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
♣트레비 분수
♣스페인 광장
♣판테온 신전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Monumento Vittorio Emanuele II)
로마 중심부 베네치아 광장을 내려다보고 있는 카피톨리아노 언덕에 세워진 이 기념관은 이탈리아를 통일하고 초대 국왕이 된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의 즉위를 기념하기 위해 지어진 것이다.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진 이 기념관은 하얀색 대리석의 웅장한 건물이지만, 당시에는 캄피돌리오의 경관을 해친다는 비난을 받았다. 기념관 상단에는 각각 청동상이 있는데, 오른쪽이 ‘조국애의 승리’, 왼쪽이 ‘노동의 승리’를 나타내는 것이고, 계단 아래 양 끝에 있는 분수대는 각각 오른쪽이 ‘티레니아 해’, 왼쪽이 ‘아드리아 해’를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기념관 앞에 있는 높이 12m의 기마상은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다.
기마상 아래에는 일 년 내내 꺼지지 않는 성화가 있는데 이 성화는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전사한 무명 용사를 위한 것이다. 기념관 내부에는 무명 용사의 묘와 이탈리아 통일과 관련된 자료들이 있고, 전망대에서 로마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다. 기념관 앞에 있는 넓은 광장은 베네치아 광장이다. 이 광장 한쪽에 베네치아 대사들이 거주하던 궁전이 있기 때문에 그런 명칭이 붙여졌다. 베네치아 궁전은 무솔리니가 집무실로 이용했고, 무솔리니가 제2차 세계 대전 때 군중을 상대로 연설을 하던 장소로 유명하며, 현재는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베네치아 광장(Piazza Venezia)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 정면에 있는 광장으로 로마의 중심부에 위치해 '로마의 배꼽'이라 불리는 광장으로
1871년 이탈리아 통일을 기념하기 위해 조성된 광장이며 로마의 교통 중심지이고 로마 관광의 핵심 코스 중 한곳이다
'베네치아 광장'이라는 이름은 16세기 베네치아 공화국의 로마 대사관 역활을 했던 '베네치아 궁전'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며 매년
6월 2일에 이 광장에서 이탈리아 통일 기념 행사가 거행된다.
베네치아 궁전(Palazzo di Venezia)
광장 오른편에 약간 보이는 건물로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르네상스 초기 건물로서 무솔리니가 약20여 년간 집무실로 사용했던 곳이기도 하며 이 베네치아 궁전의 발코니에서 제2차 대전 참전을 선포했다.
무솔리니는 유럽 최초의 파시스트 지도자로서 이탈리아를 세계대전 속에 끌어들여 엄청난 재앙을 초래한 역사적 인물로 1929년 2월
교황청과 '라테란 조약'을 체결하고 60여년에 걸친 교회와 정부의 분쟁에 종지부를 찍으면서 현재의 '바티칸시티'를 탄생시킨 인물
이기도 하다.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 좌측에 있는 이 건물은 베네치아 건물과 똑같이 복제한 건물이고, 현재 아랍은행이 자리잡고 있다.
트레비 분수(Fontana di Trev)
트레비 분수는 고대의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명한 ‘처녀의 샘(Aqua Virgina)’으로 전쟁에서 돌아온 병사들에게 물을 준 한 처녀의 전설을 분수로 만든 것이다.
고대 로마 시대는 풍부한 수원과 총 14개의 거대한 수도망이 있었고 로마 전역에 물을 공급했지만 서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 많은 이민족들이 침입하면서 이 수로망을 파괴했다. 그로 인해 물 부족 현상이 발생했다. 이런 물 부족은 15세기 이후에 들어서면서 새로이 로마를 재정비하려던 교황들이 여러 수도교와 분수를 만들면서 해소되었다. 그중에 제일 유명한 것이 바로 이 트레비 분수이다. 평범했던 이 분수는 1732년 교황 클레멘스13세가 니콜라 살비(Nicola Salvi)에게 명해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트레비 분수의 아름다움은 바로크 양식의 마지막 최고 걸작품이라고도 한다.

예전 로마 제국에서는 전쟁터로 간 애인의 무사귀환을 기도하며 이곳에 동전을 던졌다고 하는데, 그것이 이어져 지금은 로마 여행 중 꼭 거쳐 가야 하는 동전 던지기 장소로 유명하다. 분수를 등지고 동전을 하나 던져 들어가면 로마에 다시 돌아오고, 두 개가 들어가면 운명의 사랑을 만나고, 세 개가 들어가면 그 사람과 결혼한다는 속설이 있다. 던져진 동전은 각종 국제 빈민 구호 단체 등에 보내는 기부금으로 사용된다.



