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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복음의 의미 안에 들어있는 0과 1이라는 디지털 기호를 코드로 성경말씀을 풀어내는
태승철의 오늘의 번제 <소원을 죽여봐!>의 줄거리:
소원을 말해봐! 한 걸그룹이 부르는 노래의 제목입니다. 알라딘의 램프의 정령 지니가 되어서 사랑하는 남자친구의 모든 소원을 이루어주고 싶다는 열정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너무나 깜찍하고 예쁜아가씨들이 뭣 모르고 너무나 치명적인 독극물을 선전하고 있는 듯 합니다. 성공적이고 행복한 인생의 비결은 간단합니다. 소원을 죽여보세요!
소원을 죽여봐!
(눅22:35-46)
35.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전대와 배낭과 신발도 없이 보내었을 때에 부족한 것이 있더냐 이르되 없었나이다
36. 이르시되 이제는 전대 있는 자는 가질 것이요 배낭도 그리하고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살지어다
37.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기록된 바 그는 불법자의 동류로 여김을 받았다 한 말이 내게 이루어져야 하리니 내게 관한 일이 이루어져 감이니라
38. 그들이 여짜오되 주여 보소서 여기 검 둘이 있나이다 대답하시되 족하다 하시니라
39.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 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40. 그 곳에 이르러 그들에게 이르시되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하시고
41. 그들을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42.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43.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
44.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45. 기도 후에 일어나 제자들에게 가서 슬픔으로 인하여 잠든 것을 보시고
46. 이르시되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하시니라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 중심으로 <소원을 죽여봐!>라는 제목의 하나님말씀 증거 합니다.
‘소원을 죽여 봐!’
소녀시대라고 하는 걸 그룹이 있습니다.
대여섯 명이 넘지요 훨씬, 10명 가까이 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 예쁜 아가씨들 10명 가까운 숫자가 나와서 하는 노래들 중에서 ‘소원을 말해봐!’라는 그런 제목의 노래가 있습니다.
그 가사가 처음에 이렇게 시작해요.
‘소원을 말해봐! 네 마음속에 있는 작은 꿈을 말해봐, 네 머리에 있는 이상형을 그려봐, 그리고 나를 봐, 나는 너의 지니야 꿈이야 지니야’
그러니까 남자친구를 향해서 부르는 노래인데, 내가 행운의 여신 지니가 되어서 그 램프의 정령인 지니가 되어서, 네가 갖고 있는 소원이라 그러면 무엇이든지 다 ~ 이루어주겠다고 하는, 얼마나 사랑하면 그렇게 그런 마음이 생기겠습니까?
정말 너무 사랑하니까, 그가 나한테 뭘 해주느냐 그런 건 관심도 없고, 내가 남자친구를 위해서 그 남자친구가 소원이 있다 그러면 어떤 소원이든지 다 이루어주고 싶다고 하는 그런 참 열정적인 한 여자아이의 사랑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노래도 재미있고, 가사도 그렇고 그 후렴귀가 이래요, ‘소원을 말해봐!’ 라고 노래를 하면, 다른 파트에서 랩을 합니다.
그러니까 랩이라는 게, 가락이 있는 게 아니라 이렇게 말을 하는 거 있잖아요? 그걸 뭐라고 그러냐 하면 랩을 영어로 ‘I’m Genie for you boy.’
이 ‘boy’ 보고 저는 남자친구라고 추측을 했는데, 뭐 정확하게 모르겠어요.
소원을 말해봐! 하고 또 나와요, I'm Genie for your wish.
소원을 말해봐! ‘I'm Genie for your dream.’
소원을 말해봐! ‘I'm Genie for your world.’
아! 너의 소원을 위해서 나는 Genie이고 너의 꿈을 위해서 나는 램프의 요정, 램프의 정령인 Genie이고, 너의 세상을 위해서 나는 Genie다.
소원을 말해봐!
아! 이게~, 이렇게 참 예쁜 아가씨들이 나와서 노래를 부르는데, 뭐 다 좋자고 부르는 노래에 이렇게 말을 갖다 붙이면 좀 분위기가 맞지 않는다 싶기는 합니다마는, 영적인 의미에서 볼 때에, 소원을 말해봐! I'm Genie for your wish, I'm Genie for your dream, 정말 Genie 가 되어서 그의 wish와 그의 dream을 다 이루어 준다고 그러면 이 아가씨는, 이 노래에 나오는 이 아가씨는, 행운의 여신이 아닙니다.
