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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이 우거진 산 속에서 나무를 만졌을 때, 우리는 은근한 온기를 느낀다. 목수 이정인 씨가 만든 나무 가구는 그 질감과 따스함을 그대로 지녔다. 단지 그의 감각을 더해 생활에 유용하게 쓰일 뿐이다. 자연을 대상으로 세밀화를 그리는 아내도 마찬가지다. 부부는 나무와 풀, 곤충을 친구삼아 매일이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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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힘이 세다. 돌멩이 작은 틈에 생나무를 박아두면, 나무의 휘는 힘이 돌을 쪼갤 수 있다. 질긴 생명력을 갖고 시멘트 벽면에 뿌리를 내리기도 한다. 한 자리에서 깊고 조용하게 수련하는 나무는 순수한 형태의 에너지, 즉 누구도 대적하기 힘든 힘을 가진다. 목수 이정인 씨는 이런 나무와 온종일 힘을 겨루며 산다. 그는 이것을 ‘기(氣)싸움’이라고 표현한다.
“원목으로 집성한 가구는 워낙 무거워 사람 둘이 들기도 힘들어요. 하지만, 정신을 가다듬고 나무와 기를 나누다 보면, 혼자 드는 것이 더 수월할 때가 있어요. 나무의 힘을 이해하는 것이지요.”
그는 지난 5년 간 평생 들고 있던 화첩을 내려놓고 목수로 살았다. 그렇게 나무와 소통하는 법을 배웠다.
운명처럼 시작한 시골생활, 그리고 가족
8년 전, 그가 도시 생활을 접고 강원도 홍천 산골짜기로 들어온 사연은 사뭇 기구하다. 교직 생활 중 만난 아내와 함께 부부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발하게 활동해 온 그는 젊은 나이에 뜻하지 않는 병을 얻었다. ‘크론병’이라는 희귀난치성 질환이었다. 2년 간 약물치료와 식이요법 등을 병행하다 결국 가족은 ‘자연’이란 치료제를 택했다.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을 찾아 홍천의 산골짜기로 들어온 때가 2004년 말, 지금으로부터 7년 전 일이다.
“당시는 사람답게 살고 싶은 마음뿐이어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그러나 지금 돌이켜 보면 힘들었던 그 시간 덕분에 지금의 안정된 행복이 있는 것 같아요. 남편이 목수라는 새로운 직업을 갖고 저도 그림의 대상을 생태와 자연물로 집중하게 된 것이 전원생활을 통해 얻은 값진 결과죠.”
앳된 외모의 아내 이재은 씨는 담담한 표정으로 그간의 감회를 전한다. 처음 접해 본 시골생활이 고단했을 법도 한데, 그녀는 투정이라곤 전혀 없었다. 초등학교 2학년생과 유치원생인 두 아들도 이 곳 생활에 너무 잘 적응해줘서 고마울 뿐이다.
폐가를 수리해 얻은 집과 전시장
집은 해발 500m 높이의 고지대 마을, 그 속에서도 한참을 깊숙이 들어간 산비탈에 있다. 맑은 날엔 앞마당에서 태기산 꼭대기까지 볼 수 있고, 마당 아래로 너른 텃밭과 길 건너 계곡이 자리한다. 그야말로 ‘산골짜기’다.
들어올 당시만 해도, 집은 40년 세월을 겪은 오래된 농가로 사람이 살지 않는 빈 집이었다. 아이까지 있는 젊은 부부가 마을로 들어온다는 소식에, 주민들이 반기며 추천해 준 곳이다.
이정인 씨는 하루하루 집 안팎을 정리하면서 잡동사니를 치우고, 거적들을 벗겨냈다. 반듯한 본채 하나와 좌우의 외양간들만 남기고 네 가족 살림을 시작했다.
부부는 서울에서 하던 일러스트 작업을 함께 하며, 점점 자연물을 그리기 시작했다. 도시에서는 보지 못했던 곤충과 야생화, 키 작은 풀 하나까지 섬세하게 들여다보며 세밀화를 그려냈다. 생활이 안정될 무렵, 이정인 씨는 우연한 기회에 목공을 접하게 되었다.
“동네 목공소에서 일손을 필요로 해서, 나무 만지는 작업을 하게 되었어요. 몸이 고단해 1년 남짓 하고 일을 그만두었는데, 그 뒤로는 그림을 도통 못 그리겠는 거예요. 손에서 나무가 주는 느낌이 떠나지 않아서.”
그렇게 그는 목수가 되었다.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산귀퉁이에 작은 작업장도 갖추었다. 마땅한 전시 공간을 구상하다 마당의 외양간을 손보게 되었다. 세상에 하나뿐인 전시장. 10㎡ 면적도 채 안되는 두 채의 작은 흙집 안에 그의 가구들이 정답게 들어섰다.
