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토요일, 아침 여덟시 수원화성행궁 앞 주차장을 출발한 한국경기시인협회 회원 사십여 명은 서울 양재역에서 일부 회원들과 합류하여 임진각에 도착했다. 마침 토요일이고 보니 중국관광객들을 비롯하여 수많은 국내외 탐방객들로 붐볐다.
나는 이곳을 다녀간 지가 퍽 오래되어 몰라보게 변해있어 놀랐다. 녹슬고 부서진 기차 화통 전시장에서는 피난시절의 옛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어 그날의 참혹한 상황을 말해주듯 가슴을 저며 왔다. 그런 울컥한 기분을 달래기라도 하듯 임진각 종각 앞에 우리는 단체 기념촬영을 하고, 타종도 할 수 있었다. 알고 보니 누구나 1만 원을 내면 일곱 번 종을 울릴 수가 있었다.
임병호 회장을 비롯하여 여러 회원들이 함께 번갈라가며 모두 가슴 시원하게 힘껏 타종을 했다. 통일의 문아 열려라, 터져라, 깨지도록 쳤다. 그런 바람에 어깨가 아프다며 파스를 찾는 회원도 있었지만 덩~덩~임진각 철조망 너머 북한 땅으로 울려 퍼지는 그 소리는 정말로 명징하고, 이곳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까지 시원스럽게 울려주지 않았을까싶었다.
한국경기시인협회 회원들 DMZ 분단 현장 문학기행 _1
우리는 제3땅굴 견학과 도라산 전망대 현장으로 가시 위해 각자 신분증을 제출하고 수속절차를 거쳐야 했다. 모든 것은 임애월 사무처장이 동분서주하며 애를 많이 써주셨고, 며칠 전부터 두 번이나 문자메시지를 보내며 신분증 소지를 당부했건만 박 아무개 회원께서 까먹고 그냥 왔다고 하였다. 집에서 스마트폰으로 주민등록증 사진을 찍어 보내와 잘 해결 되어 그런 줄로만 모두가 알았다.
임진각을 출발하여 그로부터 한 십분 달렸을까. 비무장지대 검문소에서 다시 차내 신분증 확인을 하는데 그 헌병, '한분이 신분증이 없으므로 들어갈 수가 없다'고 하는 것이다. 일반 사회에서 같았으면 '군인양반, 요즘 같은 스마트폰 시대에 이것이면 되었지 뭐, 더 보자고 그러시오.' 하고 사정도 해보았겠지만 그 누구도 두말없이 차를 돌려야만 했다.
다시 임진각으로 돌아와 회장님의 신원보증을 서고 절차를 거쳐 신분증을 대신할 수 있었다. 시원스럽게 뚫린 북으로 가는 길 양쪽에는 철조망이 쳐 있고, 누렇게 익어가는 골짜기의 들에는 청정한 바람에 벼들이 풍년을 약속하고 있었다. 텔레비전으로 만 보아오던 남북출입국 사무소를 지나 제3땅굴 입구에 도착하니 기다리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한국경기시인협회 회원들 DMZ 분단 현장 문학기행 _2
각자 소지하고 있는 가방은 보관함에 넣고 헬멧을 착용하니 그야말로 광부들처럼 보였다. 북한군이 파들어 온 땅굴을 향해 진입하는 데만도 15 도쯤 경사진 굴을 358미터나 들어가야 했다. 그곳에부터 평면 굴이 나오고, 적 땅굴 길이는 435미라고 했다. 모두가 암석의 지역으로 천장이 낮아 웬만한 사람은 허리를 굽혀야만 했다. 턱, 턱 헬멧이 천장에 부딪치며 공포의 소리가 이만저만이 아닌 가운데 진땀을 흘리며 반환점까지 돌아오니, 장장 왕복 3킬로미터는 더 되었다.
어찌 이런 바위산을 이용하여 엄청난 침투 계획을 세웠을까싶었다. 사람이 오고가고 할 수 있는 굴을 따라, 이곳 제3땅굴 말고도 여럿 있다는데 북한군이 무기를 갖고 동시에 침투해 온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상상만 하여도 눈앞이 캄캄했다. 그런데 우리 남한은 어떤가. 나는 땅굴을 나온 뒤에도 신통한 것은 아직까지 이런 땅굴을 두고는 남한의 조작극, 운운하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한 것 같았다.
아무튼 땅굴 견학을 마치고 도라산 전망대로 올라가는 길은 경사가 드높았다. 개성공단이 희미하게 보이고, 남북 분단의 경계선 너머로는 대성동 마을과 백사장 같은 황금들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안보 설명 장 해설 병사의 위트 넘치는 입담도 이곳 관광의 명품일 것 같았다. 망원경으로 본 개성 땅 어딘지 하얀 차가 가고 있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전망대를 배경으로 하여 단체 기념촬영을 한 뒤 망향 제단이 있는 이곳 마을 부녀회 식당으로 갔다. 그때 신분증 미소지로 걱정을 끼쳤던 박 회원께서 미안했는지 북한산 양주 한 병을 사오는 바람에 모두가 입이 즐거워들 했다. 어디 입뿐인가. 다시 한 번 남북 분단의 현실을 실감하게 했고, 이 자리가 얼마나 가슴 저리는 예민한 곳인가를 생각하게 해주었다.
늦은 점심식사를 끝내고 망향제단 앞에 나와 시낭송회가 시작되기에 앞서 자리를 놓고 논란이 되기도 했다. 신성 모독이라는 측과 아니라며 통일기원을 하는 제단 앞에 순수, 신성한 시인들이 찾아와 통일기원 시 낭송회를 하는 것은 금상첨화다라고 결론이 났다.
한국경기시인협회 회원들 DMZ 분단 현장 문학기행 _3
그러나 어느 자리나 처음 시작하면 서로 사양하는 미덕이랄까. 임병호 회장이 인사말과 함께 '적군묘'를 낭독하는 것으로 시 낭송회는 비로소 분위기가 무르익어갔다. 현장 즉흥시를 쓰기도 하고, 미리 준비해온 시를 암송하는가 하면 저마다 통일을 기원하는 심상들을 여과 없이 토해냈다. 새가 되어 나비가 되어 가신다던 아버지, 오늘 디엠제트 철조망 가시에서 보았다. 한 마리 나비가 되어 넘지 못하고 파닥이는 당신의 고향 길을 보았다. 며 나도 몸서리치듯 북쪽 하늘을 보며 외치고, 외쳤다. 가슴이 후련했다.
한국경기시인협회 회원들 DMZ 분단 현장 문학기행 _4
돌아오는 차 속에서 한국경기시인협회 임 회장은 "오늘 시 낭송회는 국제펜클럽한국본부 경기지역 위원회 회원들과 함께 한 자리였으며, 모두가 서로 같은 회원이기도 하여 더 뜻 깊은 자리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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