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에는 군영의 연병장 정면에 장대가 있었고 연명장에서는 군사들의 열병 훈련 사영이 있었고 간혹 중죄인을 처형하는 사형장으로 쓰이기도 했다.
부산 광역시 남구 광안4동 566번지. 동네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수영 장대벌에서는 병인박해 당시 전교회장이던 이정식을 비롯한 10여 명의 천주교인들이 군문 효수(軍門梟首)형으로 처형되었다.
우리 나라 최대 항구 도시인 부산에는 병인박해 당시 광안동에 경상 좌수영이 있어서 붙잡혀 온 천주교인들을 이곳에서 처형하곤 했다.
이 때 처형된 교인들의 목은 장대 위에 매달아 두었는데 이는 사람들에게 경계심과 천주교에 대한 증오심을 갖게 하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많은 천주교인들의 처형장면을 지켜 본 사람들이 경탄하여 구전으로 전하는 바에 의하면 "처형을 하는 수영 장교들과 군졸들은 삼엄한 분위기에 위엄을 갖추었지만 사형수들은 마치 잔칫집에 나가는 기쁜 표정으로 순교를 했다."고 한다.
이 때 순교한 이들로는 이정식(요한), 이관복(프란치스코), 박소사(마리아), 이삼근(베드로), 양재현(마르티노), 차장득(프란치스코), 이월주(야고보), 옥소사(발바라) 등 8명과 옥 발바라와 김선달 2명을 포함한 10명으로 파악되고 있다.
여기서 순교한 이들에 대한 순교 기록은 「일성록」과 1951년 현장을 목격한 두 증인에 의해 확인돼"있으며, 또 1977년 7월 당시 광안 본당 주임 신부에 의해 이곳에서 발굴된 장대석 8개, 기와 조각, 동전으로 이 같은 증언이 뒷받침됐다.
이에 광안 본당은 1987년 6월 신자들의 성지 조성 헌금으로 이곳의 땅 1백61평을 확보하고 이듬해 7월 부산 교구 순교자 현양 위원회가 성역화에 착수해 공사를 완공하고 1988년 9월 30일 순교 기념비 제막식 및 형양 미사가 교구장 이갑수 주교에 의해 이루어졌다.
한편 이들 순교자 중 8명의 유해는 동래구 명장동에 있는 가르멜 수녀원 뒷산 등에 묻혔다가 1977년 9월 17일 동래구 부곡동 산 15-21 한국 순교 복자 수녀원이 있는 오륜대로 이장됐고 장대에 세웠던 주춧돌은 광안 본당 앞뜰에 보관되어 있다.
찾아가는 길
부산 시내에서 수영로를 따라 광안리 해수욕장쪽으로 나가다가 남천 로터리에 이르러 왼쪽 길로 접어들어 2km쯤 가면 길 왼쪽으로 세강 병원이 있다. 여기서 좌회전하여 조금 들어가면 광안 성당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