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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선지식 및 명찰순례 43차 전남 장흥 보림사,화순 쌍봉사를 다녀와서(2005.12.11.)
그대여 들리는가 낙엽 떨어지는 소리가
그대여 들리는가 쏟아지는 빗소리가
그대여 들리는가 바람에 날려 흩어지는 눈발소리가
우리도 언젠가는 이와같이 애처롭게 떨어지고 흩어져 날아 갈텐데.....
왜 이리 가슴이 허전한지.............
이번 행사는 2주년 기념행사다.
개근상, 정근상등 다양한 준비가 필요하다.
행사 이틀 전까지 차량이 2대에서 1대로, 1대에서 2대로 우여곡절을 겪었다. 많은 홍보를 했지만 아직 예약문화는 미숙하다.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한치 앞을 예측 할 수 없는 불확실성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탓할 수밖에 없다.
2005.12.11.07:20경 보현사 옆 반월당 지하철 입구에서 차량2대에 회원59명을 태우고 목적지인 전남 장흥군 유치면 봉덕리 보림사로 출발했다. 신청한 회원 중 10여명 이상이 여러 가지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했다.
차량인솔자 1호차 정종국, 유적명님, 2호차량 임숙이님,장종영님 이다.
1호 차량의 경우 차량 내에서는 신군자님,유적명님,전영우님등이 아침대용인 떡 사찰안내유인물, 생수, 사과 등을 회원들에게 나누어 준다.
회원들을 태운 차량은 성서 홈플러스를 거쳐서 중앙고속도로로 달리고 있다.
정토야 알람시계가 고장나서 늦게 일어났단다.
차량이 가는 방향으로 택시를 타고 따라와서 화원IC에서 합류한다.는 연락이 온다
차량은 성서홈프러스 거쳐서
07:20경 화원IC를 통과하여 따라와서 기다린다고 한 정토야 보이지 않는다.
그날 따라 새벽바람은 왜 그리 찬지, 전화를 잘못받았다는둥으로 비난을 감수한다. 전화내용이 온다는 내용이 60-70%, 나머지 내용은 뜻모를 이야기만 했으니 알수가 있어야지,
전영우님과 나는 아무런 죄도 없이 찬바람이 몰아치는 차량밖으로 쫓겨나서 정토야를 20분 이상 찾아 헤메다가 찾지 못하고 차량으로 돌아와서 신군자님등으로 부터 많은 꾸지람을 듣고, 휴대폰도 받지 않는 정토야를 버리고 차량은 출발한다.
출발하자마자 이석정님의 집전에 따라 천수경,예불문,이산혜연선사발원문,관세음보살 릴레이 정근, 반야심경을 엄숙하게 독송한다.
차량은 구마고속도로 진입하여 현풍휴게소를 지나고 있는데 정토야는 택시를 타고 오고 있다는 급한 전갈이다.
얼마나 53선지식이 그립고 좋은 모임이었으면 저렇게 열성을 보이겠는가 싶어서 영산휴게소에서 영업용택시를 타고 온 정토야를 차량에 태웠다. 택시비가 40,000원이란다. 전화 잘못받은 죄, 교육잘못시킨 죄로 이석정님은 전영우님,나,김상수님에게 택시비를 강제로 거출해 간다.
차량내에서 관세음보살 정근이 이어지고 있다.
10:00경 차량은 섬진강휴게소에 도착한다.
잔잔한 찬바람이 얼굴을 스친다.
몸도, 마음도 오늘따라 차고 싸늘하다.
따뜻한 일회용 커피잔을 잡은 손이 떨린다.
허전함이 밀려온다.
주변에 보이는 산야는 온통 회색빛 이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하나, 둘 떠나고 있구나.
10:28 차량은 광양IC를 통과한다.