가사에 그런 게 있거든요?
‘나는 너의 모든 소원을, 그대의 소원을 이루어주고 싶은 행운의 여신’
행운의 여신이 아니라, 저승사자입니다.
지옥에서 온 저승사자입니다.
모든 인간의 소원은, 그 속에 소원을 바라고 있는 당사자를 죽이는 검은 독가스를 품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예쁜 아가씨들이 ‘소원을 말해봐 모든 걸 다 들어줄게’라고 부르는 이 노래는, 마치 치사율이 극하게 달하고 있는 독극물을 선전하고 있는 것과 같다 이겁니다.
아까 말씀드렸어요.
예쁜 아가씨들이 즐겁자고 부르는 노래에, 이렇게 말을 갖다 붙이는 것은 분위기에 맞지를 않습니다마는, 영적으로 보자면 그 글귀들 자체가 바로 그런 의미가 있다는 거예요.
극한의 치사율을 지니고 있는 독극물을 가지고 선전하는 것이나, 아니면 너무너무 날카로운 양날선 칼들을 어린 아이들이 갖고 장난을 치는 것과 같은, 그런 영적인 무서운 의미가 들어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소원을 말해볼 것이 아니라 소원은 죽여야 되는 겁니다.
소원을 죽여 봐! 소원을 죽여 봐!
이것이 맞는 얘기라는 거예요.
그리고 한 가지 말씀 드릴 수 있는 것은, 신학과 신앙과 경험을 다 통 털어서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소원을 죽이잖아요? 여러분의 인생은 성공합니다.
무조건, 여러분에게 떠오르는 소원이 있으면, 지속적인 소원이든지 순간 충동적으로 일어나는 소원이든지, 그 소원을 죽이면 여러분의 인생은 성공합니다.
여러분의 인생은 평탄할 수 있습니다.
제 말씀을 믿으세요! 반드시 성공합니다, 반드시 평강의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소원을 죽이면 됩니다. 먼데 있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여러분, 하나님은 Genie가 아니신 것이 얼마나~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램프의 정령 Genie가 아니시고, 하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은 무슨 얘기냐 하면, 그 노래가사에 이런 말이 나오잖아요?
I'm Genie for your wish, I'm Genie for your dream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I’m God’ 그래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하면, ‘I’m Genie’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셔서 일어나는 일은 ‘I have wish for you.’
그러니까, I’m God for your wish가 아니라 ‘너의 소원을 위한 신’이 아니라, 신으로써 내가 wish를 갖고 있다, 소원을 갖고 있다, 너를 위해서.
그러니까,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신다는 것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소원을 갖고 계신다는 얘기는 완전히 다른 겁니다.
오늘 겟세마네 기도의 내용은, 그 내용의 핵심이 뭡니까?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소원에 당신의 소원을 맞추시는 기도입니다.
그런데 피땀이 흐르시는 거예요, 지금.
여기에 깊고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소원에 당신의 소원을 맞추시는데 피땀이 날까?
얼마나 소원을 맞추시기가 어려우면 땀이 나다 진액이 빠지다 못해서, 피가 나올까? 땀 대신에 피가 나올까?
그걸 맞추기가 그렇게 어려운가? 아니에요.
주님께서는 원래 그런 분이 아닙니다.
영원 전부터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아버지와 아들로 계시면서 성령님을 통하여 교제를 하신 거예요.
성령님을 통한 교통은 어떤 겁니까?
아버지의 마음의 생각이 주님 안에 있습니다.
성령님을 통하여 주님의 생각이 아버지 안에 있고, 서로 교통을 하면서 일체로 계신 분이었습니다.
근데 지금 그 분께서 아버지와 소원을 맞추시기 위해서 진땀을 넘어 피땀을 흘리고 계십니다.
이렇게 어려워하고 계시는 거예요.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는 기도가 이렇게 힘들 수가 없는 거예요.
이거 어떻게 된 일일까요?
왜 주님께서 성령을 통해서 그렇게 일체가 되셔서 하나님 아버지, 아버지와의 소원과 일치시키는 것에 영원 전부터 선수이셨던 예수님께서, 왜 이렇게 피땀을 흘리시면서 아버지와의 소원을 맞춰 가실까요? 지금.
