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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미르얌의 노래
탈출 15,19-21
5월 18일 기념하는 미사에서 광주대교구 김희중 대주교님의 강론말씀을 쭈욱 읽어보셨는데, 신부님께는 굉장히 마음에 와닿는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는 당신이 메시아라는 표징으로서
기적과 함께 가난한 이들에 대한
복음을 선포를 제시하셨습니다.
여기서 가난한 사람들은
단순히 물질적으로 가난한 것뿐만 아니라
어떠한 형태로든지 불의와 부정으로 인해
부당하게 억압받고 소외된 사람들로
이해될 수 있을 것입니다."
5.18 광주민중항쟁 35주년 미사 봉헌 - 광주대교구장 김희중 대주교-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중에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신부님께서는 우리들이 세상안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들이 정체성을 지키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교회라는 것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인데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구조가 우리들이 그러한 복음적인 가치를 지키면서 살아갈 수 없도록 되어있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와 같은 세상에 구조외 조금 맞설 필요가 있겠다..라는,
많은 분들이 교회는 그런얘기 하면 안되는 것 아닌가? 라고 생각하시는데 교회가 그런 사회 윤리를 이야기하고 세상에 불의에 대해서 애기하는 것은 바로 그와 같은 뜻이다.
우리도 기도할 때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소서...라고 기도하는데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안에서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무엇이 그것을 막아서고 있는지 ?
그리고 그 막아서고 있는 세상의 구조 안에 우리도 조금 편승해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 교회도 나자신도 그런 것들에 대한 성찰은 필요할 것이라 생각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부분이 탈출기 15장과 어떻게 연결되냐하면?
탈출기 15장이라는 것이 결국? 이스라엘이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 여정중에 있는 것입니다.
그 여정중에 이스라엘이 자기, 라는 의식을 어떻게 가져가고 있는지, 어떤 자의식을 형성해 가고 있는지, 이런 것들에 관해서 우리들이 보고 있고 결국 나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에 관해서 우리가 계속해서 깨달아 가는 것, 그런데 결국 그리스도인이라면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관해서 깨닫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리스도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알고자 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하느님을 알아가는 여정 안에서, 나에게 선물 같은 것이 주어지는데
나의 정체성을 깨닫는 선물 같은 순간들에 관한 기도와 희망을 우리와 함께 나눌수가 있습니다.
오늘부터는 미르얌의 노래 보게 됩니다. 우리 성경에서는 모세의 노래 또는 바다의 노래에 마지막을 19절로 잡으셨습니다.
신부님께서는 모세의 노래는 15장 18절로 끝나고19절부터 새로운 단락이 시작된다고 하셨습니다.(탈출 15,19)
탈출기 15장18절에서 모세의 노래가 끝나고, 19절에서부터 이야기로 되돌아오는 것입니다. 비록 한줄이지만 그런데 이 19절을 읽어 봤더니 설명하시기가 까다롭다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모르는 내용이 아니라 이미 앞에서 귀가 닳도록 들었던 부분을 다시 한번 더 반복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학자들은 크게 두 가지 의견으로 나뉘는데
첫번째 집단은 19절은 편집자가 20절부터 나오는 옛 노래의 전승을 단순하게 옮겨온 것이다. 그래서 탈출 15,19-21이 본래부터 붙어있다고 보는 것이고 사실은 이 부분은 빼도 좋은데 여기에 붙어있게 되었다.
또 다른 학자들은 모세의 노래와 미르얌의 노래를 연결하기 위해서 일부로 탈출 15,19를 써 넣은 것이다. 라고 생각하는 주석학자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옛날의 전승이 아니라 후대에 요약이다. 라고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학자들도 아직 토론이 끝나지 않은 겁니다.
따라서 이것은 아주 오래된 전승의 한 부분이다. 아니다! 아주 나중에 만들어진 편집의 한 부분이다. 라고 보는 두 가지 의견이 있습니다.
