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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사무엘상 18:1–30, 20:1–42 (참조: 시편 59:1–17, 요한복음 15:13–15, 빌립보서 2:5–8)
핵심 명제: 세상의 권력욕은 타인의 탁월함 앞에서 살기 어린 시기와 의심의 눈길(아완)로 창을 던지며 스스로 자멸의 길을 걷지만, 언약적 사랑은 자신의 기득권과 왕위 계승권(겉옷과 군복)마저 기꺼이 벗어던지며 상대의 영혼과 하나로 결속되는(니크쉐라 네페쉬) 자기부인의 십자가적 연합을 완성한다.
1. 서론: 승리의 축제 뒤에 드리운 살기의 그림자
사무엘상 17장은 소년 다윗이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골리앗의 정수리를 깨뜨리고 피 묻은 거인의 머리를 든 채 사울 앞에 섰던 극적인 승리로 끝을 맺었습니다(1강).
이스라엘 전역은 열광의 도가니에 빠졌습니다. 개선하는 군대를 맞이하기 위해 모든 성읍에서 여인들이 소고와 꽹과리를 치며 춤추고 노래했습니다:
"여인들이 뛰놀며 노래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힉카 사울 바-알라파이브 웨-다위드 비-리브보타이브) 한지라" (삼상 18:7)
이 노래 한 구절은 사울 왕조의 비극과 다윗 왕조의 태동을 가르는 잔인한 분수령이 되었습니다.
사울은 "천천(thousands)"에 갇혔고, 다윗은 "만만(ten thousands)"으로 치솟았습니다.
이 군중의 찬양을 들은 사울의 마음속에서 지옥의 불길이 타올랐습니다:
"사울이 그 말에 불쾌하여 심히 노하여 이르되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내게는 천천만 돌리니 그가 더 얻을 것이 나라 말고 무엇이냐(오드 로 아크 하-멜루카) 하고 그 날 후로 사울이 다윗을 주목하였더라(와예히 사울 오엔 에트-다위드)" (삼상 18:8–9)
그러나 이 짙은 어둠과 질투의 창날 한복판에서, 성경은 인류 역사상 가장 신비롭고 숭고한 사랑의 결속을 대조적으로 클로즈업합니다.
사울의 맏아들이자 왕위 계승 서열 1순위였던 ‘요나단(Jonathan)’의 등장입니다.
정치학적 계산대로라면 다윗은 요나단의 왕권을 위협하는 가장 위험한 정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요나단은 다윗을 경쟁자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윗을 만나자마자 자신의 생명처럼 사랑하여, 자신의 왕세자 겉옷과 군복과 칼과 활을 벗어 다윗에게 건네주었습니다.
제2강은 두 영혼의 거룩한 묶임(니크쉐라 네페쉬), 기득권과 생명을 내려놓은 요나단의 언약 예식(메일과 마디이브), 사울의 눈에 서린 질투의 독기(아완)와 두 차례 벽을 뚫은 단창의 위협, 블레셋의 포피 백 개를 뚫고 쟁취한 미갈과의 혼인, 그리고 들판 바위 곁에서 흘린 두 남자의 피 끓는 눈물과 거룩한 입맞춤의 구속사적 의미를 심층 해부합니다.
2. 본문 주해: 묶인 영혼과 벗어준 왕세자의 겉옷(1) 니크쉐라 네페쉬(נִקְשְׁרָה נֶפֶשׁ): 영혼의 거룩한 매듭 (삼상 18:1)
골리앗과의 대화가 끝나고 다윗이 사울과 말을 마치는 바로 그 순간, 성경 기자는 전율스러운 한 문장을 기록합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기를 마치매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하나가 되어(네페쉬 요나탄 니크쉐라 비-네페쉬 다위드) 요나단이 그를 자기 생명 같이 사랑하니라(와예에하베후 요나탄 케-나프쇼)" (삼상 18:1)
{וְנֶ֥פֶשׁ\ יְהוֹנָתָ֖ן\ נִקְשְׁרָ֑ה\ בְּנֶ֣פֶשׁ\ דָּוִ֔ד}
{"웨네페쉬 예호나탄 니크쉐라 비-네페쉬 다위드"}
카샤르 (קָשַׁר $\longrightarrow$ 니크쉐라):
'밧줄로 꽁꽁 동여매다', '두 개의 끈을 하나의 단단한 매듭으로 묶어버리다'는 뜻의 니팔(수동형)입니다.
