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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도론 3권
21.1. 아홉 가지 지혜[2]
(4) 위험함을 관찰하는 지혜
35. 그가 이와 같이 공포로 나타나는 지혜를 반복하고, 닦고, 많이 [공부]지을 때 모든 존재, 모태, 태어날 곳, 거주, 거처 등에서 피난처가 아니라고, 의지처가 아니라고, 갈 곳이 아니라고, 귀의처가 아니라고 꿰뚫어 안다.
모든 존재, 모태, 태어날 곳, 거주, 거처에 속하는 상카라(行)들 가운데 단 하나의 상카라에 대해서도 바라거나 집착하지 않는다.
삼계의 존재들은 시뻘겋게 불타는 숯이 가득한 불구덩이처럼,
네 가지 근본물질(四大)들은 소름끼치는 독사처럼,
다섯 가지 무더기(五蘊)들은 칼을 빼든 살인자처럼,
여섯 가지 안의 각감장소(六外入)들은 인적 없는 마을처럼,
여섯 가지 밖의 감각장소(六外入)들은 마을을 약탈하는 강도처럼,
일곱 가지 알음알이(識)의 거주와 아홉 가지 중생의 거처는 11가지 불로 타고 시뻘겋게 타오르고 활활 타는 것처럼,
모든 상카라(行)들은 종기처럼 질병처럼 화살처럼 통증처럼 고통처럼,
이처럼 만족도 없고 영화도 없는 커다란 위험 덩어리가 되어 나타난다.
36. 어떻게?
행복하게 살려는 겁쟁이에게 상카라들은 외관상 아름답게 보이지만,
맹수들이 들끊는 숲처럼, 표범들의 동굴처럼, 괴물과 도깨비들이 출몰하는 저수지처럼, 칼을 빼든 원수처럼, 독이든 음식처럼, 도적에게 포위당한 길처럼, 시뻘겋게 타는 숯처럼, 싸우는 군대들의 전쟁터처럼 나타난다.
맹수들이 들끊는 숲 속에 이르렀을 때 사람이 소스라치게 놀라고, 겁에 질리고, 머리칼이 쭈뼛 일어서는 등 전적으로 위험만 보는 것처럼,
수행자도 무너짐을 관찰 함으로써 모든 상카라들이 공포로 나타날 때 전적으로 영화도 없고 만족도 없는 위험만 본다.
37. 그가 이와 같이 볼 때 위험함에 대한 지혜가 일어났다고 한다.
이것을 두고 이와 같이 설하셨다.
“어떻게 공포로 나타남에 대한 통찰지가 위험함에 대한 지혜인가?
일어남이 공포라고 공포로 나타남에 대한 통찰지가 위험함에 대한 지혜이다.
진행이 공포라고 … 표상이 공포라고 … 쌓음이 공포라고 … 재생연결이 공포라고 … 태어날 곳이 공포라고 … 생겨남이 공포라고 … 재생이 공포라고 … 태어남이 공포라고 … 늙음이 공포라고 … 병듦이 공포라고 … 죽음이 공포라고 … 근심이 공포라고 … 탄식이 공포라고 … 절망이 공포라고 공포로 나타남에 대한 통찰지가 위험함에 대한 지혜다.
일어나지 않음이 안은(安隱, khema)이라는 평화로운 경지(santi-pada)에 대한 지혜가 있다.
진행하지 않음이 … 절망 없음이 안은이라는 평화로운 경지에 대한 지혜가 있다.
일어남은 공포이고 일어나지 않음은 안은이라는 평화로운 경지에 대한 지혜가 있다.
진행이 … 절망이 공포이고 절망 없음이 안은이라는 평화로운 경지에 대한 지혜가 있다.
일어남이 괴로움이라고 공포로 나타남에 대한 통찰지가 위험함에 대한 지혜다.
진행이 … 절망이 괴로움이라고 공포로 나타남에 대한 통찰지가 위험함에 대한 지혜다.
일어나지 않음이 행복이라는 평화로운 경지에 대한 지혜가 있다.
진행하지 않음이 … 절망 없음이 행복이라는 평화로운 경지에 대한 지혜가 있다.
일어남은 괴로움이고 일어나지 않음은 행복이라는 평화로운 경지에 대한 지혜가 있다.