단장 오성자님,이대원님 인사말씀,
이어서 유적명님 보림사,쌍봉사에 대한 사찰안내 설명, 차량에 탑승한 회원들에게 각자 돌아가면서 1-2분 스피치를 겸한 자기 소개를 한다. 주제를 그 겨울의 찻집으로 제시했다.
10:53 법회종료,
이어서 금강경 1회 독송, 신묘장구대다라니 독송이 이어진다.
차량은 국도로 접어 들고 있다.
낙엽 떨어진 가로수, 논바닥만 보이는 회색빛 들판, 벌교 장례식장 표지가 나오고, 광양육교, 귀산마을, 보성차밭 해수 녹차탕 표시를 지나간다.
전남 보성이다.
국도변 가까운 야산 소나무 사이 사이 응달에 흰눈이 그대로 있다. 먼산에는 하얀눈, 연두색으로 변한 소나무, 그 사이 사이에 마른 갈대풀들이 한폭 수채화를 그린다.
보성교 배산터널,장동 교차로를 빠져 나간다.
편도1차선 국도로 접어든다.
장동사거리에서 좌회전 하니, 작은 대나무 숲이 보인다.
실개천을 끼고 올라간다.
석교천 작은 다리를 건넌다. 몇시간 전까지 눈이 그대로 있었는가 보다. 방금전까지 치우다 그둔 둔 것으로 보이는 제설용 모래가 흩어져 있다. 방이석교마을을 지나서,장흥군 아크로건트리클럽에서 좌회전, 우회전 하니 가지산 보림사 돌표지판이 보인다.
12:00경 회원들은 보림사에 도착했다.
보림사는
가지산 남쪽 기슭에 있는 보림사는 지금부터 1천3백여년(759년) 전에 창건한 신라시대의 거찰이다. 이곳에 처음 절을 지은 것은 보조국사보다 100년 전쯤 사람인 원표대덕(元表大德)으로 원래의 이름은 가지산사였다. 그 뒤 보조국사 체징이 이곳에서 헌안왕의 뜻을 받아 신라 구산선문 중 최초로 가지산파를 열었다. 880년 체징이 입적할 때에 무려 800여명의 제자들이 여기에 머물렀다고 한다. 보조국사가 입적 후에 헌강왕이 절 이름을 내려주어 보림사가 되었다. 화엄종 사찰로 출발해 선종사찰로 바뀐 것이다. 미국하버드대학 연경도서관에 있는 "신라국 무주 가지산 보림사 사적기"는 조선 초 세조 3년(1457)에서 10년(1464)사이에 발간된 것으로 보림사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여기에는 창건설화가 이렇게 적혀있다. "신라의 명승 원표대덕이 인도 보림사, 중국 보림사를 거쳐 참선중 한반도에 서기가 어리는 것을 보았다. 그는 신라로 돌아와 전국의 산세를 살피며 절 지을 곳을 찾았다. 어느 날 유치면 가지산에서 참선을 하고 있는데 선녀가 나타나더니 자기가 살고 있는 못에 용 아홉 마리가 판을 치고 있으므로 살기 힘들다고 호소해왔다. 원표대덕이 부적을 못에 던졌더니 다른 용은 다 나가고 유독 백룡만이 끈질기게 버텼다. 원표대덕이 더욱 열심히 주문을 외었더니 마침내 백룡도 못에서 나와 남쪽으로 가다가 꼬리를 쳐서 산기슭을 잘라놓고 하늘로 올라갔다. 이 때 용꼬리에 맞아 파인 자리가 용소(용문소)가 되었으며 원래의 못자리를 메워 절을 지었다. 보림사 주위에는 용과 관련된 지명이 많다. 청룡리, 청룡이 피를 흘리며 넘어간 피재, 용두산, 용문리, 용소, 녹룡리등인데 창건설화에서 토속신앙과 불교의 대립이 있었음을 유추하는 사람도 있다. 한국의 가지산 보림사는 인도의 가지산 보림사, 중국의 가지산 보림사와 더불어 세계 3보림의 하나라고 한다. 보림사는 통일신라 구산선문 가운데 가지산문의 종찰로서 고려 말까지 선맥이 이어져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 스님도 가지산문에 속했다. 고려시대는 원응국사와 공민왕의 왕사인 태고 보우국사가 주석하여 선종을 진작시킨 큰절이었고, 그 후 여러 차례 중창과 중수를 거치며 웅장한 규모를 자랑하던 보림사는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외호문과 사천왕문을 빼고 20여 동의 건물이 모두 불타버렸다. 1950년 가을 전남 지역의 공산군 유격대가 보림사에서 한 겨울을 났는데 다음해 봄 군경토벌대는 '공비들의 본거지'라고 보림사에 불을 질러버렸다고 한다. 전쟁 이후 조금씩 복원되어 현재는 건물로 외호문과 사천왕문, 1998년에 복원된 대적광전, 대웅전, 새로 지은 방각과 요사조사전, 삼성각, 명부전, 주지실, 암자 등이 절터를 채우고 있다.
