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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국 테를지 국립공원을 방문하시는 분들께 알려드립니다.
이곳은 몽골 테를지 거북바위 뒤에 위치한 아리야발 사원에 있는
밀라레빠 동굴 전각입니다.
위치는 메인법당 역할을 하는 관음전의 좌측에 있습니다.
밀라레빠존자는 본래 36천하늘(알려진 28천은 가짜) 가운데
무색계 32천왕님이십니다.
천왕님은 인도불교가 통째로 티베트로 넘어가던 시기에
불교가 잘 정착하도록 돕기 위해 일부러 수고를 감수하시고 내려오셨다고 합니다.
또 티베트의 유명한 산과 몽골의 테를지 지역의 산신님이시고도 하시데요.
그러니 아리야발 사원에 가시거든
꼭 이어른께 참배하십시오.
저(영선사 주지 월공)는 천신출신들로 인간계에 내려온 이들을 도와
그들을 다시 천상계로 이끌려고 내려온 원생수행자(신탁승)로서
하늘의 중계자입니다.
아래 내용은 하늘에서 확인한 내용을 적었으니 귀담아 들으시고
여러분의 소원을 이루는데 크게 도움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사진은 우리 대중이 기도 공양 올릴 때
밀라레빠 천왕님이 직접 받으시고 그 기운이 실제로 찍힌 사진이니
평소기도에서 이어른께 예배하고픈 님들은 출력하여 사용하십시오.
단 사진을 따로 편집치 말라는 당부가 계셨으니 참고 하십시오.
A4용지로 출력하여 코팅 등으로 활용하시면 됩니다.
천왕님은 여신이십니다.
32천왕이라는 것은 매우 높은 어른이고요.
지장왕보살님의 여동생으로 자리하신다고 하니 얼만큼 높은지 알수 있습니다.
다른 비밀도 더 있습니다만... 그것은 비공개 하라십니다..
엄청나게 높은 분이라고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몽골의 테를지는 이어른의 보호하에 있고요.
수많은 사람이 테를지에 오는 이유도 이어른 때문이라고 합니다.
평소에도 사진을보고 기도하시면 좋은 일이 생긴답니다.
여신들은 특징이 섬세하게 잘 챙긴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참고하십시오.
그냥 뵙는 것은 공덕이 안되고 예배를 올려야 공덕이 된데요.
합장도 예로 인정하셨습니다.
스마트폰에 다운하여 사진을 띄워놓고 폰을 세운 뒤
인사하며 기도해도 받아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아래는 원본을 별도 편집 없이 천왕님 중심으로만 자른겁니다.
천왕님의 기운은 푸르스름한 석성상(돌조각)에 계십니다.
석성상에는 항상 상주하시는 것이 아닌
진실된 예배자들이 있을 때만 강림하신데요.)
동굴 법당에 모셔진 돌로된 고행성상은 후대인들의 상상으로 조성된거고요...
실제는 아래 사진과 상황이 유사하시다고 합니다.
당신의 밀라레빠존자로서 수행시절을 잘 표시해 놓았다 하십니다.
몸의 푸른 빛은 전염병을 예방하는 약초를 바르신 거라고 합니다.
과거 동이족(색족)들 가운데 뛰어난 지도자들이 몸에 발랐던 그 약초라고 해요.
당시 전염병 조짐이 있었다고 해요.
이후 동이족들에게서는 그런 지혜가 사라졌고
밀라레빠천왕님께서는 혜안이 열리셔서 다시 찾으신 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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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 7일차 오전... 테를지 '아리야발 사원'...
이곳에서 순례 대중들의 마음을 사정 없이 흔들어 버리는 일이 생겼습니다.
이건 정말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습니다.
이사진의 가운데 몸이 푸른 모습을 하신 석상이
티베트불교의 위대한 성자로 추앙받고 계시는
'밀라레빠'존자입니다.
이분이 전기에 대해서는 앞선 글에서 링크를 걸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극히 일부고요.
여기서는 역사적으로 밝혀지지 않는 내용으로 기술할겁니다.
이어른과 만남은 이상한 일의 연속이었어요.
종교적으로 확실한 진실이기에 여러분들은 스님의 말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성중님 말씀에 의하면 이어른은
단순한 티베트 불교의 성자가 아닙니다.
현재 36천 가운데 무색계의 32천왕님이시라고 해요.
현직 천왕님.
또 몽골을 대표하는 테를지 전체의 산신님이시고요.
티베트의 유명한 산의 산신님이시기도 하답니다.
즉 인간의 모습으로는 '밀라레빠'라는 수행자였지만
실제로는 32천왕님이자 라허 지구별 티베트와 몽골 테를지의 산신님의 신분.
겸직...
천왕님에 대한 것은 36천 글에서 기술되었듯이
" 32.불번천(不煩天)-녀, 샤크티 (Shakti,시바신 여동생),
칼리여신이란 존재는 없슴. 탄4. 물과 바람 관장. 시바신이 만드심."
이렇게 알려주셨습니다.
즉 색계 32천왕이신 '불번천왕 (不煩天王)'님이시라는 겁니다.
인간으로서는 남성이셨지만 실제는 여성이며
지장왕보살에 의해 이사바에서 4번째로 탄생되신 분.
이런 위대한 분들은 조물주 신분의 마하들께서 만들어내실 수 있는데요.
공(空) 상태인 우주에서
그 속에 깃든 생명성에서 탄생시키신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공에 대한 개념은 극미진으로 된 세계라고 이해했는데
그렇지 않다고 해요.
공상태에 진입한 분들이 빅뱅의 우주속에 녹아 있고
그 공인 우주의 한 부분을 법신불들이 자신들의 불세계 섹터로 잡아 잉태하시면서
법신불의 우주들이 만들어진답니다.
그 공에는 무수한 생명성들이 녹아 있데요.
여기서 마하들께서 필요한 분들을 불러내는 것.
본래는 마하들께서 만들어 불러내야 하는데
예외가 있었죠.
환웅천왕.
지장왕보살님(시바, 환인천왕, 대선견천왕, 마혜수라나 색구경천이라 지칭하기도 하지만 그 명칭자체가 존재치 않음)과
검여신어머님(치성광여래, 북극성신, 마고, 파르바티,지리산 천왕할머니, 범신천왕)은
인간으로 치면 부부로 되어 있는데
이 어른들이 단지 함께 선정에 들었을 뿐인데
갑자기 공에서 스스로 튀어나와 버리신 '환웅천왕'님.
그래서 단군신화에 서자라는 칭호.
이어른은 나중에 싹하문이불, 우리 현생인류의 화신부처님이 되십니다.
당신이 화신불이 되기 위해 내려오실 때 타고 내려오셨다는 흰코끼리는
실제는 지장왕보살님의 신수신이신 우주 최강의 난디신(유니콘)입니다.
당신이 아들이신 환웅천왕께서 화신부처님이 되시기 위해 내려가시는 길을
우주 최강 난디신으로 하여금 수호케하신거죠
그래서 흰색, 뿔(코끼리 코), 강력함이라는 상징성이 동일합니다.
32천왕님이신 이어른은 이렇게 사바에 탄생하신겁니다.
그 위대한 어른이 특별히 잠시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분이
바로 밀라레빠 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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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현재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스님(저)으로 인연하여 알게 되신거에요.
실제로 아리야발 사원을 방문 하는 이들 중 상당수는
밀라레빠존자가 모셔진 전각을 가보지도 못하고 오는 경우가 상당합니다.
이곳이 숨겨진 기도터라 그래요.
이어른이 그날 우리 대중을 당신에게로 땡기셨습니다.
