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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o, 9266 ♧ 이름: 김영배 ( 남 ) ♧ 2012/6/1(금) 20:21 (MSIE9.0,WindowsNT6.1,Trident/5.0) 120.50.95.129 1366x768 ♧ 조회: 353 | |
중환자실과 병실(감옥과 별천지) (1) 중환자실과 병실 (감옥과 별천지) (1) 그러니까 벌써 6년전쯤,대관령에서 있을 때, 점심식사후,30분쯤 됐나... 명치에서 위로 6센티쯤,그러니까 가슴 한복판에 약간의 통증이오기 시작했다.그때에. 불길한 예감이 오는데, "난 죽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드는 2~3초 사이 통증이 심해지고 호흡이 안되기 시작, 호흡이 안되니까 물속에 빠진놈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허우적.허우적.했다던가. "아!!내가 여기 산속에서 죽는구나!!"1초도 안되는 사이에 몇가지 생각이 급하게 지나갔다. 호흡이 멈췄는지. 어떻게 됐는지..그런 찰나에, (나의 마지막이다. 힘을 내보자!) 나는 힘을다해 일어나 벽을 향해 돌진했다.뭔가 상당한 충격이 온듯도 한데,난 제정신이 아니였다.잠시후, 정신이 돌아왔을 때 십장생이 그려진 벽 아래에 누워 있는거다. 머리에 심한 통증이 있는 것으로 봐서 그곳 벽을 들이 받았나 보다. 전신은 땀으로 푹 - 젖어있고,난 일어났다.그런데?!!불과 10초쯤 전에 다 죽었던 사람이 거짖말 처럼,언제 그랬냐는듯 아무렇지도 않은거다. 목욕탕에 들어가 샤워를 하면서도(내가 귀신에게 홀렸었나?)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말짱 하니까 누구에게 밀해도 믿어주지 않을 정도로 욕실에서 나올 때,전처럼 상쾌 했으니까..
그 이후로 약 2년간 아무일 없이 정상으로 일을 했다. 그러니까 그일이 있었던 걸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겨울에 다시 그 증상이 시작됐다. 또 그때의 죽음의 통증이 시작될 때, (야 이 정신 나간놈아 그 때 바로 병원엘 갔어야지..넌 죽어도 싸다.) 그런말이 나올 정도로 나의 무지함을 탓하며 난 저승 문고리 앞으로 닦아갔다. 사무실 책상에 있는 주전자의 찬물을 마구 들이켜도..소용이 없었다. (이제는 죽는고나!!) 내주위엔 여전히 아무도 없다. 또 10초쯤 됐나...난 강당앞 벽앞에 쓰러져 있었고 먼저와 똑같은 상태로...그야말로 내 조상님의 은덕으로 살아났다. 우선 그 추운 겨울에 땀에 푹-젖은 옷부터 갈아입고 횡계로 나갔다.
약사는 배화여전을 나온 60이 넘은 여잔데,내 얘기를 다 듣더니, "그건 제가 약을 지어드릴 수 없는거거든요.강릉에 가셔서 내과의사를 먼저 만나세요." 그말에 뒤도 안돌아보고 강릉으로 향해서 페달을 밟았다. 강릉 옥천동 오거리 전 우측에 있는 내과 간판을 보고 그리 들어갔다. "심장병이 있으십니다.그리고 혈압이 145 이상이니까 혈압약도 드셔야 겠습니다.우선, 이 심장약과 혈압약 드시고 큰 병원으로 가십시요." 영상 사진과 혈압등 이것저것 다 체크한 다음에 의사가 그렇게 말을 한다. 나는 처방전을 갖고 약국에가서 기다리는 동안에 나의 2소대 전우에게 전활했다. 그 전우가 상이 7급을 받았다는 얘길 들은적이 있기 때문이다. "정말 큰일날뻔 했군요.그러면 니트로 글리세린(혀밑에 넣는것)을 열흘분쯤 받고 혈압약이랑 처방을 받으셨으면 다시 그 병원에 가서 의사 소견서를 받으세요. 보훈처가 남부라고 하시니까 낼 13시까지 그리오세요 제가 그리 가겠습니다.)
