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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애의 수필세계
- 언어로 내면 드러내기, 욕망의 변증법적 양상 -
권대근
대신대학원대학교 문학언어치료학 교수
한국문인협회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 교수
“수건춤을 추는 여인이 그려진 한지 채색 그림 하나가 문득 눈에 들어왔다. 내 눈앞에 쉴 새 없이 던져지는 삶의 과업들을 해결하느라 모래바닥처럼 거칠고 지쳐버린 가슴에, 그녀가 올린 자유의 깃발은 감로수 같은 파도 한 줄기 솟구치게 하더니 가슴 밑바닥을 자르르 훑는다. 일어서야지, 허공에 나부끼는 저 수건처럼. 어느새 나는 그림 속 춤추는 여인이 된다.”
김정애의 <수건춤> 중에서 -
I.
김정애 수필집에 나타난 언어는 기호와 상징의 조직화된 체계로 정의된다. 이 체계에서 기호와 상징은 모두 서로에게 연결되어 꽉 짜인 의미체를 구성한다. 따라서 모든 언어는 저마다 격자, 세계관, 전망을 구성한다. 김정애 수필의 언어를 통해 세계를 보는 것은 프리즘으로 ‘보이지 않는 빛’의 내면을 보는 것과 비슷하므로, 언어의 체계를 분석하면 작가의 내면풍경을 들여다 볼 수 있을 것이다. 김정애의 언어 체계는 결코 닫혀 있지 않고 열려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언어는 마음의 울림에 따라 변화한다. 관점에 따라 풍경이 정경이 되기도 하고 정경이 절경이 되기도 한다. 이것은 그녀의 의미화 능력이 탁월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언어는 감정과 생각, 의지까지도 표현하므로 소통의 길이 된다. 이 수필집의 여러 글들에서 욕망의 조직화된 상징체계가 숨어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김정애 수필의 매력은 내면 풍경을 보여주는 데 있다. 작가가 감동적인 구조를 형상화하기 위한 이런 전략을 치열하게 탐구했다는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우리는 언어에 담긴 내면풍경을 통해서 한 작가를 총체적으로 인지할 수 있다. 그 가능성에는 끝이 없다.
수필의 정의에는 ‘내면의 고백’과 ‘통찰’이 있다. 김정애의 언어는 내면의식을 구성하는 특성을 갖는다. 언어는 세계를 이해하고 지각하는 방식을 짜냄으로, 세계에 대한 성향까지 좌우한다. 다른 언어를 사용하면, 세계를 달리 지각하고 혹은 구상하는 것이 가능하다. 더 극적으로 말하면 언어가 달라지면 현실도 달라진다. 요컨대 언어는 사람의 정신에 개입한다. 언어가 다르면 이해도 달라진다. 언어 이면에 서 있는 절대적인 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구체적인 것만 존재할 따름이다. 본질적으로 언어의 색깔을 논의하는 것은 마음의 풍경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언어 바깥으로 나가는 출구는 없다. 작가가 문학언어를 쓸 때마다 거기에 따라 특정한 전망과 사유가 따라 나오며, 그것에 연동된 의식으로 적절한 선택, 감정의 반응, 치유적 행위가 생겨나고 있다. 마음도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는 것이다. 문제는 수필화자가 누구나 다 언어에다 총체적인 자신을 싣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정애는 문학언어로 자신의 의식 틀을 짠다는 것에서 남다르고 특이하다.
모든 의식은 문학언어에 의해 틀이 짜이고, 그렇게 형성된 언어는 작가의 내면풍경을 엑스레이처럼 찍어 그림자의 인격화를 구현한다. 언어의 틀은 내면 풍경 엿보기라는 특정한 창문을 짜는 것이다. 김정애의 수필쓰기의 특성은 단순히 마음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만이 아니고 보람을 가지고 즐거워하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데 있어서 미적 울림을 준다는 것이다. 언어표현에 능통한 작가는 자신만의 관점과 신념에 따라 세상의 틀을 짜는 데 성공한다. 그런 다음 자신이 욕망하는 감동과 설득을 위해 변증법적 틀을 사용한다. 수필의 언어는 삶을 부른다. 삶이 일정한 맥락의 언어 안에 있다는 뜻이다. 그 맥락 안에는 끝없는 욕망과 좌절과 갈등이 있다. 극복과 회피라는 심리 과정을 겪으면서 한 인간의 자아가 성숙해 가는 것을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 수필들은 치료성을 띤다고 하겠다. 여러 작품들에 적확하게 쓰인 문학언어는 독자와의 심미적 소통을 가능케 하고, 욕망이 변증법적으로 변용되어 치료효과를 보여줌으로써 독자를 미적 사유로 안내하고 감동까지 준다. 그 감동의 심미작용을 유기적으로 살펴봄으로써 작품의 진실에 다가서 보기로 하겠다.