이어른은 위에 올려드린 첫 사진에 찍혀 계시니
먼저 예밸 하십시오.
그러는게 신상에 좋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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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전각 앞에 안내판인데요.
번역을 해보니 아웃라인 성격의 소개글이었고요.
이어른이 왜 여기 전각(전각 명칭은 밀라레바 동굴)에 계시는지에 대해서는 내용이 없었습니다.
THE "MILAREPA" CAVE Milarepa is one of the main symbols of Buddhist meditation who lived in the 11th century. He rose above the miseries of his younger life and with the help of his Guru, took to a solitary life of meditation until he had achieved the pinnacle of the enlightened state, never to be born again into the Samsara (whirlpool of life and death) of worldly existence. Out of compassion for humanity, he undertook the most rigid asceticism to reach the Buddhic state of enlightenment and to pass his accomplishments on to the rest of humanity. His auspicious life illumined the Buddhist faith and brought the light of wisdom to sentient beings everywhere. "밀라레파" 동굴 밀라레파는 11세기에 살았던 불교 명상의 주요 상징적 인물들 중 한 분입니다. 그는 젊은 시절의 불행을 딛고 구루의 도움으로 깨달음의 경지에 오를 때까지, 세상의 삼사라 (삶과 죽음의 소용돌이)에 다시 태어나지 않기 위해, 혼자서 명상에 잠겼습니다. 그는 인간에 대한 연민으로 가장 엄격한 금욕을 수행하여 불교적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렀고, 그의 업적을 인류의 나머지에게 물려주었습니다. 그의 상서로운 삶은 불교 신앙을 비추고 곳곳에 있는 중생들에게 지혜의 빛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
스님이 현재까지 살펴본 자료로는 밀라레빠 스님이 몽골 불교와 연관이 있다는 것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또 왜 이곳에 모셔져 있는지도 아리야발 사원의 역사를 모르기에 알지 못합니다.
사진을 보니 전각 내부에 안내문이 2개 더 있는데
당시 너무 감격하고 흥분해서 그것을 보지 못하여 찍은 사진이 없습니다.
그곳에는 당신 관련 어떤 사연이 혹 적혀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성중님께서는 분명히 살아 생전에 몽골의 테를지를 찾아 수행하셨다고 하셨고요.
다만 머물러 수행하신 자리는 현재 모셔진 이곳 아리야발 사원이 아니라하셨습니다.
또 당신이 테를지에서 수행하시던 때에도 밀라레빠라는 이름으로 한 것이 아니어서
몽골에서는 단지 테를지에서 철저히 수행하시는 수행자로만 인식했고 합니다.
이게 다래요.
밀라레빠 존자는 티베트와 네팔에서는 수행처가 많이 알려져 있다고 합니다.
공통적인 명칭은 MILAREPA CAVE(밀라레파 동굴)..
아리야발 사원에서도 같은 명칭을 썼습니다.
어쨌건 현재까지 살펴본 자료로는 당신이 몽골에 오셨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사진을 한 번 보세요.
여긴 아리야발 사원이 위치한 테를지입니다.
이런 풍경과 기암괴석이 천지인 이곳은 곳곳에 동굴이 있을 것이고
기본적으로 밀라레빠스님의 수행처로는 최적의 공간인거죠.
당신께서는 계속 이동하시며 동굴 수행을 하셨기에
그 분이 평생을 어찌 수행하셨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정확한 전기를 알 수 없다는 이야기.
이런 상황에서 성중님께서는 당신께서 이테를지에서 과거 수행하셨으며
현재 산신님으로 계시다니 믿는 쪽으로 기울게 되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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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제 성중님의 말씀이 진실이란걸 뒷바침하는 이야기를 해드릴께요.
매우 드라미틱합니다.
01.갑자기 잡혀진 이상하고 우연한 일정
6일차에 ' 사인노문'절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고 업된건 맞았습니다.
하지만 긴박한 일정 여부도 있고
스님이 두루마기 외엔 가사를 챙기지 않았기에 의상문제도 있고해서
전날 가이드님과 팀장님께 앞으로 방문하는 사찰에는
미리 연락하지 말라 부탁을 드렸습니다.
이후 일정에 대한 것을 전해 들었을 때는 마침 주지스님이 안계시고
현재가 휴가(?)기간이어서 스님이 상주하지 않으시다고 했습니다.
스님은 그걸 믿고 편안히 7일차 일정을 시작.
아침까지도 가볍게 참배만 하는거로 일정 통보.
그런데 이동중 차안에서 갑자기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몽골의 사찰들은 상시 개방 체제가 아닌가봐요.
그래서 입장하려면 정문을 개방해야하는데 우리가 일정이 빠빴던 관계로
가이드님이 담당자에게 이른 개방을 부탁하는 전화를 했는데
'어젯밤 스님이 오셨습니다.'라고 하더래요.
더구나 주지 스님이 먼데서 손님이 오셨으니 마중을 나오셔서 안내하시겠다고..@@..
스님은 이 때 무쟈게 난감했습니다.
그런 상황에 전혀 준비가 안된 상태.
이상한 점은 뭘까요?
휴가중인 스님이 우리가 방문하기 전날 저녁에 예고 없이 사찰로 갑자기 복귀.
매표소 담당 직원도 이례적이라 했답니다.
또 스님이 신신당부를 했는데 주지스님을 뵈어야 하는 상황발생.
스님 의도와는 전혀 무관한 상황이 만들어진거죠.
어쨌건 버스에서 하차해서 사찰 입구로 진입.
여기가 사찰 입구 매표소입니다.
이 때 이미 상당히 걸은상탭니다,
버스 주차장에서 입구까지 좀 걸어야 해요.
저 입구 앞에서 서 있던 스님은 난감.
4대천왕님이 계시던 공간은 일주문으로 봐야 합니다.
몽골이나 티벳쪽 사대천왕님은 우리와는 다르십니다.
환단고기의 색족 기록과 일맥상통.
하지만 상황은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주지스님이 휴가 가셔서 한참 비어 있던 곳에 전날밤 갑자기 스님 복귀.
이상하잖아요.
02.어디로 기도터를 잡고 가야할지 성중님께 여쭘
문이 열리고 매표한 후 사찰에 진입했는데
아리야발 사원은 도량이 굉장히 넓습니다.
여유 있게 순례의 증거를 남기는 단체 사진 촬영을 했습니다.
이후 가이드님은 저 멀리 정면에 보이는 불상 앞에서
주지스님이 우리를 만나시겠다고 연락받았답니다.
난감...
길을 따라 배치된 경전어구 판을 죽~~~ 따라 올라가면 끝에 불상이 계십니다.
이건 내려올 때 당겨서 잡은겁니다.
가이드님은 저기서 만나기로 했다고 알려줬어요.
그래서 성중님께 여쭸는데....
근데 그 장소가.. 전혀 엉뚱하게...
보이십니까...
우측 숲 사이 건물 좌측으로 있는 조그마한, 작은 이상한 곳...
당기면 이렇습니다.
당시 보기엔 우측의 큰 곳은 어떤 건물인데
멀어서 정체를 알 수는 없었습니다.
문제는 그 건물의 좌측...
여러분은 저 건물이 뭘로 보이시나요.
이사진은 그래도 좀 당겨졌으니 모양이 나온거고요.
실제 보기로는 허름한 건물 형체만 있습니다.
스님은 멘붕...
몇 번을 확인했지만... 성중님이 거기로 가래요..
멘붕...멘붕...
이거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아래에서 본 모습은 너무나 허름했기 때문이에요.
일단 대중들에게 알리고...
가이드님이 지정한 장소고 뭐고 그냥 거기만 보고 올라갔습니다.