난 서류를 다 갖춰서 다음날 방배역에서 2소대 전우를 만났다.그 전우는 고엽제에 관해서 너무도 잘알고 있어서 난 그가 시키는데로 보훈처에 서류를 접수시켰다. 몇달 지난 다음해에 연락을 받고 보훈병원에가서 신체 검사를 할 때 종학이가 와 주었다. 처음에 접수한날로부터 9개월쯤 됐을 때,보훈처에서 연락이 와서 갔더니 고엽제"경도" 판정을 받았다.그 때 남부 보훈청에서 준 인쇄물에 '강릉에도 보훈 위탁병원이 두개나 있다'는 설명을 듣고.다음날 강릉"동인병원"에 갔더니 內科가 일곱개나 되는 큰 병원이다. 1~2 내과가 심장 내과다. 영상촬영.심폐기능등, 검사를 한 걸 인터넷으로 보던 담당 의사가, "참 위험합니다.이정도 증상이면 그동안 많이 고생 하셨을 텐데. 당장 시술하셔야 합니다." 그날 예약을 하고 1~2차로 나눠 두번이나 심장시술...스텐트를 세개나 박았다 그것으로 난, "중도"판정이 됐다.
그랬는데도 심장에 통증이 있는거다.그래서 내 포켙엔 니트로글리셀린 알약이.그리고 사무실과 잠자는 머리맡에도 준비해 놓고 살았다.나중엔 스프레이 이소켓도. 통증이 있으면,혀밑에 알약을 넣거나 이소켓을 구강에 뿌리면 되는거다. 이제는 통증이 와도 죽을 염려가 없는 거다. 통증이 2~3일에 한번씩 있고 버스에서 내려 동인병원가는 10 도쯤 언덕길 300 미터쯤 올라가는데도 세번이나 쉴 정도로 숨이 찼다.그렇게 살기를 1년쯤, 의사에게 그간의 상태를 자세하게 말 했더니...고개를 갸웃거리며 컴을 보더니, 심장 어느부분을 가르키며, "여기 x 로 교차되는 혈관 뒷쪽이 보이질 않는데 여기가 의심스럽습니다.여기를 한번 다시 보고 혈관이 좁아 졌으면 다시 시술을 하겠습니다."그래서 세번째 시술 날자를 예약했다.
예약 날짜가 구정 명절이 이틀지난 1월 27일.그날 나는 강릉동인병원 시술대에 세번째로 누웠다.그때 시간이 15시.접수하고 입원실에 잠시 있다가 시술대애 가서 사타구니로 시술이 시작 될 때는 17시 쯤,그러니까 시술이 시작된지 얼마 안됐는데, 시술하던 의사가... "제가 알던 부위에 이상이 있는게 아니라 지금 보니 알지 못했던 곳에 이상이 있습니다. 이건 시술이 아니라 우회 수술을 해야 합니다. 여기선 수술이 안되니까 지금 즉시 서울 보훈병원으로 응급차를 타고 가셔야 합니다. 시술 했던 장치를 다시 헤체하고 의사는 그동안 시술했던 소견서와 cd를 갖춰서 줬다. 나와 박병장을 태운 응급차는 빠른 속도로.달려 한시간 조금 지나 서울 보훈 병원에 도착,
이미 어두워져 도착한 보훈병원 응급실은 구정 대목 장날처럼,아니 대목보다 더 혼잡했다. 그시간에 응급실 담당의사는 여잔데 흉부외과와는 관련이 없는 의사로 보였다.왜냐면, 소견서와 cd를 보고 난뒤, "약만 먹으면 될것 같은데"그렇게 중얼거리더니 어딘가로 전화를 하고는 다음 응급 환자를 맞이한다.응급실에 밀려드는 환자로 북새통이고 비명소리 간호사 부르는 소리 엉망진창, 病床이 턱도 없이 모자라 응급환자들이 앉을 자리가 없어 대부분 서있는 실정이다. 언제 자세히 진찰이 될지 알 수 없는 상태로 난 그냥 집으로 가고 싶었다. 아들이 연락을 받고 오면서 도가니탕 두그릇을 준비해 왔다.심장병이란 통증이 없고 호흡만 잘되면 꾀병이라고 할 정도로 말짱하다. 나와 박병장은 아들이 준비해 온 탕을 맛있게 먹었다.