이유가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 선악과가 왜 에덴에 있었는지 아시지요?
왜 있었냐 하면, 하나님의 소원과 내 소원을 맞추기 위한 인격적 장치였습니다.
인격적 장치라는 것은 기계적 장치가 아니라는 것이에요.
얼마든지 내가 선악과를 따먹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안 따먹은 거지요, 타락하기 이전까지는, 뱀의 꼬임을 받기 전까지는.
그러면 안 따먹는다는 게 무엇을 말합니까?
선악과를 따먹는다는 것은, 선악을 내가 안다는 것이고, 선악을 안다는 것은, 쉽게 말하면 내가 나를 위해서 좋은 것을 소원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근데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위해서 또 소원을 갖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나를 위해 갖고 계신 하나님의 소원이 있고, 내가 나를 위해서 소원을 가질 수 있는데, 선악과를 따먹지 않음으로써 나의 소원을 포기하고 나의 소원을 죽이는 겁니다.
소원을 죽이는 거예요.
내 소원의 싹을 잘라버리는 것이 선악과를 안 따먹는 거예요.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소원에 맞춰가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나를 위해 갖고 계신 소원이 나에게 나타나고 성취되어 가는 것이지요.
그래서 하나님의 소원과 맞추다가, 뱀에게 꼬임을 받고는 선악과를 따먹어 버렸습니다.
그건 무슨 얘기냐?
선악과를 따먹었다는 것은, 이제는 내가 나를 위해서,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갖고 계신 소원과는 별도로, 내가 나에게 좋은 것을 스스로 결정해서 내가 스스로 나를 위해 소원을 갖게 되었다는 걸 말합니다.
오늘 우리가 본문 37절에 보면, 이제 예수님의 공생애가 급전직하가 돼버립니다.
다시 말해서 막바지로 치닫고 있습니다.
분위기가 완전히 그냥 확 바뀌어 버린 것이에요.
그런 상황에서 주님께서 뭐라 그러냐 하면, 그렇게 분위기가 급전직하가 되는 이유가 ‘불법자의 동류로 여김을 받게 될 것이다’라는 얘기 하십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다는 말씀을 이렇게 하십니다.
‘불법자의 동류로 여김을 받는다.’
여기서 불법자가 뭡니까?
불법자라는 것은, 지금 여기서 여러분이 놓여 져 있는 그 자리에서, 여러분이 그 상태에서 여러분을 위해 소원을 갖는데, 그 소원이 하나님이 지금 여기서 나를 향해 갖고 계신 소원과 다를 때, 여러분은 불법자가 되는 겁니다.
근데, 모~든 인간이 지금 여기 내가 놓여 진 처지에서 나를 위해서 소원을 갖는데, 전부 지금 여기서 나를 향하여 갖고 계신 하나님의 소원과는 다른 소원을 갖고 있는 거예요.
그게 선악과를 따먹은 이후로 나타난 특징이라는 겁니다.
이게 바로 죄이고, ‘하마르티아’ 빗나간다는 얘기 아닙니까? ‘하마르티아’.
이게 바로 불법이라는 얘기입니다.
근데 주님께서 ‘불법자의 동류로 여김을 받는다.’
주님이 불법자가 되신 것이 아닙니다, ‘불법자의 동류로 여김을 받는다’
다시 말하면, 마음에서 소원을 일으키는데 그 소원이 전~부 하나님과 다를 수밖에 없는 그런 불법자의 처지에 하나님이 버리신 겁니다.
근데 주님의 마음은, 하나님의 소원과 맞추지 않고는 견디지를 못하시는 분이십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마음이 불법하시는 타락자가 되셨거나 죄인이 되신 게 아니니까, 불법자의 처지에 하나님이 내려 보내셨을 뿐이니까.
그렇게 주님의 마음은 아버지 하나님의 소원과 맞추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그것을 맞추어 가시는 건데, 불법자의 처지에서 하나님의 소원과 맞추시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것이에요.
그러니까 우리 처지에서 하나님의 소원과 맞추려고 하면 피땀이 나야 된다는 겁니다, 피땀이 나야 겨우겨우.
마치 이건 이런 것과 같아요.
지금 제가, 여러분 앉아서 다리 찢기 하는 거 있잖아요?