신부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차차로 설명해 주시기로 하셨습니다^^
탈출 15,19절을 내용적으로 본다면,
탈출 15,19은 이야기의 새로운 전개가 아닌 독자의 입장에서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인 탈출14,21-29를 축약해서 반복하고 있습니다. 19절은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그 흐름에 따라 읽어온 독자에게 어떤 새로운 정보도 주지 않습니다.
탈출15,19절이 수행하는 문학적 기능으로 본다면,
탈출 15,20-21의 상황과 미르얌의 노래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즉 이 구절을 통해서 무엇때문에 미르얌이 여자들과 함께 손북을 들고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게 되었는지 설명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21절에 등장하고 있는 미르얌의 노래도 내용을 보자면 앞선 탈출 15,21모세의 노래 시작 부분과 거의 동일합니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다루고 있는 탈출 15,19-21의 내용은 이야기의 관점에서나 또는 노래의 관점에서 앞선 내용을 요약하고 축약하는 그런 반복적인 모습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경제성의 관점에서 본다면 굳이 이 노래가 여기 있든 없든 우리에게 사실은 어떤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굳이 어떤 편집적 의도에 있어서 여기다 이 세 구절을 집어 넣은 겁니다.
그렇다면 이 세 구절은 굳이 편집자가 이것을 반복할 수 있는 의도를 우리가 발견할 수 없다면 옛 전승은 어떤 목적에서 그대로 가져온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겠다.
그리고 탈출15,19-20절의 이야기체 부분은 탈출 15,21절의 노래체 부분이 만들어지는 원인을 설명하는 원인담적 기능을 하고 있는것 처럼 보인다. 라는 것이 신부님의 이해입니다.
조금은 복잡한 말씀을 드렸는데, 이해하셨습니까? 친하니까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탈출 15,20 절에서 처음으로 미르얌이라는 인물이 소개됩니다.
아직까지 등장하지 않았던 인물입니다. 이 인물은 히브리 말로 너비아, 라는 히브리말 단어가 이 인물을 수식하면서 사용되는데,
탈출 15,20 의 직역에서
그리고 미르얌이 들었다. 예언녀 아론의 누이
여기서 직역을 하시느라 칸칸으로 나누셨는데, 미르얌이 들었다. 그 미르얌은 한편으로는 예언녀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아론의 누이다.
따라서 예언자적 기능을 하고 있고,
예언자적 기능이란?
하느님의 말씀을 받고 그 말씀을 백성에게 전하는 것.
아론의 누이라는 것은?
아론의 누이에서 가장 1차적인 것은?
아론은 1차적 기능이 사제이므로 아론의 누이 미르얌은 예언직과 관련되고 사제인 아론과도 연관된 인물
탈출 2장에서 모세가 아기였을 때 그를 구한 그의 누이에 관한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탈출 15,20에서의 미르얌이 모세를 구한 누이와 동일인물인지는 명확하게 밝혀 지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이 미르얌이라는 인물은 구약에서 또 그렇게 자주 언급되는 인물도 아닙니다. 오경을 제외 한다면 1역대 5,29; 미카 6,4 에서 언급 될 뿐입니다.
미르얌
º 1역대 5,29 : 아므람의 자녀는 아론, 아론의 아들은 나답, 아비후, 엘아자르, 이타마르이다.
º 미카 6,4 : 정녕 나는 너희를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왔고 종살이하던 집에서 너희를 구해 내었으며 너희 앞으로 모세를, 아론과 미르얌을 보냈다.
따라서 1역대기나 미카서나 모두 3남매를 얘기합니다. 아론, 모세 그리고 미르얌. 따라서 미르얌이 단독으로 언급되는 경우는 없습니다. 아론의 누이 혹은 모세와 아론과 함께 뒤따라 나오는 그와 같은 인물입니다.
1역대 4,17절에서도 '미르얌' 이라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우리가 탈출기에서 만나는 미르얌과는 다른 사람입니다.
앞서 말씀해주신 미르얌은 예언녀, 아론의 누이로 소개되므로 두 관점 즉, 예언적 관점, 그리고 제사적 관점에서 이 인물을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앞. 으. 로.
