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내가 다 소멸될 때까지
우정연
송광사 가는 길이란 시를 쓰고 새삼 송광사가 늘 가야만 하는 곳이 아니라 내 안에 둥지를 튼 존재라는 걸 알게 되었다. 지난 삶에 대한 눈물과 그리움과 사랑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길이다. 그리하여 송광사를 가는 게 아니라 내 안의 송광사를 다독거리는 것이라 말하고 싶다.
아무리 일상이 어둡고 암울해도 그 길에 들어서면 어떤 생각이 정리된듯 환해지는 길이었으니까, 아무리 눈물과 아픔이 커도 그 길에 들어서면 소롯이 풀리는 길이었으니까.
지난 시간 누구보다 열심히 한결같이 살아왔다고 생각하지만 지치고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다. 그때마다 나를 일으켜 세운 것이 그 길이었다.
고난의 길을 걸어가신, 무소불위의 능력을 지닌 자가 아닌 평범하면서도 평범하지 않았던 삶으로 먼저 다녀가신 그분을 떠올리며 걸어온 길이다.
그 길을 지날 때마다 굽이굽이 지나온 생의 그림자들이 꿈인지 생시인지, 그 순간이 있기까지 참 아득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을 햇살이 엿가락처럼 늘어나
휘어진 산길을 힘껏 끌어당긴다
늘어날 대로 늘어난 팽팽한 틈새에서
저러다 탁, 부러지면 어쩌나
더 이상 갈 길을 못 찾고 조마조마하던 차에
들녘을 알짱대던 참새 떼가 그걸 눈치챘는지
익어가는 벼와 벼 사이를 옮겨 다니며
햇살의 시위를 조금씩 느슨하게 풀어주고 있다
비워야 할 일도 채워야 할 일도 없다는 듯
묵언정진 중인 주암호를 끼고
한 시절이 뜨겁고 긴 송광사 가는 길
참, 아득하기만 하다
― 「송광사 가는 길」 전문
그 길 위엔 주암호도 벚꽃터널도 허수아비도 있다. 내게 주암호는 어머니를 떠오르게 하는 곳이다. 내가 가장 힘든 시기에 가셔서 늘 효도하지 못했다는 후회감으로 아쉬움뿐인 어머니가 오래된 가뭄으로 주린 옆구리를 움켜쥐면서 자식에게 젖을 물리는 모습으로 늘 그 자리에 계시는 든든한 모습과 흡사하다. 한 번도 가슴을 거부한 적이 없으신 분, 그분의 모습은 관음보살의 모습이었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보시와 자비와 사랑이다.
어머니가 보고 싶을 때마다 난 주암호 앞에 서서 한없이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곤 한다.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았어도
제 살점 떼어내는 줄 모르고 젖줄을 물려
공양을 올리고 있는 주암호
비워 행복해지는 보시의 공덕을 아시는 듯
이곳을 지날 때마다
세상의 시름은 모두 품안에 받아놓고
몹쓸 소리 들었던 두 귀도 깨끗이 씻어주니
호수의 품을 닮아선지 마음 평수도 환해진다
—「주암호 앞에서」 부분
하늘 청청 고실한 날
새들의 몸짓 주춤하는 사이
뜰 앞
조금씩 늙어가는 감나무
휘청휘청 마른 가지의
말그레한 홍시 하나
툭,
― 「천공」전문
굽이굽이 돌아가는 길을 따라 경내로 들어가면 감로암 가는 길이 있다. 그곳엔 율원의 고즈넉함 속에 호리호리한 감나무, 하늘을 뚫는 힘과 하늘에서 내리는 공양이 동시에 기다리고 있다. 적막강산의 기다림과도 같은 순간이 마치 한순간에 깨달음이라도 얻는 듯 벅차오르는 순간을 쟁반에 담아 나눠주시는 스님의 홍시, 달달한 하늘의 공양이었다.
숲이 우거진 여름에는
글쎄, 화관을 쓰고 겅중겅중 달리는 기린인 줄 알았지요
초겨울 문턱 사천왕님도 졸고 계시는 햇살 꾸벅꾸벅한 오후
홀딱 벗고 우두커니 서 있는 그가
아 글쎄, 오늘은 천수천안관자재보살로 보이지 뭡니까
― 「겨울 배롱나무」전문
그렇게 산사를 한 바퀴 돌아 경내로 오면 이곳 절에는 유독 배롱나무가 많다.
배롱나무를 절에 심는 이유는 이 나무가 어느 정도 나이를 먹으면 껍질을 벗기 시작하는데 스님들 또한 이와 같이 세상의 모든 번뇌를 벗어버리고 해탈의 경지에 이르라는 의미라고 한다. 승가나 속가나 이 나무처럼 번뇌를 벗어버린다면 이곳이 바로 불보살의 세상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사철 다른 모습의 이 나무가 가장 장엄하게 보인 순간이 초겨울 문턱이다. 손 마디마디 뼈마디 사이에 숨어있는 거룩한 천수천안관자재보살의 숨결이 참으로 환희로워 매순간마다 나는 합장을 한다.