지금 다리 찢기 하면은 90도나 겨우 벌어 질까말까 해요, 이 골반이 다 굳어 가지고 이제 늙어 가지고, 고관절이 다 굳어 갖고 제대로 안 움직여요.
근데 지금의 이 상태 나에게서, 180도로 다리 찢기를 하기 위해서, 천하장사 같은 두 사람이 내 양쪽다리를 잡고 찢는 것과 같은 것이라는 거예요.
불법자의 자리에 있으면서 하나님의 소원에 맞추어 간다는 것은 - 우리는 아예 맞출 생각도 안 하고 있지만 - 주님의 마음은 하나님의 소원과 맞추지 않고는 못 견디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십자가를 져야 된다는 불법자의 자리에 서게 된다는 것, 그래서 십자가를 받아 들여야 된다는 이 사실이, 십자가의 고통 때문에 괴로워하시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는데, 그 의미는 불법자의 자리로 던져지셔서 그 곳에서 아버지 하나님의 소원과 당신의 소원을 맞추어 가시는데, 이렇게 피땀이 나지 않고는 맞추어 갈 수가 없게 됐다 이 말입니다.
우리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소원은, 주님 같은 분이 피땀을 흘려야만 겨우 맞춰질 수 있는, 그런 소원들을 갖고 있는 거예요.
도저히 맞출 수가 없는 소원을 우리 마음에선 소원으로 끄집어내 올리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 십자가를 지신 이유를 우리가 분명히 알지요.
왜 지셨습니까?
‘소원을 죽여 봐!’ 라는 노래를 부르고 계시는 겁니다, 주님께서.
‘소원을 죽여 봐!’
왜? 하나님께서 너의 하나님이니까. ‘God is your father.’
그래서 ‘he has’ 뭘 갖고 계세요? ‘wish for you’
너를 위해서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셔서 소원을 갖고 계신다는 겁니다.
너를 위해서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셔서 소원을 갖고 있으니까, 너의 소원은 죽여 봐.
십자가에 달리시면서, 돌아가시면서 부르신 노래가 그것인 거예요.
‘소원을 죽여 봐!’ 십자가를 받아들이면서 소원을 죽여 보라는 얘기입니다.
인생 어려운 거 하나도 없어요. 주님께서 피땀 흘리면서 고통을 치르시면서 십자가를 지셨기 때문에, 주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버지 하나님과 당신의 소원을 맞추셨기 때문에, 불법자의 자리에 던져지셔서 맞추셨기 때문에, 이제 우리에게 하나님의 소원에 맞출 수 있는 길이 생겼다는 거예요.
그게 바로 십자가라는 겁니다.
십자가를 내가 죽은 것으로 받아들이면 고통 없어요.
내게는 고통이 없어요, 주님께서 고통을 받으신 것이지.
그걸 받아들이면 내 마음이 하나님의 소원과 맞춰 질 수가 있다는 거예요.
그렇게 십자가에서 하는 일이 내 소원을 죽이는 겁니다.
지금 여기서 내 마음에 소원이 일어나잖아요?
사소한 소원, 작은 소원, 큰 소원, 위대한 소원… 별의별 소원이 다 있고, 하나님을 위해서 나는 산다는 명분아래 갖게 되는 소원도 있어요.
근데 이 소원 속에도 죄가 스며들어 갑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생각하시면 되지요.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소원이 이루어질 때 나는 망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그러므로 이제까지 사는 동안에 내 마음의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 은혜입니다.
그것이 나를 살려주고 있는 거예요.
내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내가 이만큼 멀쩡하게 살아 있는 겁니다.
우리나라의 소원이 통일이라 그러잖아요?
통일이 안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만큼 살아있다고 보면, 정확한 역사의 해석입니다.
우리 소원 속에는 반드시 죄가, 독가스처럼 스며있기 때문에, 그것이 실현될 때 나는 그 소원의 성취와 함께 망하게 됩니다.
단언할 수 있습니다.
왜요? 우리 손에 죄가 있기 때문에.
죄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소원 속에는, 나를 죽이는 그것이 성취돼서 열매로 맺혀지면, 나를 죽이는 독극물이 반드시 거기 들어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 붙잡고 기도하면서 소원을 죽여야 됩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에 39절에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 가시매’
우리가 이 겟세마네에서 늘 기도하신 대로 그렇게 기도하면서 해야 될 일이 뭡니까?
오늘 주님께서 하신 거예요.