아리야발 일주문을 들어서면 눈에 들어는 장소는 정해져 있습니다.
하지만 성중님이 가라는 방향은 그것과는 전혀 무관했습니다.
현실과 다른 종교적 상황에 마음이 급해지고...
조금 올라가다가 옆으로 난 샛길을 발견하여 여쭈니 올라가라십니다.
그것은 현재 야생화 천지입니다.
온도량이 이런 야생화 꽃밭입니다.
인위적으로 조성한 것이 아니라 몽골의 테를지는 야생화 꽃밭입니다.
숙소인 게르 주변에도 조금 약했지만 이랬습니다.
저런 아름다운 꽃이고 뭣이고...
스님은 무거운 몸을 이끌고...(실제 무게 마이 나갑니다.. ^^)
나는 듯이 달렸습니다.
자신이 없어서죠.
대중에게 말하긴 했는데 확신이 없었습니다.
이사원에 대해 전혀 몰랐으니까요.
망신을 당하지 않으려면 빨리 도착해서 수습할 시간이 필요했기에
바람처럼 오르막을 달렸습니다.
지금이야 이리 추억처럼 말하지만 당신 긴박했어요.
스님이 이리도 급했던 것은
멀리선 본 성중님의 지정 기도 장소는 우리나라로 치면....
(어른께게 불경스럽지만 허락 받고 씁니다..)
딱 화장실(해우소) 각이었습니다. ㅡㅡ..
위치로 보나 모양으로보나 천상만상... 해우소...
이래서 멘붕이란 단어를 쓴겁니다. 사실입니다..
스님 주변엔 우리 원명거사님이 따라오시고..
둘은 막 달렸습니다.
기도장소를 여쭤 찾은 것이 8시 52~3분경..
도착시간은 9시 13분경...
20분을 오른건데요...오르막에 거리가 상당히 멉니다..
스님이 안도의 숨을 쉰 것은 이지점부터입니다.
여긴 앞서 올려드린 아리야발 사원 매인 법당의 좌측 코너입니다.
저기에요. 건물 우측 중간 난간.
저기에 서서 지정된 기도터를 보니
이 모습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위의 사진 3개는 다른분들이 각기 다른 시기에 찍으신걸 가져왔습나다.
여기가 밀라레빠스님의 동굴입니다.
이사진은 겨울에 찍은거라 단청이 선명하지만 지금은 선명하지 않습니다.
전각은 여전히 허름했고요.
아사진이 2023년 12월 사진이라는데
아마도 지금 이시기 주변이 너무 화려해서 건물이 그리 보이는 것 같습니다.
스님이 본건 저 오색천이었습니다.
바로 저 오색천(전문 용어는 따로 있을 겁니다)이고요 색은 좀 더 바랜 모습.
그걸보고 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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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보니 티베트불교와 이를 그대로 전수 받은 몽골불교, 부탄불교 등의 상징인
오색천의 전문 용어를 '다르촉'과 '룽따'라고 한답니다.
티베트 사람들의 기원이 담겨 있는 깃발을 뜻하는 것을
‘다르촉(Darchog, Flag, 經幡)’
다르촉과 같이 오색 깃발을 가리키지만
‘바람의 말’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은 ‘룽따(Lung-Ta, Wind Horse, 風馬旗)’.
세로로 걸면 다르촉, 가로로 갈면 룽따.)
밀라레빠스님의 동굴 옆에 걸린 것은 가로이니 '룽따(다르딩)'겠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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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한 이유...
왜??? 최소한.. 해우소는.... 아니다...
그리고 전각을 방문하여 들여다보니... 누군가 계십니다....
첨엔 누군지 몰랐습니다..
그리고 본게 밖의 안내판...
THE "MILAREPA" CAVE
저 글자를 보는 순간... '아~~..'하는 탄성이 나왔습니다...
잠시 안내판 보고 대충 해석하고..
'우리가 지금 몽골불교의 심장부에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티베트불교와 몽골불교를 '라마불교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렇게 부르면서 약간 하대하는 느낌을 가졌던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건 엄청나게 무식한 놈을이나 했을 짓입니다.
정말 크게 반성해야 하는데요.
라마불교가 어떤 뜻인줄 전혀 몰랐기에 한 짓.
티베트불교는 전기와 후기로 나눠야합니다.
전기는 우리에게 불교가 전해지듯 온 자연히 전래되어온 불교입니다.
그러나 후기 불교는 전혀 다른 불굡니다.
인도에 이슬람교가 들어면서 불교에 대한 박해가 시작 되었고
승단 중심의 불교가 가장 크게 타격을 입었다고 합니다.
이 때 나란다대학 등 인도불교의 모든 경전과 시스템을 가지고 피신한 곳이 티베트.
즉 티베트불교는 인도불교의 계승자입니다. 인도불교의 적통.
인도불교는 스승과 제자간의 학문적 전수가 중요했는데
이런 인도불교의 전통을 이어받으며 나타난 용어가 '라마'입니다.
우리가 '달라이라마라'고 하잖아요.
'라마'는 '스승'이라는 말입니다.
부연해 설명드리자면
~~ '달라이(dalai)'는 몽골어로 '바다'라는 의미이며, '라마(བླ་མ་, bla-ma)'는 티베트어로 '스승'을 의미한다. 라마는 어원적으로 산스크리트어의 '구루(गुरु)'와 동일하다. 따라서 달라이 라마는 '바다같이 넓고 큰 지혜를 가진 스승'이라는 의미가 된다. 참고로 티베트어로 '바다'는 '갸초(རྒྱ་མཚོ, rgya-mtsho)'이다. 그래서 그런지 모든 달라이 라마의 이름 끝엔 '갸초'가 붙는다). '달라이 라마'라는 이름 외에도 티베트인들은 존경의 의미로 여러 가지 이름으로 달라이 라마를 부르는데, "걜와 린뽀체(རྒྱལ་བ་རིན་པོ་ཆེ་, rgyal-ba-rin-po-che, 고귀한 지도자)", "꾼뒨(སྐུ་མདུན, sku-mdun, 고귀한 존재)" 등이 있다. 실제 티베트인들은 "달라이 라마"라고 부르기보다 "걜와 린뽀체"라고 더 많이 부른다. ~~ -나무 위키- |
이러합니다.
밀라레빠존자... 들어봤습니다...
그어른이 이곳에 계시다니...
그 때부터는 벅차오르는 감동...
서둘러 우리팀들을 불러모았습니다...
조금 있으니 큰통곡소리가 들리고..
우리팀 중 한 분이 눈물 범벅으로 도착..
순간 당황했지만... 이건 종교적인 감동으로 생기는 것으로 파악..
이전에 스님이 직접 겪어봤으니 알 수 있었습니다..
특징은 제어 불가능한 이유 없는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죠..
이건 우리 내면의, 가슴속에 있는 윤회의 주체인 내가 감동하여 우는 것입니다.
내려가는 하산길에 그분께 여쭈니
스님이 안도의 한숨을 쉰 그곳에서 몇 발자국 걸어오면 쪽문이 있고
그쪽문 앞에 불상이 한 분 계셔서 합장 인사를 드렸는데 그때 부터 눈물이 터졌다고 하셨습니다.
성중님께 확인하니 실제로 그 분은 밀라레빠 스님과 인연이 있는 분이라하셨습니다.
인간이 아닌 천상... 바로 32천 출신의 천신...
그 분은 천상계 군인, 천군출신이신데 이생 인간 직전의 위치가 32천 천군이었다고 합니다.
이전글에서
'심지어는 순례자 가운데 천신 시절에 모셨던 지휘관인 분들도 오신다고 합니다..'
