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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습득(寒山拾得) 화시(畵詩)
寒山拾得二聖 降乩詩曰呵呵呵
我若歡顔少煩惱 世間煩惱變歡顔
爲人煩惱終無濟 大道還生歡喜間
國能歡喜君臣合 歡喜庭中父子聯
手足多歡刑樹茂 夫妻能喜琴瑟賢
主賓何在堪無喜 上下情歡兮愈嚴
呵呵呵
考寒山拾得爲普賢文殊化身
今稱和合二聖爲寒山拾得變相也
花之寺僧羅聘書
한산 습득 두 성인께서
강계시에 이르시되,
하하하 허허허 웃으며 살라 시네.
내가 환히 웃으면 번뇌가 줄어들고
세상 근심일랑 환하게 웃는 얼굴로 바꾸시게.
사람들 근심 걱정 밑도 끝도 없나니,
큰 깨달음의 도는 기쁨 속에 꽃이 피네,
나라가 잘 되려면 군신이 화합하고
집안이 즐겁고 화목하려면 부자간에 뜻이 맞고
형제간 손발이 맞으면 안 되는 일 하나 없네,
부부간에 웃고 사니 금실이 좋을시고
주인과 손이 서로 맞아 살맛이 절로나니,
상하가 정다우며 기쁨 속에 위엄있네
허허허 하하하 웃고, 웃고, 사시게나!
*한산과 습득이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의 화신이라.
이제 한산과 습득 두 분을 성인으로 칭하며 그 모습을 그린다.
화지사승 나빙 쓰다.
이 한산습득도(寒山拾得圖)는 선종화(禪宗畵)는 청대(淸代) 화가(畫家) 출신(出身) 나빙(羅聘)(1733~1799)의 작품(作品)이라고 한다. 자호(字號)는 둔부(遯夫)이고, 호(號)는 양봉(兩峰)이고, 또는 화지사승(花之寺僧), 의운(衣雲) 등이 있고, 별호(別號)는 화지사(花之寺), 금우산인(金牛山人), 주어부(洲漁夫), 사연노인(師蓮老人) 등을 썼다. 어린 나이에 청년(靑年) 시화가(詩畫家)가 되었고, 김동심(金冬心)에게서 그림은 배웠는데, 인물(人物), 불상(佛像), ‘선화(禪畵), 화과(花果), 매죽(梅竹), 산수(山水) 등에 모두 뛰어났고, 특히 세상(世上)을 풍자(諷刺)하는 귀신(鬼神) 그림을 잘 그려 일세(一世)를 풍미(風味)했다. 그 자신이 양주팔괴(揚州八怪) 중 한 명이었고, 그의 아내 방완의(方婉儀) 또한 백련거사(白蓮居士)라는 호를 쓴 화가로 매죽난석(梅竹蘭石)을 잘 그렸다. 나빙(羅聘)의 유마힐(維摩詰) 정명거사(淨名居士) 인물도(人物圖)를 보니, 화폭(畫幅) 중앙(中央)에 뭔가? 곰곰이 생각하는 선사(禪師)들의 날카로운 신광(神光)이 압도(壓度)하는 눈매 의취(意趣)가 물씬 풍기는 필정(筆情)이 한산습득도(寒山拾得圖)에서 마냥 느껴진다. 위 게송(偈頌) 중에 강란시왈(降亂詩曰)을 강계시왈(降乩詩曰)로 읽고 표기하는 곳도 있고, 항란시왈((降亂詩曰)로 표기하는 곳도 있어서 자료를 찾아보았더니, 소개(紹介)하는 사람마다 십인십색(十人十色)이다. 