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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곡의 벽에서)
주제 : 두려움
제목 : 하나님을 바라볼 때 두려움은 떠나갑니다!
성경 : 느 4:1-14
찬송 : 407장
저자 : 이삼규 목사
출처 : 20190825 낙양교회 주일 낮 예배
[느 4:1] 산발랏이 우리가 성을 건축한다 함을 듣고 크게 분노하여 유다 사람들을 비웃으며
[느 4:2] 자기 형제들과 사마리아 군대 앞에서 일러 말하되 이 미약한 유다 사람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가, 스스로 견고하게 하려는가, 제사를 드리려는가, 하루에 일을 마치려는가 불탄 돌을 흙 무더기에서 다시 일으키려는가 하고
[느 4:3] 암몬 사람 도비야는 곁에 있다가 이르되 그들이 건축하는 돌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곧 무너지리라 하더라
[느 4:4] 우리 하나님이여 들으시옵소서 우리가 업신여김을 당하나이다 원하건대 그들이 욕하는 것을 자기들의 머리에 돌리사 노략거리가 되어 이방에 사로잡히게 하시고
[느 4:5] 주 앞에서 그들의 악을 덮어 두지 마시며 그들의 죄를 도말하지 마옵소서 그들이 건축하는 자 앞에서 주를 노하시게 하였음이니이다 하고
[느 4:6] 이에 우리가 성을 건축하여 전부가 연결되고 높이가 절반에 이르렀으니 이는 백성이 마음 들여 일을 하였음이니라
[느 4:7]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아스돗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이 중수되어 그 허물어진 틈이 메꾸어져 간다 함을 듣고 심히 분노하여
[느 4:8] 다 함께 꾀하기를 예루살렘으로 가서 치고 그 곳을 요란하게 하자 하기로
[느 4:9]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들로 말미암아 파수꾼을 두어 주야로 방비하는데
[느 4:10] 유다 사람들은 이르기를 흙 무더기가 아직도 많거늘 짐을 나르는 자의 힘이 다 빠졌으니 우리가 성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하고
[느 4:11] 우리의 원수들은 이르기를 그들이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가 그들 가운데 달려 들어가서 살륙하여 역사를 그치게 하리라 하고
[느 4:12] 그 원수들의 근처에 거주하는 유다 사람들도 그 각처에서 와서 열 번이나 우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우리에게로 와야 하리라 하기로
[느 4:13] 내가 성벽 뒤의 낮고 넓은 곳에 백성이 그들의 종족을 따라 칼과 창과 활을 가지고 서 있게 하고
[느 4:14] 내가 돌아본 후에 일어나서 귀족들과 민장들과 남은 백성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고 너희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하여 싸우라 하였느니라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하늘을 걷는 남자>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입니다. 주인공 펠리페 페팃은 프랑스 곡예사 출신으로, 1976년 미국 뉴욕의 월드 트레이드센터 양쪽 꼭대기에 밧줄을 연결해서 8번을 오갔던 실존인물입니다. 영화에서 남자 주인공 펠리페는 412미터 높이, 42미터의 길이, 2센티미터의 폭 위를 걷는 전대미문의 시도를 앞두고 여자 친구에게 이렇게 마음속 두려움을 고백합니다.
“확신이 안 서. 줄 위에 올라서면 한 발도 못 뗄 것 같아.”
여자 친구는 이렇게 격려합니다.
“네 마음이 길을 안내해줄 거야.”
이 말에 힘입어 그는 412미터의 고공이 주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미션에 성공합니다.