그리고 등이 굽어 오래 휘었을 소나무 한그루(「고목」)를 보면 오래전의 스승님을 떠올리게 한다. 주변에 치이기도 하고, 주변과 어우러지기도 한 삶이 노년의 스승님과 닮아 있다. 스승님의 굽은 등의 뒷모습이 오랜 연륜으로 휘어진 고목으로 겹쳐져 보였다.
「목어가 되고 싶어요」는 명태에 관한 작품이다. 일본 방사능오염 사태로 러시아산 명태가 인기가 떨어지자 국산 명태 수량을 늘리고 있다.
허나 이미 명태는 씨가 말라 생태 한 마리당 얼마를 준다 해도 구할 수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요즘은 국산 명태 이름을 금처럼 귀하다하여 금태라고 부른단다.
사람의 필요에 의해 종자를 말살하고 이름을 수십 가지나 지어 부르며 눈깔이 썩었다고 흉을 보는 명태의 삶이 처절하다. 아마 명태는 차라리 목어가 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소중해도 소중함을 모르고 살아온 중생들에게 깨우침을 주는 목어 말이다.
투박한 질그릇이
펑퍼짐한 궁둥이로 누워
어깨와 두 팔은 소나무 등걸을 안고
온몸으로 물을 머금고 있네요
나무 걸개 위 작은 시루에
티를 고르고 물에 불린
쥐눈이콩 한 되 소롯이 담아
하얀 무명베, 틈새 없이 덮어두고
아무도 손대지 마라
눈빛으로 탕탕 못을 박으시네요
“이곳에서 저곳까지는 내 땅이다
누구도 침범하지 마라
물주는 것도, 덮개 열어보는 것도
내 허락 없인
한 손도 내디디지 마라”
큰 성을 지키는 파수꾼의 의지
든든한 창, 칼 대신
분홍 머리띠와 조롱박으로 무장한
삶의 끈 같은 생명력
유난히 칭얼거리는 겨울을
따독따독 안아 키우는 속 깊은 지리산
누워도 ㄱ자, 서도 ㄱ자로
꺾인 아흔여덟 어머님이
성역처럼 지키시는 공간
― 「시루성주」 중에서
지리산 깊은 곳에 사는 친구가 있다. 그녀는 구순의 친정어머니를 모시며 참으로 열심히도 산다. 산속의 격리된 삶을 꾸리면서도 어머니를 잊지 못해 득달같이 집으로 들어가곤 한다. 그녀에겐 어머니가 삶이고 눈물이고 어머니가 자식보다 항상 위였다. 어느 날 어머니가 가신다면 그녀는 삶의 의미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머니가 오래 사셨으면 좋겠다. 그 어머니는 자식의 빽을 믿고 아직도 큰소리 탕탕 치신다. 참으로 귀여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막내 남동생의 왼쪽 팔엔
넝쿨장미 한 그루 환하게 피어있다
동생이 초등학교 2학년 때였던가
어느 점심시간
말꼬리 물다 동생을 다그치던 중
동생은 뒷걸음질로 마룻장 아래
연탄아궁이 속으로 나동그라져
그 여린 팔뚝에 얼룩덜룩 그림이 그려졌다
후회의 시간은 가버린 시간을 잡을 수 없고
어머니는 한마디의 나무람도 없으셨지만 난
지금도 맘 상해하시던 어머니의 돌덩이 같이
무겁던 표정 잊을 수 없다
아직도 그 날의 기억은 생생하고
지금껏 미안하다 말 한마디 하지 못한 내게 동생은
살굿빛 넝쿨장미 한 그루 키우며
늘 환하다
속으로 삭히며 뚝뚝 흘렸을 어머니의 눈물이
얼룩져 일그러진 흉터.
―「흉터」전문
내게는 남동생에 대한 아픔이 하나 있다. 지금은 어엿한 사회인으로 자리 매김한 동생이지만 그를 볼 때마다 가슴이 미어진다. 가끔 여름날의 만남으로 넝쿨장미나무의 당당한 얼크러짐을 볼 때면 눈물이 앞선다.
동생은 한마디도 그 흉터에 대한 말을 한 적 없이 맑기만 하다. 그래서 더 미안하고 그때마다 어머니의 눈빛이 그립다.
시를 쓴다는 것은 늘 부족하고 허기진 마음을 스스로 위안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리하여 내 안의 나를 다독이고 위로하고 치유 받는다.
독특하게도 소중함의 가치가 남달랐던 내게 시는 오래된 사금파리 한 조각처럼 버릴 수도 가질 수도 없는 현실감 떨어지는 일이었지만 늘 가슴 속에 똬리를 틀고 있었다. 그리하여 내 삶 속의 눈물도 사랑도 기쁨도 낙서처럼 끄적거리면서 그렇게 많은 시간을 보냈다. 지천명이 훨씬지나고서 쓰게 된 시들은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아리스토텔레스는『시학』에서 시인이 할 일은 일어난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기껏 꼬막껍데기 하나만도 못한 일어나버린 시어들을 놓고 아옹다옹, 티걱태걱하는 내가 부끄럽지만 난 내 걸음의 속도만큼 쓰고 또 쓸 것이다. 내 안의 내가 다 소멸될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