그래서 나빙(羅聘)의 원화(原畫) 탁본본(拓本本)을 참고(參考)할 수밖에 묘책(妙策)이 없었다. 강계시왈(降乩詩曰)로 읽어야 한다는 자료에는 강계(降乩)는 도를 깨달은 사람을 지칭(指稱)한다고 하는데, 그 자료도 찾아보아도 없다, 사전 자전에는 계자(乩字)는 무꾸리할 계자(乩字)다. 어지러울 란자(亂字)와 약자(略字) 란자(乱字)와 비슷해서 란자(亂字)로 잘못 보는 읽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아마 법정스님께서도 한산습득도(寒山拾得圖)를 보다가 함석헌 옹에게 계자(乩字)가 궁금해서 물었던 모양이다. 함석헌옹도 자전에 무꾸리할 계자(乩字)라고 만 답신(答信)을 하면서 계자(乩字)는 더 찾아보니, 무꾸리라는 것으로는 의미(意味)가 통(通)치 않고, 그 계(稽)의 뜻 중에 '유지(留止)'라는 것으로 취해서 강계(降乩), 곧 이 세상에 내려와 머물러 계셨다는 의미로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무엇을 찾을 것이 있어 자전(字典)을 뒤적이다가 우연히 재미있는 시를 발견했기에 나누고 싶어서 여기 써 보냅니다. 삼국시대 위(魏)의 여남인(汝南人) 응거(應璩) 이라는 유명한 문인의 글이랍니다. 새해 잘 맞으시기 빕니다. “그 옛날 길 가는 사람이 있어 밭두렁 위에서 세 분, 노인을 만나 연세는 제각기 백 살이 넘었는데, 함께 서로 논을 매고 있었네, 수레를 멈추고서 세 노인에게 묻기를 어떻게 이토록 장수를 누릴 수 있나 하였더니, 위에 있던 노인이 앞에 나와 말하였네, 집에 있는 할멈이 아주 못생겨서 그렇다오, 중간에 있는 노인은 이렇게 말했네, 뱃속을 헤아려 먹는 것을 조절했소, 아래 노인은 와서 말하길 밤에 잠 잘때 머리를 덮지 않는다 하였네, 중요한 뜻이 담겼네, 이 세 노인의 말이여 이 때문에 오래토록 살아갈 수 있구나,<昔有行道人 陌上見三叟 年各百餘歲 相與鋤禾莠 住車問三叟 何以得此壽 上叟前置辭 室中嫗粗醜 中叟前置> 편지 답 내용으로 보면 두 분도 계자(乩字)의 이미를 찾지 못한 것 같다. 화옹(和翁)이 도가(道家) 고전문헌(古典文獻)을 찾다 보니, ”여조전서(呂祖全書) 속에 휘집(彙集)된 전팔품선경(前八品仙經)의 오행단효(五行端孝)임을 소개하며, 그 문헌의 내용과 도교사적(道敎史的) 맥락을 고찰한다. 이 문헌의 탄생은 명말 청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중국의 여러 지역에는 백성을 구제하고 신선술(神仙術)을 가르쳐준다는 이유로 여동빈(呂洞賓)을 신앙(信仰)하는 일단의 지식인들이 있었다. 이들은 난단도교(鸞壇道敎) 공동체(共同體)를 형성하여, 강신술(降神術)로 여동빈(呂洞賓)을 응하게 하고 강계(降乩)라는 방법을 사용하여 그에게 가르침을 받아 여러 도교 경전을 만들었다.