진행이 … 절망은 괴로움이고 절망 없음이 행복이라는 평화로운 경지에 대한 지혜가 있다.
일어남은 세속적이라고 공포로 나타남에 대한 통찰지가 위험함에 대한 지혜다.
진행이 … 저람이 세속적이라고 공포로 나타남에 대한 통찰지가 위험함에 대한 지혜다.
일어나지 않음이 세속적인 것이 아니라는 평화로운 경지에 대한 지혜가 있다.
진행하지 않음이 … 절망 없음이 세속적인 것이 아니라는 평화로운 경지에 대한 지혜가 있다.
일어남은 세속적이고 일어나지 않음은 세속적인 것이 아니라는 평화로운 경지에 대한 지혜기 있다.
진행이 … 절망이 세속적이고 절망 없음이 세속적인 것이 아니라는 평화로운 경지에 대한 지혜가 있다.
일어남은 상카라라고 공포로 나타남에 대한 통찰지가 위험함에 대한 지혜다.
진행이 … 절망이 상카라라고 공포로 나타남에 대한 통찰지가 위험함에 대한 지혜다.
일어나지 않음이 열반이라는 평화로운 경지에 대한 지혜가 있다.
진행하지 않음이 … 절망 없음이 열반이라는 평화로운 경지에 대한 지혜기 있다.
일어남은 상카라이고 일어나지 않음은 열반이라는 평화로운 경지에 대한 지혜가 있다,
진행이 … 절망이 상카라이고 절망 없음이 열반이라는 평화로운 경지에 대한 지혜가 있다.
일어남, 진행, 표상, 쌓음, 재생연결을
그는 괴로움이라 보나니 이것이 위험함에 대한 지혜다.
일어나지 않음, 진행하지 않음, 표상 없음,
쌓음 없음, 재생연결 없음을 행복이라 보나니
이것이 평화로운 경지에 대한 지혜다.
다섯 가지 경우에서 위험함의 지혜가 생기고
다섯 가지 경우에서 고요한 경지[의 지혜]가 생기나니
이 열 가지 지혜를 꿰뚫어 안다.
두 가지 지혜에 능숙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견해들 가운데서 동요하지 않는다.
그것을 알았다는 뜻에서 지혜고 꿰뚫어 안다는 뜻에서 통찰지이다.
그러므로 공포로 나타남에 대한 통찰지가 위험함에 대한 지혜라고 한다.(Ps.i.59-60)”
38. 여기서 일어남이란 이전의 업을 조건으로 여기에 태어남이다.
진행이란 그렇게 일어난 것이 진행하는 것이다.
표상이란 모든 상카라들의 표상이다. 쌓음이란 미래에 재생연결의 원인이 될 업이다.
재생연결이란 미래의 태어남이다.
태어날 곳이란 재생연결이 일어날 곳이다.
생겨남은 무더기들이 태어남이다.
재생이란 “[그것을] 얻은 자나 [그곳에] 다시 태어난 자에게(Dhs.224)”라고 설한 과보로 나타난 진행이다.
태어남이란 늙음 등의 조건이고 [업으로서의] 존재를 조건한 태어남이다. 늙음과 병듦과 죽음 등은 분명하다.
39. 여기서 일어남 등의 오직 다섯 가지만 위험함에 대한 지혜의 대상으로 설했다. 나머지는 이들의 동의어이다.
생겨남과 태어남이 둘은 일어남과 재생연결의 동의어이다.
태어날 곳과 재생의 둘은 진행의 동의어이고,
늙음 등은 표상의 동의어이다.
그래서 이와 같이 설하셨다.
“일어남, 진행, 표상, 쌓음, 재생연결
이들을 괴로움이라 보나니
이것이 위험함에 대한 지혜이다.”
“다섯 가지 경우에게 위험함의 지혜가 생긴다.(§37)”
40. ‘일어나지 않음이 안은이다’는 평화로운 경지에 대한 지혜가 있다:
이것은 위험함에 대한 지혜와 반대되는 지혜를 보여주기 위하여 설하셨다고 알아야 한다.
