비우고 갈란다
오랜만에 어울린 윤더덕 단풍 지다람 산길로 여러 명들과 어우러져서 그동안 몇 차례에 걸친 가야산 말아먹기 행사에서 유명해진 곰발톱표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만물상의 경치와 좋은 산꾼과의 어우러짐의 흥취로 이른 아침인데도 마냥 막걸리 잔을 기울인다
07시07분 다시 행장을 추스르고 출발하는 것은 뒤에서 일행들이 계속 몰려 올라오고 있기 때문이리라 3~4분 후 다시 안부에 이르고 또다시 한차례 오름은 이어진다
다시 산성의 흔적이 나타나고 촛대 닮은 바위, 저 아래 男根을 닮은 바위, 등등 그래서 만물상이다 그리고는 구멍바위를 통과한 것은 07시22분 무렵이다
◁첫 번째로 막걸리 잔을 돌리던 바위지대, 그리고 곧 정상부 일대가 올려 보이고▷
◁다시 뚝 떨어진 안부지대를 지나서 오르는 곳에는 일행들이 보이고, 기묘한 바위군상들이 만물상 답다▷
◁바위가 있는 곳이면 어디나 한 곳쯤은 지나게 되는 구명바위도 통과하고▷
그리고는 다시 산성의 흔적이 보이다가 산죽지대도 나타나면서 저 위로 정상부 일대에서 서장대로 흘러내린 두리뭉슬한 능선은 더 가깝게 보여 지고 한차례 암릉은 끝나고 방향은 점점 서쪽으로 휘어지며 오름은 이어진다
된비알을 오르고 내려서면 좌측으로 심원골 골자기가 잘 내려다보이는 야영터 같은 곳을 지나서 다시 된비알을 오른다
그렇게 산죽과 참나무 진달래가 어우러진 곳을 올라서니,
07시35분 쯤 서장대에 오름으로서 가야할 능선은 남쪽으로 바뀌어진다
서장대, 또는 서성재로 불러지고 있는 이곳의 본래 지명은 상아덤 이라고 하며 금관가야국의 수로왕과의 전설이 깃든 곳이며 정상까지는 1.4km의 거리라고 하니 오늘의 긴 여정만 아니라면 정상을 한번 다녀와도 무방하겠는데 어디 가야산 정상을 한두 번 다닌 것이 아닐지니 ... 하기야 나중에 알았지만 정한주님은 엉겹결에 정상까지 다녀온 케이스 다 (^_^)
뒤돌아 지나온 만물상 능선을 바라보니 암릉 여기저기 일행들의 모습들이 보여진다
잠시 남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초 입부는 참나무와 화사한 꽃망울을 터트린 진달래가 맞아준다
◁산성의 흔적을 지나면 다시 잠시 암릉이 펼쳐지다가▷
◁지나온 만물상의 암릉도 바라보고▷
◁서장대를 뒤로하고 내려간다▷
◁뒤돌아보면 정상부 일대가 육중하고▷
서장대를 뒤로하고 다시 구멍바위도 통과하며 고도를 잠시 낮추고 뚝 떨어진 심원골이 가까이 파고들어온 지점에서 다시 뒤의 일행들과 간격을 좁힐 겸 여기저기서 복분자술 막걸리 소주 등이 나오면서 오랜만에 만나는 그동안 행적들과 산 이야기로 꽃을 피운다
08시 다시 뒤의 일행들이 몰려오면서 남쪽의 능선을 향해서 출발이다
산죽의 우측 사면으로 지나기도 하고 작은 오르고 내림이 이어진다
08시15분 이 후 다시 슬 ~~슬 암릉들이 시작되고 바위 사이사이로 빠져나가기도 직접 오르내리기도 하면서 룰루랄라 ~ 진행이다
잠시 후 아주 멋진 전망대 같은 바위에서 잠시 머무르며 다시 이곳저곳을 살펴보는 여유도 부리는데 이 후 (08시30분 경) 전면의 암릉을 오르는 덩달이님을 보면서 좌측의 산죽 밭으로 휘돌아가는 뚜렷한 길을 돌아가니 양쪽에 암봉이 있는 잘록이 지대에 도착한다