그들 가운데 몇몇은 1589년부터 1626년 사이에, 중국 광릉(廣陵) 만점(萬店)의 집선루(集仙樓)에서 여동빈으로부터 오토결중곡(烏兎結中谷: 까마귀와 토끼는 중곡에서 모이고) 구사반내정(龜蛇盤內庭: 거북과 뱀은 내정에서 서로 얽혀있네)’이라는 문구가 든 경전을 강계(降乩)로써 받아 「오행단효」라고 이름 지었다. 이 문구는 인체 내에 존재하는 음양과 수화(水火)의 두 기(氣)가 교구(交媾)하는 내단(內丹) 수련으로써 신선의 경지에 오름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여기서 강계(降乩) 단어(單語)가 나온다. 강계(降乩)는 도가(道家)의 영적계시(靈的啓示)가 아닐까? 사료가 된다. 한산습득도(寒山拾得圖)에서 강계시(降乩詩)는 깨달음을 얻은 이가 읊은 시로 게(偈, gātha)와 같은 뜻을 말한다. 여동빈(呂洞賓)은 팔신선중(八神仙中) 한사람으로서 호(號)가 순양자(純陽子)라고 한다. 여기서 강계의 내용을 보면 가르침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여동빈(呂洞賓)의 출생 이야기다. 여동빈은 마조도일선사(馬祖道一禪師)와도 어릴 때 인연이 있다. 여동빈의 본명은 "옥경(王京)"이고, 자(字)는 백옥(伯玉)이며 또 다른 이름은 소선(紹先)이다. 출가 이후에는 이름을 암(岩)으로 고쳤고, 자는 동빈(洞賓)이다. 그는 당나라 후대, 관서 하중부 낙현사람이다. 현재 지명은 산서성 영락현이며, 그곳에 그가 태어난 것을 기념해서 만수궁(萬壽宮)을 세웠다. 그는 당나라 덕종 정원(貞元) 12년(797년) 4월 14일에 출생했다고 한다. 그의 모친이 여동빈을 낳을 때 기이한 향기가 방에 가득하고 자주색 구름이 하늘을 덮었으며 한 마리 선학(仙鶴)이 하늘에서 날아 내려와 침상으로 날아들다가 돌연 사라졌다고 한다.
마조 도일(馬祖 道一)의 미래 예견이다. 여동빈은 태어나면서부터 관상이 보통 사람과는 달랐다고 한다. 즉 양쪽 눈썹이 길고 비스듬히 구레나룻과 이어졌고, 봉황의 눈매에 광채가 나며, 코는 높고 단정하며 왼쪽 눈썹과 왼쪽 눈 아래 검은 점이 있었다고 한다. 그의 부친은 이렇게 기이한 조짐을 갖고 태어난 이 아이를 매우 총애하였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공교롭게도 불교 선종 6조 혜능대사(慧能大師)의 손(孫) 제자(弟子)인 마조화상(馬祖和尙)이 그의 집을 방문했다. 동빈의 부친은 강보에 싸인 아이를 안고 와서 마조대사(馬祖大師)에게 보이면서 아이의 앞날을 물었다. 마조대사가 동빈의 관상(觀相) 본 후 "이 아이는 풍모가 맑고 기이하며, 골상 또한 평범하지 않으니, 풍진을 벗어난 뛰어난 인물이다. 아이가 성장한 후 우여즉거(遇廬則居) 여를 만나면 머물고) 하고, 우종즉고(遇鍾則叩), 종을 만나면 두드려라) 하라면서 이 여덟 자를 평생 꼭 기억(記憶) 하라."는 말을 남기고 갔다고 한다. 나중에 마조대사가 예언한 그 여덟 자의 의미처럼 동빈은 과연 여산(廬山)에서 수행하였고, 종리권(鍾籬權)을 만나 도를 배웠다고 한다. 마조도일(馬祖道一) 선사 예견대로 동빈은 두 번 과거시험에 낙방하고 장안 술집에서 홀로 술을 마시다가 도사인 종리권(鍾籬權)를 만나게 된다. 종리권이 술을 대작하다가 즉석에서 시(詩)를 짓는다. 앉으나 서나 언제나 한 호로 술을 가지고 다녔고, 두 눈으로 황도