어떤 사람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를 살펴보면 그 사람에 대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성도는 두려움을 통해서 자신의 믿음이 어느 정도인지, 자신이 하나님을 얼마나 신뢰하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물론 믿음이 있다고 해서 두려움을 전혀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죽음을 앞두시고 두려움을 느끼시며 그 잔을 옮겨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믿음이란 두려움이 없는 상태라기보다는 두려움과 함께 전진하는 것입니다. 전진할 수 있는 이유는 그 마음 중심에 하나님께 대한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 안의 두려움을 부인하는 것으로는 그 두려움을 극복할 수 없습니다. 두려움의 실체를 직시하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느헤미야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유다 사람들은 고레스 칙령 하에 BC 538년에 바벨론 포로에서 벗어나 이스라엘 본토로 귀환해서 대적의 방해를 무릎 쓰고 성전을 재건하였습니다. 그 후 거의 10년이 지났지만 예루살렘 성벽이 여전히 훼파된 상태로 있어서 유다 백성은 불안정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대적들은 이스라엘 귀환 공동체가 성벽을 재건하고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나가 될 경우 그 영향력이 커질 것을 두려워해 아하수에로 왕 통치 초기에 시작했던 예루살렘 성벽 재건 공사를 중단시켰습니다. 하지만 느헤미야의 지도력으로 모든 백성이 이 역사에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깨닫고는 다시 성벽 재건에 열정적으로 동참합니다. 그러자 호론 사람 산발랏과 암몬 사람 도비야, 아라비아 사람 게셈이 이스라엘 백성을 조롱하면서 성벽 공사를 방해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최대의 난적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특히 호론 사람 산발랏은 바사 왕이 임명한 사마리아 총독으로서 성벽 재건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단합을 꾀하자 자신의 사마리아 통치권이 위태로워질 것을 두려워하여 자신의 부하 도비야 및 사마리아 사람들과 더불어 성벽 재건을 못하도록 적극적으로 방해 공작을 펼칩니다. 이것은 단순히 정치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라 종교 혼합주의자들인 사마리아인들이 선민 이스라엘을 영적으로 방해한 것입니다. 이처럼 사탄은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구속 역사를 집요하게 방해하고 있습니다.
대적의 비웃음을 들은 느헤미야의 기도
느헤미야가 추진하는 예루살렘 성벽 재건은 처음부터 대적의 훼방에 부딪칩니다. 산발랏은 사람들을 선동해 성벽 건축을 방해하려 합니다. 일찍부터 그는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온다는 것과 유다 사람들이 성벽을 건축하려 한다는 것을 듣고 비웃으면서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습니다.
[느 2:10] 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이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가 이스라엘 자손을 흥왕하게 하려는 사람이 왔다 함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느 2:19] 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이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이 이 말을 듣고 우리를 업신여기고 우리를 비웃어 이르되 너희가 하는 일이 무엇이냐 너희가 왕을 배반하고자 하느냐 하기로
비웃음과 협박에도 불구하고 성벽 건축이 시작되자 그는 한층 더 크게 분노합니다. 특히 산발랏이 주도하는 적대 세력은 성벽 재건축에 대해 크게 분노하고 유다 사람들을 비웃었습니다. 산발랏은 자기 형제들과 사마리아 군대 앞에서 유다 백성을 조롱했습니다.
“이 미약한 유다 사람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가, 스스로 견고하게 하려는가, 제사를 드리려는가, 하루에 일을 마치려는가 불탄 돌을 흙무더기에서 다시 일으키려는가?”(2절)
산발랏은 유다 사람들이 성벽을 재건할 능력이 없고 그들의 하나님을 향한 제사도 아무런 힘을 발휘할 수 없다고 비웃은 것입니다. 성벽 재건은 시간도 많이 걸릴 뿐 아니라 돌도 쉽게 얻을 수 없으므로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환경은 열악하고 유다 사람들의 신은 능력이 없다고 조롱한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있던 암몬 사람 도비야도 이렇게 조롱합니다.
