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레이트 뷰티 - 65세에 회고하는 생의 위대한 아름다움
누릴 만큼 누려본 스타 작가
첫사랑의 부고 소식에
지나온 인생을 반추하는데…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영상으로 표현해냈다는 호평
美·英 아카데미 시상식 휩쓸어
영국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미국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골든 글로브 외국어 영화상. 이 모든 부문을 수상한 작품이 있다. 바로 파울로 소렌티노 감독의 ‘그레이트 뷰티’이다.
‘헌트’, ‘가장 따뜻한 색, 블루’와 같은 경쟁작을 제치고 외국어 영화상을 석권했을 때, 사람들은 놀라고 궁금해했다. 과연 어떤 이야기일까?
‘그레이트 뷰티’는 올해 예순다섯 번째 생일을 맞는 한 스타 작가의 이야기이다. 어느 정도로 스타냐면, 첫 번째 장편 소설의 대단한 성공으로 평생 그 그늘로 먹고 살 수 있을 정도의 스타다. 먹고 사는 정도도 아니다. 그는 이 한편이 거둬들인 비평적 성과와 상업적 결과로 상위 1퍼센트의 삶을 유지하게 된다.
누려볼 만큼 누려본 남자의 65번째 생일, 과연 ‘그레이트 뷰티’가 보여줄 ‘대단한 美’는 과연 무엇일까?
영화 ‘그레이트 뷰티’는 난해한 작품이다. 하지만 흡입력이 만만치 않은 작품이다. 이미지와 음악, 비트와 색감을 즐기는 것만으로 이탈리아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 여기에, 만약 몇몇 문학적 코드를 알고 또 문학적 훈련이 돼 있다면 그 이상의 진미를 맛볼 수 있다. 인문학적 영화란 무엇인지, 삶의 치유가 되는 영화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의미다.
말하자면 ‘그레이트 뷰티’는 영상으로 쓰인 프루스트(‘의식의 흐름’이라는 새로운 형식을 시도한 프랑스 소설가)라고 말할 수 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언어의 극한에서 찾아낸 기억의 부스러기라면 ‘그레이트 뷰티’는 그것의 시각적 각색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내’가 마들렌의 촉각과 미각으로부터 어떤 시간의 입구를 찾는다면, ‘그레이트 뷰티’의 입구에는 ‘그녀’, 알리스가 있다. 그녀, 첫 사랑의 그녀, 입을 맞추기 위해 다가가는 순간 얼굴을 비끼고 뒤돌아선 그녀, 그리고 다시 뒤돌아서 그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맞대고 다시 한 번 뒤돌아섰던 그녀.
그녀가 뒤돌아서서 했던 ‘무엇’은 영화의 마지막에 가서야 드러난다. 그리고 그 마지막에 이르러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그레이트 뷰티’가 무엇인지도 밝혀진다.
영화는 일종의 신비로운 체험과 닮아 있다. 상위 1퍼센트의 삶을 살았기에 그는 지상 최고의 감각을 즐기며 살아왔다고도 할 수 있다. 여자, 돈, 사치스러운 취향, 고급 취미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워지지 않는 그 무엇에 대한 탐구.
소렌티노 감독의 행적은 여러 면에서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영화감독 중 하나로 꼽히는 페데리코 펠리니를 떠오르게 한다. 이미지에서 이미지로 이어지는 서사의 흐름과 파도처럼 밀려드는 감각의 연쇄도 그렇다. ‘그레이트 뷰티’의 서사는 줄거리가 아니라 어떤 이미지를 통해 이어진다. 그런데 그 이질적인 이미지들이 훌륭한 몽타주를 만들어내며 은유적 편집의 마술을 체험케 한다. 그건 영화만이 해낼 수 있는 마술이기도 하다.
인생 그 너머에 뭐가 있을까? 아마 예순다섯쯤 되면 이런 질문을 할 자격이 생길 것이다. 선거에 나이 제한이 있다면 인생의 궁극적 미를 질문하는 데에도 제한이 있어야 한다. ‘그레이트 뷰티’는 그 제한이 육십오세쯤이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게끔 해 준다. 진짜 삶이 시작되는 나이, 진짜 아름다움에 대해 알게 되는 나이. 결국 삶은 부딪히는 자에게 남겨진 무릎의 멍 같은 것이다.
출처: 강유정 영화칼럼니스트 / 한국교직원신문 6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