산을 넘어 작업장으로 가는 출근길
그가 만든 가구 한 점을 들어보자. ‘다래나무와 테이블’이라고 이름 붙여진 책상은 굳건하게 선 네 다리와 평탄한 상판이 단단한 결구법으로 구성되었다. 양 손을 뻗친 듯 바닥부터 치솟는 다래나무 줄기가 어른 허벅지 굵기로 네 다리 중 하나를 대신하고 있다. 다래나무는 그가 등산길에 발견한 버려진 고목이었다. 산중턱에서부터 짊어지고 내려오면서 그는 머리 속으로 수많은 스케치를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나무는 자연에서 온 것입니다. 사람에게 필요한 도구를 만들지만, 자연에서 벗어나지 않는 형태를 찾는 것이 저의 작업입니다. 오랜 세월 그림에서 쌓아 온 눈썰미와 비례감을 더해 사람에게 친근한 가구를 만들고 싶습니다.”
작업실을 구경하기 위해 그를 따라 작은 산을 하나 넘었다. 얼마나 이 길을 오갔을지, 그는 날다람쥐처럼 걸음이 빨랐다. 20여분 걸었을까,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아담한 작업실과 그동안 공들여 닦은 집터가 나온다. 앞으로 가족들이 옮겨와 살게 될 새 집도 준비 중이다.
작업실을 보면 그 사람의 성격을 곧이 읽을 수 있다. 자투리 목재를 모아 벽면을 장식하고, 각종 수공구와 연장들은 열을 맞춰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다. 아내가 그린 가족들의 그림이 공간을 둘러싸고 그에게 힘을 주고 있었다.
자연은 가족들의 신나는 도서관
서양화를 전공한 아내 이재은 씨는 세밀화로 유명한 그림 작가다. 전원생활을 시작하고서는 자연과 생태를 주제로 한 세밀화에 더욱 집중하고 있다. 문만 열만 온통 그림 소재들이 널려있으니, 그녀에게 시골은 무궁무진한 자료창고다.
채소, 곤충 등 한 가지 주제가 잡히면 1년여를 넘게 집중해 그린다. 웬만한 박물관 탐방은 물론 사계절 무거운 카메라 장비와 채집 재료를 들고 산속 이곳저곳을 헤매는 게 일이다. 반딧불이를 그려야 하면 아이들과 계곡으로 밤마실을 나가고, 딸기가 필요하면 직접 마당에 씨를 심어 1년여를 관찰한다. 그렇게 얻어진 곤충과 식물들은 그녀의 책상머리에서 세밀화로 다시 살아난다.
그때마다 두 아들은 그림의 주인공이거나 배경이 된다. 형제는 직접 감자를 캐는 모델이 되기도 하고, 엄마를 따라 곤충 그림을 그리면서 공부도 한다. 아이들은 동네에서 유일한 초등학생이라 마을 주민들의 인기도 독차지하고 있다. 어린 형제는 학교가 파하면 늘 걸어서 집에 온다. 30분이 넘는 산책길에 둘이서 조곤조곤 나누는 이야기, 계곡에서 멱 감는 놀이, 마을 할머니에게 건네받는 간식거리 등은 후에 기억에 남을 아롱진 추억으로 새겨진다.
“이곳 사람들도 차로 아이들을 통학을 시키는 게 대부분이에요. 하지만, 저는 서울에 있을 때도 그런 아이들을 안타깝게 여겼어요. 우리 아이들에게 하교길의 기쁨을 빼앗기보다 그 시간에 형제애, 자연에 대한 관심들을 쌓기를 바라죠.”
엄마의 속마음이다.
자연을 닮은 형태를 찾는 과정
이정인 씨는 이제 4년차 목수지만, 벌써 여러 번의 개인전을 갖고 올 9월에도 큰 가구전을 준비 중이다. 스스로를 연륜이 짧은 목수라고 겸손해 하지만, 사람들은 그가 디자인한 가구에서 특별한 감성미를 찾아내고 있다.
“저는 늘 머리 속이 분주합니다. 무언가를 찾고 있는 과정이에요. 돌이나 넝쿨 등 가구 외에 다른 소품 작업도 하면서 산골살이와 목수를 연관시키는 작업으로 스스로를 연마하는 중이랍니다. 마치 저기 마르고 마르면서, 가구가 되길 기다리는 나무들과도 같죠.”
3~4년 전에 마련해 둔 원목들은 이제 거의 건조가 마무되었다. 휘고 뒤틀리는 정도가 잦아들면 그의 손을 거쳐 값진 작품으로 태어날 것이다. 그리고 그 때쯤이면 새 집도 웬만큼 모양을 갖출 것이다.
“저희는 이곳에서 새로운 삶을 선물 받았어요. 그리고 그것을 가구로 그림으로 사람들에게 돌려주려 합니다. 자연이 우리에게 준 것에 비하면 물론 턱없이 부족할 테지만요.”
“논농사를 짓는 마을 이장님한테 흙을 공짜로 얻고, 지천으로 굴러다니는 돌멩이를 가져다 집을 지었다. 재료비만 14만원 든 세상에 하나뿐인 흙집 전시장이다. 이 안에서 가구들은 흙과 함께 숨을 쉬고 잠을 잔다.”
출처-에덴 동산의 체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