구약에는 미르얌 외에도 예언녀라고 불리는 극소수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판관 4,4절의 드보라는 예언녀일 뿐만 아니라 여자 판관이기도 합니다. 아주 드문 경우죠. 여자 수퍼맨입니다.
2역대 34장, 2열왕 22장에 나오는 훌다 예언녀
느헤미야 6장에 나오는 노아드야,
이사 8장에서 나오는 이사야의 예언녀
: 이사야 8장에 하느님께서 이사야가 아들을 낳으자, 그 아들의 이름을 '마헤르 살랄 하즈바즈' 라고 하라고 이르십니다. 이사야의 부인
예제 13장을 보면 예언하는 딸들, 요엘 3장을 보면 아들들과 딸들이 예언을 할것이다. 따라서 예언직이라는 것은 성에 구외받지 않습니다.
▶ 예언직의 카리즈마(은총)는 남녀를 구분하지 않음
▶ 반면에 사제는, 여자 사제 구약에서 예를 찾기가 조금 어려운 것 같습니다. 물론 신전에서 신전을 위하여 일하는 여성들에 관한 이야기는 나옵니다만, 이것을 사제직과 연결시킬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은 구약의 전통에서는 조금 판단하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신약에서도 예언직을 수행하는 여인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마리아와 엘리사벳이 만납니다. 그럴때 엘리사벳이 마리아에게 불르는 그와 같은 노래의 특징은 엘리사벳이 마치 예언녀처럼 마리아에게 등장하는 그런 모습들 만날 수 있습니다.
또는 아기 예수를 성전에 바치러 갔는데 거기에서 만나는 시메온과 안나의 등장으로 예언적 직무의 수행들을 볼수 가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딴지를 걸고 싶어하는 것에는,
미르얌이 모세와 아론의 누이인데 텍스트에는 아론만 나옵니다. 이게 어떻게 된것이냐?
첫번째로 설명하는 사람들은 모세와 아론의 관계
모세와 아론은 같은 레위 지파이기 때문에 형제라고 불렸지만 사실은 모세와 아론은 혈연 관계가 아니다
⇒ 1역대 5,29 ; 미카 6,4의 대립
신부님께서 미사를 드리실 때 형제 자매 여러분~~ 하고 부르시듯이, 그렇다고 신부님과 신자분들이 혈연관계는 아닙니다.(민법적인 면에서는 아니고 하느님의 질서안에서는 형제 자매)
그래서 혈연관계로 볼수 있는 것은 아론의 누이일 뿐이다. 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그보다 조금더 강력한 해석으로는 모세와 아론의 관계
구약에서 여성을 언급할 때는 그 보호자가 누구인지를 꼭 밝혀야 합니다. 따라서 만약에 아직 미혼인 딸인 경우에는 '누구의 딸' 혼인을 했으면은 '누구의 아내' 시집갔는데 남편은 죽고 아들만 있을 때는 ' 누구누구의 엄마' 식으로 그 여성이 누구의 보호아래 있는지를 꼭 밝히는,
여기서 미르얌은 1차적으로 아론의 보호를 받는, 따라서 잠을 잘때 아론의 천막에서 ( 집, 혹은 집안이라는 단어가 중요하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미르얌은 집으로 속하면은 모세의 집안이 아니라 아론의 집안(천막)에서 함께 생활했기 때문이다.
신부님께서도 두번째 주장이 조금더 설득력이 있는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 미르얌이
탈출 15,20 직역
미르얌이 손북을 그녀의 손에 들자
모든 여인들이 나갑니다.
손북의 모양은 우리가 알고 있는 탬버린에서 찰랑거리는게 빠진 모습^^
가죽으로 만들어서 북을 치는데 , 고대 사회에서 이 북의 소리는 중간을 치면 그렇게 좋은 소리가 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 손으로 잡고 끝부분을 치면서(가장 자리부분) 연주하는 악기인데 주로 춤을 출때 리듬을 북으로 조정을 하는 (사물놀이에서 전체적인 리듬을 상쇠가 앞에서 박자를 조절) 미르얌의 모습과 다른 여인들도 그 박자에 맞추어서 자신의 손북을 들고 춤을 추는 그런 그림으로 전체적인 장면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손북은 구약에서 꽤 자주 나옵니다.