응금실엔 카운터가 길게 연결 되어 있는데 , 거기에 약 열개정도 컴이 있다. 컴앞에는 담당 간호사들이앉아 환자들 신상을 입력하고 있고 급한 환자에겐 약도 갖다주고. 그런데 좀 말발이 쎈 환자나 가족이 있다.나중엔 막말을 한다. 환자에게 病床도 안주고 세워 놓고 있다,빨리 입원실로 안내를 해라!는 등 소릴 막 지르고.. 그러나 늦게와도 순서없이 먼저 손을 봐야할 환자가 있는 법이다. 간호사들도 성질이 나련만 신경질도 안내고 참 친절하게 환자와 그 가족을대한다. 그런데 언제 부턴지 모르지만 세번째 컴앞에 노란색 T를 입은 남자가 컴을 열심히 본다.
(의산지 뭔지 모르지만 잘생겼네 덩치도 있고..남자가 저 정도는 돼야지.)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리곤 여기저기 두리번 거리는데,간호사가 내이름을 부른다. 내가 대답을 하자 내앞에 온 간호사가 내 이름을 확인하곤, "조오기 컴앞에 노란옷 입고 계신 과장님 보이시죠.거기로 가세요.걸으실 수 있죠?" "그럼 걸을 수 있고말고." 난 그가 의사인줄 몰랐는데,그가 흉부외과 의사다.보훈병원에선 담당의사를 과장이라고 부른다.의사가 간호사를 보고 의자를 갖다드리라고,..의자에 앉은 나를 보고 의사가... "갖고오신 cd 를 지금까지 봤는데,여기 보면,"그러더니 메모지를 꺼내 그림을 그리며 알기쉽게 이송도 교장님 어투로 부드럽게 설명을 한다. "여기 이부분에 혈관이 두군데나 함몰이 됐습니다. 꽤 오래됐는데...그동안 어떻게 견디셨는지 모르겠네.참을성이 많은게 아니라...살아계신게 믿을 수 없을 정도로..참 미련 하시네요." (그는 퇴근을 했다가 연락을 받고 평복 차림으로 왔단다.) 그러면서 저쪽에 있는 간호사를 부른다. "病室이 있습니까?" 간호사가 여기저기 컴을 검색하더니, "지금은 없고 낼 오후 두시에 몇호 병실이 하나 생깁니다." "확실합니까?" "네" "OK.그러면 김영배님을 낼 우선으로 그 방에 가시게 하세요,그리고 지금 병상을 드리고," "네" 그렇게 대답한 간호사가 어딘가 가서 병상 하나를 끌고 와선, "낼 병실에 가실꺼니까 그때까지 여기 병상에서 쉬세요." 의사고 간호사고 간에 참 친절하다.
재작년 10월에 미국 보훈청에서 통과 됐다는 4개 질병.허혈성 심장질환.아밀로이드병,백혈병 파킨슨병. 상이급에 해당 된다는 발표에 심장병 환자 천여명이 서울 보훈병원으로. 물론 지방에도 보훈병원이 있지만, 인천, 光州,대구등에서 환자들이 의술이 낫다는 서울로... 서울 보훈 병원은 허혈성 심장환자로... 수술환자로 미어 터질 정도.시술 환자는 지역에서도 어렵지 않게 시술할 수 있으니까... 다음날 1월 28일...9층 5인실 한쪽에 입원이 됐다.입원이 된건 수술을 해야할 환자들이다. 9층 13호실에는 나와 같은 심장수술을 한 환자가 3명있고 한명은 위암 수술을 한 환자다. 나이는 네명이 동갑이고 전주에서 온 사람이 74세 3급 상이 환자다. 중도인 나를 빼고 3명은 고엽제환자가아닌 사람으로 그 사람들 모두 200만원 이상 돈을 냈고. 그러니까 10분의1인 200만원을 냈으면 수술비 총 금액이 2천만원이 넘는다는 얘기다. 그러나 허혈성 심장병이 고엽제이고 참전자는 전부 해당 되니까.먼저 위약금으로 낸돈을 퇴원할때,도로 찾고 돈한푼 안내고 병원문울 나서게 되니 나라에 얼마나 고마운가... 모두가 10여년 전에 목숨걸고 데모해서 얻은 고엽제 전우들 덕분이다.