-보림사 관련 홈페이지에서 인용한 내용 임-
12:10경,
보림사 법당에서 조촐한 2주년 기념행사를 진행했다.
오성자 단장님 시상 한다.
1년 개근상 시상
김상수,김방자,윤석배,이두목,이분이,이석정,정선자,정은환,정종국,유정희,김갑덕
1년 정근상 시상
오동주,신옥금,이영미,도기대,장종영
참석한 전회원을 상대로 한 기념품 증정,
2004년-2005년 53선지식을 이끌어 주신 오성자 단장님께 감사패 전달,
단장님 2주년 기념축사 순으로 이어진다.
이어서 김상수님의 집전에 따라 삼귀의례,반야심경, 이대원님의 발원문의식을 마치고,
김상수님의 집전에 회원들은 108배 대참회의식에 들어간다.
13:00 선광스님 법문을 그대로 옮겨 본다.
구산선문,가지산 유래설명
지구상에 불교,기독교,이슬람교,흰두교 4대종교가 있다.
종교는 부족할 때 가장 아름답다.
종교가 자기길을 가지 못하면 그 나라는 망한다
불교는 고려시대의 타락으로 인하여 그 업보로 조선시대에 심하게 탄압받았다.
종교의 중심은 나 자신 이다.
주인은 나다. 내가 나답게 사는 것이 종교다.
종교가 가정에 화목을 깨거나 불편하면 안된다.
모든 것이 나를 위해서 존재한다.
서로를 위해 살수 있는 것이 종교다.
단일종교인 나라는 결국 망한다. 다원종교여야 한다.
우리는 종교보다 학연,지연,혈연이 앞서가고 있다.
우리는 종교가 의무가 아니고 자신이 선택하지 않는가.
우리나라에 기독교,천주교가 들어오지 않았다면 불교는 망했을 것이다.
종교도 서로 비교 경쟁하면서 발전한다.
기독교,천주교도 마찬가지다. 불교가 있기 때문에 같이 발전하는 것이다.
세계에서 우리나라 사람이 가장 종교 서비스를 잘 받고 있다.
한민족의 미래는 종교와 교육에서 온다. 종교는 투명해야 한다.
불교는 미래가 밝다. 종교는 극단적이어서 안된다.
가지지 못하는 것을 버리는 것이 위대한 것이 아니라, 가진 것을 버리는 것이 위대하다.
부처님은 왕권을 버렸다.
그러나 예수는 처음부터 버릴것이 없었다.
불교는 극단적이지 않고 자비롭다.
어느 성인이 아무리 많은 지식을 가졌다하더라도 대중에게 베풀지 못하면 성인이라 할수 없다. 대중에게 베풀지 못하면 성인으로 부를수 없다.
정근을 많이 하고, 절을 많이 하는 이유가 있다.
우는 아이 젖을 많이 주는 논리와 같다.