이글을 쓴적이 있는데 바로 그분입니다.
그분의 지휘관 천신님은 우리 바가가즐링 촐로 첫 기도 때 이미 뵈었다고해요.
32천왕님을 그곳에서 뵈면서 울음이 터져버렸다고 합니다.
이런 형식은 정확한 종교적 감응현상입니다.
이런게 진짜 종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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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대중은 모여 벅찬 마음으로 기도를 올렸습니다..
스님도 울고...여럿에게 동일한 증세...
스님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릴 때 마다 스님은 눈물이 터져 나오는 상태였습니다..
대중을 책임진 사람으로 중간중간 마음을 진정하며 가까스로 기도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이때가 오전 09시 20분경입니다...
티베트불교가 인도불교를 계승하고 본격적으로 부흥하던 시기의 불교 영웅들은
아티샤(Atiśa Dīpaṃkara Śrījñāna, 982-1054) ,
파드마삼바바,
나로빠(naropa, 1016-1100),
마르빠(Mar pa chos kyi blo gros, 1012-1097),
밀라레빠(Milarepa, 1052~1135)
.......
이분들입니다..
이분들의 연도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구전으로 이어지는 전통이 있어 더욱 그렇습니다.
학문적으로 저렇게 추정한다는거죠.
특징은 1000년~1100년 한 세대에 집중..
이 중 '나로빠-마르빠-밀라레빠'의 순으로 사제지간입니다.
연도는 확실하질 않아요.
분명한건 모두 티베트(몽골)불교의 대영웅들.
이분들에 의해 불교가 소멸하지 않고 법맥이 이어진 것입니다.
마르빠스님은 재가자로 알려져 있지만 아니랍니다.
청정비구 맞으시고요 아래 숨은 사연 올려두었습니다.
티베트 불교가 그대로 전해진 몽골불교..
거기서 위대한 성인을 뵙게 된겁니다..
벅찬 기도를 마치고 나와서 찍은 것이 이사진.. 9시 31분경..
모두 모자를 썼군요...
저 모자로 어디서든 우리 일행들을 금방 찾을 수 있었고...
단체로 휴대하며 매달고 다녔던 스텐컵의 딸랑거리는 작은소리로 우리를 바로 찾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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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배를 마치고 내려오는데
가이드님이 바로 옆에 있는 법당에 주지스님이 계신다하셨습니다.
분명히 멀리 덜어진 장소에서 뵙기로 했는데
본래부터 거기 계셨던 것 같았습니다..
이곳에서 스님은 향로에 향불을 피우고 기다리고 계셨고요.
대중들을 향으로 청정하게 해주셨습니다.
심지어는 스님(저)에게 중앙 상석에 앉게 하시고
잠시 명상할 수 있는 시간을 주시기도 했습니다.
이사진은 막 도착해서 중앙에서 삼배 한 뒤의 모습입니다.
저 종 어디서 많이 보셨죠?
우리나라 종입니다.
이곳은 우리나라에서 명상팀들이 와서 상당기간 수행하기도 하는 곳이라고 해요.
이법당의 주존은 관세음보살마하살님.
불상 뒷 편에 모셔진 분은 천수천안관세음보살상입니다.
스님을 중앙 상석에 앉게 배려해 주시고..
대중들 역시 모두 앉았습니다.
이어른이 주지스님.
향로를 들고 계시죠??
향이 피워져 연기가 나고 있는 상탭니다.
노스님이셨고요.
이시간은 사찰에 대한 간단한 안내를 하시는 중이었습니다.
이후 대중이 잠시 명상할 수 있는 시간을 주셨습니다.
이사진을 보면 얼마나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인지를 알수 있습니다.
스님이야 본래 저 복장이 기본 복장입니다.
불교 법적으로는 위의에 문제가 있지만
바쁜 일정과 실질적인 기도에 집중하느라 의복은 간편으로 타협.
그런데 해당 사찰 주지스님은 정식 복장을 갖추실수도 있었습니다.
그만큼 갑작스럽고 긴박함으로 이해할 수 있죠.
성중님께 여쭈니 스님의 사찰에서의 평상복은 저러하시다고 해요.
휴식을 취하시던 중이었는데 갑자기 우리 대중이 들이작친거.
스님이 최초 아리야발 관음전 법당을 지날 때 법당 앞에는 신발이 한켤레 있었습니다.
그건 분명히 주지스님 신발이었습니다.
만약 가이드님과 약속한 장소로 우리가 모였다면 큰낭패를 봤을수도 있어요.
이동 거리와 스님의 연세를 고려하면 맞습니다.
그런데 아주 제대로 찾아 간거죠.
명상시간...
대성보살님 좌측에 밀라레빠 천왕님전에 올렸던 공양물이 있습니다.
기본 공양물에 신도님들의 추가 보시금들이 함께 있습니다...
이렇게 스님께 전해올렸습니다.
근데 두상이 닮은꼴... ^^...
노스님도 편두시군요.
아니면 카메라를 가까이서 잡은 것이라 착시??
과학적으로 맞는 이야깁니다만 헛갈리네요.
성중님께서 이어른이 수행정진을 많이 하신분이라고 하십니다.
주지스님께서 공양물에 대한 예를 올리셨습니다.
저 의식을 '정대(頂載)한다'라고 하는데 '머리위로 올린다'라는 뜻이고요.
최고의 존경을 표하는 의미입니다.
이 의식이 몽골에 있네요.
정대의식에서 머리는 가장 높은 곳에 있는데 그 이상으로 올려 예를 갖추는 거죠.
비슷한 의미로 계수례(稽首禮)나 정례(頂禮)가 있는데
례(禮)가 붙어 있기에 절을 하는 것이 정대의식과 차이가 있습니다.
하산하는 길에 찍은겁니다.
법당 옆 기암괴석에는 이런 아름다운 문양도 있고요.
'옴 마니 반메 훔' 입니다.
그려진 그림은 몽골에서 자주 봤는데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습니다.
올라가며 못 찍은거..
이건 올라가는 길에 세워져 있는 경구입니다.
밀라레빠스님의 저서 '십만송'에서 발췌한거라 추정됩니다.
아름다운 풍경의 오솔길에 우리팀 두 분이 내려오시는군요.
기암괴석 좋죠?
테를지 전체가 저렇습니다.
김남규팀장님이 원추리를. 여기 몽골입니다. 대한민국 아니고.
여긴 유명한 테를지의 거북바위입니다.
아리야발사원 입구에 있습니다.
여기 주인공은 테를지용왕님이시랍니다.
상주하지는 않으신시는데요.
기도하며 예를 갖추시면 오신답니다.
이건 스님사진..
1대1비율입니다.
같은 위치에서 촬영했지만 위의 김팀장님 사진과 현격한 차이가 나죠?
당기고 밀수 있냐, 약간 당기고 못미냐의 카메라 성능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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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밀라레빠 천왕님 인사는 마친거로 생각했는데
승마체험 후에 방문한 원주민 게르에서 다시 뵈었습니다.
이사진은 방문 행사 마친 뒤 다시 가서 촬영한 것입니다.
이사진에 직혀계십니다.
처음 들어 갓을 때 기가 느껴져 이상해서 대중들을 인사시켰는데요.
나중에 확인하니 테를지 산신님. 바로 밀라레빠 천왕님이시셨습니다.
이곳에 상주는 안하신다고 해요.
이상한 것은 저분들은 게르에 저렇게 모시는데 불상으로 모십니다.
불단 같아요.
주인공은 밀라레빠천왕님.
이곳에 깃드신다는건 이분들이 잘 모신다는 이야기.
