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COVID 19)로 지난 2년간 제대로 휴가를 즐기지 못한 사람들이 산으로 바다로 훌쩍 떠나거나 떠날 채비를 차리고 있다. 하지만, 집에서 편안하게 독서하는 것으로 '휴가'를 때우려는 사람도 적지 않을 터. 벌써 6개월째에 접어든 '우크라이나 전쟁'을 다각도로 분석한 책들 중에서 한 권을 골라 스스로 차분하게 정리해 보는 것은 어떨까? 다행하게도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관련 서적 출간이 크게 늘었다. 그 중에서 서방측(우크라이나) 시각에서 다룬 책과 중립적(러시아)인 책들로 나눠, 2차례에 걸쳐 소개한다/편집자 주.
◇ 푸틴의 야망과 좌절(김영호 이지수 우평균 박진기 지음. ㈜글통. 256쪽. 20,000원)
제목에서 짐작 가능하듯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중심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을 분석한 책이다. 전쟁의 기본 원칙은 단 하나. '적을 죽이기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것. 극단적인 편가르기가 불가피하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우크라이나 편'이 아니면 '러시아 편'인데, 우크라이나 편이 전세계적으로 압도적으로 많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푸틴 대통령은 무엇을 바라고 전쟁을 시작했을까? 그 전개 과정은 어떠했고,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그리고 전쟁이 몰고온 글로벌 경제의 타격은 어느 정도일까? 의문이 많아질 수록 전문가들의 식견이 요구된다. 러시아(혹은 우크라이나, 국제정세) 전문가 네 사람이 독자들의 다양한 의문에 정답을 제시하기 위해 노력했다.
저자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이렇게 정의했다.
"지금 세계는 자유민주 진영과 전체주의 진영 간에 대격돌 중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냉전 해체 이후 평화에 대한 환상과 전체주의 국가와도 공존이 가능하다는 식의 미몽에 빠져 있던 자유민주 국가들을 일깨우고 있다" -116p
집필자 4명의 면면을 보면, 이 책이 지닌 분석의 깊이와 폭을 짐작할 수 있다.
김영호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버지니아대학에서 국제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정치학과를 나온 이지수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소련과 북한의 관계사, 북한정치사 등을, 우평균 한국학중앙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러시아 정치 및 군사, 한반도 안보 등을 주로 연구했다. 박진기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는 대통령 직속기관에서 국가정책의 수립 및 정보분석 전문가로 오랫동안 활동했다.
푸틴 대통령의 안보 회의 모습/텔레그램 캡처
푸틴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특수 군사작전 목표는 분명하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역사적으로 뿌리가 같다는 사실을 전제로, (러시아계가 탄압받는) 돈바스 지역(도네츠크주와 루간스크주)을 해방하고, 나아가 우크라이나의 비무장화와 비나치화를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그 역사적 배경에 대해 이지수 교수가 제 1절 '전쟁의 기원 : 역사적 접근'에서 '땅'을 모티브로 해 설명한다. 이 교수는 "(러시아) 사람에게는 얼마큼의 땅이 필요한가"라는 톨스토이의 질문을 화두로 던진 뒤 러시아인들에게 땅이란 어떤 의미를 갖고 있으며, 그 땅이 러시아인들의 정체성 형성에 어떤 의미로 작용했는지 풀어나간다.
박진기 겸임교수가 맡은 제 2절 '러시아 군사력과 정보기관의 실체와 교훈'은 푸틴 대통령의 기대와 전략이 현실에서는 어긋나고 있음을 지적하고 그 원인을 살폈다. 정량적 군사력의 우위(러시아)보다 전쟁에 임하는 병사들(우크라이나)의 의지와 전투력, 지휘부의 작전 수행 능력 등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지수 교수는 제 3절 '우크라이나 전쟁 원인과 국제정치 질서의 변화'에서 전쟁의 발발 원인을 푸틴 대통령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장기집권 과정에서 형성된 푸틴 대통령의 성격적 특성을 분석하고, 그가 어떤 착각을 했는지도 두루 다뤘다. 한국에 주는 교훈도 빠뜨리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우 선임연구원은 제 4절 '우크라이나 전쟁과 동아시아' 편에서 이번 전쟁이 일본, 중국, 대만, 베트남 등 동아시아 국가들에 미친 영향과 한반도에 던지는 함의를 심층 분석했다. 특히 러시아가 전쟁에서 승리하거나 유리한 결과로 끝난다면, 다음 차례는 중국의 대만 공격이 될 것이라고 우려하는 대만을 집중 거론했다.
이 책은 "우크라이나 전쟁은 푸틴의 야망과 서방국가들의 대응 수준에 대한 오판 및 우크라이나에 대한 정보 수집·분석의 실패에서 기인한, 시작부터 잘못된 전쟁이고 푸틴의 리더십에 심각한 위협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푸틴에게는 매우 치명적일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너무 성급한 결론은 금물이다.
◇ 전쟁일기 : 우크라이나의 눈물 (올가 그레벤니크 지음. 정소은 옮김. 이야기장수. 136쪽. 12,000원)
평범한 우크라이나 여성의 삶이 전쟁의 포화속에서 파괴되는 과정을 기록한 '그림 에세이'다. 136쪽에 불과하고 내용 자체가 무겁지는 않지만, 던져주는 메시지는 그리 간단치 않다.
