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항상 "겸손한 자부심"을 지녀야 합니다.(08:14)
지도사제 10.04.30 14:28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긴 삶을 살기로 서약한 영혼들은
언제, 어디서, 어떤 사람과 상황 앞에서든지
항상 "겸손한 자부심"을 지녀야 합니다.
"겸손한 자부심"이란 무엇입니까?
우선, 자부심(自負心)이라는 말의 정확한 뜻을 알아보겠습니다.
"자부"라는 단어를 국어사전에 찾아보면,
"자기나 자기에 관련된 일에 대하여
스스로의 '가치'나 '능력'을 믿고 자랑으로 여김"
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자부심"이라는 말은 자신에 대한 "자긍심(自矜心)",
즉 "스스로를 자랑하는 마음"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기에,
자부심이라는 단어가
하느님께 내맡긴 영혼들에게 사용될 때에는 반드시
"겸손한"이라는 단어를 함께 사용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하느님께 내맡긴 삶을 살게 된 것이 분명,
"자신의 가치나 자신의 능력"에 의해서
그러한 삶을 살게 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하느님께 내맡긴 삶을 살게 된 것은 분명,
오로지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에 의한 것,
"하느님의 뜻"에 의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 내맡겨지기 전의 "자신의 가치"는
참으로 초라하기 그지없이 보잘것 없는 것이었을 뿐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 앞에 "무가치"를 넘어서
"죄스런 존재"였던 것이었습니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부르심을 받았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속된 기준으로 보아
지혜로운 이가 많지 않았고 유력한 이도 많지 않았으며
가문이 좋은 사람도 많지 않았습니다." (1코린1,26)
"오히려 어리석고, 약하고, 비천하고, 천대받고, 없는 사람을
선택하셨습니다." (1코린27-28)
또한, "자신의 능력"은 어떠했습니까?
자신의 능력의 "무능함"은 누구보다 "자신의 현실" 앞에
이미 환히드러나지 않았습니까?
"이 말은 확실하여 그대로 받아들일 가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죄인입니다." (1티모1,15)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그러한 "꼬라지"를
우리의 눈앞에 환히 밝혀주셨던 것입니다.
하느님께 내맡긴 삶을 살게 된 것은 오로지
"하느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미 우리를 사랑하셨고,
우리는 그 사랑에 응답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래도 늦게나마 응답할 수 있었습니다.
그 응답은
"우리의 모든 것을 하느님께 내맡기고 하느님의 뜻대로 살 것"을
굳게 결심한 그 "결심을 하느님께 봉헌함"으로
하느님께 받아들여진 것입니다.
하느님께 내맡겨진 우리들도, 앞으로
닦여지고 정화되어야 할 참으로 많은 부분들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런 우리들,
보잘것없는 우리들의 모든 것을 받아주신 것입니다.
그 점을 생각하면 할수록,
하느님은 정말로 자비하시고 사랑이 많으신 분이심을
더욱 깊이 깨닫게 됩니다.
참으로 부족한 우리이지만,
이제 우리는 분명 "과거의 우리"가 아닙니다.
"하느님께 내맡겨지기 전의 우리"와는
너무나 다른 우리가 된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으로, 하느님의 능력으로, 하느님의 뜻으로
우리는 "하느님의 소유"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소유가 된 영혼은 자신의 뜻대로 살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뜻대로 삽니다.
거룩하게 삽니다.
하느님의 뜻대로 살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 "나날이 조금씩" 그리고 때로는 "엄청" 이끌어 주십니다.
점점 거룩함에로 가까이 다가갑니다.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부족해 보여도,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무척 만족해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점점 더 당신의 뜻대로만 살아갈 것을
이미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부족하지만,
그 부족함마저도 받아주셔서 하느님의 소유가 된 영혼들은
언제, 어디서, 어떤 사람과 상황 앞에서든지,
하느님의 소유된 영혼들이라는 "겸손한 자부심"을 잊어서는
결코 안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하느님외에 더 이상 바랄 것은 아무것도 없는 영혼들입니다.
이 세상에서 바랄 것은 오직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요,
그분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일뿐인 영혼들입니다.
하느님은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하느님은 한없이 자애로우신 분이십니다.
하느님은 참으로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하느님은 이 세상 우주만물의 주인이십니다.
우리는 그러한 "그분의 소유"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코린토 1서 1장
26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부르심을 받았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속된 기준으로 보아
지혜로운 이가 많지 않았고
유력한 이도 많지 않았으며
가문이 좋은 사람도 많지 않았습니다.
27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지혜로운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어리석은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강한 것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약한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28 하느님께서는 있는 것을 무력하게 만드시려고,
이 세상의 비천한 것과 천대받는 것 곧
없는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티모테오 1서 1장
15 이 말은 확실하여 그대로 받아들일 가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죄인입니다.
* * *
마.목.정
< 그냥 한 번 말해 봤소 10 > moowee
지도사제 10.07.04 09:28
설마(설레발치는 마귀)가 사람 잡는다!
<댓글>
지도사제 10.07.04. 19:53
겸손한 자부심은
하느님이 나의 든든한 후견자이심을 믿는 믿음입니다.
주님께 내맡긴 이들은
이 세상 그 어디, 그 누구 앞에 서더라도 당당합니다.
죄인으로 빌라도 앞에 서신 예수님의 그모습을 보십시오!
그것이 바로, 겸손한 자부심입니다.
얼굴이 못생겨도 당당합니다,
내가 하느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욕해도 당당합니다,
하느님이 나를 아시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그 무엇이 나를 속박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 나를 맡겨 내가 "참자유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만세 만세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