부처님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번뇌를 가지고 있다.
정신과 마음이 청정할때, 본성이 깨끗할 때 법력이 들어온다.
下心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뭐든지 나보다 낫게 보라.
나를 내세우고 인정 받을려면 고통이 시작된다.
져라,지면 고통이 없어진다.
인과법은 절대 공짜가 없다.
조선시대 500년동안 칠거지악등으로 여자를 픽박했기 때문에 그 업보로 현재 남자가 픽박 받는다. 지금은 여자시대다.
남자와 여자 역할이 바뀌었다.
남자50세가 넘으면 소심하다.
여자들도 잘해야 한다. 유리하다고 남자를 픽박하면 다시 조선시대로 돌아갈수 있다.
이것이 인과법이다.
14:00 법문종료
법문하는 동안 바람에 견디지 못한 풍경소리가 뎅그랑,뎅그랑 소리내며 중생에 마음을 흔든다.
회원들은 공양간에서 점심공양을 하고, 기와불사, 사찰경내를 관람한다.
15:30경 보림사에서 쌍봉사로 출발한다.
차량내에서 정토야 지각한 이유등을 맛깔스럽게 설명한다.
16:00경 화순 쌍봉사에 도착한다.
쌍봉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松廣寺)의 말사 이다. 곡성 태안사에 있는 혜철 부도비 에는 혜철이 신무왕 원년(839)에 당나라에서 돌아온 후 쌍봉사 에서 여름을 보냈다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839년 이전에 이미 쌍봉사는 창건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혜철의 선맥을 이은 징효는 강원도 영월 흥녕사 에서 사자산문을 개창 하였다. 곧 철감선사는 사자산문의 개조가 된 것이다. 철감선사의 종풍은 널리 펴져 경문왕은 그를 스승으로 삼았으며 선사가 입적하자 철감이란 시호를 내리고 부도탑명을 징소라 내렸다. 신라 경문왕(景文王) 때 도윤(道允)이 창건하고 자신의 도호(道號)를 따 쌍봉사라 하고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사자산문(獅子山門)의 기초를 닦았다. 그 후 고려 시대인 1031년(문종35) 혜조국사(慧照國師)가, 공민왕 때는 관찰사 김방(金倣)이 중건하였고, 임진왜란 때 폐사된 것을 1628년(인조6년) 탑지(塔址) 위에 현재의 3층 대웅전을 중건한 것을 비롯, 1667년(현종8)·1724년(경종4)에 계속 중수하였다. 1950년 6.25를 만나 대부분 건물이 소실되었다. 극락전과 대웅전만이 보존되어 오다가 1978년 명부전의 재건 등 옛 영화를 꿈꾸던 중 1984년 3층 목조탑 대웅전이 소실되는 비운을 맞이하였다. 1986년 대웅전이 복원되고 해탈문, 요사채, 종각이 건립되었고 1997년에는 철감선사탑 탐방로 정비와 육화당 신축공사가 있었다. 사찰 경내에는 국보 제57호인 쌍봉사 철감선사탑(澈鑒禪師塔), 보물 제163호인 쌍봉사 대웅전, 보물 제170호인 쌍봉사 철감선사탑비(澈鑒禪師塔碑)가 있다. 철감선사탑은 8각 원당형(圓堂形)에 속하는 신라시대 부도(浮屠)로, 그 시대의 부도 중 최대의 걸작품으로 알려져 있고, 대웅전은 평면이 네모 반듯한 3층 전각으로 목조탑파(木造塔婆)의 형식인 희귀한 건축물이다. 철감선사탑비는 귀부(龜趺)와 이수(촬首)만 남은 무신비(無身碑)이다.
회원들은 잔설이 남아 있는 쌍봉사를 돌아보고 있다.
눈을 던지고, 눈을 옷속에 몰래 넣는등 동심으로 돌아가는 회원들도 보인다.