여기서 착각을 일으키며 조금 전 덩달이님이 올라섰던 암봉으로 올랐어야 하는건가!!! 하는 생각으로 역으로 급경사 암봉을 올라서보니 아래에서 아니라고 소리쳐서 다시 내려선다
조금 전의 산죽 밭에서 더 휘돌아 가야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으로 돌아가면서 남들 하지않은 알바가 한동안 이루어진다 그나마 혼자가 아니라 4명이라서 외롭진 않았지만 (^_^)
아무튼 나중에 알고보니 좋은 등산로를 보지 못하고 전혀 엉뚱한 곳으로 내려서다가 아니라고 판단하면서 사면을 치느라 힘도 들이고 제대로 올라서보니 뒷사람들과 합류하게 된다
◁구멍바위도 통과하며 내려서고, 휴식 후 산죽지대 사면도 돌아가고▷
◁다시 암릉지대는 이어진다▷
◁저기 보이는 산죽지대를 지난 곳부터 이상한 산행이 이어지며 알바가 ...▷
09시 쯤 마지막 암봉 지대라고 생각되는 전망대에서 이미 먼저 도착한 이들과 멋진 전망을 즐기며 다시 시간을 보낸다
서쪽 능선 저 너머 어디쯤 자리하고 있을 대한민국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해인사를 떠 올리면서 말이다
해인사는 신라 애장왕(哀莊王)3년(802년) 순응, 이정 두 대사가 세운 것으로서 禪敎兩宗(선교양종)의 본산이며 백련암등 17개의 암자를 거느리고 있으며 송광사 통도사와 더불어 우리나라 삼대사찰중의 하나이며 세계문화유산 463호인 팔만대장경을 봉안하고 있는 사찰이란 것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백련암은 성철스님께서 입적하시기전까지 계셨던 곳이기도 하고, 가야산을 가리켜 옛 문헌에는
산형은 천하의 으뜸이요 지덕은 해동의 첫째 라 했으며 신라시대의 대학자 최치원선생은 말년에 입산(入山)선인이 되었다는 설화도 있다
여럿과 어울리며 잦은 휴식은 또 잦은 초치기로 인해서 산행 내내 얼큰한 ...
즉 醉步 醉行이 이루어진다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떠랴 오늘은 그냥 마냥 풀어진 산행이다
◁마지막 암봉에서 바라본 지나온 암릉들과 암봉들▷
09시15분 그렇게 또 들어도 해도 지겹지 않은 산 이야기 꽃 피우다가 다시 출발이다
우측 ... 남서쪽 저 편으로 뾰죽하게 솟아있는 남산제일봉(1.010m)을 바라보며 문득 옛 남산제일봉 산행 때를 떠 올려본다 한 20 여 년 전 그 때 만났던 대구 친구들 어디서 잘 지내고 있겠고 아직도 산을 다니고 있겠지!!!
가파른 내리막이 이어지면 푹신한 갈비가 깔린 송림지대를 뛰면서 내려간다
언제 암릉이 있었냐는 듯이 부드러운 송림지대를 뛰어서 10분 이상 내려서니 오래된 무덤을 1기 지나고 5분 정도 더 내려서니 오래된 석물의 老堂處士 順天 朴公의 무덤을 지난다
평탄한 송림 능선은 이어지고 순천 박공 무덤에서 1분 후 푹 패어진 소로가 가로지르는 가령 을 지나가면 여전히 평탄한 능선이 펼쳐지고 송림 아래 여기저기 진달래가 화사한 꽃을 피우고 산 사람들을 맞아준다
군락진 진달래들보다 여기저기 떨어져서 피어난 색상도 약간은 연한 듯 저런 진달래가 더 예쁘다고 느껴진다
화려함 보다 수수함!!!