난 입원한 그날부터 수술에 대비한 검사가 시작됐다.심전도, 심폐기능. 영상과 ct 촬영. 팔뚝엔 거치대에서 연결된 주사바늘이 꼽혀있고...그사이로 매일 채혈... 수술 환자가 밀려서 예정보다 나흘정도 지난 2월9일이 수술 날자...수술하는 자리가 매직펜 같은걸로 그려지고...난 다르게 생긴 病床으로 옮겨져 수술실로 향했다. 코에 산소 호흡 도와주는 호수가 끼워졌는데,의산지 남자 간호산지가 내 이름을 부른다. "김영배님! 지금 긴장되십니까?" "아뇨.기분 괜찮습니다." 그렇게 대화를 했던가... 폭격으로 화약 냄새가 진동한다.그 길을 많은 사람들이... 6.25 사변땐지..1.4 후퇴땐지...언젠지 모르지만...피난을 간다. 우리는 백의민족이 아니던가...흰색옷의 피난 행렬이 넘어지고 자빠지며 다시 일어나며 걸어간다.옆으로 중공군이...아!! 그러니까 1.4 후퇴때 구나... 중공군의 누빈 군복을 뒤집어 입으면 우리 피난민들 옷과 같은 색깔이다.그들은 미군 공격을 막기위해 우리 피난민들과 같은 같은 색깔의 옷을 하고 우리들 우측에 3열 아니면 4열로 간다. 그런데 미군 전투기들은 지상의 누군가와 연락이 되는지...기총소사(기총사격)를 하는데 낮게 날으며. 그들에게만 사격을 한다. 물론 민간인들도 간혹 죽지만...참 신기하다.
50년 6월29일 원효로부터 서울역까지 B29에서 대형 항아리만한 폭탄이 일곱발 떨어졌다. 그때는 한강 인도교가 높은놈이 머리에 총을 겨누고 "간나새끼 불복종이면 쏴 죽이 갔어" 그러니 대령 계급장단 쫄짜 최창식 공병대장 별수 없이 한강다리 폭파... 남영동쪽 철길을 폭파하기 위해선지...8군 사령부를 겨냥 한건지...그때 8군 사령부 자리는 일본놈들이 물러간뒤, 군인들도 없었다는데... 서빙고에 말로만 우리 탱크부대가 있었고...그걸 괴뢰군에게 뺏기면 안되니까 폭격을... 청파동 나의집 앞에 다섯채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폭격에 하늘은 노랗고..화약냄새는. 진동하고.뛰여놀던 골목길은 폭파된 잔해로 덮히고...그위로 세살된 딸아이의 팔뚝하나를 들고 애타게 울며 불며 딸애를 찾던 애 엄마..그 가느다란 애 팔뚝엔 애엄마가 매 줬다는 리본이 달려있고...피비린내..... 아니!! 저게 언제 쩍인데 내눈에 저렇게 보일까?? 이게 무슨 일 일까? 어머님이 우시며 이불 하나씩을 나와 내동생에게 주시면서, "애들아 빨리 효창공원으로 도망가서 거기 바위옆 골짜기에 이불쓰고 꼼짝 말고 있거라..!!" (아니또??북한군이 쳐들어 왔나??? 근데 난 왜 저렇게 쬐끄만가?? 괴뢰군과 싸워야 하는데?) 덕수궁 수문장은 왜 저렇게 죽어있지?뭐 일본 놈들이 죽였다고?? 죽이면 그냥 죽이지 저렇게 갈기갈기 찢어서 걸어 놨담,참 흉악한 놈들..저 원수를 갚아야.) <그런데 왜 저런게 보이지??> ........그때 하늘인지 땅속인지 아득한 곳에서 날 부르는 소리.