창세기 44장 30절에서 야곱의 목숨과 베냐민의 목숨이 "하나로 묶여 있다(케슈라 베-나프쇼)"고 표현할 때 쓰인 바로 그 단어입니다.
외모가 아닌 '중심'의 공명:
요나단은 사무엘상 14장에서 단 한 명의 무기 든 소년만을 데리고 믹마스의 블레셋 요새로 뛰어들며 외쳤던 영웅이었습니다:"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이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 (삼상 14:6)
요나단은 엘라 골짜기에서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 나가는 다윗을 보았을 때, 자신과 동일한 언약의 심장,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믿음의 주파수를 확인했습니다.
케-나프쇼 (כְּנַפְשׁוֹ):
'자기 생명처럼, 자기 영혼처럼.'
이것은 타락한 인간의 자기애(Self-love)를 거스르는, 오직 성령 안에서만 가능한 초자연적인 아가페적 사랑의 극치였습니다.
3. 핵심 원어 강해: 메일(מְעִיל)과 마드(מַד) — 왕권의 자발적 양도
요나단은 다윗과 더불어 언약을 맺고(카라트 베리트), 상상을 초월하는 행동을 단행합니다: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 같이 사랑하여 더불어 언약을 맺었으며(와이크라트 요나탄 웨-다위드 베리트) 요나단이 자기가 입었던 겉옷을 벗어 다윗에게 주었고 자기의 군복과 칼과 활과 띠도 그리하였더라(와이트파쉐트 요나탄 에트-하-메일... 웨-마디이브 웨-아드-하르보)" (삼상 18:3–4)
{וַיִּתְפַּשֵּׁ֣ט\ יְהוֹנָתָ֗ן\ אֶֽת־הַמְּעִיל֙\ אֲשֶׁ֣ר\ עָלָ֔יו\ וַֽיִּתְּנֵ֖הוּ\ לְדָוִ֑ד}
{"와이트파쉐트 예호나탄 에트-하-메일 아쉐르 알라이브, 와이트네후 레-다위드"}
(1) 메일 (מְעִיל, 겉옷)의 정치·영적 의미
메일: 고대 왕실에서 왕세자나 제사장이 입던 '신분과 지위, 권세의 상징인 예복'입니다.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입고 있던 '메일'은 그가 합법적인 차기 이스라엘의 국왕(Crown Prince)임을 증명하는 옷이었습니다.
와이트파쉐트 (וַיִּתְפַּשֵּׁט):
'파샤트(벗다)'의 히트파엘(재귀형)로, "누가 강요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몸에서 겉옷을 완전히 벗어 던지다"는 뜻입니다.
요나단은 다윗의 머리 위에 부어진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는 왕관을 차지하기 위해 다윗을 죽이려 하지 않고, 자신의 왕세자 겉옷을 벗어 다윗에게 입혀줌으로써 자신의 합법적인 왕위 계승권을 다윗에게 조건 없이 양도한 것입니다.
(2) 마디이브(מַדָּיו, 군복)와 무기(칼, 활, 띠)의 건넴
마드 (מַד): 장수의 군복.
군복과 무기는 군사적 지휘권의 상징입니다.
"다윗이여, 이제부터 내 칼과 내 활은 당신을 겨누지 않을 것이며, 내 군사적 권세는 오직 당신을 보호하는 방패가 될 것입니다!"
사울은 다윗의 옷자락을 찢으며 왕권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발악했으나(삼상 15:27), 그의 아들 요나단은 스스로 옷을 벗어 다윗에게 입혀주었습니다.
율법의 왕국(사울)은 강탈하려 하지만, 은혜의 언약(요나단)은 자기를 비워 내어줍니다.
4. 깊은 내면 해부: 사울의 질투와 아완(עָוַן)의 안목
다윗이 사울이 보내는 곳마다 가서 지혜롭게 행하자(사칼, שָׂכַל), 사울은 다윗을 군대의 장관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여인들의 찬양가("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가 울려 퍼진 바로 그날부터 사울의 영혼은 회복할 수 없는 지옥의 어둠 속으로 추락합니다.