판관 11,34에서는 입타가 암몬사람들과 전쟁을 하는데, 하느님께 자신이 이 전쟁에서 이기면 자신이 집으로 돌아올 때 맨 처음에 자신을 맞이하는 사람을 하느님께 봉헌하기로 하였고( 고대의 관습이었고 입타가 그런 맹세를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고대 사회에서는 간절한 소원이 있을 때 사람을 제물로 쓰는 일이 있었던 것으로) 하나 밖에 없는 자신의 딸이 손북을 치면서 나오는 겁니다.
아버지가 그런 맹세를 했으니 자신이 제물이 되는게 당연하다고 하면서 두달동안의 시간동안 친구들과 함께 길을 떠나서 자신의 삶을 정리하고 돌아와 아버지의 약속처럼 제물이 되는 입타의 딸..슬픈 이야기입니다.
1사무 18,6 다윗과 사울이 함께 돌아오는 장면에서 '사울은 천명을 죽이고 다윗은 만명을 죽였다' 라는 유명한 노래가 나오고 그때부터 사울이 다윗을 질투하게 됩니다.
위의 내용을 종합해 보면 손북은 젊은 여자들의 악기였습니다.
그렇다면 그 춤은?
춤을 히브리어로 머홀라,라고 부르는데
그 머홀라 라는 어감안에는 '돈다' 라는 뜻이 담겨있습니다. 그런데 '돈다' 라는 것에는 두 가지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는 지가 지 자리에서 뱅글뱅글 도는 것과, 또 하나는 한 열명이서 우리의 강강수월래 처럼 빙빙빙 돌면서 추는 춤이 있습니다. 여기서는 함께 추는 춤이다 보니까 우리가 생각하는 '윤무' 가 아닐까..여러사람이 원을 만들어서 돌면서 할수 있지 않을까..하는 것이 일반적인 학자들의 이해입니다.
아가 7,1에서는 한줄로 도는 것도 있고 두줄로 도는 것도 있는 그와 같은 윤무
유딧 15,12-13 ~~ 신약에서 예수님이 예루살렘 입성할 때 사람들이 호산나를 외치면서 옷이나 나뭇가지를 깔고 춤추면서 예수님과 함께 가는 모습이 연상됩니다.
조금 문제가 되긴 하는데요?
시편의 맨 마지막입니다.
시편 149,3 거기서도 춤이라는 단어는 머홀라인데, 마홀 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고, 춤인지 악기인지, 학자들이 의견을 일치하지 못합니다. 그런에 우리말 성경에서는 춤이라고 번역하셨습니다. 어떤 악기일 수도 있습니다.
시편 150,4 여기서 손북이 나오는 것으로 봐서 이 부분에서의 마홀은 아마도 춤이겠다. 라고 생각하는게 더 옳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남성형으로 쓰였느냐?? 아마도 남자들이 추는 춤이라서 남성형으로 쓰인것이 아닐까? 라고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탈출 15,21 직역
미르얌이 그들에게 답했다
탈출 15,21 직역
노래했다, 노래를 이끌었다.
“답했다” 라는 동사가 쓰이는데, 답한다기 보다는 여기서 의미는 노래했다. 또는 노래를 이끌었다. 라는 번역이 제일 합당한 번역인 것 같습니다.
이것이 어떤 뜻이냐 하면?
우리 말에서도 예를들어 '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그리고 나서 뒤에 텍스트가 붙습니다. 그리고 다시 전체가 그 후렴부분을 반복합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그리고 그 두번째부터는 사실은 그 지역마다 또는 부르는 사람들 마다 자신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작사를 하기도 하고 텍스트를 만들기도 하고 합니다.