두 아이의 어머니이자 서른 다섯의 동화책 작가인 올가는 전날까지만 해도 수제버거를 먹으며 장밋빛 미래를 꿈궜다. 그러나 다음날(2월 24일) 새벽 5시 30분 우크라이나 하르코프(하리키우)를 뒤흔든 폭음과 함께 그녀의 평온한 일상은 산산조각나고 말았다.
서둘러 짐을 챙긴 후, 만에 하나 죽을 경우에 대비해 아들 표도르(9세)와 딸 베라(4세)의 팔에 이름과 연락처를 적는다. 그리고 지하실로 피란한 그녀는 그동안 사용한 색연필 대신에 연필 한자루로 자신의 일상을 기록한다. 그렇게 시작된 '그림 일기'는 타국으로의 피란 생활로 이어지고, 한국 편집자와 직접 소통하면서 한권의 '전쟁 일기'로 완성됐다. 참혹한 전쟁 앞에서 맞딱뜨린 절망 속에도 끝내 희망을 잃지 않은 '다큐멘터리'이기도 하다.
“시내가 폭격당하고 있다. 미사일이 떨어졌다.
번화하고 아름다운 나의 도시를 그들은 지구상에서 지우고 있다……
나는 그림을 그리기로 했다. 다큐멘터리 일기장이 될 것이다.
더이상 두렵지 않다.” - 본문에서
러시아군의 미사일 공격으로 불타는 건물/사진출처:러시아국방부 SNS 계정 영상 캡처
올가는 고향인 하리키우를 떠나기로 했다. 두 아이를 살리기 위해서는 다른 길이 없었다. 하리키우의 35년 생을 정리하는데 걸린 시간은 고작 10분. 사랑하는 어머니와 거동이 불편할 할머니, 할아버지를 남겨두고 기차에 올랐다. 전국에 계엄령이 내려진 탓에 남편은 국경을 넘을 수 없다. 그녀도 수많은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홀로 아이들만 데리고 낯선 타국으로 떠났다. 피란길의 고통은 지하실에서 보낸 지난 8일보다 더 잔혹하다.
올가는 현재 불가리아의 한 소도시에서 지내고 있다고 한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몸을 사리지 않고, 희망을 끈을 놓치지 않기 위해 오늘도 연필을 단단히 쥔다. 고향을 떠나 타국에서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그들에게는 매순간 용기를 필요로 할 터. 그녀의 일기는 사랑하는 두 아이를, 함께 한 강아지 한 마리를, 그리고 스스로를 지켜내기 위해 얼마나 용감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감동적인 순간들의 연속물이다.
그녀는 작가의 말에서 "내가 작가로서 쓴 동화들 또한 성공적으로 출판되었다. 책의 주인공은 여우 가족이었다 - 말썽꾸러기 아기 여우, 작고 귀여운 누나 여우, 아빠 여우와 엄마 여우. 나는 여우 가족의 음악 수업과 자전거 산책, 시나몬롤을 함께 먹는 아침식사에 대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출판사는 다음 이야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다음 이야기는 '전쟁일기'가 되어버렸다……” 고 썼다.
문학동네 '임프린트'(imprint) 브랜드인 이야기장수가 '올가의 일기'를 바탕으로 지난 4월 이 책을 출간했다.
작가는 2015년부터 현재까지 '엄마, 화내지 마' 등 그림책을 출간한 동화작가이고, 일기를 옮긴 정소은은 러시아 문화 전문가로, 주로 글을 쓰고 통번역 일을 한다.
◇ 이것이 우크라이나 전쟁이다(권주혁 지음. PUREWAY PICTURES. 398쪽. 22.000원)
대학시절부터 인생의 대부분을 목재 전문기업에서 보내면서 국제정치학 박사 학위를 딴 특이한 경력의 권주혁 박사가 우크라이나의 역사부터 전쟁 발발및 전개에 이르기까지 우크라이나를 다각도로 정리한 책이다. 저자는 태평양 전쟁 시리즈를 펴낼 만큼 전쟁의 역사에도 녹록치 않는 식견을 보여준 바 있다.
책은 △ 제1장 우크라이나 일반 △ 제2장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 제3장 우크라이나 전쟁△ 제4장 급변하는 세계질서와 신냉전으로 구성돼 있는데, 전체 목차를 보면 우크라이나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총정리한 듯한 느낌을 준다.
특히 이 전쟁이 지난 2월 갑자기 발발한 것이 아니라, 2008년의 러시아-조지아(그루지야) 전쟁에서 간접적으로 발원한 뒤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합병으로 비화하면서 '전면전'에 이르렀다는 점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책의 서두에 자신의 전공 분야인 우크라이나의 삼림과 주요 수종 등을 소개하기도 했다.
저자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일어난 가장 큰 전쟁"이라며 "탈냉전 시대가 끝나고 신(新)냉전 시대가 도래하였음을 알려주었다"고 평가했다. 또 전쟁의 특성으로 '한 국가의 전쟁이 세계적인 에너지 문제와 식량문제를 동시에 촉발시킨 점'을 들고, '전대미문의 융복합 하이브리드 전쟁 방식으로 미래전의 방향을 보여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우크라이나군의 이동 모습/사진출처:우크라이나군 텔레그램
생생한 우크라이나 현장 사진이 이 책의 백미다. 지금까지 무려 136개국을 방문한 저자는 우크라이나 전역을 답사하면서 찍은 생생한 사진들을 이 책에 고스란히 담았다.
그는 "지정학적으로 우크라이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언제든지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며 "이 점을 상기시키기 위해 서기 4세기 로마의 전략가 베게티우스가 논문 속에서 말한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대목을 책의 부제목으로 삼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