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진짜 가족일까? 누가 진짜 부모일까?
'가족' 하면 떠오르는 것은 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4인 가족이 일반적이었다. 우리나라 법에서도 가족 범위를 결혼과 혈연으로 한정하고 있으며 이런 가족 모습이 우리가 생각하는 소위 ‘정상 가족’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주위에서 이 범위에 들지 않는 ‘비정상 가족’을 흔하게 만날 수 있다. 일하며 만난 그런 가족을 잠깐 소개하고자 한다.
13살 준서는 부모가 이혼하고 연락두절되어 할머니 할아버지와 살고 있다. 7살 연서는 미혼모 가정에서 태어났고, 1살 은지는 미혼부인 아빠가 홀로 키우고 있다. 동수와 철수는 아동학대로 친가정에서 분리되었다. 이런 아이들이 보호가 필요할 때 시설 또는 그룹홈에 가기도 하지만 위탁가정을 선택해 오기도 한다. 위탁가정으로 온 아이들은 전입신고를 하면 그곳에 ‘동거인’으로 기재된다. 일하며 만나는 위탁가정도 비정상 가족 중 하나이다.
위탁부모는 친부모를 대신하여 24시간 365일 아이를 키우고 있다. 그럼에도 아이에 대한 아무 권한이 없기에 그들의 여권이나 통장 하나 만들 수 없다. 그런 것들을 만들기 위해서는 친부모가 필요하다. 아이가 아파 동의서에 사인이 필요한 치료를 받아야 할 때도 위탁부모는 할 수 없다. 아이를 키우고 있음에도 위탁부모는 아무런 자격이 없으며 ‘동거인’이라는 낯선 단어가 위탁가정을 계속 따라다닌다. 그뿐 아니라 성이 다른 비혈연 가족을 바라보는 사회 편견으로 인해 위탁가정, 위탁아동은 상처받는 일이 많다. 때론 그로 인해 위탁 사실을 숨기기도 한다. 위탁부모가 아이를 키우고 있음에도 친부모가 원하면 언제고 아이를 데려갈 수도 있다. 아이가 친부모의 소유물인 것처럼 말이다.
위탁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도 다른 아이들과 같이 위탁부모와 그 가족의 사랑을 받으며 자란다. 같이 밥 먹고 일상을 공유한다. 함께 눈 마주치고 웃기도 울기도 한다. 즐거운 일도 많지만 슬프고 힘든 일도 함께 헤쳐 나간다. 그렇게 아이와 위탁가정은 가족이 되어 간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어느 가족>에도 대표적인 비정상 가족이 나온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6명이 한집에 살고 있다. 전 남편과 이혼하고 혼자 살아가는 하츠에 할머니, 부모님이 있지만 혼자 떨어져 사는 아키, 남편의 폭력에 참다못해 살인을 저지른 노부요, 그녀를 도운 오사무, 차 안에 버려진 쇼타, 학대받은 유리까지. 하츠에 할머니의 연금과 도둑질로 살아가는 여섯 식구는 가족이었을까?
6명이 함께 살지 않았다면, 하츠에 할머니는 쓸쓸하게 혼자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다. 아키는 할머니의 따스함을 느껴보지 못했을 것 같다. 쇼타와 유리도 아동학대하는 부모와 살았을 것이다. 노부요와 오사무도 고통과 외로움 속에서 홀로 살지 않았을까. 그런 사람들이 한집에 모여 밥을 나누어 먹고 서로를 걱정해 주고 서로에게 따뜻함을 느낀다. 좁은 집일지라도 함께 하는 이가 있기에 집으로 돌아오게 하고 힘듦 속에서 서로를 충전해 준다. 혈연은 아닐지라도 마음으로 이어지는 게 가족이 아니냐고, 서로 선택했기에 더 강한 유대를 가지는 게 아니냐는 영화 속 대화에서 가족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한다.
하츠에 : (유리가) 집에 돌아간다고 말할 줄 알았는데.
노부요 : 선택받은 건가, 우리가?
하츠에 : 보통은 부모를 선택할 순 없으니까.
노부에 : 근데, 스스로 선택하는 쪽이 더 강하지 않겠어?
하츠에 : 뭐가 강해?
노부에 : 그러니까⋯ 유대 정 같은 거.
하츠에 : 나도 널 선택했지.