"그 날 후로 사울이 다윗을 주목하였더라(와예히 사울 오엔 에트-다위드)" (삼상 18:9)
{וַיְהִ֥י\ שָׁא֖וּל\ עוֹיֵ֣ן\ אֶת־דָּוִ֑ד\ מֵהַיּ֥וֹם\ הַה֖וּא\ וָהָֽלְאָה׃}
{"와예히 사울 오엔 에트-다위드 메-하-욤 하-후 와할레아"}
아완 (עָוַן $\longrightarrow$ 오엔):
'눈(아인, עַיִן)'에서 파생된 분사형으로, "의심과 시기, 질투와 살기를 가득 품고 눈을 흘겨 째려보다(Eyeing suspiciously, Keeping a jealous eye on)"는 뜻입니다.
다윗을 바라보는 사울의 눈(에이나임)에 사탄의 독기가 서렸습니다.
질투(지기심)의 파괴성:
잠언 27장 4절: "분은 잔인하고 노는 창수 같거니와 투기 앞에야 누가 서리요"
아가서 8장 6절: "질투는 스올(지옥) 같이 잔인하며 불길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사울은 블레셋의 거인 골리앗 앞에서는 두려워 떨었으나, 이제 자신을 구원해 준 소년 다윗을 향해서는 살기 어린 원수로 돌변했습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린 자의 시선은 언제나 '비교 의식과 피해망상'에 갇혀 스스로를 파괴합니다.
5. 핵심 원어 강해: 악령의 난동과 벽을 뚫은 단창 (삼상 18:10–12)
질투가 문을 열자, 즉각 악한 영이 사울의 영혼을 장악했습니다.
"그 이튿날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힘있게 내리매(와티츨라흐 루아흐-엘로힘 라아 엘-사울) 그가 집 안에서 정신 없이 떠들어대므로(와이트납베 베-토크 하-바이트) 다윗이 평일과 같이 손으로 수금을 타는데 그 때에 사울의 손에 창이 있는지라 그가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다윗을 벽에 박으리라 하고 사울이 그 창을 던졌으나 다윗이 그의 앞에서 두 번 피하였더라(와야토스 다위드 미-파나이브 파아마임)" (삼상 18:10–11)
(1) 와이트납베 (וַיִּתְנַבֵּא): 거짓된 영적 광기
'나바(נָבָא, 예언하다)'의 히트파엘형입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드리는 참된 예언이 아니라, 악령에 사로잡혀 통제력을 잃고 헛소리를 지껄이며 발작하는 '귀신 들린 광란(Raving madness)'을 의미합니다.
다윗은 광기에 휩싸인 왕을 치유하기 위해 성령의 평안을 담아 손으로 정성껏 수금(킨노르)을 탔습니다.
(2) 아카 에트-다위드 우-바-키르: 벽에 박으리라
사울의 살인 미수:
사울은 들고 있던 거대한 단창을 온 힘을 다해 던졌습니다: "내가 저놈을 벽에 꿰뚫어 박아버리리라!"
와야토스 (וַיִּסֹּב):
'사바브(몸을 돌려 피하다)'에서 유래하여, 날아오는 찰나의 창날을 다윗이 민첩하게 피했습니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씩이나(파아마임)' 피했습니다.
사울의 두려움 (삼상 18:12):"여호와께서 사울을 떠나 다윗과 함께 계시므로 사울이 그를 두려워한지라(와이라 사울 미-리프네이 다위드)"
창을 쥐고 있는 권력자는 사울이었고, 맨손으로 수금을 타던 자는 다윗이었습니다.
그러나 진짜 두려워 떤 자는 사울이었습니다.
성령이 떠나간 자는 손에 칼과 창을 쥐고 있어도, 성령이 함께하시는 맨손의 의인 앞에서 영적 공포에 질려 떨게 됩니다.
6. 블레셋의 포피 백 개와 미갈의 사랑 (삼상 18:17–30)
창으로 다윗을 죽이지 못하자, 사울은 교활한 흉계를 꾸몄습니다:
"내 손을 그에게 대지 말고 블레셋 사람들의 손을 그에게 대게 하리라!" (17절).