(세상일)를 모른채 했다네, 하늘과 땅은 이렇게 큰데 성도 이름도 없으니, 한갓 인간 세상을 떠도는 사내일뿐이라네,<坐臥常携酒一壺 不敎雙眼識皇都 乾坤許大無名姓 疏散人間一丈夫> 여동빈은 노인의 시를 음미해 보고 큰 절을 하고 난 후에 성과 이름을 묻게 된다. 노인은 빙그레 웃으면서 성은 종리(鍾離)이고, 이름은 권(權)이라고 했다. 여동빈은 "종리(鍾離)" 두 글자를 듣자, 마음속에 마치 종이 울리듯 옛날 부모님이 늘 말씀하셨던 "마조(馬祖)선사의 예언"이 떠올랐다. 즉 "우여즉거(遇廬則居)하고 우종즉고(遇鍾則叩)하라" 문 앞에 앉은 이 기이한 노인이 내가 마땅히 두드려야 하는 종(鍾)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여동빈도 시(詩)로 화답(和答)을 한다. 유가 집안에 태어나 태평 시대를 만났건만, 갓끈을 걸어두고 허리띠를 벗어 놓았으니 삼베옷이 가볍다(벼슬하지 않은 포의를 비유) 누가 세상과 더불어 명예와 이익을 다투겠는가? 옥황상제를 모시러 상청경으로 되돌아갈까 한다.<生在儒家遇太平 懸纓垂帶布衣輕 誰能世上爭名利 欲侍玉皇歸上淸> 화답시(和答詩)를 본 노인은 한참 여동빈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크게 기뻐하면서 세상을 버리고 입산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여동빈 집에 처자가 있어서 세속을 떠나기 어렵다고 했다. 노인은 여동빈에게 그대와 나는 결국에는 산속으로 들어갈 것이니, 우선 집에 가서 마음이, 결정되면 여관 모처로 오라고 갔다. 그 후 여동빈은 스승 종리권을 모시고 신선술(神仙術)을 배우게 되어서 팔신선중 한 사람이 된다.
마조대사 예견대로 우여즉거(遇廬則居)는 이렇다. 동빈은 여산에서 화룡진인(火龍眞人)에게서 천둔검법(天遁劍法)의 진수를 배웠다. 이때부터 동빈이 강호상에 노닐 때 항상 몸에 보검을 차고 다녔다. 선인 여동빈은 이 칼로 수많은 요마(妖魔)를 제거하고 허다한 공덕을 쌓았으므로 항상 등에 칼을 찬 모습으로 신선도(神仙圖)에 등장한다. 하루는 여동빈이 구름을 따라 노니면서 무창 황룡산으로 갔다. 멀리서 바라보니 산중 절 위에 자주색 구름이 가득 덮여 있어 이인(異人)이 있음을 알고 문득 절 안으로 들어갔다. 그 당시 이름을 떨치던 유명한 황룡선사(黃龍禪師)가 마침 법당(法堂)에서 설법(說法)을 시작하려는 중이었다. 여동빈도 설법을 듣기 위해 사람 무리들 속에 묻혀 함께 법당으로 들어갔다. 황룡선사(黃龍禪師)께서 오늘 여기에 법을 훔치려는 사람이 있는데, 이 늙은 중은, 설법을, 하지 않겠다. 여동빈은 곧 자기를 가리키는 것을 알고 군중 속에서 나와 예를 취하면서 말하였다. 여동빈이 “화상에게 묻겠습니다. 한알의 조 알갱이 속에 세계가 감춰져 있고, 반 되들이 솥으로 산천을 삶는다는 이 한마디 말은 무슨 뜻입니까?<一粒粟中藏世界 半升金當內煮山川> 황룡선사가 말했다. “하하하. 원래 당신은 시체 같은 죽지 않은 귀신이구나!” 여동빈이 말했다. “화상은 내가 늙어도 죽지 않는 것을 조롱하지 말라. 나의 호주머니 안에는 장생불사(長生不死)의 약(藥)이 있는데 어찌하면 좋겠는가? 황룡선사가 말했다. 당신이 설사 팔만 겁을 지내왔더라도 하루아침에 공망(空亡)에 떨어지는 것을 면할 수 없다.<饒究經得八萬劫 難免一朝落空亡>
