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세 가지 요구
이 죄인은 쓸데 없이 늙어가면서 점점 믿음의 부족함을 더 느끼게 되었고, 더욱 열심히 기도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모든 면에서 부족한 것이 있지만, 특히 세 가지가 부족합니다.
첫째는 전혀 바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주님께서는 마음과 정성, 힘, 뜻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죄인은 이것이 부족합니다. "완전히"라는 뜻의 "전연"이라는 말처럼, 아무 여유 없이 전부를 바치라는 것인데, 여전히 마음속에 남는 것이 있습니다. 수건으로 덮고 "내 것"이라고 하는 것이 옳지 않습니다. 내 집, 내 돈, 내 자식, 내 아내 등이 주님 앞에서 거리낍니다. 주님 앞에서 내 것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 마음을 버리지 못해 남을 미워하고 배척하게 됩니다. 주님, 이런 마음을 없애주시고 나라는 존재조차 지워주십시오.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무덤에 묻히신 것처럼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게 해주십시오. 모든 우상 중에서도 "나"라는 우상이 가장 큰 우상이니, 이를 부수어 버리게 해주십시오.
둘째는 온전히 의지하는 것이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죄인이 가덕도에 있을 때 병이 들어 죽게 되었는데, 아내가 죽어서 알몸으로 묻힐까 봐 걱정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죽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부족함입니다. 죽어서 알몸으로 묻히든, 자식들이 오지 않든, 제사를 지내는 사람이 없든 상관없습니다. 거지 나사로가 죽어 부자보다 더 좋은 아브라함의 품에 있었듯이, 어떤 방식으로 죽든 상관없습니다. 이런 의지하는 마음을 주시길 바랍니다.
셋째는 온전히 죽는 것이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믿는다는 것은 죽는 것이지, 사는 것이 아닙니다. 죽는 법을 배우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입니다. 죽지 못해 때때로 불평하고 듣기 싫은 소리를 하게 됩니다. 요한 웨슬리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잘 살기보다는 잘 죽기가 어렵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라고 하신 것은 죽으라는 뜻입니다. 교회에 다니는 것은 죽음을 배우러 가는 것입니다. 남이 욕설을 해도 견디고, 남이 빼앗아도 찾지 않으며, 겉옷을 내놓으라고 해도 속옷까지 내주는 것이 죽는 것입니다. 이것을 배우게 해주십시오. 주님처럼 죽게 해주시고, 주님처럼 알게 해주십시오. 이 세 가지를 주님께서 이뤄주시길 바랍니다.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