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대화의 자세
욥기 33:1~12(3절) / 찬송 : 278장-사랑하는 주님 앞에
1 그런즉 욥이여 내 말을 들으며 나의 모든 말에 귀를 기울이기를 원하노라
2 내가 입을 여니 내 혀가 입에서 동하는구나
3 내 말이 내 마음의 정직함을 나타내고 내 입술이 아는 바를 진실히 말하리라
4 하나님의 신이 나를 지으셨고 전능자의 기운이 나를 살리시느니라
5 네가 할 수 있거든 일어서서 내게 대답하고 내 앞에 진술하라
6 나와 네가 하나님 앞에서 일반이니 나도 흙으로 지으심을 입었은 즉
7 내 위엄으로는 너를 두렵게 하지 못하고 내 권세로는 너를 누르지 못하느니라 8 네가 실로 나의 듣는데 말하였고 나는 네 말소리를 들었느니라 이르기를
9 나는 깨끗하여 죄가 없고 허물이 없으며 불의도 없거늘
10 하나님이 나를 칠 틈을 찾으시며 나를 대적으로 여기사
11 내 발을 착고에 채우시고 나의 모든 길을 감시하신다 하였느니라
12 내가 네게 대답하리라 이 말에 네가 의롭지 못하니 하나님은 사람보다 크심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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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며 묵상하며 : 바른 대화의 자세(33:1-12)
사람은 홀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여러 사람과 관계를 맺고 교류하며 사는 사회적 존재입니다. 바른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바른 대화를 하기 위해 노력해야합니다. 바른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겠습니까?
잘 듣고 진실을 말해야합니다
엘리후는 욥에게 자신의 모든 말에 귀를 기울여 달라고 말하면서 자신은 진실을 말하겠다고 합니다. 바른 대화를 위해서는 먼저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성의 있게 잘 들어주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대화는 일방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상대에게 전하고 주입시키는 훈계나 교훈이 아니라, 서로를 보다 잘 알고 서로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것이므로 듣는 자세가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또한 바른 대화가 이루어지기 위해선 진실을 말하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열지 못하고 은폐되고 거짓된 말과 행동으로 나누는 대화는 더 나은 방향으로 진전되거나 지속될 수 없습니다. 또한 엘리후는 자신도 흙으로 지음 받은 동등한 피조물로서 욥과 동등한 입장에 있으며, 그를 억누를 만한 권세가 없다고 말합니다. 우월한 지위가 아닌 동등한 입장에서 대화하려는 태도입니다.
한 사람이 권위를 내세우거나 상대방을 억압하려는 관계 속에서는 바른 대화가 이루어지지 힘듭니다.
대등한 입장에서 서로를 이해해주고 인격적으로 대하며, 자기 의견만 주장하기 보다는 서로의 의견을 나눈다는 자세로 대화에 임할 때 좋은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사람의 한계를 인정하고 하나님을 의지해야합니다
바른 자세로 대화를 시작한 엘리후도 욥을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앞서 욥이 자신의 무죄함을 주장하며 부당하게 고난당함을 불평하던 말을 인용하면서 그것이 하나님 앞에 심히 교만하고 불의한 것이라고 책망합니다(8~12절). 욥이 고난 중에서 자신의 무죄함을 주장하며 불평한 것이 사실이고, 그것이 욥의 신앙적인 한계였음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중에도 욥은 결코 주권자 하나님을 부인하는 불신앙을 범하지 않았으며, 단지 이해할 수 없는 자신의 고난에 대한 답답함과 비통함을 토로하며 한탄했을 뿐입니다. 그런데도 엘리후는 욥을 교만한 자로 치부하고 그를 책망하고 있습니다. 엘리후는 앞선 세 친구들보다는 욥을 더 이해하였고 차원 높은 신앙으로 대하고 있지만, 그래도 그에게 참된 위로자요 해결자가 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한계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외에 모든 사람은 비록 장점이 크다 할지라도 그 나름대로의 한계를 지니고 있음을 인식하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자세를 가져야함을 배웁니다. 사람이 당신을 전부 이해해주지 못해도 너무 낙심하거나 미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일용할 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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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 대화의 상대에 대한 태도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하다보면 관심사가 비슷해서 서로 맞장구치면서 대화할 맛이 나고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더라도 고개를 끄떡 거려주고 상대방이 이야기를 할 때는 나 역시 절로 그렇게 되는 관계가 될 수 있는 사람이 있다. 반대로 관심사가 전혀 달라서 상대방이 이야기를 하면 나는 듣기만 할뿐 대화에 참여를 못하고 때론 듣는 것조차 고역이라서 하품이 날 정도로 지루한 경우도 있다. 또는 내가 말을 시작하려고 하면 말을 뚝뚝 끊으면서 자기 이야기하기에 바쁘거나 내 의견을 말하면 무시하고 그건 절대 아니라며 자기 생각을 주입시키기에 바쁜 관계가 되는 사람이 있다.