“그들이 건축하는 돌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곧 무너지리라.”(3절)
그는 유다 사람들이 가진 재료로 건축하는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무너질 만큼 약할 것이라고 비웃습니다. 산발랏과 도비야는 아닥사스다 왕의 허락 속에서 진행되는 성벽 건축 공사를 공식적으로 막을 수 없어서 조롱과 거짓된 소문을 통해 유다 사람들의 사기를 저하시킴으로써 스스로 중단하게 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이들의 조롱과 방해는 성벽이 건축되고 나면 그 지역에 대한 기득권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라는 사실과도 관련이 있었습니다. 유다 사람들이 율법과 성전과 성벽으로 하나가 되면 그들이 유다 사람들에게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는 산발랏과 도비야의 도발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하였습니까?
느헤미야는 유다 백성이 업신여김을 당하는 것과 욕먹는 것을 두고 하나님께 갚아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느 4:4] 우리 하나님이여 들으시옵소서 우리가 업신여김을 당하나이다 원하건대 그들이 욕하는 것을 자기들의 머리에 돌리사 노략거리가 되어 이방에 사로잡히게 하시고
[느 4:5] 주 앞에서 그들의 악을 덮어 두지 마시며 그들의 죄를 도말하지 마옵소서 그들이 건축하는 자 앞에서 주를 노하시게 하였음이니이다 하고
적대 세력의 대적 행위는 단지 유다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노하시게 하는 일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가 산발랏과 도비야 같은 대적의 비웃음에 움츠러들거나 겁먹지 않고 백성을 격려하며 일을 지속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하나님이 성벽 재건의 주관자라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세상에 위용을 과시하려고 예루살렘 성벽을 다시 세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하나님께서 그 일을 맡겨주셨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에 충성을 다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도 때로 대적의 공격에 마음이 약해질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도 자신감이 떨어질 때가 있습니다. 산발랏과 도비야 같이 하나님의 백성을 비웃고 성도의 헌신을 조롱하는 자들은 지금이 많이 있습니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자존감과 하나님께 간구하는 믿음입니다. 성도를 대적하는 자는 곧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라는 확신을 가져야 핍박을 견뎌 낼 수 있습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는 사람은 언제나 담대할 수 있습니다.
대적의 궤계에 맞선 유다 백성
예루살렘 성이 중수되어 그 허물어진 틈이 메꾸어져 간다는 소식을 듣고 산발랏과 도비야만이 아니라 아라비아, 암몬, 아스돗 사람들까지도 심히 분노합니다. 그들은 다 함께 예루살렘을 치고 그곳을 요란하게 하자고 작당합니다. 유다의 원수들은 예루살렘에 갑자기 쳐들어가서 사람들을 죽이고 성벽을 재건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유다 백성들은 그들의 위협에 어떻게 대처하였을까요?
[느 4:7]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아스돗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이 중수되어 그 허물어진 틈이 메꾸어져 간다 함을 듣고 심히 분노하여
[느 4:8] 다 함께 꾀하기를 예루살렘으로 가서 치고 그 곳을 요란하게 하자 하기로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요15;1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중요하게 여기시는 일일수록 사탄의 방해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알고 더욱 기도하며 성도들끼리 마음을 모아야 합니다. 사탄은 여러 가지 교묘한 방법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며 하나님의 일을 방해합니다. 유다 백성은 성전을 건축하고 성벽을 재건하면서 다양한 방법으로 방해를 받았습니다. 비웃음, 조롱, 협박, 유혹, 고소, 핍박, 중상모략, 비난, 이간질, 죽음의 공포 등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계획대로 성벽을 세워 갑니다. 평소에 하나님과 동행했고 하나님의 뜻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탄의 방해와 박해가 심각해질수록, 하나님의 역사하심 또한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과 사탄이 아무리 방해해도 하나님은 그분의 뜻을 계획대로 이루어 가십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요?
느헤미야와 유다 사람들은 하나님께 다시 기도합니다.