이건 팀장님 사진을 확대한건데
저렇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사진에도 찍히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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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밀라레빠 스님과 몽골의 관계 기록를 찾고 있던 스님에게 나타난 일
7월 20일 새벽...
스님은 글을 올리기 위해 밀라레빠 스님과 몽골의 관련 기록을 뒤져보고 있었습니다.
중생이라 기왕이면 관련 증거를 올리고 싶었죠.
그런 스님에게 껄끄러운 일 한 가지가 일어납니다.
조금전 사용하던 물건의 증발.
10여분 정도를 허비한듯합니다.
물건을 찾기 위해 계단을 여러번 왕복.
왜 우리 어느 경우 바로 가까이 두던 물건도 안보일 때 있잖아요.
그현상이 났는데 좀 심했습니다.
왜냐하면 동선이 짧고 명확했거든요.
10여분 정도 찾다가 결국은 찾았는데
잃어버렸다고 하던 바로 그장소 바닥에 그대로 있었습니다..
상황이 예사롭지 않았고 당시 마치 골탕 먹는 기분이었습니다.
혹시 스님이 밀라레빠 천왕님과 몽골의 관계를 의심해서 그런 것 같았습니다.
여쭈니 32천 여신님들이 개입하셨다 했습니다.
그런데 꾸중이 아니라하시데요.
스님이 찾고자 하는 증거는 테를지 자체에 있다는걸 알려주시려했답니다.
이걸 경험하고 글을 바로 올려버린거에요.
당신의 말씀을 가감 없이 그대로 올렸습니다.
어차피 학문적이라고해봐야 그 역시 추정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명확한 현재가 있잖습니까.
04. 밀라레빠 천왕님 당신께서 알려주신 내용들
이젠 당신의 삶 속에 숨겨진 비밀들을 알려드리겠습니다.
가. 우선 밀라레빠천왕님은 인간시절에는 당신이 천왕님이신걸 모르셨답니다.
고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천안이 열리셨지만
내려오실 때 스스로 그렇게 결계를 하셔서 스스로 천왕님이신줄 모르게 해놓으셨답니다.
이건 스승이셨던 마르빠스님도 모르셨고요.
결계를 풀기전 까진 모릅니다. 일종의 잠금장치.
열반에 드시면서 바로 아셨다고 해요.
나. 생전에 몽골 테를지에 오셔서 수행하셨고요.
그 인연으로 이곳의 산신님을 겸하시게 되었다고합니다.
다. 몽골 북부에는 푸른숲의 이상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몽골 상당지역이 모두 사막화가 진행 되고 있는데 테를지 근처부터 무사.
물론 윗쪽은 홉스골 등 호수가 있습니다만
그것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이상합니다.
그 이유는 32천왕님(밀라레빠, 테를지 산신님) 덕이래요.
성중님께서 천왕님을 묘사한 내용은
" 32.불번천(不煩天)-녀, 샤크티 (Shakti,시바신 여동생), 칼리여신이란 존재는 없슴.
탄4. 물과 바람 관장. 시바신이 만드심."
이렇게 당신이 물과 바람을 관장하는 능력이 있으시기에 사막화를 막아주실 수 있답니다.
하지만 현재 몽골의 괴로움은 업보 때문이라고 해요.
현생인류에서의 업보... 우리가 달 알듯이 엄청난 살육이죠..
그래서 한계가 있고요.
다만 테를지는 막아낸다 하셨습니다.
테를지가 없는 몽골은 상상하기도 싫은 상황.
어마어마한 관광객이 이곳을 보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옵니다.
그 힘의 원천은 밀라레빠천왕님.
현재는 본래대로 여성신의 모습이시랍니다.
본래 여성신이 주인공으로 계시는 산은 부잡니다.
몽골 국운으로 봐선 테를지는 너무나 다행한 일.
라. 당신은 엄청난 고행을 하신 분인데요.
그렇게 한 연유는 깨달음의 경지를 몸소 보여주시기 위해 그랬데요.
명상은 혹독한 고행을 통해야만 올바른 진리를 얻을수 있답니다.
싹하문이붓다의 고행의 재현...
이걸 통해해 십만송 저작을 남기셨고요.
이글은 모두 옳으니 잘 새겨서 수행에 쓰라하셨습니다.
또 명상은 혹독한 고행을 통해 올바르게 체득되지만
이미 당신이 체득해 글을 남기셨으니 후학들은 추가해서 그럴 필요는 없다고 하십니다.
남기신 것을 그대로 익히래요.
추가 고행금지.
스스로 고행을 닦아도 천왕님을 넘어설순 없다는거.
이미 그런 진리를 체득하여 남겼으니 그대로 수행하기.
다만 추가로 남기고 싶었던 것이 있었다는 말씀도 하십니다.
시간이 부족하여 그걸 완성 못하셨다고 해요.
십만송을 잘 수련하면 끝에 자연히 도달 되는 경지가 있는데
이걸 미완성으로 두고 열반하셨다고합니다.
십만송을 내비게이션 삼아 완성해달라고 후학들에게 부탁하시니
명상을 수행으로 삼는 이들은 이걸 잘 기억해 주세요.
후학들이 행해야 하는 정진은 바로 그거.
마. 알려진 전기를 통해 당신이 숙부의 만행 관련 사람을 많이 죽이신 것으로 오해한답니다.
아니라하십니다.
그건 그 당시 흑마술을 썼던 스님이 하신 것이고요.
당신은 그 일 후에 2인을 살상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 역시 단순 살상이 아닌
수행자로서 각성하기 위한 설계 과정 내부에 있어 그리한 것으로
살생이 아니니 이걸 절대 따라하지 말라하시고요.
흑마술이니 뭐니 하지만 다른게 아니랍니다.
금강승은 동일하고 다만 인간들이 분별하여 그렇게 사용을 하는 것이라고하시네요.
바. 당신의 몸이 푸른 것을 두고 어떤 음식(쐐기 풀죽)을 먹어서라고들 하는데 아니랍니다.
약초래요.
약초를 바르신 거고요.
전염병을 막는 약초랍니다.
당시 전염병 위험이 있어 그러신거랍니다.
영화에 나오는 아바타, 슈렉, 헐크, 스머프 등의 푸른색상은
색족(싹하족 포함 도는 동이족, 구이족)들이
전염병을 막는 약초를 몸에 바른데서 유래한 것이랍니다.
당신이 천안이 열리신 후 이걸 아시게 되었고 그걸 바르셨다고 해요.
당신도 색족.
다만 당시는 색족이라도 이런 과학적 전통을 모두 잊었고요.
스님만 그렇게 하셨답니다.
이걸 대중에 알리지 않으신 이유는
약초 자체가 귀해 그것을 알렸을 경우 약초가 전멸할 수 있어 말을 아끼신 것이랍니다.
이약초는 현대 의학에서 이미 가져다 쓰고 있다고 해요.
우리가 사용하는 일부 의약품에 들어가 있는 것.
쐐기풀은 아니라고 하십니다.
사. 당신이 천왕님의 신분으로서 세상에 태어나신 이유는
당시 인도불교의 적통을 이어받은 티베트불교에는 부흥시킬수 있는 불교의 영웅들이 필요했고
당신이 자원하신겁랍니다.
당신 전기에는 '개종을 많이 시켰다'라는 표현이 있는데 사실이고요.
티베트 토착종교인 본교의 신도들을 많이 개종시키셨다고 합니다.
이걸로 티베트불교가 굳건하게 자리매김.
아.이 32천 불번천왕님은 우리 사바에서 항렬로는 지장왕보살님의 여동생이 된다 하셨습니다.
보살의 제자인 우리완 매우 밀접하신거죠.