여동빈은 황룡선사가 기지와 총명이 남다르다는 것을 알고 황룡선사의 법력이 얼마나 고명한가를 시험해보고 싶어서 등에 차고 있는 보검을 꺼내면서 말하였다. 이 검은 내가 휴대하고 다니는 신령한 보검이다. 내가 원하는 대로 능히 되는데 검을 칼집에서 나오라고 하면 곧 빠져나오고, 칼집에 들어가라고 하면 곧 들어간다. 선사께서는 능히 이렇게 할 수 있겠는가?” 황룡선사께서 웃으시면서 말했다. 비록 영물이지만 그것이 도력 있는 사람의 명령을 들어야 가능할 것 같은데, 당신이 먼저 한번 시험해 보시오.” 여동빈은 보검(寶劍) 한테 칼집에서 나오라고 외치자, 그 검은 칼집에서 스스로 나와 은빛을 뿌리며 절 대웅전 기둥으로 날아가 검 끝이 똑바로 나무로 깎은 용의 눈에 박혔다. 황룡선사가 가볍게 웃으면서 오른손을 들어 올리면서 가운데, 손가락으로 기둥에 박힌 보검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내가 보건대 네가 이 검을 능히 칼집에서 끄집어낼 수는 있으나 다시 꼽을 수는 없다. 여동빈이 큰소리로 웃으면서 칼집으로 들어가라. 그러나 보검은 기둥에 박힌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 검은 여동빈이 여산에서 검술을 배우고 하산한 후 줄곧 몸에 지니고 다니면서 마음대로 하고자 하는 대로 할 수 있어서 신령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이제 더는 주인의 명령을 듣지 않았다. 여동빈이 그 황룡선사의 도와 법이 높고 깊음에 탄복하고 그 자리에서 절하여 사과하면서 불법을 가르쳐 줄 것을 청하였다. 황룡선사는 여동빈의 마음이 진심과 성의가 있음을 알아보았다. 황룡선사께서 말했다.
그대는 이미 반 되들이 솥으로 산천을 삶고 또 어떻게 한 알의 조 알 속에 세계를 감출 수 있는가를 듣지 않았는가? 내가 말한다면, 그 뜻은 즉 먼저 마음속에 아무런 물건(욕심)이 없어야만 능히 삼라만상을 둘러싸 안을 수 있다. 여동빈은 황룡선사의 깊은 뜻을 깨닫고 그 자리에서 오도송(悟道頌)을 지었다. 하나 있는 표주박 주머니도 버리고, 거문고도 깨뜨려 버렸다. 이제부터 불사약(금단)에 더는 연연하지 않을 것이라네, 이제 황룡선사를 한번 만나본 후 비로소 그 당시 마음 잘못 쓴 것을 깨달았다네,<棄却瓢囊擊碎琴 從今不戀汞中金 自從一見黃龍後 始覺當年錯用心> 여동빈은 낭랑하게 오도송을 읊으면서 황룡선사(黃龍禪師)에게 작별인사를 고하고 표연히 떠나갔다. 마조선사(馬祖禪師)께서 예견(豫見)한 대로 여동빈은 신선이 되었다는 일화다. 한산습득(寒山拾得) 도(圖)를 그린 나빙(羅聘)이 한산습득(寒山拾得) 두 성인을 지칭하는 말로 해석(解釋)할 수밖에 없다. 또 4행에 대도(大道), 대철(大徹)도 오자(誤字)가 많고, 6행에 환희정중(歡喜庭中)으로 표기하는 것도 있고, 정중(還喜庭中)로 표기하는 곳도 있다. 8행 부처(夫妻)로 표기하는 곳도 있고, 부부(夫婦)로 처 부(妻 婦)가 다르게 표기한 곳도 있다. 나빙(羅聘)이 요즘 인터넷 한산습득도를 보면 화가 나지 않겠는가? 해서 그런 시비(是非)를 잠재우기 위해서 원본(原本) 그림 탁본(拓本) 시(詩)를 올려놓아 봤다. 뜻이 같다고 아무렇게나 마음대로 쓰다 보면 원래 자료는 없어지고 말기 때문이다. 여여법당 화옹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