[느 4:9]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들로 말미암아 파수꾼을 두어 주야로 방비하는데
그들은 기도만 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대적들 때문에 파수꾼을 두어 주야로 방비를 하였습니다. 우리가 어떤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기도만 하고 아무 것도 안 하고 있는 것은 올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기도하면서 해야 할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주야로 방비에 힘을 썼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대적의 궤계에 맞서는 최고의 방책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입니다. 살다보면 우리를 두렵게 하고 불안하게 만드는 다양한 일을 접하게 됩니다. 특히 거룩하게 살려는 그리스도인을 미워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께 용기와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세상의 공격에 세상의 방식대로 대처하지 않고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맞서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기도했기 때문에 파수꾼을 세워 방비하는 지혜를 얻을 수 있었고 포기하지 않는 용기 또 한 가질 수 있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을 공급 받는 통로입니다.
느헤미야가 파수꾼을 세움
예루살렘 성벽 건축의 현장에서 일하던 유다 백성들 가운데는 대적들의 위협과 일의 과중함 때문에 낙담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탄식합니다.
[느 4:10] 유다 사람들은 이르기를 흙 무더기가 아직도 많거늘 짐을 나르는 자의 힘이 다 빠졌으니 우리가 성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하고
[느 4:11] 우리의 원수들은 이르기를 그들이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가 그들 가운데 달려 들어가서 살륙하여 역사를 그치게 하리라 하고
[느 4:12] 그 원수들의 근처에 거주하는 유다 사람들도 그 각처에서 와서 열 번이나 우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우리에게로 와야 하리라 하기로
과거에 바벨론의 공격으로 파괴된 예루살렘 성의 잔해가 아직도 많이 남아 있었고, 일꾼들은 과중한 노역으로 피곤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들은 성벽 재건을 마칠 수 없을 것이라는 부정적인 생각에 빠져 들고 있었습니다.
유다 백성들이 더욱 힘들었던 이유는 대적들의 위협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적의 위협으로 유다 백성은 두려움을 느꼈고, 막중한 일로 인한 피곤함 때문에 그 두려움은 가중되었습니다. 유다 공동체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대적은 산발랏이나 도비야의 실제적 공격보다는 피곤함과 그로 인해 가중된 두려움이었습니다. 그 두려움으로 인해 유다 백성은 위기의식에 사로잡혀 낙담하고 성벽 재건을 중단하고 본토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결정합니다. 그리고 유다 백성들에게 대적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격려합니다. 느헤미야가 대적과 싸워가면서 성벽 재건을 끝까지 수행하고자 결심했는데 그가 구체적으로 취한 조치가 무엇이었습니까?
[느 4:13] 내가 성벽 뒤의 낮고 넓은 곳에 백성이 그들의 종족을 따라 칼과 창과 활을 가지고 서 있게 하고
[느 4:14] 내가 돌아본 후에 일어나서 귀족들과 민장들과 남은 백성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고 너희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하여 싸우라 하였느니라
사실 느헤미야는 처음 성벽 재건 공사를 시행할 때 대적이 그토록 심하게 방해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군사적 조치는 취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상황이 점점 심각해지는 것을 보고 우선 파수꾼을 세웠고, 백성들이 거듭해서 보호를 요청하자 사람들을 무장시켜 일터를 지키게 하였습니다. 물론 그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백성을 격려하며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권면하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그는 기도하는 무릎과 행동하는 손발을 모두 구비한 지도자였습니다. 이렇게 치우치지 않는 영성을 지닌 사람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크게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어떤 일을 수행할 때 예상치 못한 난관이나 훼방을 만나면 낙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일이 하나님의 뜻이고 옳은 일이며 해야 하는 일이라면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헤쳐 나가야 합니다. 그때 기도할 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대처 방안과 구체적인 해결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래야 함께 하는 자들이 마음을 모아 끝까지 그 일을 해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목표가 뚜렷해야 하며 실제적인 수행 방안을 제시해야 합니다. 두려운 일이 앞을 가로 막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께 이길 힘을 주시고 피할 길도 주십니다.
사 35:4 겁내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굳세어라,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희 하나님이 오사 보복하시며 갚아 주실 것이라 하나님이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