가령에서 서서히 고도를 높여가며 올라서면 마루금은 좌측으로 휘어진다 우측의 능선은 홍류동 쪽으로 흘러내린 능선으로 보여진다
◁자 ~~ 다시 출발이다 이제 암릉과는 작별이다▷
◁남산 제일봉을 바라보며 추억에 젖어본다▷
◁무덤을 지나면 곧 순천박공 무덤도 지나고▷
◁가령을 지나면 은근한 오름의 능선은 송림 갈비 진달래가 보여진다▷
그렇게 송림 아래 푹신한 갈비 화사한 진달래 ... 그런 것들이 어우러진 부드럽지만 서서히 오르는 능선을 한동안 따르게 된다
09시52분 넓은 헬기장으로 이루어지고 한쪽에 폐 산불초소가 자리하고 그 옆에 낡은 삼각점(가야345 1981년 재설)이 설치된 가산(690.2m) 정상에 올라선다
그 이전에 울산에서 한창 가야산을 향해서 달려오던 영남알프스의 버스로 전화를 해서 권총께 부탁한다
솔치재 지나가면서 소주 몇 병하고 안주 좀 데포 시켜놓고 가이소
등로는 좌측(동쪽)으로 휘면서 2~3분 내려서면 역시 부드러운 송림사면을 내려간다
빠른 걸음으로 가산에서 10분후 공사 중인 과수원을 내려서며 바라본 가야산의 모습은 더욱 웅장하게 보여진다 과수원 지대를 지나서 좌측 절개지로 내려서니 가야에서 백운동 쪽으로 이어지는 새벽에 우리가 지나왔던 59번 도로상의 솔치에 내려선다 (10시09분)
도로 한쪽에는 시골아주머니들의 산나물을 내다파는 난전이 펼쳐져있고 북두산 오름 초입부의 도로건너에는 의자들이 설치된 휴식터가 설치되어있다
어느새 열병의 소주와 안주가 찾아지고 또 한 차례 초치기가 이어진다
에구! 에구! 오늘 갈 길은 아직도 멀었는데 ... 더워지는 날씨에 또 몇 잔을 부어넣었으니 취기가 확 올라온다 그래 여기서 멈출 사람들이야 상관없지만 미숭산 까지 가야한다면 출발하자 ... 그렇게 선두그룹이라고 생각하는 몇 사람이 다시 출발이다 (10시35분)
◁가산을 오르고, 내려서면 송림 사면을 지나간다▷
◁공사 중인 과수원을 지나면서 지나온 가야산을 바라보고, 솔치로 내려선다 초치는 장면은 조은산님 사진 도용이다▷
북두산 오름은 그냥 동쪽의 송림 사이의 임도를 휘돌아 따라 오름이 이어진다
양쪽에 도열한 송림 옆 길가에는 억새 가시 그리고 아까 송림 아래서본 진달래와 또 다른 아주 더 진한 색상의 진달래가 도열하며 맞아준다
이미 제법 뱃속에 흘러들어간 여러 종류의 술들로 인해서 몸은 흐느적거리기 시작한다
이쪽저쪽 방향을 바꾸면서 휘돌아 오르는 임도 때문에 그래도 흐느적거리며 오르는 북두산 오름이 편하기만 하다
한 20분 정도 그렇게 임도를 휘돌며 오르고, 내려가는 임도도 보이는 삼거리가 나타나고 약간의 급한 오름이 이어질 무렵 저 위를 올려다보니 북두산 직전의 좌측 지능선(상비계곡 쪽으로 분기하는 지능선) 일대에는 온통 붉은색상의 진달래 군락지로 보여진다
11시10분 정도 낙엽송과 진달래 억새가 어우러진 지대다
그리고 10분 인 11시20분 첫 번째 헬기장이 분기봉이다
여기서 세 가지의 1/5만 지형도에 인쇄된 북두산의 위치가 각각 다르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도엽번호 NI52-2-02 국립지리원발행의 가야 지형도에는 이 분기봉이 북두산으로 표기되어 있고 삼각점 표시도 배꼽점 표시조차도 없다
영진지도 407p 성주.합천을 보면 5분 후 만나는 두 번째 헬기장을 북두산으로 표기하고 랜덤 475p 수륜을 보면 시루봉 분기봉인 삼각점의 687.9m봉을 북두산으로 표기하고 있다
하여튼 첫 번째 헬기장에서 5분 후 영진지도상의 북두산인 헬기장을 지나간다