하지만 사회가 이 가족을 바라보는 시선은 차갑기만 하다. 아동학대로 몸에 상처 자국 선명한 유리를 다시 돌려보낼 수 없어 데려온 것을 유괴라 말한다. “아이한테는 엄마가 필요해요.” 아이를 학대하지만 낳아준 엄마가 필요하다고 얘기한다. 다른 가족들은 하츠에 할머니에게 나오는 연금 때문에 그녀가 필요했다고, 도둑질시키며 돈을 벌어다 줄 쇼타가 필요했다고 말한다. 남남인 사람들이 모여 사는 것에 모두 꿍꿍이가 있다고 얘기한다. 영화 끝에 5명은 모두 뿔뿔이 흩어진다. 노부요는 감옥으로, 오사무는 원룸으로, 아키는 떠돌이로, 쇼타는 시설로, 유리는 학대하는 엄마 곁으로. 그들은 지금 어떨까? 함께했던 그 시간이 그립진 않을까?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누군가이지 않을까?
위탁가정과 함께 일하며 끊임없이 고민한다. 아이에게 누가 가족일까? 누가 부모일까? 사랑을 주고 마음으로 이어진 위탁부모일까, 혈연으로 이어진 친부모일까? 각자 처한 상황이 다르기에 위탁부모와 친부모에 대한 정해진 답이 있을 수는 없다. 그렇지만 적어도 아이가 위탁가정에 있을 때는 그 모습 또한 가족으로 인정받았으면 한다. 가족으로 바라봐 주길 바란다. 적어도, 위탁가정에 있다는 것만으로 누구도 상처받지 않길 바란다.
“위탁가족들의 호칭을 보면 제각각이다. 은지처럼 아기 때 위탁부모를 만난 경우는 엄마, 아빠라고 부른다. 하지만 어느 정도 커서 위탁부모를 만난 경우는 큰엄마, 큰아빠, 이모, 삼촌이라고 부른다. 한집에 이모랑 삼촌이 부부로 살고 있는 셈이다. 이상한 조합이지만 위탁가족 대부분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남남이 만나 가족이 되는 과정이니 그러려니 한다. 그렇게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다 보면 어느새 식성이 닮아가고 습관이 닮아가면서 진짜 가족이 된다.”
“누구라도 붙잡고 속상한 마음을 털어놓고 싶었던 날도 많았다. 엉엉 울면서 은지와 평생 가족으로 살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본 적도 있었다. 위탁가족들은 지금도 숨을 죽이고 이목을 살피면서 아이를 품는다. 분명 가족인데 가족이라고 인정해주지 않는 아이를, 내가 키우는 아이인데 내 아이라고 할 수 없는 아이를, 우리는 늘 이별을 준비하며 살아가는 위탁가족이다.”
「천사를 만나고 사랑을 배웠습니다」 (배은희, 놀, 2021)
민법 제779조로 가족 범위를 정의하는 시대는 점점 다양해지는 가족 형태를 감당할 수 없다. 부부와 미혼자녀로 구성된 ‘정상 가족’의 비율은 점점 줄고 있으며, 한부모 가족, 미혼부모 가족, 비혼 동거 가족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또한 1인 가구는 2022년 34.5%인 750만 2천 가구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가족에 대한 인식 또한 변하고 있다. 2020년 <가족 다양성에 대한 국민 인식조사> 결과 국민 10명 중 7명은 혼인․혈연 관계가 아니더라도 생계와 주거를 공유한다면 가족이 될 수 있다고 응답하였으며, 함께 거주하지 않고 생계를 공유하지 않아도 정서적 유대를 갖고 있는 친밀한 관계이면 가족이 될 수 있다고 응답한 비율도 39.9%로 나타났다.
이렇게 혈연과 결혼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부모-미혼자녀 가족은 줄고 있고 위탁가정을 포함해 가족 형태는 다양해지고 있다. 가족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 또한 변하고 있다. 남남이 모여 살아도 가족일 수 있음을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게 될 것이다. 아동 가족과 일하는 사회복지사로서 나 또한 가족의 모습과 형태가 어떠하든 그들을 존중하며 편견 없이 일하기 위해 노력한다. 더불어 사회에서 아이들이 혈연이 아닌 부모와 함께 살아도, 어떤 가족의 모습을 하고 있어도 차별 배제 소외되는 일 없는 그런 날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