이런 경우 말이 통하는 사이와 말이 통하지 않는 사이를 나눌 수가 있는데 말이 통하지 않아, 답답하기만 하지만 사회생활이라는 것이 내 의지와 달라도 어쩔 수 없이 계속 만나야 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요즘 같은 개성이 강한 세상에서 살아가다보면 만나는 사람들 모두가 말이 통하는 사람, 상식이 통하는 사람을 바라는 것 자체가 무리이다. 내 자신이 스스로 온전하지 못한 존재가 아닌가? 내 자체가 그들에게 받아드려지도록 노력하는 것과 (적어도 내가 그런 대접을 받으려면)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을 만나더라도 얼굴 찌푸리지 않고 꼭 필요한 만큼의 대화를 하면서 스트레스 받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한다 대화 상대편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 보고 자신의 의사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나와 가장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의 경우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가 살아오면서 학습으로 얻어진 지식의 기초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사용하는 단어의 뜻과 의미도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뜻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참 의미가 나의 사고와 다르게 느껴지어 나도 소화하지 못한다. 이런 경우 자연스럽게 오해가 쌓이고 멀어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현실에서 그를 대화의 상대로 대 할 땐 늘 오해와 불신, 짜증들이 상대를 기피하는 느낌이 자연발생하게 된다.
내가 생각하는 '말이 통하는 사람'은 내가 알고 있고 생각하는 단어의 뜻을 공유할 수 있는. 환경에 기초한 사람이기 때문에 서로 대화를 통해 서서히 맞춰나갈 수 있는 사람이다.
인간이 자기를 표현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수단은 언어를 통해 서로 공감할 수 있는 관계가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외에 부차적인 것들- 사진, 손짓발짓, 함께하는 문장 등이 있다 남의 상대의 언어 뜻을 얼마나 깊은 뜻으로 말하고 있는가를 모르면 말이 통하지 않고 마음의 문이 닫힌 상태이다
대화에서 상대의 언어의 뜻을 바로 알면 마음이 통하고 마음이 열린 상태라고 한다. 말은 마음의 소리요 말하는 것은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고 행동은 마음의 자취라고 하고 싶다. 서로 대화가 되지 아니하는 관계의 사람들의 소리를 경청할 수 있고 그 말을 이해할 수 있는 자가 오늘날 조직과 사회에서 필요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되려면 자신의 사고와 가치판단을 陰,陽,의 이치에서 치우침이 없는 자리에서 사고를 두고 생활하면 어떠한 말도 귀에 들리고 말이 서로 통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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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하며 적용하며
1. 엘리후는 어떤 자세로 욥과의 대화에 임하고 있습니까(1~7절)?
2. 엘리후는 욥을 어떻게 오해했으며, 무엇이라 책망합니까(8~12절)?
3.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서 당신에게 필요한 바른 대화의 자세는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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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하며 간구하며
주님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수 없이 뿌려놓은 말의 씨들이
어디서 어떠한 열매를 맺었을까
조용히 헤아려 볼 때가 있습니다.
무심코 뿌린 말의 씨라도
그 어디선가 뿌리를 내렸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왠지 두렵습니다.
더러는 허공으로 사라지고
더러는 다른 이의 가슴속에서 좋은 열매를 맺고
또는 언짢은 열매를 맺기도 했을 내 언어의 나무
주여, 내가 지닌 언어의 나무에도
멀고 가까운 이웃들이 주고 간
크고 작은 말의 열매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습니다.
그 주인의 얼굴은 잊었어도
말은 죽지 않고 살아서 나와 함께 머뭅니다.
살아있는 동안 내가 할말은 참 많은 것도 같고
적은 것도 같고...
그러나 말이 없이는 단 하루도 살수 없는 세상살이...
매일 돌처럼 차고 단단한 결심을 해도
슬기로운 말의 주인 되기는 얼마나 어려운지.
주여, 하나의 말을 잘 탄생시키기 위하여
먼저 잘 침묵하는 지혜를 깨우치게 하소서
헤프지 않으면서 풍부하고
경박하지 않으면서 유쾌하고
과장하지 않으면서 품위 있는 한마디의 말을 위해
때로는 진통을 겪는 어둠의 순간을 이겨내게 하소서.
참으로 아름다운 언어의 집을 짓기 위해
언제나 기도하는 마음으로 도를 닦는 마음으로
말을 하게 하소서
언제나 진실하고 언제나 때에 맞고
언제나 책임 있는 말을 갈고 닦게 하소서
내가 이웃에게 말을 할 때는
하찮은 농담이라도 함부로 지껄이지 않게 도와주시어
좀 더 겸허하고 좀 더 인내롭고
좀 더 분별 있는 사랑의 말을 하게 하소서
내가 어려서부터 말로 저지른 모든 잘못,
특히 사람을 거스르는 비방과 오해의 말들을
경솔한 속단과 편견과 위선의 말들을
주여 용서 하소서.
나날이 새로운 마음 깨어 있는 마음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내 언어의 집을 짓게 하시어
해처럼 환히 빛나는 삶을 노래처럼 즐거운 삶을
당신의 은총 속에 이어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해인 수녀의 “말에 대한 기도”에서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