◁송림 아래 휘적이며 임도를 따라 오르고, 저 위 분기봉 쪽으로 진달래 군락지도 보인다▷
◁첫 번째 헬기장에서 가야산을 당겨보고, 아래사진 두 번째 헬기장에서도 가야산을 당겨본다▷
두 번째 헬기장 이후 산길은 지금까지와 달리 잡목들이 어우러지며 약간은 희미해진다
진달래와 잡목을 지나면서 희미한 족적을 따라가노라니 방향은 동쪽의 옥계리 쪽으로 흘러가는 것 같은데 낙엽송이 무성한 지대를 지나다가 문득 우측의 날등 쪽으로 올려다보니 아차! 복두산 이라기도 하고 시루봉 분기봉 이라고도 하는 △687.9m봉 으로 짐작되는 봉우리가 감지된다
몇몇 같이하던 일행들은 그대로 족적을 따르라고 이르고 이 몸은 순전히 삼각점 확인과 시루봉 분기능선 확인을 하고 오겠다며 혼자서 부지런히 올라가본다
11시40분 넓은 헬기장으로 이루어진 봉우리에 오르니 웬걸! 우리가 선두인줄 알았더니 솔치에서 술 마실 때 먼저 출발한 일행들이 제법 많았나보다
모두들 둘러앉아 식사들을 하고 있으니 나도 덩달아 주저앉아 밥 두 어 숟갈에 그저 술만 비운다
같이가던 일행들과 통화를 해보니 그들도 자리 잡고 식사를 하는 모양이고 .....
12시08분 다시 휘적거리며 북두산(이제 이곳을 북두산 정상이라고 하자)정상을 출발한다
멀리 미숭산을 바라보며 언제 가느냐고 한숨을 쉬며 남쪽으로 내려서니 곧 무성한 낙엽송 조림지대가 빼곡하며 따라서 바닥은 푹신한데 빠르게 내려선다
금방 봉분의 흔적만 남아있는 무덤 1기의 지대로 내려서는데 이 지점 서쪽 오곡 골자기가 최대한 파고 들어온 지점이리라
앞서 보낸 일행들은 이곳에서 식사를 끝내고 먼저 출발한 모양이다
◁헬기장 후 잡목지대를 지나서 낙엽송 지대에서 북두산을 향해 올라서고, 제이제이, 조은산님 사진 도용▷
◁멀리 미숭산을 바라보며 북두산을 내려서면 빼곡한 낙엽송 지대로 내려서고▷
그저 방향만 남쪽으로 맞추고 희미한 족적을 따라서 오르고 내려서기를 거듭한다
12시20분 마루금이 도계를 따르다가 도계를 버리고 살짝 좌측으로 틀어 가야하는 분기점이다
솔개님이 여기서 방향을 잘 잡아가야하지 않느냐는 의견을 제시했지만 이미 많은 인원들이 앞서 지나가버렸고 쉴 때 마다 마셔버린 술을 이미 온 몸의 혈관을 마구 돌아다니니 이미 그런 지각은 없어진지 오래다
이전에 이 지점을 지날 때 도계와 살짝 다르다는 이야기까지 했었는데 이미 그런 것조차 잊어버리고 말았으니 .... 하여튼 홀로 다녀야지 긴장을 바짝 하고 다닌다니까!!!
이미 마루금을 놓치고도 모르면서 5분 정도 내려서니 우측 삼암봉(425.7m)쪽 분기점인데 이 일대서 반대쪽에서 올라오는 경북도계를 종주한다는 팀을 만나고도 도계에 대한 의문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으니 !!! 쯧
하지만 잠시 후 모로현이 저 아래 보일 무렵 희미한 능선들이 갈라질 때 이쪽이네 저쪽이네 하면서 그 때서야 환상적인(?) 이야기를 해댄다
맞아! 모로현 직전 도계를 버리고 좌측으로 내려가야 하잖아 그러니 좌측 능선이 당연하지
... 에구! 말이나 안했어야지 .....
확신에 차서 좌측 능선으로 룰루랄라 내려서니 어라! 좌측으로 골자기가 있고 그 좌측 위로 확실하게 이어지는 능선에는 보리밭인지?? 하여튼 저 능선이 정확하게 모로현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그렇다면 아까 솔개님이 이야기하던 그 능선이다 ....