"여보.........!! 이제 정신이 들어요?" 아주 가늘게 들린다.(여기가 어딜까??) 비몽사몽간에 무거운 눈거플을 힘겹게 밀고 눈을 떠 한참 보니...정다운 얼굴이 눈앞에 있다. (누굴까?? )얼른 기억이 안난다.그런데!! 아..!! 못난 나에게 시집와 아들딸 낳고 지금껒 살아준 마누라 박병장이구나... 내가 잡은손에 힘이 있는걸 느낀...박병장에 눈엔 눈물이 그렁그렁 하다. 그렇게 오래 죽은 듯이 누워있는 남편을 보며, (저이가 살아날까?눈을 안뜨면 어쩌나??)천길 낭떠러지로 떨이지는 심정인데 눈을 떴으니. 수술후, 죽은 사람도 옆에있고. 남편 옆에서 애타게 남편이 눈을 뜨길 기다리는데 내가 몸을 움직이며 눈을 뜨자 기뻐서 우는거다. 그럴 수밖에...중환자실에 온지 세시간도 지나서 눈을 떴다니까... 수술후, 박병장은 중환자실에 몰래 들어와 간호사들이 나가라고 해도 꿈쩍않고 내 병상옆에 앉아 나를 살피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난 죽었다가 열시간만에 살아난거다. 그런데 그때 마취가 풀리기 전, 꿈인지 비몽사몽인지 그때 보였던 것들이 지금도 기억이 난다. 눈을뜬뒤 내몸을 살펴보니 내 양쪽 손목이 병상 양쪽 난간에 묶여있다. 수술도중 마취를 해서 아무것도 모르지만,통증이 있어서 막 움직이는 환자가 있단다.그런데 , 나는 팔뚝에 꼽힌 주사 바늘들은 막 비벼대고 발길질을 하니까 마취도 좀 더 했을 것이고 아주 단단히 묶어논 것이다. 참전인: 김점우님의 서술이 눈앞에 바로 전개되는 것처럼 리얼하고 박진감이 있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긴장하게 합니다. 특히나 마취상태에서 오래전 기억속의 사건들이 글속에 무리없이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 읽는 사람에게 부담감을 주지 않습니다. 김전우님 신상에 관한 논픽션인데 재밌게 읽었다고 말하는 건 무례가 될테고 햐간 글의 흐름이 흥미를 주는 건 사실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건강하십시오. -[06/01-22:19]- 최현득: 전에는 김 전우님이 기억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만 그것보다도 "기억속의 사건들이 글속에 무리없이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 읽는 사람에게" 감명을 주는 뛰어난 문장력이 새삼 놀라게 됩니다 강능에서 시술 했을때도 전화로 물어 보면서 안심을 했는데 그런 통증속에 사신줄 몰랐습니다 찬찬히 읽어가면서 함께 중환자실과 병실을 다니겠습니다. " "속의글은 조학장님의 글을 인용한것 입니다. -[06/01-23:04]- 홍 진흠: 햐간 홍하사가 임자! 임자가 국방장관 자릴 맡아줘야겠어! 박통께서 그렇게 말하셨을 분이라니까요. -[06/02-01:12]- 홍진기: 김영배 전우님 몸조리 잘하고 계신지요 병상일지 同病相憐의 마음으로 잘 읽었습니다.우린 어쩔수 없이 병마와 함께 가야하니 모든 욕심 내려놓고 하루하루를 즐겁 생활합시다.전우님 더욱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06/02-09:15]- 최경남: 역시 김전우님은 멋쟁이....이제 남은 여생은 덤으로 사는 인생. 값지고 보람된 삶속에서 가정에 행복과 자녀들에게 놀라운 축복이 함께하시길 바랍니다. -[06/02-09:40]- 백동기: 김 전우님의 글을 읽고 있으면 인내력이 대단하시구나를 느끼며 동시에 발달된 현대 의술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06/02-10:22]- 최진사: 충주 주덕에 사는 이성진 전우가 살아가는 이야기에 암투병 일기가 몇편 있었는데...어제 소식을 들으니 먼저 가셨다네요. 참 인생은 허무하죠? 