공포로 나타난 것을 통해서 위험을 보고서 당황하는 자들에게 ‘공포도 없고 위험도 없는 안은이 있다’라고 그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설했다고 알아야 한다.
혹은 일어남 등이 공포라고 분명하게 나타났을 때 그의 마음은 그것의 반대편으로 기운다.
그러므로 공포로 나타남을 통하여 성취된 위험함에 대한 지혜의 이익을 보여주기 위해서 설했다고 알아야 한다.
41. 여기서 공포라는 것은 반드시 괴로움이고, 괴로움이라는 것은 오직 세속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세 가지] 회전을 가진 세속적인 것, 세간의 세속적인 것, 오염원의 세속적인 것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속적인 것은 상카라들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일어남이 괴로움이라고 공포로 나타남에 대한 통찰지가 위험함에 대한 지혜다라고 설했다.
비록 이렇게 설했더라도 공포의 형태로, 괴로움의 형태로, 세속적인 형태로 이와 같이 형태가 다르기 때문에 그들의 진행을 통해서 차이점을 알아야 한다.
42. 열 가지 지혜를 꿰뚫어 안다:
위험함에 대한 지혜를 꿰뚫어 아는 자는,
일어남 등을 대상으로 한 다섯 가지, 일어나지 않음 등을 대상으로 한 다섯 가지,
이 열 가지 지혜를 꿰뚫어 알고, 통찰하고, 실현한다.
두 가지 지혜에 능숙하기 때문에:
위험함에 대한 지혜와 평화로운 경지에 대한 지혜, 이 두 가지에 능숙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견해들 가운데서 동요하지 않는다:’
궁극적인 열반은 지금 여기다’라는 등으로 일어나는 견해들 가운데서 동요하지 않는다. 나머지는 명확하다.
위험함을 관찰하는 지혜가 끝났다.
(5) 역겨움을 관찰하는 지혜p301~
43. 그가 이와 같이 모든 상카라들을 위험이라고 볼 때 모든 존재, 모태, 태어날 곳, 알음알이의 거주, 중생의 거처에서 부서지는 모든 상카라들을 역겨워하고, 불만스러워하고, 즐거워하지 않는다.
마치 찟따꾸따 산의 기슭에 머물기를 즐거워하는 황금 백조의 왕이 천민촌의 입구에 있는 더러운 웅덩이에 머물기를 즐거워하지 않고 일곱 개의 큰 호수에 머물기를 즐거워하는 것처럼,
수행자 백조도 위험이라고 분명히 본 여러 가지의 상카라들에 대해 즐거워하지 않는다.
수행하기를 즐거워하여 수행 즐거워함을 갖추었기 때문에 오직 일곱 가지 관찰을 즐거워한다.
마치 짐승의 왕인 사자를 황금 옥사에 가두었을 때 즐거워하지 않고, 그 범위가 3천 요자나 되는 히말라야를 즐거워하듯이,
수행자 사자도 세 가지 선처의 존재를 즐거워하지 않고 오직 세 가지 관찰을 즐거워한다.
전신이 희고 일곱 군데로 서고, 신통변화를 가졌고, 하늘을 나는 찻단따라는 코끼리의 왕이 도시 가운데 머물기를 즐거워하지 않고, 히말라야의 찻단따 숲의 못에 머물기를 즐거워하듯이,
그와 같이 수행자 코끼리 왕도 모든 상카라들을 즐거워하지 않고, ‘일어나지 않음이 안은(安隱)이다’라는 등의 방법으로 본 평화로운 경지를 즐거워하며, 그곳으로 기울고 향하고 기댄다.
역겨움을 관찰하는 지혜가 끝났다.
44. 이 역겨움을 관찰하는 지혜는 이전의 두 가지 지혜 [즉, 공포로 나타나는 지혜와 위험함을 관찰하는 지혜]와 뜻으로는 같다.
그래서 옛 스승들이 말씀하셨다.
“공포로 나타남은 하나지만 세 가지 이름을 가진다.
이것은 모든 상카라들을 공포로 보기 때문에 공포로 나타남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그 상카라들에 대해 위험을 일으키기 때문에 위험함을 관찰하는 지혜라는 이름을 얻는다.
그 상카라들에 대해 역겨워하는 마음을 일으키기 때문에 역겨움을 관찰하는 지혜라는 이름을 얻는다.”
