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로원에서 할머니와 손녀가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는데, 뜻밖의 말을 합니다.
“할머니, 여기 경구투여라 써 있는데 어떻게 먹어야 하는 거지?”
“내가 뭘 알겠니, 뭔 소린지 모르겠다만 그냥 먹어도 괜찮더구마!”
약 봉투에서 늘 보던 말이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정말 이상한 용어더군요.
부랴부랴 인터넷을 찾아보니 한자로 經口投與 즉 “입을 통해서 투여하라”이니
쉽게 말하자면 “먹는 약”이라는 이야기지요.
“먹는 약”이라 써 두는 것과 “경구투여”는, 무슨 차이라도 있는 걸까요?
내친 김에 조금 더 찾아보니, 붙이거나 바르는 약은 경피투여(經皮投與)랍니다.
“붙이는 약”“바르는 약”이라 써 있으면 휠씬 알아보기 쉬울 텐데 말이지요.
나이 들어서인지 병원엘 가면, 목뼈 등뼈 허리뼈 어느 하나 성한 게 없다는데,
기어이 경추 척추 요추 어쩌고 해서 알아듣기 어렵게 만듭니다.
의사회 약사회 한의사회가, 밥그릇 싸움에 엉뚱한 국민편의를 끌어들이기 전에
그들이 쓰는 용어부터 국민이 알아보기 쉽게 고쳐야 하지 않을까요?
하기야 의학 약학뿐 아니라 다른 모든 분야의 전문용어들이 이렇게, 일본용어를
그대로 베껴와서 사용하는 건 마찬가지인 모양입니다.
전에도 한 번 이야기했지만, 요즘 신문에 자주 나오는 분식회계도 그렇지요.
분식이라니 칼국수집 회계장부같이 들리지만, 실제로는 분장할 때의 분(粉)자에
장식할 때의 식(飾)자를 써서 회계장부를 분칠하고 꾸몄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걸 알아듣기 쉽게 회계조작이라 하면, 무슨 문제라도 생기나요?
농업분야도 마찬가지여서, 감자싹을 “욕광최아”해야 한다 해서 무슨 뜻인지를
알아내는데 애를 먹은 적이 있었거든요.
이렇게 각 분야의 전문용어가, 한 눈에 알아보기 어려운 일본식 한자어투성인데
국민의 세금을 지원받는 수백 개의 학회에서는 뭐하고 있는지 모르겠더군요.
하기야, 나랏돈은 눈먼 돈이라 먼저 보는 놈이 임자이기는 하지요.
그래도 뭐 좀 안다는 사람들이, 이런 일본식 한자용어나 제발 좀 고쳤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