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문(檄文)>
침묵은 역사의 변명이 될 수 없습니다!
- 사관학교 동문 여러분께 드리는 호소 -
존경하는 선배님!
사랑하는 동기생과 후배 여러분!
우리는 스무 살 청춘을
화랑대에 바쳤습니다.
충무대에, 성무대에 바쳤습니다.
젊음도,
자유도,
가족과 함께할 시간도 뒤로한 채,
오직 대한민국을 지키겠다는 일념 하나로 군인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혹한의 새벽 구보도 견뎠고,
폭우 속 행군도 견뎠으며,
“우리는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생명을 바친다” 라는
신조를 가슴에 새기고 평생을 살아왔습니다.
그 맹세는 지금도 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평생 사랑했던 육군사관학교가,
해군사관학교가,
공군사관학교가,
‘국군사관학교’라는 이름 아래 하나로 통합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정부는 이를 미래를 위한 개혁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압니다.
장교 양성은 행정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안보의 백년대계라는 사실을.
각 사관학교가 폐교되면
땀 흘리던 터도, 복장도, 교훈과 교가도, 사관생도 신조도 사라집니다.
호국의 역사와 전통과 혼이 사라집니다.
안보가 흔들립니다.
동문 여러분!
지금 가장 심각한 것은,
우리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통합을 추진하는 사람들이 이미
본격 행동을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국방부는 자운대에 4년제 국군사관학교 창설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여당은 이를 뒷받침할 입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일부 예비역 장성들은 ‘국군사관학교 창설 지지선언문’을 발표하며 국민들에게 통합이 시대적 흐름인 것처럼 여론전을 펼치고 있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사관학교를 졸업한 일부 인사들까지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통합안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행동하고 있습니다.
국민을 설득하고,
여론을 만들고,
역사를 바꾸려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단톡방에서만 분노하고,
전화로만 한숨 쉬고,
“안 된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침묵은 중립이 아닙니다.
오늘의 침묵은 결국 통합을 돕는 결과가 될 뿐입니다.
동문 여러분!
역사를 돌아보십시오.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나라를 구한 것은 언제나 깨어 있는 국민들이었습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국에서 의병이 봉기했습니다.
- 곽재우, 고경명, 조헌을 비롯한 수많은 의병장들이 나라를 위해 일어섰습니다.
- 서산대사와 사명대사는 승병을 이끌고 왜군과 맞섰습니다.
- 행주산성에서는 이름조차 남지 않은 아낙네들이 치마에 돌을 날라 권율 장군의 군사를 도왔습니다.
노인도,
스님도,
부녀자도,
나라를 위해 일어섰습니다.
나라를 구한 것은 특별한 영웅만이 아니었습니다.
나라를 사랑한 평범한 백성들이었습니다.
3·1운동도 그랬습니다.
총도 칼도 없는 민중이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며 역사를 움직였습니다.
6·25전쟁에서는 교복을 입은 학도병들이 낙동강 전선으로 달려갔습니다.
스무 살 젊은 사관생도들이 소총 한 자루로 적 탱크와 맞서 싸우다가 산화했습니다.
역사는 늘 같은 사실을 증명했습니다.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 역사를 바꾼 것은 ‘누군가’가 아니라 ‘우리’였습니다.
동문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 총을 들라는 것이 아닙니다.
목숨을 바치라는 것도 아닙니다.
- 단체집회에 함께해 주십시오.
- 고을마다 1인 시위를 주도해 주십시오.
- 성명서를 주변에 알려 주십시오.
- SNS에 한 줄이라도 올려 주십시오.
- 국회의원에게 의견을 전달해 주십시오.
- 언론에 기고해 주십시오.
- 주변 사람 한 사람에게라도 이 문제를 설명해 주십시오.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많습니다.
중요한 것은
행동하는 양심입니다.
요즘 가장 두려운 것이 있습니다.
통합안 그 자체보다도
우리의 침묵입니다.
우리는 대부분 반대합니다.
분노합니다.
걱정합니다.
그러나 행동하는 사람은 너무 적습니다.
역사는 소수의 잘못보다
다수의 침묵으로 더 크게 무너졌습니다.
사랑하는 동문 여러분!
후배들은 우리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역사는 우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후배들이,
그리고 우리의 손주들이 우리에게 물을 것입니다.
“선배님, 할아버지, 사관학교가 사라질 때 무엇을 하셨습니까?”
그때 우리는 무엇이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뉴스를 보며 화만 냈다.”
“단톡방에서만 걱정했다.”
“누군가 막아주기를 기다렸다.”
이런 대답만은 남기지 맙시다.
우리는 육사인입니다.
해사인, 공사인입니다.
국가가 위기에 처할 때
언제나 가장 먼저 일어섰던 사람들입니다.
그 정신이 아직 살아 있다면,
지금이 바로 행동할 때입니다.
동문 여러분!
혼자 외치면 하나의 외침일 뿐입니다.
그러나 백 사람이 함께 외치면 여론이 됩니다.
천 사람이 함께 행동하면 국민이 움직입니다.
만 사람이 함께 일어서면 역사는 바뀝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바로 그 만 사람입니다.
3.1운동 때 만세소리가 방방곡곡 들불처럼 번져나갔듯이
그 만 사람의 목소리가 번져나가면 우리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
형제자매 자식손주 친구 친지 모두 다 동원하십시다!
동문 여러분!
우리는 연금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기득권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학교 이름 하나를 지키려는 사람들도 아닙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장교 양성 체계를 지키려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대한민국 안보의 뿌리를 지키려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자유대한민국을 지키려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러나 우리의 후배들은 앞으로도 이 나라를 지켜야 합니다.
그들에게 흔들리지 않는 군과 자랑스러운 전통을 물려주는 것이 우리의 마지막 책무입니다.
호국의 요람이 무너질 때 침묵한 선배로 남지 맙시다.
후배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배가 됩시다.
역사 앞에 당당한 육사인이 됩시다,
해사인이, 공사인이 됩시다.
함께 일어섭시다!
함께 행동합시다!
호국의 요람을 지켜냅시다!
대한민국을 지켜냅시다!
2026년 7월
예비역 대령 가일