또는 그렇게 보면은 그 후렴구가 노래가 나오고 후렴이 나오는게 아니라 후렴으로 나오는 후렴부분부터 먼저하고 그 다음에 내 이야기들 거기에 주어진 텍스트에 따라서 또는 자유로운 텍스트에 따라서 내 이야기를 노래하고, 그리고 다시 그 후렴을 얘기하고ㅡ이쯤 되면?
우리가 성당에서 미사할 때 응답송 하는게 생각이 나야합니다.
응답송 할 때 먼저 독서자가 후렴부분을 한번 읽어주면 공동체가 다함께 그 후렴부분을 반복하고 그 다음에 독서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고유한 부분을 읽고 공동체는 독서자와 함께 그 후렴부분을 또 반복합니다.
따라서 여기서는 그런 의미에서 대답했다는게 이제부터 나오는 이 텍스트를 누군가가 주 노래를 부르면은 항상 여인들과 미르얌이 이런 후렴으로 뒤에서 이야기 하는데 그 후렴을 미리 앞에서 이끄는 기능으로서,
이것을 교회 용어로는 안티폰(Antiphon,계음- 교대로 부르는 노래)이라고 합니다.
이 문장에 가장 적합한 이해는?
탈출 15,21 직역
그리고 미르얌이 그들에게
(그들을 향해) 노래를 이끌었다.
그 노래는 다음과 같은 내용입니다.
탈출 15,21 직역
"야훼를 위하여 노래하여라.
왜냐하면 그는 그지없이 높기때문에
그는 말과 기병을 그 바다 안으로 내던졌다."
여기서 미르얌이 그들에게 노래했다. 라고 하는데 그들은 누굴까요??
모든 여인들 일 수도 있고, 2인칭 남성 복수가 쓰였습니다. 따라서 앞에서 모세의 노래를 모세와 함께 부른 그 남자들이 그들이 될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재밌는 것이? 여기서 이 노래의 첫 부분에 나오는
'야훼를 위하여 노래하여라'
⇒ 우리말로는 구분이 안가는데 히브리 말로는 노래하여라! 라는
명령형도 2인칭 남성 복수형입니다. 따라서 미르얌이 다수의 남성들을 향해서 이렇게 노래했다. "야훼를 위하여 노래하여라.왜냐하면 그는 그지없이 높기때문에..." 라고 이해할 수도 있고
하지만 히브리 말에서는 문법이 흐트러지는 경우가 많이 있기때문에 앞서 몇몇 분들이 대답하신 대로 미르얌을 따라 손북을 치면서 밖으로 나온 그 여인들이 라고 볼수도 있겠습니다.
비슷한 2인칭 남성 복수명령형이 ....
기쁨에 넘쳐서 하느님께 노래 불러드린 적이 있으세요?
신부님은 신학교에서 가장 기쁘게 불러드렸던 노래가 신학교에서는 요?
요즘도 할겁니다. 저녁기도가 끝나고 마지막 노래를 부르고 대침묵에 들어가는데 그 마직막 노래가 방학하기 8일 전부터 바뀝니다.
'오 예수" 라는 노래를 부릅니다. 라틴말로~
그래서 8일 동안 마지막 노래를 '오 예수' 라는 노래를 부르는데 그 노래의 내용이 신학교라는 보금자리를 떠나 방학이라는 세상에 나가서 방학을 지내고 와야하니까 '예수님, 그 시간 동안 저희를 지켜주십시오.'라는 노래입니다.
그런데 '오 예수'를 부르면서 사실은 다 방학을 기다리니까 '오 예수'는 하느님의 보호를 바라는 간절한 기도인데, 노래가 밝아집니다 ㅎㅎ
정작 부활때가 되서 기쁜시기의 부활에, 부활 노래를 부르는데,
노래를 너무 쳐지게 불러서 당시 학장 신부님으로부터 야단맞았던 그런 기억도 있으십니다.^^
탈출 15,19 직역
파라오의 말이 그의 병거와 그의
병거몰이 병들과 함께 바다 안으로 들어왔을 때
이스라엘 자손들은 걸어갔다
마른 땅 안으로
따라서
탈출 15,19 직역
파라오의 말은 바다 안으로
이스라엘 자손들은 마른 땅 안으로
그리고 야훼는 되돌렸다
그들 위로 그 바다의 물들을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들은 걸어갔다.