에구! 이미 틀려버렸다 냄새나는 양돈장이 나타나면서 그나마 남들은 우측으로 돌아내려 가는데 마루금과 최대한 가까이 하려고 좌측 골자기를 통해서 모로현으로 내려선다
◁이 지점 좌측으로 능선을 틀어가야 했는데 그냥 직진을 하면서 마루금을 놓쳤다▷
◁엉터리로 모로현으로 내려서고, 모로현의 모습들▷
◁뒤돌아본 마루금 우리는 보이지 않는 좌측으로 내려왔다, 아래사진 문수봉가는 들머리▷
13시 이미 잘못된 마루금을 통해서 모로현으로 내려서는 것이 아니라 올라선다(?)
나대1리 마을회관을 지난 동네 입구에 해당되는 모로현 에는 키 큰 고목나무와 정자가 있어 이미 몇몇 사람들이 점심상을 펼쳐놓고 먹고, 가야하느냐 마느냐 웅성웅성 빗방울이 한 두 방울 떨어진다
다른 사람들이야 어떨지 몰라도 술 욕심 많은 사람들은 더 이상 걷기도 귀찮을 거다
그러나 누군가가 빨리 움직여 줘야한다 내 언제 미숭산만 찾아올 것인가
13시08분 경북고령군 덕곡면과 경남합천군 야로면의 경계를 이루는 모로현을 출발,
민가와 민가 사이의 시멘트길로 접어들면 곧 비포장 농로를 따라서 숲으로 들어선다
곧 족적은 좌우로 갈라지면서 일행들은 우측으로 올라가고 나는 좌측도 확인할 겸 올라가본다 오늘 구간에서 가장 힘든 구간이 모로현에서 문수봉 오름일 것이다
생각 없이 금방 올라서겠지 하는 마음으로 상당히 급 오름임에도 불구하고 빠른 진행으로 올라서려니 이거야 금방 봉우리로 올라서는것이 아니라 우측으로 휘는가 하다가 계속 오름이다
약 25분 정도 빠르게 올라서보지만 아직도 멀었다 가시넝쿨들이 무성한 지대로 올라선다
13시40분 한 차례 더 오름이 이어진 후 문수봉 직전의 남서쪽 월광리 방면의 분기봉에 올라서서 드러누워 버린다
저 앞에 보이는 문수봉도 오르지 않고 말이다 그리고 13시52분 다시 출발이다 이런 식이면 당초 예상보다 조금은 늦은 시간에 내려설 것 같다
◁모로현에서 25분 쯤 급하게 올라서면 거시지대가 나타나고, 아래사진 분기점 후 폭 좁은 능선과 암릉▷
폭 좁은 송림능선이 펼쳐지고 곧 짧은 암릉을 지난 후 오름이 이어질 무렵 좌측으로 문수봉에서 분기해서 사월봉(400.1m)으로 이어지는 능선상의 봉우리가 눈길을 끈다
휴식지에서 8~9분 정도 지난 후 올라선 곳은 바위들이 울툭불툭하게 있는 좁은 공터의 문수봉 정상에 오르니 저 앞으로 올려다 보이는 미숭산이 한숨만 나오게 보이는 것은 조금전 모로현에서 문수봉까지의 오름에 워낙 진을 뽑았기 때문이리라
뚝 떨어져 내리면 무덤이고 살짝 올라서니 억새와 진달래가 어우러진 봉우리다
오래된 무덤을 지나서 오르고 내려서면 8~9분 후인 15시19분 내성치에 내려선다
역시 지형도마다 내성치 라상치로 표기된 고령군 덕곡면 신리와 합천군 야로면 나대리 사이의 임도인 내성치에서 오름은 조금 전 모로현에서 문수봉 오름에서 혼들이 났던지 약간은 여유롭게 천천히 올라서는데 곳곳에 진달래는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내성치에서 딱 30분이 소요되고 오른 봉우리가 지도상의 미숭산 정상인 x757m 봉 정상이다 (15시47분) 삼각점들을 찾았지만 들 1/5만지형도상의 삼각점은 이곳에서 능선을 따라서 남동쪽 0.5km 지점의 불담산(459m) 분기봉인 △734.5m봉이다