사울은 자신의 딸 메랍을 주겠다고 미끼를 던졌다가 다른 사람에게 시집보냈고, 둘째 딸 '미갈(Michal)'이 다윗을 사랑한다는 소식을 듣자 또다시 덫을 놓았습니다:
"왕의 신하들이 이 말로 다윗에게 전하매 다윗이 이르되 왕의 사위 되는 것을 너희는 작은 일로 보느냐... 사울이 이르되 너희는 다윗에게 이같이 말하기를 왕이 아무 빙물도 원하지 아니하고 다만 왕의 원수의 보복으로 블레셋 사람들의 포피 백 개를 원하신다(비-메아 오르로트 펠리쉬팀) 하라 하였으니 이는 사울의 생각에 다윗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죽게 하리라 함이라" (삼상 18:22, 25)
오를라 (עָרְלָה $\longrightarrow$ 오르로트): '포피(Foreskin)', 즉 할례받지 않은 블레셋 남자들의 성기 표피입니다.
사울은 적진 깊숙이 들어가 블레셋 군사 100명을 죽이고 포피를 베어오는 과정에서 다윗이 반드시 칼에 맞아 죽을 것이라 계산했습니다.
다윗의 배나 되는 대승 (27절):
다윗은 부하들과 함께 출전하여 사울이 요구한 100명의 두 배인 '블레셋 사람 이백 명(마타임 이쉬)'을 쳐 죽이고, 그 포피를 온전히 세어 왕에게 바쳤습니다.
사울의 흉계는 도리어 다윗의 용맹과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온 천하에 입증하는 부메랑이 되었습니다.
사울은 미갈을 다윗의 아내로 내어줄 수밖에 없었고, 성경은 사울의 영적 파선을 다시 한번 쐐기 박습니다:"사울이 다윗을 더욱더욱 두려워하여 평생에 다윗의 대적이 되니라(와예히 사울 오예브 에트-다위드 콜-하-야밈)" (삼상 18:29).
7. 핵심 원어 강해: 에셀 바위 곁의 통곡과 작별 (삼상 20:35–42)
사울의 살기는 마침내 아들 요나단마저 창으로 찔러 죽이려 할 정도로 극에 달했습니다(삼상 20:33).
요나단은 아버지 사울이 다윗을 죽이기로 단단히 결심했음을 확인하고, 들판으로 나가 화살을 쏘아 다윗에게 비밀 신호를 보냈습니다: "화살이 네 앞쪽에 있지 아니하냐 곧 가라 여호와께서 너를 보내셨음이니라!"
사환을 성읍으로 돌려보낸 후, 바위 곁에 숨어 있던 다윗이 기어 나와 요나단과 마주합니다.
이것은 두 영혼의 지상에서의 사실상 마지막 깊은 만남이었습니다.
"아이가 가매 다윗이 곧 바위 남쪽에서 일어나서 땅에 엎드려 세 번 절한 후에 서로 입 맞추고 같이 울되 다윗이 더욱 심하더니(와이펠 레-아파이브 아르차 와이쉬타후 샬로쉬 파아밈 와이쉬쿠 이쉬 에트-레에후 와이브쿠 이쉬 에트-레에후 아드 다위드 히그딜)" (삼상 20:41)
{וַיִּשְּׁק֣וּ\ אִ֣ישׁ\ אֶת־רֵעֵ֔הוּ\ וַיִּבְכּוּ֙\ אִ֣ישׁ\ אֶת־רֵעֵ֔הוּ\quad עַד־דָּוִ֖ד\ הִגְדִּֽיל׃}
{"와이쉬쿠 이쉬 에트-레에후, 와이브쿠 이쉬 에트-레에후, 아드 다위드 히그딜"}
{"그들이 서로 입 맞추고 서로를 껴안고 울었으니, 다윗이 더욱 심하게 통곡하였더라!"}
(1) 나샤크 (נָשַׁק)와 바카 (בָּכָה): 언약적 사랑의 눈물
룻기 1장에서 오르바가 떠나갈 때 나누었던 인간적 작별의 입맞춤(룻 2강)과 달리, 요나단과 다윗의 입맞춤은 '피로 맺은 언약적 사랑(헤세드)의 성스러운 인침'이었습니다.
아드 다위드 히그딜 (עַד־דָּוִד הִגְדִּיל):
직역하면 "다윗이 (슬픔을) 더 크게 키울 때까지", 즉 "다윗이 숨이 넘어갈 정도로 격렬하게 소리 내어 통곡했다"는 뜻입니다.