소원을 맞추는 겁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소원을 맞추는 거예요.
하나님 아버지와 소원을 맞추면서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합니다’라는 이 기도를 하려면 우린 그냥 해서 되는 게 아니에요.
주님은 그냥 당신 혼자서 피땀을 흘리면서 불법자의 자리에 처해 갖고 맞춰가셨지마는, 우리는 그냥 맞출 수가 없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아니면 맞춰 지지가 않아요.
그래서 주님의 십자가에서 무조건 내 소원을 다 죽이는 겁니다.
어느 때까지 소원을 죽여야 되느냐?
아~무 소원이 안 생길 만큼 내 마음이 하나님으로 기쁘고 만족할 때까지.
그때까지 주님의 십자가를 붙잡고 기도하는 겁니다.
그래서 정말 하나님 때문에 만족해 가지고, 더 이상 바라는 게 없고 소원이 없어질 때, 그때 이상하게 소원이 생깁니다.
그 소원은 나를 위해서 하나님의 갖고 계신 소원입니다.
먼저 이 세상에서 소원이 없어질 만큼 하나님으로 마음을 채우자!
그러려면 십자가에서 내 마음 속에서 생겨나는 이 소원들에 대해 죽어야 됩니다.
소원을 죽여야 됩니다.
소원을 죽이고, 하나님으로 내 마음을 만족하게 하고, 내 마음이 배부르게 하고, 내 마음이 기뻐지는 상태를 경험했을 때, 이 세상에 대한 소원이 나타날 때 그것은 하나님이 나를 위해 갖고 계신 소원이고 나를 통해 이루시려는 소원이다.
그래서 시편 37편 4절에 이렇게 말씀하지 않습니까?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라’
‘여호와를 기뻐하라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라’
우리는 내가 갖고 있는 소원이 이루어지면 기쁘잖아요.
거꾸로에요, 기쁨이 먼저입니다, 기쁨이.
이 세상에 대한 소원이 이루어져서 기쁜 게 아니라, 이 세상이 아니라 마음 안쪽에 있는 천국에 계신 하나님으로 기쁘고, 그 기쁨 속에 있을 때 내 마음에 소원이 일어나면, 그 소원 속에는 죄가 없는 하나님이 갖고 계신 소원이 내 마음에 전달 된 것이니까, 그 소원이 다 이루어진다, 이겁니다.
먼저 기뻐하는 겁니다. 소원이 이루어져서 기뻐하는 게 아니라.
여러분! 어떻게 보면 인생은 간단해요.
너무 쉬워요.
너무 쉽고 너무 큰 기대감을 가지고 도대체 하나님이 오늘 여기서 나의 삶을 통해서 어떤 소원을 이루어 가시려고 하시는 건가?
하나님 당신이 갖고 계시는 wish, 하나님의 dream을 어떻게 이루어 가실 것인가?
아~! 기대에 차서 보면 돼요.
그러기 위해서 나는 한 가지만 하면 됩니다.
내 인생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버지 하나님이 언제 24시간 1초도 빈틈없이 나를 위해 소원을 갖고 계시기 때문에,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소원을 십자가로 죽이는 일, 그거 한 가지만 하면 되는 겁니다.
그러면 에덴이 되는 거예요.
그러면 십자가 나무가 선악과나무로 재생이 되고, 내가 에덴에서 살게 되는 겁니다.
‘소원을 죽여 봐! 죽여 봐!’
왜?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wish를 갖고 계시고, dream을 갖고 계시고, 나를 위해 이루고 싶으신 world, 세계를 갖고 계시니까.
소원을 죽이기만 하면 됩니다.
죽여 보세요.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이렇게 보면 소원이 생기는 것도 감사합니다.
왜냐하면, 그 소원을 십자가에서 주님과 함께 죽음을 통하여 죽임으로써 하나님의 소원과 맞춰질 수 있게 때문에.
하나님,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소원을 죽이기만 하는 하루가 되게 해 주시고, 그럼으로써 나를 위해 갖고 계신 하나님의 소원이 속속들이 성취되어지는 하루가 또한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소원 죽이기를 결심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첫댓글 주님 지신 십자가를 외면하고 십자가가
무엇이라느니 가타부타 주님을 슬프게
했지요이제는 십자가와 하나되어
꿈을 바꿔 입술의 열매를 맺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