II. 욕망의 드러내기, 그림자의 인격화
문학의 힘은 언어의 힘이다. 문학의 힘은 언어로부터 나오지만 단순히 개인을 움직이는 것만은 아니다. 김정애의 <내 마음의 엑스레이>나 김정애의 여러 편의 수필들은 여성의 경험과 여성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특히 <망각주머니>는 오십이 넘어 대학원에 진학하여 발견한 생의 기쁨을 노래함으로써 많은 만학도의 진학열풍을 일으키는 힘으로 작용했다. 현실을 긍정하는 데는 정서적 힘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러한 긍정의 정서를 움직일 수 있는 힘도 바로 문학의 힘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김정애의 수필은 잘 보여주고 있다. 문학언어는 문화에 ‘참여’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수필은 사실을 기반으로 해서 상징을 활용하거나 확장시켜나가거나 새롭게 만들어내는 일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문학의 힘은 단순히 언어적 힘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독자의 정서에 울림을 주는 파도와도 같은 것이다. 단순한 언어의 힘이 순간적이라면 문학의 힘은 오래 오래 지속되는 정서적인 힘인 것이다.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정말 정말 행복합니다.” 고장 난 레코드판처럼 이 부분만 읊어진다. 더는 모른다. ‘정말 정말’ 감정을 한껏 넣어 눈을 감실 감은 채 기와집 처마 끝처럼 길게 뽑은 뒤 ‘행복합니다.’로 활짝 웃으며 마무리하는 내 모습에 감정이 스스로 증폭되어 노래는 도돌이표 된다. 춤을 멈출 수 없는 동화 속 분홍신 아이처럼 노래에 빠져들더니 급기야는 일어서서 고개까지 흔들며 박수치며 불러댄다. 행복에 빠진 거울 속 내 표정이 그렇게 예쁠 수 없다. 윤항기의 이 노래는 단순한 멜로디로 구성되어 있지만 중독성이 엄청나다. 목사가 된 윤항기가 이 노래를 부르는 걸 텔레비전에서 봤지만 그게 언제인지도 모를 정도로 한참 되었다. 특별히 행복할 일도 즐거운 일도 없었는데 어떻게 이 노래가 내 뇌리에 살아 있다가 오늘 불현듯 꽃이 핀 것일까?
<망각주머니>에서 -
문학에서는 뭐니뭐니해도 진솔함이 차지하는 비중이 제일 크다. 수필의 감동은 내용을 얼마나 솔직하게 진술하느냐에 따라 그 작품의 성패가 결정된다. 수필은 서술에 의한 정서적 구체화에 의해 주제 전달이 가능하므로 작품의 성공 여부가 ‘내면 드러내기’에 의해 결판이 난다. 따라서 솔직한 표현은 수필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고 하겠다. 김정애의 솔직성은 남편의 부도로 인한 아픔과 갈등의 진술에서 그리고 만학도로서의 고백에서도 드러난다. 김정애는 자신의 사상과 느낌 및 의도 등을 윤항기의 노래 가사를 통해 다른 이에게 잘 전달한다. 작가는 뜻과 감정을 정확히 표현하려고 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상황과 목적에 따라 상대방에게 더 잘 표달하려고 노력하고 있어 믿음직스럽다. 작가는 문학언어치료학 전공자로서, 본격수필가로서, 어려운 개념은 쉽게, 추상적인 것은 구체적으로 표현함으로써 보이지 않는 관념을 보이게 해서 독자를 효과적으로 이해시킬 필요가 있으며, 상투적인 표현에서 벗어나 좀더 참신하고 생동감 넘치는 글을 쓸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내면을 간접적으로 전달하여 자신의 내면을 형상화하는 작가의 미적 감수성은 솔직함과 함께 탁월한 안목으로 남는다.
수건에 기쁨과 희망을 담고 하늘하늘 날다, 이내 삶에 치여 흐느끼고 절망한다. 삶의 표상처럼 흔들던 수건마저 던져버리고 심연으로 가라앉듯 바닥에 엎드린 채 어깨 들썩이며 못내 서럽게 몸부림친다. 이윽고 어깨의 흔들림이 잦아들고 한바탕 한풀이가 끝나니 달빛 교교한 밤바다처럼 마음이 가라앉는다. 자존의 표상인 양 다시 수건 찾아들고 공중으로 훠이 흩뿌리니 애환도 허공으로 날아간다. 정갈해진 수건의 맑은 기운은 마지막 이파리처럼 고요히 아미를 쓰다듬고 흐르다, 은장도로 허공을 가르듯 단호한 손길을 따라 크게 소용돌이치면서 여인을 휘감는다. 상큼 차올렸다 내딛는 버선코와 함께 춤사위는 바람에 나부끼는 댓잎처럼 가벼워졌으나 몸가짐은 나무 둥치처럼 장중하다. 흔들리지 않는 중심으로 마음은 오히려 깃털처럼 가벼워진 것이리라.