마은 땅 안으로 그 바다 가운데
끊임없이 대조시키는 겁니다. 파라오의 말과 이스라엘, 파라오와 이스라엘 자손들, 이집트는 바다 안으로, 물들 속으로
반면에 이스라엘은 마른 땅 안으로, 그 바다 가운데를 가로질러, 이런식의 대조를 볼수 있어야합니다.
탈출 15,20 직역
'모든 여인들이 나갔다' 이 동사가 언제 쓰이냐면
▶ '이스라엘이 이집트로부터 나갔다' 같은 동사 사용
▶ 해방, 열린 공간으로 나감의 의미
여기서 나간것이 어디서 어디로 나갔는지는 알수가 없습니다.
아마 그들이 머물고 있던 캠프로부터 전쟁에서 이기고 온 용사들이 저 멀리서 오니까 여인들이 캠프로부터 나와서 그 용사를 맞이하는 일반적인 그런 어떤 그림들과 맞추어서 동사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혼성으로 이루어진 합창단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예를들어
2역대 35,25
예레미야도 요시야를 위하여 애가를 지었다.
그래서 요시야를 애도할 때에는 오늘날까지도
노래하는 남녀들이 모두 그 애가를 부른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것을 이스라엘의 규정으로 삼았다.
그 애가는 애가집에 실려 있다.
그들이 성전에서 제사를 지낼때 노래를 부르는 남녀 합창단에 관해서 ㅡ
요즘은 성인들 합창단은 남자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신부님께서 양천구쪽에 있는 성당에 한번 가서 미사를 하는데 남성으로 한 스무명, 이루어진 합창단을 보고서 굉장히 놀라셨다고 합니다.
성가대
º 에즈 2,65 : 이 밖에도 그들의 남녀 종이 칠천삼백삼십칠 명 있었고, 남녀 음악가가 이백 명 있었다.
º 느헤 7,67 : 이 밖에도 그들의 남녀 종이 칠천삼백삼십칠 명 있었고, 남녀 성가대가 이백사십오 명있었다.
따라서 성가대의 규모가 한 이백 명에서 그걸 넘어가는 그런 규모에 성가대가 있었고 남성과 여성이 함께 부르는 것은 아니고 혼성교창, 안티폰을 하는 , 남자가 부르고 여자가 부르고 남자가 부르고.....남자들이 주 텍스트를 부르면 여자들이 후렴구를 부르면서 왔다갔다 하는 그와같은 것들~~
60년대 말 혹은 70년대 초반에 성당에 가서 미사를 드렸던 것 기억나십니까??
당시에는 남자들과 여자들이 같이 앉지 않았습니다.
남성들은 다 오른쪽에 앉고 여자들은 다 왼쪽에 앉고, 당시에 교창을 했습니다.
몇몇 탈출기 연구가들은 모세와 미르얌의 노래와 함께 탈출기의 전반부가 마무리 된다고 생각합니다. 신부님은 조금 다르게 나누시는데,
많은 탈출기 연구가들이 탈출기를 그냥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누는데 신부님은 모두 여섯 부분으로 나누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냥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누는데 어디까지가 전반부냐 하면?
미르얌의 노래까지가 전반부라고 봅니다.
신부님은 조금 다르게 보십니다. 복습의 의미에서
º 탈출 1,1- 6,27 모세의 부르심
º 탈출 6,28- 13,16 탈출과 해방
º 탈출 13,17-22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떠나다 (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부분)
* 탈출기 책에 다 있습니다 !!
지금 우리가 일어나고 있는 이 장소는 탈출 13,17-18,27 사건의 장소
⇒ 이집트 밖 광야에서 일어나는 사건
지리적인 관점에서 이집트가 아직 등장하지만 이집트 밖에서 일어나는 사건으로 광야에서 일어나는 사건으로 전체를 봅니다.