왕궁에서 쫓겨나 이제부터 살을 에는 광야의 도망자로 전락해야 하는 다윗의 기막힌 운명, 그리고 자신을 위해 왕관도 버리고 목숨까지 걸어준 친구 요나단을 향한 찢어지는 고마움과 슬픔이 엉켜 터져 나온 눈물이었습니다.
(2) 영원한 평안의 축복 (삼상 20:42)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레크 레-샬롬) 우리 두 사람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영원히 나와 너 사이에 계시고 내 자손과 네 자손 사이에 계시리라 하였느니라 하니 다윗은 일어나 떠나고 요나단은 성읍으로 들어가니라" (삼상 20:42)
두 사람은 육신적으로는 헤어졌으나, 그들 사이에 세워진 '여호와의 언약(베리트 야훼)'은 영원히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이 언약은 훗날 다윗이 왕이 된 후, 요나단의 아들이자 두 발을 저는 절뚝발이 므비보셋을 찾아내어 왕의 식탁에 앉히는 위대한 은혜(삼하 9장, 10강)로 찬란하게 꽃을 피우게 됩니다.
8. 구속사적 절정: 겉옷을 벗어주신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
장 칼뱅과 존 오웬, 찰스 스펄전과 알렉산더 화이트는 요나단이 다윗에게 보여준 이 신비로운 사랑을, 하늘 보좌의 영광을 버리시고 죄인을 위해 당신의 옷과 생명을 아낌없이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사랑을 보여주는 구약 최고의 모형으로 해설합니다.
| 요나단의 사랑 (사무엘상 18, 20장) |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 (복음서와 서신서) |
| 신분: 사울 왕국의 합법적 왕위 계승자(왕세자) | 온 우주의 영원한 상속자이신 하나님의 독생자 |
| 자신의 왕세자 겉옷(메일)과 군복을 벗어줌 | 하늘 영광의 옷을 벗으시고 성육신하사 종의 형체를 입으심 (빌 2:6–7) |
| 다윗을 "자기 생명 같이 사랑함(케-나프쇼)" |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요 15:13) |
| 다윗이 왕이 되고 자신은 낮아지기를 기뻐함 | 죄인이 의인이 되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낮아지심 |
| 핍박받는 다윗의 곁에서 거룩한 중보자가 됨 | 대제사장이 되사 우리를 위해 하나님 우편에서 간구하심 |
요나단은 왕이 될 수 있는 모든 권리와 자격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었습니다.
인간의 본성대로라면 그는 다윗을 질투하고 제거해야 마땅했습니다.
그러나 요나단은 다윗을 사랑했습니다.
그는 다윗을 높이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왕관을 내려놓았고,
다윗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아버지의 분노와 살창을 온몸으로 막아섰습니다.
이 요나단의 모습 속에 누구의 얼굴이 겹쳐 보입니까?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하늘의 찬란한 영광의 겉옷(메일)을 미련 없이 벗어 던지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발가벗겨지사,
영적으로 헐벗고 굶주려 죽어가던 죄인인 우리에게
당신의 보혈로 짠 '순백의 의의 겉옷(Chiton of Righteousness)'을 값없이 입혀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종이라 부르지 않으시고 ‘친구(Philos)’라 부르시며(요 15:15),
우리를 영원한 멸망의 창날에서 건져내시기 위해
십자가 제단 위에서 당신의 목숨을 대속물로 내어놓으셨습니다.
요나단의 사랑을 덧입은 다윗이 광야의 시련을 이겨냈듯이,
오늘 우리는 십자가에서 나를 자기 생명처럼 사랑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 끊을 수 없는 언약적 사랑(롬 8:38–39)을 힘입어
세상의 어떤 핍박과 환난 앞에서도 넉넉히 승리하는 자가 된 것입니다.
9. 목회적 적용과 묵상(1) 네 안의 '사울의 눈(시기와 질투, 아완)'을 성령의 불로 태우라
지체의 성공과 칭찬 앞에서 당신의 마음은 어떠합니까?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 사울은 다윗을 흘겨보기 시작했습니다(오엔).