- <수건춤>에서 -
문학이란 삶에 대한 욕망의 표현행위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아무리 다른 양상의 삶을 표현한다 치더라도 그 속에는 특정한 삶에 대한 상징적 언표, 즉 집합적 욕망의 그림자가 담기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문학적 언어를 입은 욕망은 언제나 삶의 내부에서 외부를 사유하는 ‘문학적 진실’을 추구하게 된다. 김정애의 수필이 그녀가 지향하는 욕망의 전개양상이라고 볼 수 있는 근거는 위의 <수건춤>에서 볼 수 있듯이, 언제나 현실을 억누르고 있는 제요소들을 다양한 욕망의 요소들로 개방시키려고 하고 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각각의 작품들이 어떤 욕망을 향해 일관되게 나아가고 있기에, 그 맥락에는 작가만의 독특한 그림자 형상이 반영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작가의 언어에 의해 발현된 욕망의 형태나 구조의 이해는 독자의 몫이다. ‘빈 가지에 소복이 얹은 눈 속에서도 툭 터지는 매화의 아름다움을 기대하는 건 겨울가지만의 특권이 아니겠는가. 언젠가 내 살풀이춤에도 개화의 꿈을 한 줌 얹어보리라.’라는 결구는 작가가 사용하고 있는 객관적 상관물로써, 현실을 이해하는 미세한 간극이 될 수도 있고, 김정애의 심리적 경계를 드러내는 장치가 될 수도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수사학에서 언급한 세 가지 설득의 원리인 파토스, 에토스, 로고스적인 호소 구조 중에서도 김정애는 문장을 통해서 독자의 감정과 정서를 자극하는 파토스적인 호소 설득전략을 구사하는 데 익숙하다고 하겠다.
눈물이 주루룩 흐른다. 아, 이거구나… 가까이 둘 수 없는 내 아기를 그리워하는 마음. 이미 다 자라서 내 곁을 떠나 일가를 이루고 있는 아이. 먼 외국에서 영상통화로만 접할 수 있는 아이. 그립단 말은 심중에 깊이 숨겨둔 채 그저 높은 톤으로 밝게 웃고 안부 주고받으며 손녀딸만 요란하게 어르다마는 짧은 해후. 정작 나는 너랑 깊은 속마음을 나누고 싶은데… 다 자란 아이에게 집착하는 것은 어리석음이라는 것을 잘 아는 내 의식이, 그리움의 향기조차 못 뿜도록 꼭꼭 봉해서 기억도 안 나는 노래 가사 속에 이리도 꽁꽁 숨겨뒀단 말인가. 치매처럼 지치도록 헤매어도 찾을 수 없던 귀향의 본능 같은 이 뜨거운 사랑을!
꿈을 통해 속마음을 들켜 흐느끼던 슬픔을 뜨거운 눈물이 위무해주듯 볼을 타고 천천히 내린다. 꿈은 우리의 속마음을 찍는 엑스레이인가 보다. 오늘 걸려올 아이와의 짧은 해후에 혓바닥만 적실 그리움의 갈증이라도 풀어야지. 아이와 체온을 한데 엮어주던 포대기는 고이 접어 마음의 장롱 속에 다시 깊이 간직해야겠다. 먼 훗날, 아이가 지금의 내 나이되어 고운 딸을 시집보내고 난 뒤, 이 마음의 포대기 펼쳐 보이면 그때는 내 마음을 공감해줄까.
