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 고자(소경)의 손을 붙드시고 / 마태복음 8:23
주님께서 눈먼 사람의 손을 붙잡고 걸어가시는 그 광경은 마치 우리 눈앞에서 펼쳐지는 것만 같아 감사하다. 주님은 온 인류의 인도자가 되시고, 온 인류는 눈먼 이처럼 죄에 방황한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천국의 맹인과 같다. 세상에는 장애물이 너무나 많아서 눈을 뜬 사람도 쉽게 넘어질 수 있거니와, 하물며 눈먼 사람은 더욱더 넘어지기 쉽다.
아담에게는 선악과를 보여주고, 가인에게는 살인을 보여주고, 다윗에게는 우리아의 아내를 보여주고, 헤롯에게는 허영을 보여주며, 사방에 불을 지르고 넘어지기를 기다린다. 주님이 붙잡아 주지 않으시면 대부분 넘어진다.
이때 주님께서 벳세다에 이르시니 눈먼 사람이 와서 주님께 만져 주시기를 간청했다. 눈먼 사람은 보지 못했지만 귀로 듣고 마음으로 주님의 빛을 간절히 사모했다. 보지 못해도 상관없다. 글을 모르거나, 지식이 없거나, 성경을 모르거나 모든 것이 상관없다. 베드로는 배우지 못했어도 제자의 으뜸이 되었고, 무디는 배우지 못했어도 큰 부흥의 주역이 되었다. 이때 눈먼 사람은 매우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주님께서 그의 손을 붙잡고 걸어가시니 눈먼 사람은 이제 안심했다. 이제 편안히 큰 길이든 좁은 길이든 걸어갈 수 있게 되었다. 장애물도 두렵지 않게 되었다. 이때 주님께서 손을 붙들고 가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주님, 저를 만져 주세요"라고 기도한 까닭이다. 그 기도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실된 기도였다. 주님의 마음은 움직이셨고, 그래서 주님의 손이 먼저 눈먼 사람의 손을 잡게 되었다.
우리가 주님의 도움을 그저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것은 부적절하다. 주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기도가 필요하다. 그 후에야 주님의 손이 맹인의 손을 잡게 된다. "다윗의 자손이여,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칠 때 주님의 걸음이 멈추어졌다. 첫째는 눈먼 이의 손이고, 둘째는 구원자의 손이다. 서로 손을 잡게 됨은 하늘의 영광이 죄인에게 임하는 순간이다.
맹인을 데리고 마을 밖으로 가시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마을 밖은 세상 밖이며, 곧 천국이다. 천국은 세상 밖에 있다. 주님께서 죄인에게 하늘의 큰 빛을 비추어 줄 때는 반드시 세상 밖으로 가신다. 맹인의 믿음을 굳건히 하기 위해 먼저 침으로 발라주시고, 세상의 법칙을 조금 가미하신 후 손을 떼시고 "무엇이 보이느냐?"고 물으시니, 맹인은 "사람이 나무처럼 걸어가는 것 같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는 아직 눈이 완전히 치유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 눈에 다시 손을 대시자 눈이 나아서 모든 것을 분명히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는 믿음의 인내를 가르치는 것이다. 처음 믿고 즉시 은혜를 받는 이도 있지만, 대부분은 상당한 인내와 시간을 견뎌내지 않으면 천국을 볼 수 없다. 우리는 주님께 기도하고 오래 기다리며, 은혜가 임할 때까지 인내하고 기다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