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은 고품격 취향의 문학
글이란 좋고 나쁨이 없다. 마찬가지로 우열도 존재하지 않는다. 저마다의 결이 다르기 때문이다. 글이 완성되는 것은 결국 독자를 만나는 일이다. 나와 유사한 취향을 가진 독자의 결에 닿을 때 좋은 글이 되고 두고두고 울림이 된다. 그렇다고 하여 작가가 지나치게 독자를 의식해서는 안 된다. 특히 수필은…
수필은 대중성을 지향하고 시장성을 좇는 문학이 아니다. 수필은 내 사유의 결을 타는 일이기 때문이다. 밖으로 향했던 눈을 내 내면으로 돌리는 과정의 고뇌와 내 안의 나를 마주한 때의 고독을 나의 언어로 부려 쓰는 문학이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으로 수필은 나로부터 출발하는 문학이다. 물론 여타의 문학 장르가 모두 그 출발이 자신임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수필은 좀 더 내밀하게 은밀하게 나를 담고 발견하고 표현한다. 지나친 비유도 아닌 사실적 표현도 아닌 적절한 선에서 치맛단을 걷어 올려야 한다.
그렇다고 수필이 '점잖아야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우리는 수필문학을 지나치게 엄숙하게 접근하려는 경향이 있다. 가령, '교훈을 담아야 한다. 자기 성찰이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 그렇다. 그런 관념이 오히려 수필에의 접근을 경직시킨다.
수필은 일상이다. 그러나 다큐멘터리를 바탕으로 서정과 서사를 교직으로한 문장표현이 이루어질 때 지극한 일상을 넘어 문학성을 획득한다. 문학이란 독자의 가슴으로 가, 그의 세계에 미세한 흔들림을 줄 때이다.
큰누님 박씨 묘지명 / 연암 박지원, 번역 박희병
돌아가신 분의 이름은 아무이니, 반남(潘南) 박씨(朴氏)이다. 그 동생 지원(趾源)은 묘지명을 쓴다. 돌아가신 분은 열여섯에 이씨(李氏) 택모(宅模) 백규(伯揆)에게 시집가 딸 하나와 아들 둘을 두었으며, 신묘년(1771년) 9월1일에 세상을 뜨니 나이 마흔 셋이었다.
남편의 선산은 아곡인 바 장차 그곳 경좌 방향의 못자리에 장사지낼 참이었다.
백규가 그 어진 아내를 잃고 가난하여 살아갈 도리가 없자 어린자식들과 계집종 하나를 이끌고, 솥과 그릇, 상자 따위를 챙겨 배를 타고 산골짝으로 들어가려고 상여와 함께 출발하였다.
나는 새벽에 나루터 배에서 그를 전송하고 통곡하다 돌아왔다.
아아! 누님이 시집가던 날 새벽, 얼굴을 단장하시던 일이 마치 엊그제 같다. 나는 그때 막 여덟 살이었는데 발랑 드러누워 발버둥을 치다가 새신랑의 말을 흉내내 더듬거리며 점잖은 어투로 말을 하니, 누님은 그 말에 부끄러워하다 그만 빗을 내 이마에 떨어뜨렸다. 나는 골을 내 울면서 분에다 먹을 섞고 침을 발라 거울을 더럽혔다. 그러자 누님은 옥으로 만든 자그마한 오리 모양의 노리개와 금으로 만든 벌 모양의 노리개를 꺼내 나를 주면서 울음을 그치라고 하였다.
지금으로부터 스물여덟 해 전의 일이다.
강가에 말을 세우고 멀리 바라보니 붉은 명정이 펄럭이고 배 그림자는 아득히 흘러가는데, 강굽이에 이르자 그만 나무에 가려 다시는 보이지 않았다. 그때 문득 강 너머 멀리 보이는 산은 검푸른 빛이 마치 누님이 시집가던 날 쪽진 머리 같았고, 강물 빛은 누님의 거울 같았으며, 새벽달은 누님의 눈썹 같았다.
울면서 그 옛날 누님이 빗을 떨어뜨리던 걸 생각하니, 유독 어릴 적 일이 생생하게 떠오르는데 그때에는 또한 기쁨과 즐거움이 많았으며 세월도 느릿느릿 흘렀었다. 그 뒤 나이 들어 이별과 근심, 가난이 늘 떠나지 않아 꿈결처럼 훌쩍 시간이 지나갔거늘 형제와 함께 지낸 날은 어찌 그리도 짧은지.
떠나는 이 정녕코 다시 오마 기약해도
보내는 자 눈물로 옷깃을 적시거늘
이 배 지금 가면 언제 돌아올꼬
보내는 자 쓸쓸히 강가에서 돌아가네
작가에 의해 신생한 모든 문학은 젊다. 수필도 마찬가지다. 수필은 때로 도발적이어야 한다. 도발이란 기발한 상상력을 의미한다. 수필의 상상력은 환타지가 아니라 인문학적이어야 한다.
즉 사람의 일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수필에 있어서 도발성이란 문장의 묘미에 있다. 단문과 중문의 적절한 운용과 순접의 접속어를 가능한 배제할 때 그 문장은 해초처럼 독자의 가슴에 감긴다.
수필은 독자의 가슴으로 가기 전 먼저 작가의 가슴에 감겨들어야한다. 그럴 때 작가는 때로 독자의 눈으로 자신의 문장을 걸어야한다. 객관적 글쓰기의 시작이다.
수필은 1차적 경험으로부터 출발하여 결을 타고 마침내 처음 자리로 돌아오지만 그때의 자리는 1차적 경험의 세계가 아니라 포월적 세계이다. 즉 세간과 출세간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고도의 정신세계. 아니 정신의 절대자유를 일컫는다.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이란 힘을 뺀 상태의 가벼움이다. 그러나 가볍되 천박하지 않아야한다. 깊이가 있되 무겁지 않아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