성전에서도 역시 이와 같이 설하셨다.
“공포로 나타남에 대한 통찰지, 위험함에 대한 지혜, 역겨움,ᅳ 이 법들은 뜻으로는 같고 문자만 다르다.(Ps.ii.63)”
(6) 해탈하기 원하는 지혜
45. 이 역겨움의 지혜로써 선남자가 역겨워하고, 만족하지 않고, 즐거워하지 않을 때, 모든 존재, 모태, 태어날 곳, 알음알이의 거주, 중생의 거처에서 부서지는 상카라들 가운데 어느 하나의 상카라에도 그의 마음이 집착하지 않고, 묶이지 않고, 고착되지 않는다. 모든 형성된 것으로부터 해탈하기를 원하고, 벗어나고자 원한다.
46. 무엇처럼?
그물에 걸린 물고기처럼,
독사의 입에 들어간 개구리처럼,
우리에 갇힌 숲 속의 수탉처럼,
견고한 덫에 걸린 사슴처럼,
뱀 장수의 손아귀에 붙잡힌 뱀처럼,
커다란 습지대에 빠진 코끼리처럼,
금시조(金翅鳥)의 집에 들어간 용왕처럼,
월식에 들어간 용왕처럼,
월식에 들어간 달처럼,
적에게 호위된 사람처럼.
이들이 각각 해탈하기를 원하고, 벗어나고자하는 것처럼,
이 수행자의 마음도 이 모든 상카라들로부터 해탈하기를 원하며, 벗어나고자 원한다.
이와 같이 그가 모든 상카라들에 집착하지 않고, 모든 상카라들로부터 해탈하기를 원할 때 해탈하기를 원하는 지혜가 일어난다.
해탈하기를 원하는 지혜가 끝났다.
(7) 깊이 숙고하는 관찰하는 지혜
47. 그가 이와 같이 모든 존재, 모태, 태어날 곳, 거주, 거처에서 부서지는 모든 상카라들로부터 해탈하기를 원하고 모든 상카라들로부터 해탈하기 위해 깊이 숙고하여 관찰하는 지혜로 세 가지 특상을 제기한 뒤 상카라들을 파악한다.
48. 상카라들은 영원하지 않고, 일시적인 것이고,
일어나고 사라짐에 제한된 것이고,
붕괴하는 것이고, 떨리는 것이고,
부서지기 쉬운 것이고, 지속되지 않는 것이고,
변하는 것이고, 실체가 없는 것이고,
복리가 없는 것이고, 형성된 것이고,
죽기 마련인 법이기 때문에, 이와 같은 이유로 무상이라고 본다.
이 상카라들은 계속해서 압박받고, 견디기 어렵고,
괴로움의 토대이고, 병이고, 종기이고, 화살이고,
재난이고, 질병이고, 전염병이고, 재앙이고,
두려움이고, 협박이고, 보호가 없고, 피난처가 없고,
귀의처가 없고, 위험이고, 재난의 뿌리이고, 살인자이고,
번뇌에 물들기 쉽고, 마라의 미끼이고,
태어나기 마련인 법이고, 늙기 마련인 법이고,
병들기 마련인 법이고, 근심하기 마련인 법이고,
탄식하기 마련인 법이고, 절망하기 마련인 법이고,
오염되기 마련인 법이기 때문에, 이와 같은 이유로 괴로움이라고 본다.
이 상카라들은 아름답지 않고, 악취가 나고, 불쾌하고, 혐오스럽고, 장식으로 가장할 수 없고, 보기 흉하고, 매스껍기 때문에,
또한 괴로운 특징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이와 같은 이유로 더러움(不淨)으로 본다.
이 상카라들은 남이고, 비었고, 허하고, 공하고,
주인이 없고, 지배력을 행사할 수 없고, 자유스럽지 않기 때문에,
이와 같은 이유로 무아라고 본다.
이와 같이 볼 때 그는 세 가지 특상을 제기한 뒤 상카라들을 파악했다고 한다.
[뱀을 낚는 사람의 비유]
49. 무슨 이유로 이 상카라들을 이와 같이 파악하는가?
해탈하는 방편(upāya)을 성취하기 위해서다. 여기에 대한 비유가 있다.