그리고 나중에도 보면 참으로 재밌는게 미르얌이 있습니다. 그리고 탈출 15,20-21도 미르얌의 노래입니다.
그 다음에 뒤따라 나오는 이야기에서 중심테마가 마라 입니다.
(탈출 15,22-27 모세가 마라에서 쓴 물을 단 물로 바꾸다)
그 다음의 이야기에서 나오는 중심 테마는 탈출 16,1-36 만나(만)와 메추라기 입니다
따라서,
미르얌 - 마라 - 만 - 그 다음 이야기에 나오는 중심 테마는 ? 아말렉
탈출 17,8-16 아말렉족과 싸워 이기다.
음성학적으로 공통점이 있습니다.
음성학적 공통언어 미르얌 ⇒ 마라 ⇒ 만나 (만)⇒ 아말렉 |
이게 우리한테는 생소합니다. 과거에 히브리 사람들이 텍스를 쓸때는, 옛날 사람들은 글을 잘 몰랐습니다. 듣고 외우게 해야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 이야기와 다음 이야기가 내용적인 연결점이 없더라도 그 안에 체인처럼 앞에 이야기와 두번째 이야기를 이어줄 수 있는 한 단어가 있던지, 아니면 한 주제가 있던지 아니면 어떤 공통점이 있으면서 전체가 하나로 꿰어지는 그와 같은 것을 좋아합니다.
편집자들이ㅡ
전에도 말씀하셨듯이, 그게 꼭 그렇게 연관될 것 같지 않은데 이상한 그런 연상작용,(association) 일어나는 겁니다.
원숭이 **는 빨개 ㅡ 빨간 것은 사과ㅡ 사과는 맛있어 ㅡ 맛있으면 바나나...이런식으로 백두산까지 가서 돌아갔습니다.
전체를 이집트를 떠나서 시나이 광야까지 가는데 그 사이에 있는,
탈출 13,17-18,27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떠나 시나이 계약을 맺기전 중심사건은? 갈대바다를 건너는 사건)으로 보는 겁니다.
모세와 미르얌의 두 노래의 양식에 대해서는 매우 다양한 해석이 있어왔습니다. 두 노래는,
찬미 노래, 임금의 즉위 노래, 승전 노래, 감사 노래 등으로 해석되어 왔습니다.
사실상 그렇게 해석될 수 있는 다양한 문학적 요소들이 탈출기 15장에서 발견됩니다. 따라서 노래 안에서 발견되는 ,
내적 내용과 형식만으로는 이 노래가 본디 어떤 목적을 가진 노래인지 결론짓기 어렸습니다.
하지만 그 문맥에서 보면 모세의 노래와 미르얌의 노래는 일차적으로 갈대 바다에서 야훼의 승리를 기념하는 노래이고, 그 결론을 보자면은 그 야훼가 임금이 되는 노래로 전체의 노래를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반면에 이 두 노래에 관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문학적 의문을 제기해야 합니다. 우리는 조금은 질문을 가졌을 때 그것이 해결될 수 있는, 질문하는 것에 대해서 마음을 열필요가 있습니다.
▶ 모세와 미르얌의 노래에 대한 신부님이 가지시는 세가지 문학적인 의문?
왜 이 두 노래는 이집트 탈출은 생략한채 이집트에 대한 야훼의 승리만을 노래하는가?
앞선 이야기에서는 하느님의 현존을 이야기 하는데 있어서 빠지지 않는 문학적 모티브가 등장하는데, 그것은 구름기둥입니다. 그런데 이 노래에서는 왜 구름 기둥이 등장하지 않는가?
이스라엘 백성이 무사히 바다를 건너는 장면에 관해서는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이 노래는 야훼가 이집트와 대결해서 승리하는 것만을 얘기합니다. 또는 다른 민족과의 대결에서도의 승리, 조금 이상합니다.
라는 질문을 갖고 계십니다...
감사합니다 🙏💓
첫댓글 아멘~!! 고맙습니다~^^
아멘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