산불초소가 자리한 정상에는 커다란 정상석이 서있고 북쪽으로 보이는 가야산은 멀기만 하다 남쪽 멀리 미숭산의 존재를 확실하게 알게한 수도지맥상의 만대산이 보이고, 서쪽으로 비계산이 뚜렷하고 두무산과 오도산은 희미하다 (16시 출발)
◁사월봉으로 이어지는 문수봉 지능선이 보이고, 아래사진 문수봉 정상▷
◁미숭산이 보이고 내려서는 능선들, 그리고 가야산은 한층 더 멀어져있고▷
◁내성치와, 아래사진 뒤돌아본 지나온 문수봉 쪽 능선▷
◁미숭산 정상▷
이제 내려서는 일만 남았다
잠시 산성 흔적의 능선을 따르다가 삼각점이 있는 봉우리까지 가지 않고 헬기장에서 남쪽의 골자기로 빨리 내려서기로 한다
새로 복원된 미숭산성의 문루에 해당되는 지점을 지나노라니 샘터가 보이지만 가물어서 말라있고,
여기서 미숭산성은,
해발 757m의 미숭산 정상부를 둘러 쌓은 산성이다 삼국시대에 쌓은 산성으로 조선시대까지 계속하여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지금은 다 무너져 옛 모습이 남아있지 않다
『동국여지승람』에 성의 둘레는 1,643척이고 성 안에 6개의 우물과 1개의 연못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무덤들이 모여 있어 가야 때에는 이 고장이 중심지였다고 여겨지며, 신라 때 야로현이라 하기 이전에 적화(赤火)라 불리던 시기의 유적으로 추정된다
한편 고려 말기에 미숭 장군이 조선왕조의 개국에 불만을 품고 항전하였다는 전설이 있는데, 이는 가야와 신라의 관계에서 생겨난 전설을 후대에 역사적 사건에 끌어다 붙인 듯하다
고려시대 몽고와 왜구의 침입 때 주변 백성들이 이곳에 들어와 몸을 피했으며, 조선시대에는 통신수단으로 봉화를 올리던 봉수가 설치되었던 것으로 보아 예로부터 군사적 요충지이었음을 알 수 있는 유서 깊은 성이다
◁자! 이제 내려서는 일만 남았다 미숭산성의 흔적을 지나서 하산한다▷
16시20분 정상에서 부지런히 내려서니 20분만에 합천수련장에 내려서고,
곧 주차장에는 가야산을 산행하고 먼저 온 영남알프스 팀에 의해서 돗자리가 펴지고 곧 참가자들은 권분남님께서 준비해온 회덥밥을 안주삼아 술잔을 돌린다
속속들이 후미들이 그룹별로 내려서고 생각보다 많은 인원들이 조금 늦기는 했지만 미숭산까지 완주를 하고 내려서는 모습이다
예전처럼 각자의 소개를 하는 시간을 가지라고들 했지만 짧은 시간에 모두 내려선 것이 아니라 뿔뿔이 흩어지기도 하고 그러니 특별히 그런 시간을 가지는 것도 뭣하다
몇 일 전부터 투병중인 구미의 육호가 날머리로 오겠다더니 음료수까지 준비해서 찾아와줬다
유난히 큰 눈망울이 선하게 보이던 육호의 수척해진 모습에 얼싸안고 빨리 나을 것이라는 위로를 몇 번이고 보내도 마음은 짠하기 그지없다
불편한 몸으로 오래 동안 있어준 육호와 먼저 작별하고 속속들이 영남알프스 대구팀 그리고 부산님들과도 작별인사를 나눈 후
18시 귀경길에 오르고 22시 양재동 도착이니 빠른 편이다 이로서 한 보름정도 어쨌건 마음을 쓰게했던 가야산 말아먹기 5탄도 무사히 마감된 것인가!!!. -狂-
첫댓글 가야산 산행기...가기전에 보았으면 더 좋았을껄...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잘 보고...가져갑니다.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