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창(琉璃窓)Ⅰ
정지용(鄭芝溶)
유리(琉璃)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
열없이 붙어 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닥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히고,
물 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운 폐혈관(肺血管)이 찢어진 채로
아아, 늬는 산(山)ㅅ새처럼 날아갔구나!
[시어, 시구 풀이]
차고 슬픈 것 : 서정적 자아가 유리창에 붙어 서서 낸 입김 자국
열없이 : 맥없이. 기운 없이. 속절없이
늬는 : 너는
유리(琉璃)에 차고 - 언 날개를 파다거린다. : 사라져 가는 자신의 입김 자국(차고 슬픈 것)을 언 날개를 힘없이 파닥거리는 가냘픈 새에 비유함. 10행의 ‘산새’와 호응되고 있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 유리창에 서린 입김을 자꾸 지워 가며 창 밖의 어둠과 보석 같은 별(죽은 아들의 영상)을 바라보는 시적 자아의 안타까운 모습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히고, : 보고 싶은 아이를 보지 못하는 허탈감, 상실감, 허무감 등이 담겨 있다. 보고 싶은 아이의 영상은 오로지 유리창에 서린 입김을 통해서만 볼 수 있기 때문에 유리창 저편의 아이의 세계를 창을 열고 맞이할 수 없는 심정을 표현
물 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 : 별이 물을 먹은 것이 아니라 서정적 자아의 눈에 가득 고인 눈물을 통해 별을 바라보고 있다는 뜻이며, ‘반짝’의 표현의 앞뒤에 찍힌 쉼표는 눈에 가득 고인 눈물이 방울 지어 떨어지면서 별빛에 반사되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 자식을 잃은 데서 오는 외로움과, 유리를 닦으며 밤하늘의 별을 통해 귀여운 자식의 모습을 다시 보는 황홀함이 한데 얽힌 마음을 표현한 구절이다.
고운 폐혈관(肺血管)이 찢어진 채로 : 자식이 병에 시달리다 죽었음을 암시함과 동시에 시적 자아가 지닌 극도의 비애를 표현
늬는 산(山)ㅅ새처럼 날아갔구나! : 잃어버린 자식을 나뭇가지에 잠시 머물다 날아가 버린 산새에 비유한 표현
[핵심 정리]
지은이 : 정지용(鄭之溶, 1902-?) 시인. 충북 옥천 출생. 6.25 때 행방불명. 섬세한 이미지와 잘 짜여진 시어로 1930년대를 대표하였다. 초기에는 이미지즘 작품을 썼고, 후기에는 동양적 관조의 세계를 주로 형상화하였다. 대표작으로는 ‘향수’, ‘유리창1’ 등이 있으며 시집으로는 <정지용 시집>, <백록담> 등이 있다.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율격 : 내재율
성격 : 서정적. 회화적
어조 : 감정을 절제한 지성적 어조
심상 : 선명하고 감각적인 심상
구성 :
1-3행 유리창에 어린 영상(기)
4-6행 창 밖의 밤의 영상(승)
7-8행 외롭고 황홀한 심상(전) ··· 모순 형용
9-10행 죽은 아이에 대한 영상(결)
제재 : 유리창에 서린 입김
주제 : 죽은 아이에 대한 그리움
출전 : <조선지광>89호(1930)
▶ 작품 해설
이 시는 정지용의 초기 시의 특징을 잘 보여 주는 작품이다. 밤에 유리창 앞에서 잃어버린 자식을 그리워하는데,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히고’ 하는 무한한 어둠은 작자의 허전하고 괴로운 마음에 대결적으로 작용한다. 기운 없이 불어 낸 입김 자국이 쉽게 사라지는 모습에서 가냘픈 새의 모습을 연상한다. ‘산새처럼 날아갔구나!’라는 절제된 비탄의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새’는 바로 허망하게 작자의 곁을 떠나버린 아이의 비유적 형상이다.
잃어버린 아이에 대한 작자의 지극한 슬픔은 어둠 속에서 보석처럼 빛나는 ‘물 먹은 별’로 집약되어 나타난다. 이 ‘별’의 이미지는 복합적인 것으로 첫째, 아버지의 곁을 떠나 죽음(어둠)의 세계로 가 버린 아들의 이미지를, 둘째, 별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에 눈물이 어려 있음을 말해 준다.
이 시는 시인이 어린 자식을 폐렴으로 잃고 쓴 시라고 한다. 이 시에 나오는 ‘차고 슬픈 것’, ‘언 날개를 파닥거리는 것’, ‘물 먹은 별’, ‘산새’ 등은 모두 죽은 아이의 표상이다. 시인은 유리창에 붙어 서서 입김을 불었다 지웠다 하면서 죽은 아이의 생각에 잠겨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겉으로 슬픔을 노출시키지 않고 담담하게 시상을 전개해 간 것이 이 시의 장점이다. 마지막 시행에서는 감정의 고삐를 풀고 슬픔의 탄식을 터뜨린다.
<참고> ‘유리창’의 이미지
정지용 시에서 가장 중요한 시어는 창이다. 그에게 창은 안과 밖을 단절시키면서 동시에 연결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창 안에는 서정적 자아가 위치하고 있고, 창 밖은 주로 풍경으로 나타난다. 곧 서정적 자아는 창 안에 있으면서 창 밖의 현실을 바라보고 관찰하며 느끼는데 그 자아가 창 밖, 곧 현실 세계로 직접 나서지는 않는 것이다.
이 시에서도 유리창은 죽은 자식과 서정적 자아 사이를 가로막는 기능을 한다. 그렇다면 왜 유리창을 열지 않는가. 창을 열면 잃어버린 아이의 비유적 형상인 새의 영상마저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유리창은 서정적 자아를 그리워하는 대상(죽은 아이)과 격리시키면서 동시에 영상으로 대면하게 해 준다.
요컨대 유리창은 곧 창 안의 서정적 자아와 창 밖 현실의 세계를 이어 주는 통로이자 차단인 셈이다.
<참고> 감정 절제의 표현 기법
아이를 잃은 부모의 마음이란 대단히 슬픈 법인데 이 시에서는 그 감정이 엄격히 절제되어 있다. 이처럼 슬픈 감정을 그대로 노출하지 않고 절제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표현법이 사용되고 있다.
(1) 감정의 대위법(對位法) : 이 시에서 감정을 표현한 구절은 ‘차고 슬픈 것’과 ‘외로운 황홀한 심사’ 두 군데뿐인데, 슬픔과 외로운 감정이 차가운 감각과 황홀한 심사와 어우러져서 표현되고 있다. 이처럼 대비되는 감각이나 심사(정신 상태)를 슬픈 감정과 대위(對位)시킴으로써 감정을 절제한 것이 감정의 대위법이다.
(2) 선명하고 감각적인 이미지의 사용 : 이 시의 주제는 ‘죽은 아이’에 대한 그리움이지만, 이 시에서 ‘죽은 아이’를 직접 표현한 시어는 하나도 없다. 모두 ‘언 날개’, ‘물 먹은 별’, ‘산새’와 같은 감각적인 사물로써 죽은 아이를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시를 읽으면서 어떤 감정을 전달받기보다는 선명한 영상, 곧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 심지어, 작품 내에서 그 영상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물도 ‘유리창’이라고 하는 선명한 이미지이고, 아이가 죽은 이유도 ‘폐혈관이 찢어졌다’고 하지만 구체적인 이미지로 표현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