아플땐 아프더라도 살아있는걸 감사해야겠습니다. -[06/02-11:10]- 쌈지: 60대 초반 다르고 중반 다르군요. 병의 진단에 관계없이 60대 중반 넘으면 너나없이 모두 시한부 인생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병이 있고 없고를 떠나, 병의 경중을 떠나 모두 앞뒤가 정해지지 않은 시한부 인생입니다. 조금 먼저면 어떻고 조금 더면 어떠랴 하고 있습니다. 나름대로 안고있는 고통이 있을 수 있겠지만 경과가 좋으신 것으로 보여 다행입니다, 관리 잘 하셔서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06/02-13:45]- 장성표: 무슨 병이라도 예비 신호가 있다는데 그걸 세밀하게 체크를 안하셔서 큰일 당할뻔 하셨습니다, 지금은 운동도 열심히 하시고 회복도 빠른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저도 얼마전에 찜질방에서 어지러워서 잠시 비툴거린적이 있어서 부랴부랴 부산에가서 건강 체크를 받고 왔습니다, 그런데 의사는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겁니다. 혈당이 많이 높아서 달리길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선배님도 관리 잘 하셔서 엤날 처럼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난생 처음으로 지난 5 월달에는 술을 두번밖에 안마시는 진 기록도 세웠습니다 -[06/02-17:38]- 김영배: 참전인전우님과 최현득 전우님껜 부끄럽습니다.그냥..벌써 지나간 날의 얘기를 쓴다는게 두서없이... 지금 다 나은거 아닙니다.말이 요양중이지 백순데 병원에 진료받는 科가 많아서 일 하기도 안맞고... 그런데 두분 댓글을 참 잘쓰십니다.댓글 잘 읽습니다. 감사 합니다. -[06/02-18:25]- 김영배: 홍진흠 전우님 ㅋ, 원 천만에요.그럴리가...전 그런 자격 없습니다.잘 봐 주셔서 감사 합니다. 홍진기 전우님은 그동안 어디 편찮았던건 아니시죠? 요샌 갑자기 소식 없으면 걱정 됩니다. 대관령에 와 주셨던 최경남 전우님!그 전년에 일부러 갖고오셔서 저에게 선물하신 야전상의..거기에 계급장을 붙여다가 도로 원위치...ㅋ,겨울 모임에 한번 입고 갈 예정입니다. 백동기 전우님의 본글을 읽으면 언제나 기가 죽습니다.저는 글 쓰는데 헛점이 많습니다.이해 하시길.. -[06/02-18:36]- 김영배: 아! 올 현충일에 쥔장님을 못뵐 생각을 하니 참 쓸쓸한 맘 뿐입니다. 어서 나으시라고 성원을 보냅니다. -[06/02-18:49]- 김영배: 정병옥 전우님! 60대 초반 다르고 중반도 다르지만,어제와 오늘도 다릅니다. 그러니까 달(月)이 매일 다르듯 그렇군요. 장성표전우님!5월달에 두번밖에 술을 안드셨다구요? ..제 생각엔 열번이상 드셔도(사람마다 주량이 다르니까) 많이만 안드시면 됩니다.찜질방에서 어지러운건 누구나 비숫한데 그 증상이 어느정돈지 그게 중요 합니다. 다시말해서 술을 잡숴도 2홉짜리 한병이 상한선이라고 생각을 하세요. 저는 그 반병 먹으면 병원 중환자실로 직행 해야 합니다. -[06/02-19:00]- 김진화: 올 현충일은 어머님 모시지 못하고 유복자인 동생 내외와 아들네 식구들과 충혼탑에 들렷습니다. 요양병원에 계신 89세 어머님은 아들네 가족이 모셨습니다. 6.25 전몰유족의 자리가 점점 줄어 들고 연로하신 유족들을 보는 마음 아득합니다. 대한민국의 오늘을 있게 한분들의 남은 유족 중 한명으로 베트남참전용사의 일인으로... 김영배 전우님이 올려 주시는 글은 베트벳의 꽃 입니다... 생사를 넘나든 전우님의 글은 대하는 그저그런 전우는 숙연해 집니다 부디 건강하시어 건필 하소서... -[06/07-01:3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