<내 마음의 엑스레이>에서 -
표제작인 <내 마음의 엑스레이>는 치유성을 띠고 있다. 감정적 통합과 인지적 구별의 과정이 불균등하게 발전할 때 심리병리학적으로 ‘상처’가 만들어진다. 이 수필은 아들을 외국에 유학시키고 그곳에 정착해 버린 아들에 대한 그리움이 마음의 상처가 되어 드러난 글이다. 김정애의 심리적 상처는 아들이 작가와 자주 만날 수 없는 먼 거리에 거주한다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아들을 보고 싶어도 생각대로 할 수 없는 현실은 보고 싶어도 참아야 한다는 마음과 충돌하면서 그 고통이 꿈 속에서 압축과 전이로 나타난다. ‘아이와의 짧은 해후에 혓바닥만 적실 그리움의 갈증을 잠시라도 풀 수밖에 없는’ 사정도, 어미의 심정을 모르는 아들을 원망할 수도 없는 자신의 속마음도 모두 엑스레이로 투영되어 나온다. ‘무릎의 아픔처럼 마음도 대로는 아프다’는 작가는 표현할 수 없음의 본질인 ‘고통’을 꿈의 속성에 의지해 욕망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런 점에서 작가의 번민은 하나의 욕망이 다른 욕망에 의해 파생되고 있고, 상호 작용하는 두 욕망이 대립적으로 맞서며 그 결과에 의해 고통이 꿈속으로 들어간다. 그러므로 그녀의 번민과 고통을 품은 욕망의 전개는 ‘마음의 장롱 속에 다시 깊이 간직됨으로써’ 변증법적 양상을 보인다고 하겠다. 그리고 그것들은 작품성과 미적 울림의 창조에 유기적으로 기여한다.
이러한 변증법적 욕망이 작용하며 작가의 행동과 사유를 결정하는 것은 표제 작품에 국한되지 않고 수필집 전편에 걸쳐 나타나는 전반적인 특징이다. 감정의 소통으로 내면화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치료라면, 상실된 언어를 복원하는 것이 치료의 목적이다. 김정애는 수필을 통하여 상실된 언어를 되살려 냄으로써 ‘그림자의 인격화’를 이루어내고 있다. 큰 아들이 서울대를 나와 외국에 유학, 박사학위를 받고 외국 유학 중 만난 여인과 결혼하고 외국생활을 하게 되면서, 그녀의 그리움은 기억으로 남으려는 힘으로 작용하게 된다. 기대와 현실이 대립되는 욕망은 변증법적으로 전개되는 일련의 질서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데, 언어의 쓰임새 하나하나가 문제를 지각하는 방식을 바꾼다. 작가의 언어화된 내면이 욕망의 변증법적으로 전개되는 것이 <내 마음의 엑스레이>의 전반적인 특징이라면, 욕망의 변증법적 전개 양상을 살펴보고 그 의미를 찾아보는 것은 이 수필집을 감상하는 포인트가 될 것이다. 작품 소재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과 그것을 미적으로 배열하는 구조화방법, 그리고 담화에 생기를 불어넣는 개성 있는 수사전략을 통해서 김정애 수필이 탄생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수필집이 갖는 의미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고 하겠다.
거울 속 그는 나의 은밀한 애인이다. 객관적으로는 결코 아름다울 수 없는 나의 적나라한 모습을 대하고도 언제나 사랑의 눈으로 쓰다듬는다. 결코 벗겨지지 않을 콩깍지가 눈에 단단히 씌워있다. 정성들여 화장을 할 땐 언제나 너무 아름답다고 만족한 미소를 띄어준다. 보이고 싶지 않는 것은 보지 않는 센스까지 갖춘 멋진 매너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눈가 주름대신 눈웃음을 보고, 팔자 주름대신 환한 웃음을 본다. 외출을 위해 옷을 차려 입고 서면 멋지다고 탄성을 울려준다. 부피 큰 몸은 짐짓 보지 않고 잘 어울리는 멋진 스타일이라 눈부셔한다. 칭찬에 고무된 나는 가끔 거울 앞에서 음악도 없이 춤을 추기도 한다. 커다란 거울이 있는 내 방은 아무도 몰래 춤추기에는 안성맞춤이다. 몇 년 전 여고동창회 무대에서 친구들과 춤을 추기로 하고 연습을 위해 단 것이었다.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어깨를 낮추어 쇄골을 드러낸 뒤 손가락 끝에 힘을 주어 모양을 내고는 양 팔을 위와 옆으로 뻗어 올려 포즈를 잡는다. 아름답다. 아름다운 내 모습을 보는 것은 행복이다. 거울 속 나의 애인은 화장과 옷차림, 춤추는 나를 보며 내 절정의 순간을 함께 해 준다.
거울은 자아를 강화해주고 자신감을 북돋워준다. 둘이 하나가 되고자 하는 나의 무화(無化)가 아니라 스스로 완전해지고자 하는 것이다. 인생은 어차피 홀로 인연을 맺고 풀면서 돌고 도는 것이 아니겠는가.