우리 순례 대중을 직접 땡기신 이유가 있으셨던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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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진도 밀라레빠 스님으로 소개되고 있는데요.
"밀레라파의 뿌리 학생인 부 레충파(Bhu Rechungpa)가 직접 만든
유명한 밀라레파 동상은
나중에 티베트의 냐낭 펠겔링 수도원(Nyanang Phelgyeling Monastery)에 속해 있었고
현재는 네팔 펠겔링 수도원(Phelgyeling Monastery)에 있습니다."
이렇게 나옵니다.
이건 티베트의 불화인 탕카입니다.
성중님께서는 이모습이 매우 유사하시다고 합니다.
거처하시는 곳, 고행상, 하지만 상호는 원만하셨데요.
머리는 삭발이신데 뭘 쓰셨답니다. 뾰족한 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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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총지종 신문에 실린 기사인데
밀라레빠 존자의 일대기를 간력하게 잘 기술한 글입니다.
진위 여부를 떠나 전체 윤곽을 잡는데는 좋은 글.
하지만 이글이 전부 진실이라고는 생각하지 마세요.
학문적으로는 이렇게 알려졌다라고만 이해하십시오.
스님이 위에 기술한 내용들이 진실.
학문적이라고 해서 그게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닙니다.
본인에게 듣는게 가장 정확한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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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레빠스님과 스승 마르빠스님
(마르빠를 재가자로 소개하고 있지만 성중님이 아니랍니다. 스님이시래요.
마르빠는 청정비구 스님이라고 하십니다.
알려지기로
" 결혼까지 하여 부인 닥메와 사이에 달마도데라는 아들까지 낳았다. "
이 부분은 닥메라는 여성이 남자에게 강제로 욕을 본 상태에서 임신을 해서
그녀를 살려주기 위해 결혼한척 하셨다고 합니다
또 "마르빠는 자신의 법을 아들에게 전하려 했으나
아들이 요절하는 바람에 전하지 못했지만
아들은 인도의 브라만으로 다시 환생해 공행모구륜유가를 밀라레빠에게 전했다. "
이것도 사실과 다르다하십니다.
달마도데라는 아이가 요절한 것은 맞지만 그 외는 거짓. )
마르빠 스님이 결혼하여 자식이 있다는 것은 전후 사정상 전혀 안 맞습니다.
저 대목만 보면 일반인과 차별이 하나도 없죠.
엄청난 신통력을 가진분이 일반인과 동일??
근데 밀라레빠스님과 만남에서는 전혀 다르잖아요.
아래는 총지종 종단 신문 기사의 원문과 사진입니다.
"위대한 까규의 수행자, 밀라레빠" -정성준교수의 밀교인물사- 마르빠가 역경사로서 티벳에 남긴 족적은 적지 않지만 제자 밀라레빠(mi la ras pa)와의 인연과 사제 간에 오간 구도와 시가들은 특히 위대하여 인류가 남긴 종교문헌의 백미로 일컬어도 결코 부족함이 없다. 까규빠뿐만 아니라 티벳의 모든 종파에서 존경하고 성자로서 추앙하고 있다. 밀라레빠의 전기는 구전에 의해 전승되다가 15세기 짱욘헤루까(1452-1507)에 의해 결집되었다. 그는 밀라레빠의 탄생시기를 티벳력 임진년(1052), 사망시기를 을묘년(1135)로 보고 있으나, 후대 학자들은 「호롱불교사」에서 추정하는 1040-1123년을 비롯해 탄생연도를 1024, 혹은 1026 등 약간 이르게 보고 있고, 세수 84세까지 생존한 것으로 추정하지만 역시 이론이 존재한다. 짱욘헤루까의 기록에는 밀라레빠의 조상은 유목민으로 티벳 북중부 큥뽀에서 살아왔다. 조상중에 닝마의 밀교승인 큥뽀조세가 있었는데 어느 날 사나운 토착신을 조복시키는 과정에서 ‘밀라, 밀라’라고 포효한데서 그의 가계는 ‘밀라’라고 이름하게 되었다. 큥뽀조세는 결혼하여 두 아들을 두었는데, 작은 아들인 돌제셍게는 도박을 좋아하여 가산을 탕진하고 가족이 네팔 북쪽의 캬앙짜로 이사하였지만 큰 아들 도똔셍게는 지역승려로서 착실히 불사에 힘써 다시 전과 같이 재산을 회복하였다. 형제 가운데 동생 돌제셍게가 결혼해 낳은 아들이 밀라셰랍곌첸이고 다시 그가 낳은 아들이 바로 밀라레빠였다. 아버지는 아들의 탄생을 듣고 매우 기뻐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이름을 ‘퇴빠가(聞慶)’라고 하였고, 아주 어릴 때 동네 처녀인 ‘제세’와 약혼도 하였다. 밀라레빠의 아버지는 일찍 병이 들어 밀라레빠의 숙부와 숙모에게 부인과 밀라레빠 남매의 후사를 부탁하고 사망했는데, 당시의 관습대로 모든 재산은 숙부와 숙모의 차지가 되었고 밀라레빠는 닝마빠 승려에게 공부를 위해 보내졌다. 이때 밀라레빠의 어머니와 여동생은 숙부와 숙모 집안의 종이 되어 막대한 고생을 하기 시작하였다. 밀라레빠의 어머니인 냥짜칼곈은 원한을 품고 아들인 밀라레빠를 친척인 눕충욘뗀갸초에게 보내 흑마술을 배우도록 하였는데, 스승은 흑마술을 적용할 대상인지를 꼼꼼히 살핀 후 마침내 숙부와 숙모의 결혼식에 참석한 35인을 몰살시켰다. 또한 폭풍우를 부르는 실지를 이용해 수확기에 이른 밀밭을 황폐화시켰다. 밀라레빠는 흑마술이 행해지는 동안 자신이 앉은 방안에 무시무시한 신들이 살해당한 자들의 간을 차곡차곡 쌓는 환영을 보고 크게 놀랐다. 복수를 실현한 밀라레빠는 행복해지기는커녕 큰 회한으로 고통받다가 진정한 불교수행에 뜻을 두고 처음에는 닝마빠의 랑뗀하가를 스승으로 모시고 족첸을 배웠으나 큰 성취를 얻지 못했다. 스승은 당시 남티벳의 호닥에 머물던 유명한 마르빠최기로되(1012-1097)에게 제자를 보내어 밀라레빠는 스승과 운명의 만남을 갖게 되었다. 밀라레빠가 호닥에 도착했을 때 그는 들판에 서있는 거대한 근육질의 농부를 만났다. 운명의 스승은 자신에게 가장 유력한 제자와의 인연이 임박했음을 암시하는 예지몽을 꾼 이후였기에 제자에게 환영을 보여 그를 맞이했다. 지난 글에서 나로빠가 마르빠를 가르친 수행의 고난을 소개했지만, 마르빠도 제자를 가르칠 때는 불같은 성격과 욕설로 유명하였다. 마르빠는 처음부터 밀라레빠를 가르치지 않았다. 스승은 갖은 욕설을 퍼부었고, 혹독한 육체적 고통을 안겼다. 스승은 밀라레빠에게 거대한 돌탑을 쌓도록 하였는데, 중간쯤 완성하였을 때 스승은 돌탑을 허물어 버리길 반복하여 무려 6년 이상의 세월을 보냈다. 밀라레빠는 좌절하기도 하고 도망도 쳤지만 결국 되돌아와 고통을 견디고 묵묵히 돌탑을 쌓았다. 마르빠는 마음을 움직여 마침내 밀라레빠에게 자신의 스승인 나로빠가 예언한 제자임을 밝혔다. 그리고 밀라레빠에게 안긴 많은 고초들은 밀라레빠가 겪은 파란만장한 삶의 죄장을 정화하기 위한 일환이었음을 전했다. 지금도 부탄 인근 남 티벳에 호독지역에 밀라레빠가 쌓은 돌탑이 세칼구톡사원에 그대로 남아있다. 