떤 사람이 낚시를 하리라 생각하고 물 속에 그물을 쳤다고 한다.
그는 물밑의 그물코에다 손을 넣어 뱀의 목덜미를 잡고는,
’와, 물고기를 잡았어’라며 기뻐했다.
커다란 물고기를 잡았다고 생각하고 위로 들어올려 보았을 때 세 가지 특징을 보고 뱀이라는 인식이 들었다.
겁에 질려 위험을 보고는 잡은 것을 역겨워하며 놓아버리기를 원했다.
그는 벗어나는 방편을 꾀하면서 뱀이 똘똘 감고 있는 손을 꼬리의 끝 부분부터 풀었다.
다시 팔을 치켜 올려 뱀의 머리를 두세 번 빙빙 돌려 무력하게 만들어,
‘이 못된 놈의 뱀아, 꺼져라’라면서,
던져버리고는 급히 호수의 둑으로 올라가,
‘이제야 정말 큰 뱀의 아가리로부터 벗어났구나’라 하면서 온 길을 바라보면서 서있었다.
50. 여기서 수행자가 처음에 몸을 받아 기뻐하는 때가 그 사람이 물고기라고 생각하고 뱀의 목덜미를 잡고 기뻐한 것과 같다.
이 수행자가 덩어리 등 견고하다는 [인식을] 부수어 상카라들에서 세 가지 특상을 보는 것은 그 사람이 그물코로부터 뱀의 머리를 끄잡아내어 세 가지 특징을 보는 것과 같다.
수행자의 공포로 나타나는 지혜는 그 사람이 겁에 질린 때와 같다.
그 다음에 위험의 관찰에 대한 지혜는 위험을 보는 것과 같고,
역겨움을 관찰하는 지혜는 뱀을 잡은 것을 역겨워하는 것과 같고,
해탈하기를 원하는 지혜는 뱀으로부터 벗어나기를 원하는 것과 같다.
깊이 숙고하여 관찰하는 지혜로써 상카라들에 대해 세 가지 특상을 제기하는 것은 벗어나는 방편을 꾀하는 것과 같다.
그 사람이 뱀을 빙빙 돌려 무력하게 만든 다음 멀리 던져버려 물지 못하도록 만든 뒤 잘 벗어나는 것처럼,
이 수행자도 세 가지 특상을 제거함으로써 상카라들을 빙빙 돌려 무력하게 만들어 다시는 항상하고, 행복하고, 깨끗하고, 자아라는 형태로 나타나지 못하도록 만든 뒤 잘 벗어난다.
그래서 설하셨다.
‘해탈하는 방편을 성취하기 위해서 이와 같이 파악한다’라고.
51. 이 시점에서 그에게 깊이 숙고하는 지혜가 일어난다.
이것을 두고 이와 같이 설하셨다.
“무상이라고 마음에 잡도리할 때 무엇을 깊이 숙고하여 지혜가 일어나는가?
괴로움이라고 … 무아라고 마음에 잡도리할 때 무엇을 깊이 숙고하여 지혜가 일어나는가?
무상이라고 마음에 잡도리할 때 표상을 깊이 숙고하여 지혜가 일어난다.
괴로움이라고 마음에 잡도리할 때 진행을 깊이 숙고하여 지혜가 일어난다.
무아라고 마음에 잡도리할 때 표상과 진행을 깊이 숙고하여 지혜가 일어난다.(Ps.i.63-64)”
52. 표상을 깊이 숙고하여: 상카라들의 표상을 지속적인 것이 아니라 일시적인 것이라고 무상의 특상을 통하여 알고 나서. 물론 먼저 안 다음 지혜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인습적 표현에 따라서 이렇게 말했다.
마치 “마음과 법을 의지하여 마노의 알음알이가 일어난다.(S.ii.72 등)”는 것처럼.
혹은 단일화의 방법(ekatta-naya)에 의해서 앞의 것과 뒤의 것을 하나로 만들어 이와 같이 설했다고 알아야 한다.
남은 두 구절 [즉 진행, 표상과 진행]에도 이 방법을 적용하여 그 뜻을 알아야 한다.
깊이 숙고하여 관찰하는 지혜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