<거울>에서 -
김정애의 수필을 읽으면 동시대에 대한 역사적이고 대사회적인 신념과 행동이 부조리한 현실세계를 개혁하려는 욕망과 닿아 있기도 하고, 자신의 내면에 끓고 있는 개인적인 욕망이 영토적인 범주에서 탈주의 선을 그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수필을 보면, 그녀는 능동적이고 긍정적인 변화를 모색하며 삶의 의미를 캐내는 작가라 하겠다. 작가는 자아를 강화하는 도구로 ‘거울’을 활용하고 있다. ‘인생은 어차피 홀로 인연을 맺고 풀면서 돌고 도는 것’이라 믿는 김정애는 가부장제 집안의 중심에 서있는 남편의 아내다. 가문의 법도를 따라야 한다는 입장에서 ‘구심력’의 소극적 욕망태이지만, 원심력의 열린 세계를 지향하며 보다 더 나은 자신을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의식의 작가로서 ‘원심력’의 적극적인 욕망이 ‘거울’에 내면화되어 있는 것이다. 또한 ‘구심력’과 ‘원심력’의 경계를 ‘수필’을 통해 심미적 세계와 대치시켰다는 점에서 ‘중용적’이다. 작가의 작품성에 따르는 필수적인 조건은 미적 진보다. 왜냐하면 작품의 생성은 ‘현실도피’에서 나올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김정애의 의식은 현실공간과 이격되어 있지 않다.
유행가 가사의 글귀 하나가 나이에 대한 억압으로부터 우리를 힐링시키는 걸 보며 말의 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내 나이가 어때서’ 노래의 마지막 소절인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를 다양한 변주로 가사를 바꿔 불러보련다. ‘내 나이가 어때서, 여행하기 딱 좋은 나인데.’, ‘내 나이가 어때서, 자유로운 영혼의 황금기인데.’, ‘내 나이가 어때서, 수필쓰기 딱 좋은 나이인데!’
<내 나이가 어때서>에서 -
김정애의 작품 속에는 수많은 차이를 가진 가변성의 공백이 존재하며 그 공백에는 욕망의 진실이 삽입되어 있다. ‘나이 예순이 넘고 보니 마음이 나이 다라 절로 늙는 게 아니라 늙은 체 할 분이라는 걸 알았다’는 작가의 고백은 ‘욕망’의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고자 하는 솔직함에 힘입어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문학에 있어 욕망이란 타자화된 욕망이 되었을 때 의미를 갖는 법이다. 그런 욕망 같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이 예술이다. 작가라면 ‘보이지 않는다의 눈’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발견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 수필가들의 의식이 아직도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경계에 머물고 있다는 점이 아쉬움을 준다면 김정애는 그런 문제점을 극복해내고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훌륭한 작가군에 속한다고 하겠다. 글은 관념의 유희일 수는 없다. 이 수필집의 주제 형상화 과정은 심층과 표층 그리고 담론층을 거쳐 중층구조를 통해서 설명할 수 있다. 지금껏 평론가로서 활약해왔기 때문에 김정애가 수필가의 정체성을 가지고 수필의 자폐성을 넘어서려고 시도하려는 것만으로도 큰 성과라 하겠다.
III.
타자화된 욕망이란 세계와의 단절이나 자기만의 폐쇄적 공간에서는 발현되지 않는 법이다. 좋은 수필은 새로운 세계관과 해석을 담았을 때 의미가 있는 것이다. 김정애의 작품에 나타난 가장 큰 특징은 언어로 내면과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원심력의 욕망과 그 원심력을 향한 탈주의 선이 잘 형상화된 데 있다고 하겠다. 이 수필집을 읽고 있노라면 어느새 삶의 경건성에 경의를 표하게 된다. 이러한 경건성은 자신의 내면풍경과 의식의 흐름에 대한 진솔성에 연유한다. 그녀의 수필쓰기는 성숙한 인격의 소유자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기에 감동성을 배가한다. 주로 내면에 천착하는 것으로 볼 때, 그녀의 문학은 형이상학적 의식의 발현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현실 자체’와 ‘현실 의식’은 확연히 구분되어야 한다. 현실을 반영하되 현실에 함몰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곧 현실에서도 자유로운 정신을 소유해야만 한다는 뜻이다. 문학언어의 목적은 감동을 표달하는 데 있다. 문장미학의 관점에서 그녀의 수필언어는 묘사와 서사를 변증법적으로 통일시킨 특성을 갖는다. 그런 점에서 김정애의 사십여 편이나 되는 수필은 감칠맛과 여운, 담백성과 격조 등을 충분히 담보하고 있다. 이들 작품이 하나 같이 의미 있는 것들에 대한 숨기기와 드러내기의 교집합을 노리고 있고, 자신의 내면을 ‘아하-경험’을 통해 절제된 언어로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이 수필집은 부산수필의 미학적 위상을 보여주는 텍스트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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