16:30경 회원들을 태운 차량은 대구로 출발한다.
국도에 진입하면서 이석정님의 집전에 따라 예불문,반야심경,사홍서원,교가 순서로 회향법회를 했다.
2주년기념 달마금카드 행운권 5매 추첨에 들어갔다.
당첨된 회원들이 좋아 한다.
대상(단장추첨)은 차분하고 맑은 미소와 향기를 내는 반야심이 차지한다. 앞으로 좋은일만 일어나길 바라며..........
회원들 상호간 어깨, 목, 머리를 주물러주는 사랑의 기 불어넣기, 고향의 봄 합창, 2주년기념 시 따라 낭송하기,
나무는 달려 왔다
성기조
나무는 달려 왔다.
멀고 먼 바다
푸른 파도의 숲들을 지나서
스스로 무거워진 겨울 산들을 지나서
매서운 바람과 저녁 벌판을 지나서
나무는 달려 왔다.
광야와 풀밭과
신기루 같은 능선을 지나서
어둡고 시린 날들의 벼랑을 지나서
나무는 달려 왔다
푸르고 질긴 가지로 꿈꾸던
시간의 강가
실낱같은 사랑으로 기대섰던 사람들도 떠나고
발 밑으로 스멀스멀 어둠이 와서
등을 치고 갈 때도
나무는 가지를 내려 대지의 가슴에 입 맞추며
바르게 서는 법을 지켜 왔다.
굽이치는 산들과 춤추며
사랑을 나누며.
1기 선배님의 시조 낭송,이석정님 아버지가 해야 할 일등 낭송, 정토야 시낭송, 전영우 시낭송, 이영미 찬불가,박원재님 시낭송,김방자님 가곡,
2주년 기념으로 돌아가면서 가요독창이 이어지고 있다.
3부 가요진행은 정토야 진행한다.
재치 있는 말솜씨에 회원들은 너무 좋아서 웃음이 넘쳐난다.
2주년 기념 행사는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다.
21:00경 대구 반월당에 도착했다.
다음달 53선지식 및 명찰순례는 2006.1.8.(둘째 일요일)07:00경 부산 해운정사, 해운대,광한리 백사장 산책으로 떠날 것을 기약하고 아쉬움을 남기고 헤어졌다.
2005년12월 14일
多禪기록하다
0. 본 순례준비를 위하여 수고하신 기획위원회 단장 오성자님,집행위원장 김상수님,이대원님,전병효님,김장수님,류적명님,이석정님,신군자님,정토야님,전영우님,도기대님,박만택님 수고했습니다
사정에 의하여 참석하지 못했지만 준비해 주신 서지현님,김정자님 등에게 감사 드립니다.
0. 보시내역등은 결산보고를 통하여 자세한 내역이 공개될 것입니다.
0. 귀감이 되는 성현의 말씀, 좋은 양식이 되는 글,좋아하는 시등을 준비하여 돌아오는 길에 낭송등으로 회원들에게 즐거움을 주면 좋겠습니다.
0. 2005.12.11. 장흥 보림사,화순 쌍봉사 53선지식 및 명찰기도순례에 참석한 명단은 다음과 같습니다.(존칭은 생략합니다)
1호차
오성자,오성자남편,정종국,유적명,이대원,이석정,정병관,장영란,
우임연,노영이,이두목,이정호,김방자,김풍길,신군자,정토야,박해종,
전영우,이영미,김갑덕,김애경,장춘원,박원재,이정은,이정은지인(1기)
2호차
김상수,김장수,신옥금,김성집,오동주,이분이,김종숙,홍명순,이명자,
정선자,이춘생,임숙이,김귀화,도기대,장종영,임성조,이수경,최정순,
이홍명,장옥희,정덕선,성석희,최득영,이경출,이경출지인,김종희,
박영소,유정희,김문수,박만택,진태호,윤석배,현태홍,전병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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