건물 제일 위를 보면 라틴어로 ‘CLEMENS VII’라고 클레멘스의 이름이 적혀 있고, 그 아래에 AQVAM VIRGINEM이라고 적혀 있는데 ‘처녀의 샘분수’라는 것을 명명하고 있다. 양쪽에 있는 4개의 여인 조각상은 4계절을 상징한다.

트레비 분수의 중앙에 있는 근엄한 모양의 부조물은 바다의 신인 ‘포세이돈’이며, 양쪽에 말을 잡고 있는 두 명의 신은 포세이돈의 아들인 트리톤이다. 종종 테베레 강이 범람해서 이곳까지 물에 잠길 때가 많자 바다의 신을 만들어 이를 막고자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분수 왼쪽에 날뛰는 말은 풍랑을 상징하고, 오른쪽의 말은 고요한 물을 상징한다.







트레비 분수가 유명하게 된 이유는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스페인 계단’이 유명해졌듯이, 영화 〈달콤한 인생(La dolce vita)〉
에서 주인공인 마스트로이안니와 여주인공이 분수에 뛰어드는 장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스페인 광장(Piazza di Spagna)

스페인 광장(Piazza di Spagna)
17세기에 이 광장 주변에 스페인 대사관이 자리를 잡음으로써 현재의 이름이 붙게 되었다. 전반적인 양식은 화려한 로코코(Rococo) 양식이다. 이 스페인 광장과 계단은 영화 ‘로마의 휴일’에 나오는 ‘오드리 햅번’이 걸어 내려왔던 곳으로 이 영화 이후부터 일반인들에게 많이 알려졌다. 그러나 원래부터 이 광장은 수많은 세계적 예술가들이 쉬어 가던 곳이었는데 괴테, 발자크, 키츠, 셸리, 바그너 등이 즐겨찾던 곳이기도 했다.

트리니타 데이 몬티 성당(Chiesa della Trinità dei Monti)
1495년 프랑스 사람들이 지은 성당으로 성당의 이름은 '몬티의 삼위일체'라는 뜻이라고 하며 로마의 다른 성당과는 다르게 2개의
종탑이 있는것이 특징이다.


트리니타 데이 몬티 계단(Scalinata di Trinità dei Monti, 스페인 계단)
이 계단은 스페인 광장과 트리니타 데이 몬티 성당을 이어주는 총 137개의 계단이 3개의 테라스로 구분되어 있어서 삼위일체 계단으로 불리기도 하며 1726년에 만들어 졌다.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오드리 햅번이 젤라또를 먹는 장면으로 유명해진 곳이다.


스페인계단에서의 공연, 마침 이날은 연주 공연이 있는 날인듯...

'스페인 대사관'
스페인 광장은 스페인 대사관앞에 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콜론나 광장(Piazza Colonna)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기둥
콜론나 광장은 로마 중심부 중의 중심부다. 트레비 분수와 가까워 늘 관광객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포폴로 광장과 베네치아 광장의 중앙에 있으며 여기서 바르베리니와 테르미니로 이어지는 트리토네 거리가 시작된다. 콜론나는 영어로 ‘Column’, 즉 기둥이라는 뜻으로 바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사후 180년에 만든 기둥을 의미한다.
기둥 표면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게르만 지역에 원정을 가서 승리한 것을 기억하기 위해 그 당시의 전쟁 상황을 새겨 놓았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우리나라에서는 〈명상록〉의 저자로서, 엄격한 자가 절제의 철학을 지녔던 스토아 학파의 대가로서 학자적 위상을 지닌 인물로도 유명하다.