나보다 남이 더 인정받고, 나보다 동료 사역자가 더 큰 열매를 맺으며, 나보다 이웃이 더 잘나갈 때, 은근한 시기심과 불쾌감이 고개를 들지 않습니까?
경계하십시오!
질투는 사탄이 당신의 영혼을 파괴하기 위해 던지는 낚싯바늘입니다.
질투를 방치하면 결국 사울처럼 손에 살인의 창을 쥐게 됩니다.
타인의 번영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는 영적 넉넉함을 구하십시오.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겸손(빌 2:3)이야말로 사탄의 질투의 창을 부러뜨리는 가장 강력한 방패입니다.
(2) 기득권의 '겉옷(메일)'을 벗어주는 요나단의 영성을 회복하라
교회와 가정 안에서 내 권리, 내 기득권, 내 자존심의 겉옷을 움켜쥐고 싸우고 있지 않습니까? "내가 왕년에 어떤 사람이었는데, 내가 선배인데, 내가 이 교회의 개척 멤버인데!"
요나단을 바라보십시오.
그는 왕세자의 겉옷과 칼을 스스로 벗어 다윗에게 입혀주었습니다.
신앙의 성숙은 더 많이 움켜쥐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이웃을 위해 기꺼이 내 옷을 벗어주는 '자기비움(케노시스, Kenosis)'에 있습니다.
당신의 자리, 당신의 물질, 당신의 기득권을 내려놓고 연약한 지체를 세워주십시오.
당신이 낮아질 때 하나님은 당신을 하늘의 가장 존귀한 자리로 높여주실 것입니다.
(3) 고난의 광야로 나서는 자여, '그리스도와의 언약 결속'을 확신하라
다윗은 이제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아내 미갈과도 헤어졌고, 안락한 왕궁에서도 쫓겨났으며, 민족의 영웅에서 하루아침에 쫓기는 도망자의 신세로 전락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배후에는 생명을 걸고 중보해 주는 친구 요나단의 언약이 있었고, 만군의 여호와의 끊어지지 않는 사랑이 그를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인생의 광야로 내몰려 외롭고 두려우십니까?
눈을 들어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주님은 당신을 향해 선언하십니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사람은 나를 배신하고 떠날지라도, 당신의 영혼을 자기 생명처럼 묶으신(니크쉐라) 예수 그리스도의 언약의 줄은 영원토록 풀리지 않을 것입니다.
10. 결론: 광야의 벼랑 끝을 향하여
사무엘상 20장의 막이 내리며,
요나단은 눈물을 훔치며 사울의 왕궁으로 돌아갔고,
다윗은 홀로 쓸쓸히 일어나 삭풍이 몰아치는 광야를 향해 발걸음을 내딛습니다.
이제 다윗의 인생에서 모든 화려한 왕궁의 영광은 끝이 났습니다.
그의 앞길에는 10년이 넘는 기나긴 도망자의 세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아가리를 벌리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당장 먹을 빵 한 조각도 없고,
손에 쥔 무기 하나 없이 쫓기던 다윗이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맨 먼저 찾아 들어간 곳:
제사장들의 성읍 ‘놉(Nob)’!
그곳에서 다윗은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거짓말을 해가며
오직 제사장들만이 먹을 수 있었던 거룩한 '진설병(레헴 파님, 얼굴의 떡)'을 얻어먹고,
자신이 베어 죽였던 '골리앗의 칼'을 보자기에 싸서 들고 도망칩니다.
그러나 생명의 위협에 눈이 먼 다윗이 망명처로 택한 곳은
하필이면 골리앗의 고향이었던 블레셋의 ‘가드(Gath)’였습니다.
골리앗의 칼을 차고 골리앗의 고향으로 들어간 치명적인 불신앙의 실수!
적국의 신하들에게 정체가 탄로 났을 때,
성왕 다윗이 목숨을 건지기 위해 선택해야 했던 처절하고 비참한 바닥:
대문짝에 그적거리며 수염에 침을 질질 흘리며 미친 척해야 했던 극한의 굴욕!
살기 위해 바닥까지 내려간 성왕의 수치,
그리고 그 수치의 진흙탕 속에서 터져 나온 주옥같은 찬양: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내 입술로 항상 주를 찬양하리로다(시 34편)!"
제3강: 놉 제사장의 진설병과 아기스의 침 흘림 — 생존의 벼랑 끝과 수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