마르빠는 처음 오계와 보살계를 받고 법명을 돌제곌첸이라 하였다. 스승 마르빠로부터 많은 밀교의 가르침을 받았는데 특히 단전의 불을 일으키는 나로육법과 마하무드라, 경궤가 아닌 구전으로부터 비전을 전하는 유가의 전통이 훗날 까규빠 수행의 전형이 되었다. 스승은 제자에게 비밀관정을 전수한 후 외연을 끊고 토굴에서 홀로 거처하며 수행토록 권고하였다. 밀라레빠가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어머니는 흉가에 유골로 남아있었고 여동생은 구걸로 연명하고 있었다. 밀라레빠는 주로 남 티벳 히말라야 국경지역을 순례하며 수행하였는데, 일부지역은 밀교아사리 빠드마삼바와가 거쳤던 지역과 일치한다. 밀라레빠는 혹독한 고행으로 몸은 완전히 말라붙었고 가시풀만을 식량으로 삼았기 때문에 몸은 푸른색으로 변했다. 여동생은 밀라레빠의 수행을 말렸다. 밀라레빠는 “세속적 욕망은 채워지지 않는 갈망만을 남긴다. 얻은 것은 사라지고, 쌓은 것은 무너지며, 태어난 것은 죽는다. 이런 이치를 아는 사람은 얻는 것과 쌓는 것, 만나는 것을 포기하고 올바른 스승의 가르침을 좇아 성취를 위해 노력한다.”라고 답하였다. 밀라레빠는 9년 만에 대성취를 이루고 여동생을 감화시켜 수행자로 이끌었다. 밀라레빠가 수행했던 동굴들은 훗날 까규빠의 주요 순례지가 되었다. 남서부 티벳의 짜리, 랍치, 카일라스와 히말라야산, 챠끄라상와라딴뜨라의 성지들이 이에 포함되었다. 까규의 전통은 삼장 외에 밀라레빠의 십만송과 같은 수행과 순례, 오도의 구전이 주요한 수행지침이 되고 있다. 밀라레빠는 84세에 열반에 들었는데 사인은 밀라레빠를 평소 질투했던 게셰 짝부와가 여인을 시켜 독약을 넣은 요거트를 공양하였다. 밀라레빠는 독이 든 요거트임을 알면서 먹은 후 여인에게 웃으면서 담보로 받기로 한 보석을 잘 받았는지를 물었다. 밀라레빠는 짝부와와 여인이 지옥의 고통을 받지 않도록 축원하며 죽음을 맞이하였다. 밀라레빠를 화장했을 때 대부분의 사리는 밀교수행자의 수호존인 다끼니가 수습해 가져갔고 남은 약간의 사리와 가사일부, 사탕과 칼과 같은 소도구들만 있었다. 중요한 제자로는 레충빠(1084-1161), 감뽀빠(1079-1153)가 전해지며 이들 뛰어난 제자들에 의해 까규의 법통이 비로소 세워지기 시작하였다. |
"위대한 요기 마르빠 출가·재가의 경계를 허물다" -정성준교수의 밀교인물사- 그림=18세기 티베트 (루빈 박물관 소장) 인도불교가 전한 인도후기 대승불교는 나란다대학(마하위하라)이 지닌 정통한 불교교단의 면모, 특히 인도조사의 사자상승과 관정과 의궤로 요약되는 전승과 더불어 정반대로 진리를 인간의 실존에 녹여내고 형식과 권위를 벗어나 오도만을 치열하게 탐구했던 요기들의 양 수레바퀴가 역사 가운데 선명한 자죽을 남기고 있다. 티벳불교 후전기의 조사 가운데 재가자로서 명백한 기록을 남기지만 위대한 요기이자 역경사로서 후대 재가불자들의 추앙의 대상이 되는 마르빠(mar pa chos kyi blo gros, 1012-1097)가 있다. 마르빠의 전기는 그의 구도와 제자 밀라레빠를 길러 낸 티벳불교 까규빠의 전승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마르빠는 1012년경 티벳 남부 호닥의 추콀이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마르빠왕축외셀, 어머니는 갸모외셀이었다. 4형제 가운데 막내였던 마르빠는 일찍이 언어에 능하여 훗날 역경사로서 자질이 보였지만 자만과 고집으로 뭉쳤던 외골수였고 아들의 교육을 걱정한 부모에 의해 독미사꺄예셰(992-1072) 수도원에 보내졌다. 마르빠는 천재적인 자질을 유감없이 발휘해 3년간 수학으로 산스끄리뜨와 인도 지방어에 통달했다. 그러나 부모의 능력으로 본격적인 불교수업을 위한 수업비를 마련하지는 못한 처지여서 마르빠는 몸소 인도와 네팔을 오가며 돈을 벌어가며 구도와 장사를 병행하기로 마음먹었다. 마르빠는 역경사 뇨의 문하에 들어가 종살이도 했으며 특히 치텔바, 빠인다빠라는 네팔밀교 아사리로부터 가나챠끄라를 비롯해 여러 가지 관정과 밀교수행, 산스끄리뜨의 심화학습을 이어 나갔다. 두 아사리는 모두 위대한 인도 나란다대학 학장출신인 나로빠(naropa, 1016-1100)의 제자였기 때문에 마르빠는 그의 운명적 스승 나로빠에게 점차 다가가고 있었다. 마르빠는 역경사 뇨 스승을 모시고 인도를 여행해 나란다대학에 도착했다. 나로빠는 마침 학장직을 버리고 뿔라하리에 수행차 떠난 상태였기 때문에 마르빠는 뿔라하리로 출발하여 마침내 나로빠를 만났다. 나로빠는 마르빠에게 밀교관정과 가르침을 전했고, 특히 후기밀교 가운데 비밀집회딴뜨라와 헤와즈라딴뜨라를 중시하였다. 마르빠는 12년간 인도에 머물면서 갸나갈바, 꾸꾸리빠, 마이뜨리빠 등 여러 스승으로부터 밀교와 도하문학을 전수 받고, 뇨 스승을 모시고 티벳에 돌아왔다. 마침 네팔과 티벳 국경지역에 통관절차상 며칠 머물렀는데 여기서 마르빠는 꿈에 사라하로부터 마하무드라 수행을 전해 받게 된다. 고향에 돌아온 마르빠는 수행의 열정으로 인해 다시 인도로 돌아가고 마음을 포기할 수 없어 사금을 모아 인도로 떠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마르빠가 그의 주요한 두 제자인 옥뙨최꾸돌제(1036-1097)와 출똔왕기돌제를 만난 것도 이즈음이었고, 마르빠의 행적이 알려지면서 도오룽에 법당을 마련하고, 결혼까지 하여 부인 닥메와 사이에 달마도데라는 아들까지 낳았다. 마르빠는 인도로 돌아와 예전에 배웠던 스승들을 찾아 배움을 이어갔으며, 6년 후 마르빠가 다시 티벳에 돌아가려 할 때 스승들 가운데 나로빠는 마지막 남은 단계의 가르침을 전수하는 조건으로 다음 인도 방문때 자신을 찾아줄 것을 요청하였다. 마르빠는 귀국하여 재가자이자 스승으로서 그가 인도에서 수학했던 가르침을 모조리 티벳에 전했는데 이 가운데 마하무드라와 나로최둑이 가장 뛰어났다. 이때 마르빠는 메똔쫀뽀소남곌첸과 더불어 운명적 제자 밀라레빠(1040-1123)를 만났다. 마르빠는 자신의 법을 아들에게 전하려 했으나 아들이 요절하는 바람에 전하지 못했지만 아들은 인도의 브라만으로 다시 환생해 공행모구륜유가를 밀라레빠에게 전했다. 마르빠는 나로빠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세 번째 인도 구도여정에 오르게 되는데 마르빠는 중간에 거룩한 아띠샤(982-1054) 존자를 만났다. 인도에 도착한 마르빠는 스승이 유가편력을 떠난 것을 알고 여러 달 동안 스승을 찾느라 헤매게 되었다. 마침내 마르빠는 나로빠를 찾아 스승으로부터 쨔끄라상와라딴뜨라를 전수 받는 등 3년간의 수행 기간을 거쳤다. 티벳에 전해지는 전기문학에 따르면 나로빠는 마르빠에게 몹시 인색하여 요구한 수업비가 없으면 절대 가르침을 전하지 않았다. 나로빠가 마르빠로 하여금 두 차례 더 인도여행을 하게 된 것도 가르침을 구실로 마르빠에게 수업료를 요구해 혹독한 구도여행을 종용한 나로빠에 의해 계획된 것이었다. 