미냐넬리 광장(Piazza Mignanelli)

성모의 원주 [Colonna dell'Immacolata]
1857년 교황 비오 9세에 의해 성모 마리아의 원죄없이 수태하였다는 교리를 선언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고 한다.
기둥은 세 부분으로 12m의 원주 로 구성되어 있으며 제일 윗 부분은 성모마리아 동상



판테온(Pantheon)
고대 로마의 신들에게 바치는 신전으로 사용하려고 지은 로마의 건축물로, 하드리아누스 황제 때인 서기 125년경에 재건되었다.
원래는 평범한 고전적 신전으로 지어져 박공 지붕을 씌운 4각형 평면의 구조로, 4면에 콜로네이드[柱廊]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18~128년에 하드리아누스 황제에 의해 완전히 재건되었고 3세기초 루키우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와 카라칼라 황제 때 부분적으로 개축되었다. 콘크리트 구조에 벽돌을 덧댄 원형 평면의 건물로서, 벽 위에 거대한 콘크리트 돔을 올렸다. 세베루스나 카라칼라가 아그리파의 원래 건물에서 떼어낸 것으로 보이는 코린트식 기둥의 정면 현관은 3각형 박공이 있는 경사 지붕을 받치고 있다. 현관 아래쪽에는 높이 7m의 거대한 청동문 2짝이 있는데, 이런 종류의 대형문 중에 최초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판테온은 그 규모, 구조 및 설계가 매우 특이하다. 지름이 약 43.3m이고 기단으로부터의 높이가 21.6m에 이르는 돔은 근대 이전에 지어진 것으로는 가장 크다. 돔 안쪽을 받치는 벽돌 아치는 가장 아랫부분을 제외하고는 외부에서 확인되지 않는데, 정확한 공사방법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판테온에는 총 16개의 기둥이 있는데 기존의 이탈리아 건물들의 기둥과는 다른 색의 화강암이며 코린트 양식을 갖추었다. 609년 비잔틴의 포카스 황제가 교황 보니파치오 4세에게 이 건물을 공식적으로 기증했다. 이를 받은 교황은 이 건물을 성모 마리아와 순교자들에게 바치는 성당으로 바꾸었다.


이 판테온 양식의 지붕인 돔은 이탈리아 전역 어디에서나 성당이나 건축물의 훌륭한 교본으로 사용되었다.
이 돔 양식은 현존하는 로마 건축물 중 가장 오래되었으며 그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다. 판테온은 기원전 27년에 아그리파(아우구스투스 대제, 즉 케사르를 계승한 인물인 옥타비아누스 대제의 사위)가 만든 것이다. 신전으로 사용되다가 80년에 화재를 입었으며 이후 하드리아누스 황제(약 120년대) 때 지금의 모습으로 바뀌었으며, 이때 남쪽을 향해 있던 건물의 문을 북쪽으로 향하게 하여 로톤다 광장을 조성했다.







들어가자마자 오른쪽으로 이탈리아 건국의 영웅인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의 묘가 있다. 성모 마리아 상 아래는 천재 화가인 ‘라파엘로’의 무덤이 있다.


위로는 지름 9m의 구멍이 뚫려 있으며 바닥에서 천장까지의 높이가 43.3m이고 바닥의 지름도 43.3m이며 1873년에 복원된 것이다. 판테온은 바닥에서 꼭대기까지 콘크리트로 만든 아치로 골격을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아래 부분의 벽은 두껍고(5.9m) 위로 갈 수록 얇아져서 건축물의 하중을 최소화했다. 꼭대기의 벽 두께는 1.5m이다.

이탈리아는 광장에 오벨리스크가 세워져 있는 경우가 많은데 판테온 앞 광장에도 오벨리스크가 하나 세워져 있다.
오벨리스크란 본디 이집트에서 태양신을 상징하는 기념비로 해시계 역활까지 하던 것이었는데 다른 나라에서 많이 가져가는 바람에 정작 이집트에는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한다.



입구의 상단에는 이 건물을 아그리파가 세웠다는 내용의 글(MAGRIPPAIFCOSTER···)이 써 있다. 입구에 있는 청동문은 이민족이 침입한 5세기 때 신성 로마제국 시대의 약탈과 이후 바티칸 건축 시에 사용되어 지금 보는 것은 1500년대의 것이다.

판테온은 그리스어로 ‘모든 신’, 한자어로 하면 ‘전신(全神)’이라는 뜻으로 다신교인 고대 로마에서 모든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만든 신전이다. 르네상스 3대 천재 화가인 라파엘로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완벽한 건물이라고 칭한 곳으로, 죽어 여기에 묻히기를 희망했으며 현재 그의 묘가 있다.

판테온에서 나오면 작은 바(Bar)들과 이집트 여신인 이지스 신전의 오벨리스크가 있는 로톤다(Rotonda) 광장이 보인다. 이 광장은
1578년에 기존의 공터를 개축해서 만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