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영덕군 병곡면에 속한 리이다. 송천1리와 2리로 구분되며 동은 덕천리, 서는 신평리, 남은 송천내를 건너 연평리, 북은 금강들을 지나 원황리, 덕천리가 있다. 7번국도 울진방면의 우측에 위치하며, 동해안을 따라 길게 송천들이 펼쳐지며, 마을은 들 한편 타원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자연마을로는 송천리 북쪽에 위치한 ‘개양모태’와 서쪽에 위치한 ‘서당모태’가 있다. 개양모태는 “마을에 물구덩이가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물구덩이를 영덕에서는 개양이라 부른다. 서당모태는 “마을 내 서당이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송천리 동명의 유래는 이 마을이 솔안[송내] 들에 있고 또 고장두들[古亭坪] 가운데 소나무가 울창하고 그 앞에는 냇물이 흘러 송천, 송내 또는 솔안이라고도 불렀다. 이 마을이 형성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15세기 즉, 조선 초기에는 양씨(梁氏), 장씨(張氏)가 거주하였다고 하며, 마을에 작은 역촌(驛村)과 주막이 있었다고 한다. 그 뒤 17세기 즉, 1600년 때인 인조(仁祖) 연간에 송천자(松川子) 권득여(權得輿)가 이곳에 들어와 역촌을 새터(연평리)로 옮기고 동명을 송천이라 하고 이 마을에 정착하였으며 자손이 세거(世居)하고 있다. 이 마을은 풍수지리상 ‘기러기가 알을 품는 형국[雌雁抱卵形]’이라 한다. 조선시대에는 영해부에 속했으며, 대한제국(大韓帝國) 때에는 영해군 북초면(北初面) 지역이었는데, 1914년 3월 1일 일제(日帝)가 전국의 행정구역을 자의로 폐합할 때 송상동(松上洞), 송하동(松下洞) 일부를 병합하여 송천동이라 하고 영덕군 병곡면에 편입되었으며, 그 뒤 1988년 5월 1일 동을 리(里)로 개칭할 때 송천리가 되어 오늘에 이르며, 현재 행정동으로는 송천1,2리로 분동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