마르빠는 티벳에서 주로 사금을 모아 나귀에 싣고 돌아와 나로빠에게 수업료를 지급하였는데, 세 번째 여행에서 수업을 마칠 즈음 나로빠는 예전처럼 마르빠가 준비한 사금 대부분을 소진하게 만들었다. 마르빠는 원래 티벳으로 돌아갈 여행 채비로 사금 한 주머니를 감춰두었는데, 어느날 나로빠는 마르빠에게 마지막으로 숨긴 사금마저 요구하였다. 마르빠는 빈털터리가 되어 티벳에 돌아갈 걱정에 마지못해 사금 주머니를 내밀자 나로빠는 “누굴 감히 나를 속이려 드느냐?”라고 말하며 크게 웃었다. 나로빠는 마르빠를 언덕 절벽위로 데려가 마르빠가 혼신을 다해 모은 사금 주머니를 탈탈 털어 황금을 공중에 흩뿌렸다. 마르빠가 주저앉자 나로빠는 제자에게, “내가 지금부터 온 세상이 황금인 도리를 너에게 가르쳐주려 하는데, 너는 이까짓 사금 찌꺼기로 상심하고 있느냐?” 나로빠와 마르빠는 스승과 제자로 만나 비로소 영혼이 일체된 것이다. 나로빠는 마르빠를 고생시켜 그가 간직한 장애의 업을 풀어주었다. 나로빠는 마르빠 이외에 다른 제자들이 여럿 있었지만 마르빠가 법통을 이었다고 선언하였다. 마르빠는 평생 13분의 스승을 모셨고 평생 24권의 저술을 남겼다. 마르빠는 88세 선정 중에 입적하였고 제자 가운데 옥뙨이 수습하여 불탑에 모셨다. 마르빠의 전기는 15세기경 까규의 법통을 계승한 짱 옌 헤루까에 의해 제자인 밀라레빠의 전기와 함께 결집 되었다. 사실보다 문학적 소재가 강한 것으로 이 가운데 『밀라레빠의 생애』와 『밀라레빠의 십만송』은 티벳 불교문학의 백미로서 티벳 밀교수행자, 요기들의 치열한 구도와 아름다운 오도의 시가는 오늘날 세인들을 감동시키고 있다. |
대한불교조계종 지장기도도량 오봉산 영선사 | 이번 몽골국 순례기도님들 현재 업장소멸 심사중.. 6일차까지 기도요약.. - Daum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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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밀레르빠 천왕당신과의 만남을 가슴에 담고
이후 승마체험, 현지인 게르 방문, 징기즈칸 동상 방문을 하고
울란바타르 시내로 진입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차가 너무 막혀 1.,5킬로미터 이상을 걷기도 했습니다.
스님입니다.. 생전 처음 말을 타봤습니다..
쟤는 성격이 좀 별난듯 싶었습니다.
특이행동을 하더군요.
처음으로 말타며 얻은 지식은 한 손은 안장을 잡고 한 손은 줄을 잡아야 한다는거였습니다.
그래야 균형을 잘 잡아요..
말은 줄로 통제.
출발 준비를 마친 우리 대중들입니다.
빨간 버스가 우리들 차량.
몽골 버스 거의 전부가 현대나 기아자동차입니다.
우리나라에서 1차로 엄청난 힘을 소진한 중고 차량들인데 힘 좋데요.
버스는 중고로 수출 나갈 정도면 100만 이상은 국내에서 탈겁니다.
원명거사님...몽골이 체질이군요..
세상에 말을 타며 두 손을??
말도 안됩니다.
균형잡기도 벅차요.
승마 체험은 기도가 길어져 시간이 지체되어 일정을 줄였습니다.
잠시 체험.
타보니 쉬운 일이 아니데요.
여긴 게르방문.
위에 테를지 천왕님 모셔진 곳이라는 그 게르입니다.
스님 좌측에 단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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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하늘을 이어주는 티베트의 오색 기도 깃발 '룽따'(風馬) - ─…티베트 뉴스&정보 - 히말라야여행동호회 (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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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레빠스님과 스승 마르빠스님
(마르빠를 재가자로 소개하고 있지만 성중님이 아니랍니다. 스님이시래요.
마르빠는 청정비구 스님이라고 하십니다.
알려지기로
" 결혼까지 하여 부인 닥메와 사이에 달마도데라는 아들까지 낳았다. "
이 부분은 닥메라는 여성이 남자에게 강제로 욕을 본 상태에서 임신을 해서
그녀를 살려주기 위해 결혼한척 하셨다고 합니다
또 "마르빠는 자신의 법을 아들에게 전하려 했으나
아들이 요절하는 바람에 전하지 못했지만
아들은 인도의 브라만으로 다시 환생해 공행모구륜유가를 밀라레빠에게 전했다. "
이것도 사실과 다르다하십니다.
달마도데라는 아이가 요절한 것은 맞지만그 외는 거짓. )
마르빠 스님이 결혼하여 자식이 있다는 것은 전후 사정상 전혀 안 맞습니다.
저 대목만 보면 일반인과 차별이 하나도 없죠.
엄청난 신통력을 가진분이 일반인과 동일??
근데 밀라레빠스님과 만남에서는 전혀 다르잖아요.
아래는 기사의 원문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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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지장기도도량 오봉산 영선사 | 이번 몽골국 순례기도님들 현재 업장소멸 심사중.. 6일차까지 기도요약.. - Daum 카페
대한불교조계종 지장기도도량 오봉산 영선사 | 순례의 마침표... 비로자나불의 쓰다듬으심... 사바의 유일사례... - Daum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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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스님()()() 그날의 감동이 되살아납니다. 정말감사하고 또 감사한말씀 뭘로 표현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지금도 울컥합니다 담 글이 정말기대됩니다. 스님()()() 건강하십시요
보살님~~ 저는 그날 무심히 스님뒤만 따르다 뒤에 올라온 보살님을 보면서 붕 떴던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그 순간 만큼은 멋진풍경과 자유로움과 여유.. 모두 다 잊고 두손모아 감사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스님의 이끌어 주심에 다시 한번 감사 드립니다..( )
밀라레빠 존자님. 저희들의 공경을 받아 주소서.
저는 참석을 하지 못했지만 진한 감동이 전해 옵니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밀라레빠 존자님에 대한 것을 대략적인 것은 이전에 이미 읽어 보았으나, 32천왕님이셨다니 놀랍고 존경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